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시선으로] 사적 세계의 일
김대현 연세대학교 글로벌한국학연구소 연구교수
사람은 대체로 고된 삶을 산다. 청소년들은 학업을 하고, 비청소년들은 돈을 벌기 위해 일한다.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눈앞의 일을 쳐내는 일은 누구에게나 버겁다. 그러니 이 일이 끝나고 나면, 일하지 않아도 되는 일상으로 돌아가 편히 쉴 것을 다짐한다. 내가 하는 일이 고될수록 일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에 대한 갈증은 커진다. 이 일로 인한 스트레스를 일이 없는 그 시공간에 가서는 마침내 마음껏 풀어보리라 다짐한다.
그렇게 누군가가 일을 마치고 일 없음의 공간으로 향하노라면, 그곳은 일이 없기는커녕 또다른 형태의 일들로 자욱하다.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설거지하고 사람의 몸과 마음을 돌보고 가꾸고,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수적일 그 모든 행위는 엄연히 또다른 종류의 일이다. 그럼에도 그곳 바깥에서 하는 일만이 일이고 거기서의 일은 일이 아니라는 발상에서 공·사 이분법이 출발한다.
가사노동도 노동이라는 생각은 가족 내 구성원과 역할의 평등에 중요한 변화를 가져왔다. 집에서의 전업 돌봄 노동이 없으면 바깥에서의 전업 임금 노동은 불가능하다. 그 노동 중 어느 한쪽을 영원히 한 사람, 한 성별이 맡는 것도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다. 관계 안에서 노동 분업은 남들이 그렇게 하고 있거나 남들이 하라고 해서가 아니라, 그 관계의 당사자들이 서로 합의해 정할 문제다.
또 그 노동의 가치를 세는 기준은 돈을 받고 안 받고를 넘어, 인간에게 그 노동이 얼마나 필수불가결한지로 따져야 한다. 돈을 쓰는 경제적 부양과 돈으로 해결 안되는 정서적 돌봄은 인간의 삶에 반드시 필요하고, 그 중 하나만을 선택하기란 불가능하다. 인간에 반드시 필요한 일 사이에 우열을 매기는 일은 어리석다.
일한 뒤에 쉬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같다. 문제는 쉬는 요령과 분별이다. 사람의 사적 세계는 누군가가 처음부터 온전히 허리띠 풀고 쉬라고 있는 곳이 아니다. 사적인 세계의 일도 일이다. 그게 어찌 일일 수가 있나 싶은 사람은, 여태껏 그 일을 내가 아닌 남에게 미뤄버릇했기 때문이다. 일은 모름지기 공평히 분배돼야 하고, 일을 시키고 받는 과정은 정의로워야 하며, 사적 세계의 일을 하는 사람도 휴식이 필요하다.
사람은 공적인 세계에서는 그리 쉽게 실수하지 않는다. 사람은 사적인 세계에서 상대적으로 쉽게 실수한다. 그 까닭은 주로 사적인 세계의 일을 일로 여기지 않고, 거기서 일하는 사람을 나와 같은 사람으로 대우하지 않고, 내가 고되게 일한 후에 뒤따를 물질적·정서적 뒤치닥거리를 그 사람이 마땅히 짐져도 된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그 때 그 사람은 그런 식으로 쉬면 안됐고, 상대에게 일을 그런 식으로 떠맡겨서는 안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