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가족에 안긴 ‘부마항쟁 고문’ 배상금… 고인이 된 70대, 국가 상대 ‘일부 승소’

이우영 기자 verdad@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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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지법 서부지원, 일부 승소 판결 내려
“A 씨 가족에 7000만 원 지급하라” 결정
부마항쟁 시위 참여, 체포·고문당한 A 씨
소송 중 숨지면서 가족이 위자료 받게 돼

올해 ‘부마민주항쟁 기념기획전’에 출품된 곽영화 작가의 그림. 1979년 부마민주항쟁 시위 장면을 작품으로 표현했다. 호밀밭 제공 올해 ‘부마민주항쟁 기념기획전’에 출품된 곽영화 작가의 그림. 1979년 부마민주항쟁 시위 장면을 작품으로 표현했다. 호밀밭 제공

1979년 부마민주항쟁 시위에서 26세 나이로 체포돼 40여 일간 갇힌 채 고문을 당했던 70대 남성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일부 승소했다. 당시 거리로 뛰어든 회사원이었던 그는 재판을 받던 중 세상을 떠나 가족에게 배상금을 남기게 됐다.

30일 법조계에 따르면 부산지법 서부지원 민사5단독 차승우 부장판사는 70대 남성 A 씨가 대한민국(법률상 대표자 정성호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A 씨의 부인 B 씨에게 3000만 원, 자녀인 C 씨와 D 씨에게 각각 20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A 씨는 1979년 10월 17일 오후 8시께 부산 중구 남포동에서 ‘유신 철폐, 독재 타도’ 등을 외치며 시위를 하다가 현장에서 경찰에 체포됐다. 부산 중부경찰서로 연행된 그는 조사를 받으며 욕설과 폭언을 들어야 했다.

부산 15P 헌병대로 이감된 그는 군인들에게 얼차려를 받았다. 특히 곤봉과 주먹, 발로 전신을 폭행당해 정신을 잃어야 했고, 잠을 재우지 않는 고문도 당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해 11월 28일 제2 관사 계엄보통군법회의에서 공소기각 결정이 나온 이후 부산구치소에서 출소할 수 있었다.

그해 10월 16일부터 20일까지 부산과 마산 일대에서 부마민주항쟁이 펼쳐졌다. 학생과 시민이 가세한 민주화 항쟁으로 당시 공화당의 ‘김영삼 의원 제명 변칙 처리’가 원인이 됐다. A 씨는 2021년 12월 10일 부마민주항쟁 관련자로 결정된 내용을 최종적으로 송달받았다.

A 씨는 지난해 11월 25일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국가배상법에 따른 소멸시효 3년을 2주 정도 앞둔 시기였다. 하지만 재판 도중인 지난 3월 26일 그는 고인이 됐다. 재판부는 지난 17일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고, 위자료는 A 씨 부인과 자녀에게 상속됐다.

재판부는 “A 씨가 영장 없이 체포돼 43일 동안 불법 구금된 상태로 강제수사를 받았다”며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 국가가 저지른 반인권적, 조직적 불법 행위”라고 판단했다.

A 씨 소송을 대리한 법무법인 민심 변영철 변호사는 “A 씨는 당시 한 해운회사에 다니며 ‘넥타이 부대’처럼 시위에 참여했다가 고문 등 피해를 당했다”며 “부마민주항쟁 재판 도중 원고가 사망해 가족에게 위자료를 상속하는 건 처음 본 사례”라고 말했다.


이우영 기자 verdad@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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