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반복·탐색으로의 회화 …11년 만에 부산 온 프리츠의 ‘귀환’

김은영 기자 key6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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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프리츠
조현화랑 달맞이에서 개인전
내년 1월 4일까지 ‘더 리턴’전
질서·우연 교차하는 추상회화
결과 외에도 과정 즐거움 중요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프리츠가 내년 1월 4일까지 부산 해운대구 조현화랑 달맞이에서 개인전 ‘더 리턴’(The Return, 귀환)을 연다. 사진은 전시장 전경. 조현화랑 제공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프리츠가 내년 1월 4일까지 부산 해운대구 조현화랑 달맞이에서 개인전 ‘더 리턴’(The Return, 귀환)을 연다. 사진은 전시장 전경. 조현화랑 제공

프랑스 추상회화의 거장 베르나르 프리츠(Bernard Frize)가 부산 해운대구 조현화랑 달맞이에서 개인전 ‘더 리턴’(The Return, 귀환)을 열고 있다. 1949년생으로 70대 중반인 그는 1970년대 후반부터 질서와 우연이 교차하는 추상회화를 선보여 왔으며, 이번 전시에서 24점의 신작을 통해 ‘돌아옴’이라는 말의 여러 층위를 시험한다.​

프리츠에게 ‘돌아옴’은 11년 만에 다시 조현화랑을 찾은 자신의 물리적 귀환인 동시에, 회화가 반복 속에서 다른 모습으로 되돌아오는 과정에 대한 은유다. 매번 같은 자리에서 출발하지만 결코 같은 결과에 이르지 않는 회화의 변주가, 그가 말하는 ‘현재형 추상회화’의 언어를 이룬다.​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프리츠. 김은영 기자 key66@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프리츠. 김은영 기자 key66@

전시를 위해 오랜만에 부산을 찾은 그는 완성된 그림보다 “행위가 남긴 윤리적 흔적”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 번 지나간 붓질은 수정 없이 그대로 두어야 하며, 그 비가역성이야말로 회화의 도리이자 자본주의적 효율성과 결과 중심 사고에서 벗어난 예술 행위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작품을 처음 봤을 때만 진가를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두 번 봐도 질리지 않고, 사람들이 또다시 돌아와서 새로운 걸 느꼈으면 좋겠다”고 털어놨다.

베르나르 프리츠 작품 'Loca', 2025, 조현화랑 제공 베르나르 프리츠 작품 'Loca', 2025, 조현화랑 제공
베르나르 프리츠 작품 'Traga', 2025. 조현화랑 제공 베르나르 프리츠 작품 'Traga', 2025. 조현화랑 제공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Loca’ ‘Kaire’ ‘Goita’ ‘Vesce’ ‘Traga’ 등 16점의 회화는 프리츠가 오랜 시간 이어온 ‘다시 하기’(re-doing)의 논리를 현재로 불러온다. 전시 제목은 분류를 위해 임의로 붙인 것으로 별 의미가 없단다. 작업 방식은 운용 가능한 크기의 캔버스를 설정하고, 한 가지 색의 물감을 묻힌 붓으로 표면을 가로지른 뒤, 다른 색을 반복적으로 얹는다. 이 과정은 불과 몇 분 안에 완료되며, 색은 서로를 침범하거나 투명하게 스며들어 일종의 ‘자동적 회화’를 형성한다. 유리와 템페라로 제작된 8점의 연작은 이러한 방법론을 확장한 것이다. 여기서의 유일한 규칙은 한 가지 색이 세 개의 선을 형성하면, 그다음 색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유리 작업을 한 지는 몇 년 안 되었다.

