[기고] 국가균형발전의 시작은 부산으로부터
송복철 부산경제진흥원장
대한민국은 지금 국가균형발전이라는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다. 수도권 과밀을 완화하고 남부권에 새로운 성장축을 세우겠다는 국가적 구상은 더 이상 선언이나 구호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이제는 실행을 위한 구체적인 추진 방안이 마련되어야 하고, 부산은 그 방안을 적용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고 전략적인 선택지다. 그간 수도권 집중이 심화되며 부산은 ‘제2의 도시’라는 위상이 위축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이 시점에서 수도권의 대체축으로 기능할 수 있는 지역은 사실상 부산을 포함한 남부권이 유일할 것이다. 특히 부산은 세계 2위 환적항을 기반으로 동북아 관문이라는 독보적인 지정학적 입지 위에 항만·공항·철도가 유기적으로 결합된 복합 물류체계를 갖춘 도시이자, 제조업·물류·관광·금융이 집적된 글로벌 복합 대도시다. 서울과 동일한 길을 걷는 추격자가 아니라, 전혀 다른 기능과 구조로 국가 성장의 또 하나의 발전축을 담당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부산의 역할은 더욱 중요하다.
이에 더해 북극항로시대의 개막과 4차산업혁명의 핵심인 AI 기술의 발전은 부산의 전략적 가치를 한층 더 부각시키고 있다. 북극항로가 가져올 글로벌 물류·에너지·산업 지형의 변화와 함께, AI 기술은 전통산업인 물류·제조·해양 산업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재편하며 새로운 성장 단계로 이끄는 게임체인저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해양수산부와 해운기업 본사의 부산 이전 추진은 이러한 변화 속 부산을 국가균형발전 전략의 중심에 두겠다는 정부의 분명한 의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지금 다가오는 새로운 기회를 발판으로 성공적인 국가균형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외부적으로 수도권 중심의 성장 구조를 보완·분산할 수 있도록 부산이 중심이 되어 남부권 전체의 경제·산업 협력을 전략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부산은 항만·공항·금융·관광 등 도시 인프라와 서비스 산업을 중심으로 글로벌 허브 기능을 강화하고, 울산과 경남은 자동차·조선·기계 등 전통 제조업을 기반으로 AI 조선, 제조 혁신 등을 통해 산업 경쟁력을 고도화하는 방식으로 상호 보완적인 발전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
이와 병행하여 부산 내부적으로는 글로벌 허브 도시로서의 위상에 걸맞게 기업 혁신, 행정 혁신, 금융 혁신이라는 세 가지 축을 중심으로 철저한 준비를 해나가야 한다. 그 첫 번째는 기업 혁신이다. 급변하는 산업 환경 속에서 기업이 생존하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AI·디지털 전환, 친환경 기술 도입, 기술 고도화 등 혁신 역량 강화가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기술 개발, 인재 확보, 자금 조달, 시장 진출이 유기적으로 구축·운영되는 혁신 생태계 조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경영자는 혁신 의지를 가지고 기업 운영에 적극 실행해야 한다.
다음은 행정 혁신이다. 변화하는 산업 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규제 개선이나 절차 간소화에 머무르는 단순 관리 중심의 행정에 그쳐서는 안 된다. AI와 데이터 기술을 적극 활용해 행정의 효율성과 생산성을 높이는 동시에 산업 변화와 기업 수요를 선제적으로 파악하고, 정책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아울러 4차 산업혁명과 AI 전환 등 미래 산업에 대한 이해와 전문성을 바탕으로, 부산의 새로운 먹거리를 발굴하고 중장기 산업전략을 설계할 수 있는 정책 역량이 요구된다.
마지막은 금융 혁신이다. 금융의 역할은 더 이상 단순한 대출이나 이자 수익 중심의 활동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미래가치 창출에 기여하는 생산적 금융 체계로 전환돼야 한다. 글로벌 자본 이동과 금융 환경이 빠르게 재편되는 가운데, 지역 금융 역시 글로벌 수준의 경쟁력과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 핀테크, 디지털 금융, 데이터 기반 금융 등 첨단 금융 기술을 적극 활용해 기업의 혁신과 투자를 촉진하고, 나아가 지역 산업과 글로벌 자본을 연결하는 금융 플랫폼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국가균형발전은 대한민국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중대한 국가 전략이다. 권역별 경제 발전 전략과 협력, 그리고 각자의 혁신 노력이 함께 어우러질 때 전국 어디에서든 청년이 기회를 얻고, 기업이 성장하며, 시민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균형 잡힌 나라를 만들 수 있다. 그 출발점은 부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