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미술관 옆 목욕탕'에서
'목욕탕 메카 부산' 살려 스토리텔링 가미
부마민주항쟁 유적 활용 K민주주의 관광
용두산공원에 '부산요' 복원 도자기 거리
잠자는 우리 콘텐츠 발굴해 갈고 닦아야
묵은때를 밀기 위해 목욕탕을 찾았다. 온탕에 들어가니 “아이고 시원하다!”라는 소리가 절로 난다. 어릴 때는 그 말이 참 이해가 안 되었는데, 지금은 몸이 먼저 반응한다. 잠시 눈을 감고 한 해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2025년은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내란으로 인한 비정상을 정상화한 한 해였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기 위한 격동의 시간을 함께 보낸 우리 모두 정말 수고 많았다.
다음으로는 올 하반기 〈부산일보〉 ‘위크앤조이’ 지면 가운데 가장 의미 있는 내용을 담은, 나만의 ‘베스트3 기사’를 뽑아 봤다. 10월에 쓴 ‘부산의 목욕탕’ 기사가 먼저 떠오른다. 부산에는 목욕탕이 많을 때는 무려 1500개, 지금도 500개가량이나 운영되고 있다. 인구 대비하면 세계에서 목욕탕이 제일 많다. 이태리타월과 자동 등밀이 기계도 부산에서 탄생했다.
부산은 동래온천과 해운대온천이라는 이름난 온천 지역 두 곳, 3000명 동시 목욕이 가능한 허심청, 다른 지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해수탕까지 다양하게 갖추고 있다. 부산의 명물 목욕탕들을 부동산 개발로 더 이상 사라지게 내버려두자니 너무 아깝다. 다른 지역보다 앞서 부산에서 목욕탕을 일본처럼 트렌드에 맞게 진화시켜, 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이자 관광 상품화하면 어떨까.
두 번째는 11월에 쓴 10·16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 등 5개 단체의 ‘부마민주항쟁 유적지 동행 취재기’다. 부마민주항쟁은 유신정권을 무너뜨린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지만, 다른 민주화운동보다 조명받지 못하고 있다. 당시 시위대는 부산대에서 시작해 시민들이 합세하며 남포동, 광복동을 거쳐 국제시장까지 이어졌다. 부산대에는 ‘10·16부마민주항쟁로’를 비롯해 ‘부산대 역사관’의 부마민주항쟁 선언문 3종, 부마민주항쟁 발상지 표지석, 10·16부마민중항쟁탑, 신영복 선생이 쓴 옛 도서관 앞 ‘유신 철폐 독재 타도’ 표지석 등 유적이 잘 보존되어 있다.
오늘날 세계인들이 즐기는 K컬처는 시민들이 거리에서 싸워서 얻어낸 민주주의라는 토양이 없었다면 자라나지 못했다. 부산대에서 시작해 시위대의 동선을 따라 남포동·광복동 국제시장을 거친 뒤 부산근현대역사관까지 부마민주항쟁 이야기를 따라 걸었더니 부산이 새롭게 보였다. 부산대 캠퍼스와 부산의 원도심이 K민주주의를 탄생시킨 현장이었다는 사실을 더 널리 알릴 방법이 없을까.
세 번째는 이달에 쓴 조선 시대 한일 공동 도자기 생산 프로젝트 ‘부산요’에 대한 기사다. 광복로에는 100년 넘게 찻사발을 비롯한 도자기를 구워서 일본으로 수출하던 부산요가 있었다. 부산요가 활발했던 70년 동안만 계산해도 17만 점, 밀수품과 사무역까지 합하면 그 몇 배의 찻사발이 일본으로 건너갔다. 부산요 덕분에 도자기 산업 불모지였던 부산은 조선의 도자기 생산과 수출의 메카가 되었다. 그 오랜 세월 조선의 도공이 일본과 협력해 도자기를 생산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부산요포럼’ 관계자들은 지금도 묻혀 있는 부산요의 유물을 발굴하면서 용두산공원에 부산요 자료관과 가마를 만들고, 광복로에 도자기 문화의 거리를 조성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부산에는 일본 문화가 일찍부터 지속적으로 유입되고 있으며, 지금도 부산을 찾는 외국인 가운데 일본인은 세 번째로 많다. 부산이 도자기 거점 도시가 되면 김해·양산·밀양에 산재한 전통 장작 가마에도 관광객을 데려가 작가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한다. 잊혀진 부산의 역사를 회복하면서도 무너진 광복로 상권을 살릴 방안으로 진지하게 고민해 봤으면 좋겠다.
올해 부산을 찾은 누적 외국인 관광객 수가 사상 처음으로 300만 명을 넘어섰지만 계절적으로는 여름, 지역적으로는 동부산 집중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부산에 외국인 관광객 500만을 유치하려면 부산의 역사성을 살리면서 보다 다양한 콘텐츠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 목욕탕, 부마민주항쟁유적지, 부산요 같은 문화 콘텐츠들을 갈고 닦아서 부산의 보물로 만들자고 제안한다.
논란이 되고 있는 퐁피두 미술관 부산 분관 건립안은 잘 납득이 되지 않는다. 퐁피두 센터는 프랑스 파리 외에도 메츠, 스페인 말라가, 벨기에 브뤼셀, 중국 상하이, 서울까지 분관이 다섯 개나 된다. 브라질과 미국에서도 분관이 추진되고 있다. 프랑스 문화를 전 세계에 전파하면서 돈도 되니 프랑스는 그렇게 하는 것이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최근 부산에서 첫 번째로 꼽는 관광지가 감천문화마을이 되었다. 세계인들은 한국이 궁금해서 오는데, 왜 땅속에 묻힌 보물을 놔두고 비싼 돈 써가면서 남 좋은 일 시키려는지 모르겠다. 흩어진 구슬 서 말을 꿰어 보배로 만드는 2026년이 되길 소망한다.
박종호 스포츠라이프부 선임기자 nleader@busan.com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