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제작·출연·배급 모두 류현경 손에서… 영화 ‘고백하지마’
배우 겸 감독 류현경이 영화 ‘고백하지마’를 극장 관객에게 선보이고 있다. 류네 제공
제작을 하는 배우, 연출을 하는 배우는 낯설지 않다. 그러나 연출·주연은 물론 제작과 편집, 배급과 홍보까지 도맡았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영화 ‘고백하지마’는 오롯이 배우 류현경의 이름으로 완성된 작품이다. 지난 17일 개봉한 이 영화는 우연처럼 시작돼 극장 개봉까지 이어진, 말 그대로 한 배우가 전 과정을 모두 책임진 결과물이다. 최근 서울 강남구의 한 영화사 사무실에서 만난 류현경은 “정신없이 바쁘지만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웃었다.
이 작품의 출발은 김오키 감독의 영화 ‘하나, 둘, 셋 러브’ 촬영 현장이었다. 비로 촬영이 취소된 날, 배우와 스태프들은 아쉬움 속에서 “이대로 헤어지기 싫다”는 마음으로 카메라를 켰다. 류현경은 “뭐라도 남겨보자는 생각이었다”며 “충길과 나란히 앉아 ‘우리 사이에 뭔가가 있다’는 설정만 두고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 그가 진짜 고백을 하더라”고 돌아봤다. 그는 “어떤 말을 할지 전혀 몰랐고, 그 상황에서 내가 당황하면서 웃는 모습이 그대로 찍혔다”며 “그 즉흥성과 리얼함이 너무 즐거웠다”고 말했다.
초가을의 고백으로 마무리된 1막 이후, 이야기는 겨울의 부산으로 이어진다. 류현경은 “펜션에서의 이야기가 끝났을 때 ‘이 두 사람이 결국 어디로 가면 좋을까’를 고민했다”고 했다. 그러던 중 김오키 감독이 부산 공연을 제안하며 아티스트 섭외를 도와줬고, 그 선택이 2막의 출발점이 됐다. 그는 “현경은 연기 특강 때문에, 충길은 새 출발을 위해 부산에 간다는 설정을 만들었다”며 “타로집, 옷 가게, 라이브 클럽까지 동선을 비교적 세세하게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부산 장면은 영화의 정서가 가장 또렷하게 드러나는 구간이다. 특히 마지막 장면의 해운대 해수욕장은 의도적인 선택이었다. 류현경은 “처음부터 영화의 끝은 ‘어딘가를 걷는 장면’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다”며 “부산에 와서 해운대를 걷는 장면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고 말했다. 이어 “이야기가 어떻게 정리되느냐보다, 두 사람이 같은 방향으로 걸어간다는 느낌이 중요했다”며 “해운대는 설명하지 않아도 감정이 전달되는 공간이라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영화는 끝까지 대본 없이 완성됐다. 류현경은 “배우들에게 ‘이런 류의 말을 했으면 좋겠다’는 방향만 이야기했다”며 “문장을 그대로 말해달라고는 못 하겠더라”고 했다. 부산에 등장하는 인물들 역시 대부분 실제 뮤지션들이었고, 현장에서 만들어진 말과 리듬이 그대로 장면이 됐다. 그는 “우연처럼 보이는 만남들이 반복되면서 어느 순간 인연이 되는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촬영은 우연과 즐거움으로 가득했지만, 완성까지의 과정은 쉽지 않았다. 러닝타임 68분의 장편이 되기까지 편집 등 후반 작업만 8개월 가까이 이어졌다. 아이폰으로 녹음한 사운드를 맞추고, 조명 없이 찍은 장면을 보정하며, 영화 안에 삽입될 과거 출연작을 고르는 작업까지 이어졌다. 류현경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모르겠다”고 말할 만큼 이 작업에 긴 시간을 쏟았다.
배급은 또 다른 도전이었다. 서울독립영화제 이후 유튜브 공개 제안을 받았지만, 그는 이를 거절했다. “극장에서 관객과 함께 본 경험이 너무 좋았는데, 그걸 포기할 수 없었다”고 했다. 결국 1인 배급사 ‘류네’를 만들었다. “등록과 심의까지는 괜찮았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전국 극장에 일일이 메일을 보내고, 홍보 문구를 정하고, DCP 파일을 직접 만들어야 했다. 퇴근이 없었다”고 털어놨다.
류현경은 이 모든 과정을 두고 “촬영과 편집만이 영화 만들기의 전부는 아니었다”고 말한다. 극장에 영화를 걸고, 관객을 만나고, 관객과의 대화(GV)를 이어가는 순간까지 모두가 영화를 완성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그는 “배우로서 연기를 가장 우선에 두고 있지만, 영화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인다. “연말에 가볍게 산책하듯 극장에 들러주셨으면 좋겠어요. 대신 보고 난 뒤 돌아가는 길에 ‘나도 저런 적 있었지’ 같은 생각을 잠깐이나마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웃음)”
남유정 기자 honeybe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