베르나르 프리츠 작품 '10_04', 2025, 조현화랑 제공 베르나르 프리츠 작품 '10_04', 2025, 조현화랑 제공
베르나르 프리츠 작품 '10 _04', 2025. 조현화랑 제공 베르나르 프리츠 작품 '10 _04', 2025. 조현화랑 제공

그에게 그림 그리기는 “아주 진지한 놀이(게임)”이지만, 어디까지나 놀이인 만큼 유쾌함도 있어야 한다는 게 지론이다. 그는 “같은 길을 계속 따라가다 보면 모든 것을 똑같이 하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결과는 매번 다르게 나타난다”고 말하며, 이를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같은 주제를 다른 방식으로 탐색하는 과정”이라고 전했다. ​

베르나르 프리츠 작품 'Shelt', 2025. 조현화랑 제공 베르나르 프리츠 작품 'Shelt', 2025. 조현화랑 제공
베르나르 프리츠 작품 'Bakeit', 2025. 조현화랑 제공 베르나르 프리츠 작품 'Bakeit', 2025. 조현화랑 제공

프리츠는 또 색을 감정의 상징이라기보다, 서로 다른 붓질과 역할을 구분하는 이름표에 가깝게 본다. 파랑·노랑·빨강 등 각기 다른 색을 묻힌 붓은 각자 다른 캐릭터로 기능하며, 색의 차이는 작품 속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서로 다른 ‘인물들’이 어떻게 이야기를 만들어가는지 구분하게 해 준다고 설명한다.​ “무슨 색인지가 중요한 게 그 색이 무얼 하는지가 중요하다. 사람도, 그 사람 이름이 뭔지가 중요하 게 아니라 그 사람이 무얼 하는지가 중요한 것처럼.”

한때 조수들과 함께 캔버스에 물감을 올리던 그는 이제 25년째 혼자서 작업하고 있다. 캔버스 준비부터 컴퓨터 작업, 붓을 씻는 일까지 모든 과정을 스스로 감당하는 것은 그림을 자본주의적 분업과 생산 논리에서 최대한 멀리 두기 위한 선택이기도 하다.​ 베를린과 파리를 오가며 작업한 지 20년이 넘었다. 최근엔 몽펠리에에 새 공간을 구했다. 올겨울에 거기서 지낼 것 같단다.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프리츠가 내년 1월 4일까지 부산 해운대구 조현화랑 달맞이에서 개인전 ‘더 리턴’(The Return, 귀환)을 연다. 사진은 전시장 전경. 조현화랑 제공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프리츠가 내년 1월 4일까지 부산 해운대구 조현화랑 달맞이에서 개인전 ‘더 리턴’(The Return, 귀환)을 연다. 사진은 전시장 전경. 조현화랑 제공

프리츠의 루틴도 엄격한 편이다. 여행 중이 아닐 때 그는 거의 매일 아침 9시부터 오후 6시나 7시까지 스튜디오에 머물며, 매일 새로운 시도를 하지만 그중 상당수는 과감히 버린다고 말한다. 그는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껴야 하고, 결과물을 보는 데서도 기쁨이 있어야 한다”면서 “자신의 목표에 부합하지 않는 그림은 계속 그릴 이유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

그러면서 회화가 할 수 있는 역할에 대해 되짚었다.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는 건 아니다. 말로 할 수 없으면 굳이 그림을 그릴 이유가 없다. 작품이 스스로 말을 했으면 좋겠다.” 너무 많이 말하는 작품은 싫다고도 했다. 관습적인 재현이나 설명을 반복하기보다, 규칙·우연·노동이 교차하는 구조 자체를 드러내는 일이야말로 오늘날 회화가 여전히 유효할 수 있는 이유라는 것이다.​ 그리고 컴플렉스(Complex, 복잡한)와 컴플리케이티드(Complicated, 복잡한), 컴플렉시티(Complexity, 복잡)을 구분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한편, 프리츠의 작품은 테이트 갤러리, 파리 퐁피두 센터, 파리 시립 현대미술관, 미국 LA의 MOCA(현대미술관) 등 세계 주요 기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2005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프랑스 작가로 초청될 만큼 국제적 인정을 받았다. 전시는 내년 1월 4일까지 열린다.


김은영 기자 key6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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