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돌봄 비상의 시대
변정희 전 (사)여성인권지원센터 '살림' 상임대표
엄마·며느리·아내 몫이었던 돌봄
누군가의 희생 위에 제공된 노동
지속 가능성 없는 모델 시인해야
보편적 돌봄 제공자 모델에 주목
누구나 언젠가 돌봄 당사자 해당
그 전제 위에서 사회 재설계해야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면서 돌봄은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화두가 되었다. 어제는 육아가 문제였다면 오늘은 간병이 새로운 걱정거리로 떠오른다. 육아와 살림, 간병으로 이어지는 돌봄의 목록은 끝이 없다. 그야말로 ‘요람에서 무덤까지’다.
돌이켜 보면 그 많은 돌봄은 오랫동안 사적 공간에서 ‘엄마’, ‘며느리’, ‘아내’로 호출되던 여성의 몫이었다. 어머니가 쓰러지면 집안 풍경부터 무너진다고 했던가. 지구를 떠받친 아틀라스처럼, 가정은 여성의 보이지 않는 노동이 떠받치고 있었다. 그러나 누군가의 삶을 지탱하기 위해 다른 누군가의 삶이 희생되어야 하는 사회는 정의롭지도, 지속 가능하지도 않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그런데 이 거대한 돌봄의 공백은 어떻게 메울 수 있을까? 사회의 위기의식은 점차 높아져 간다. 한국리서치 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74%가 초고령사회에서 가장 우려하는 문제로 ‘돌봄·간병 부담의 증가’를 꼽았다. 이에 정부는 오는 3월부터 ‘돌봄통합지원법’을 시행하며 대응에 나선다. 노인과 장애인이 살던 곳에서 의료·돌봄·주거·복지 서비스를 연계해 제공하겠다는 구상이다. 지역사회 안에서 존엄한 일상을 유지하겠다는 방향성은 분명 반가운 진전이다.
그러나 돌봄 제도의 끝에는 결국 돌봄을 제공할 사람의 노동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 현실은 심각하다. 요양보호사의 경우 자격 취득자는 311만 명에 달하지만 실제 활동 인력은 22.5%에 불과하다. 활동 중인 요양보호사 10명 중 7명은 60대 이상의 여성이며, 월평균 급여는 87만 원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들은 대부분 시간제·불안정 노동에 놓여 있다. 고령의 여성 노동자들이 다시 고령의 노인을 돌보는 ‘노노(老老)케어’가 돌봄의 공백을 메우고 있는 셈이다. 사회복지 분야로 그 영역을 확장해보면, 2031년까지 약 37만 명의 사회복지 인력이 부족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 공백을 메우기 위한 해법으로 외국인 돌봄 인력 도입 논의도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돌봄을 또 다른 저임금 노동으로 외주화하는 방식이 과연 근본적인 해결책일지는 질문이 남는다. 돌봄의 가치를 낮게 평가하는 구조를 그대로 둔 채 인력만 바꾸는 방식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결국 돌봄 위기는 저출생이나 초고령화와 같은 인구의 문제가 아니라 노동의 문제다.
통합돌봄이 여전히 장애인과 고령자 중심의 의료·요양 연계에 머물러 있다는 점에서, 제도 이상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전용호 돌봄혁신허브 넥스트케어 대표는 돌봄 위기의 원인이 초고령화에만 있지 않다고 말한다. 연결되지 않는 사회, 외로움이 기본값이 된 관계 단절의 현실은 특정 연령대에 국한되지 않는다. 돌봄은 특정 집단을 위한 서비스가 아니라 삶 전반을 관통하는 사회적 기반으로 다시 설계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편 보편적 돌봄은 정부 정책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정숙랑 중앙대 간호대학과장은 공식 돌봄이 확대될수록 비공식 돌봄과의 관계를 함께 살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국 사회의 비공식 돌봄은 여전히 여성 노인에게 집중돼 있다. 제도가 확대되더라도 성별 불평등 구조를 해소하지 않는다면 돌봄의 부담은 다른 형태로 반복될 뿐이다. 돌봄을 특정 취약계층만을 위한 복지 서비스로 한정하는 시각에서 벗어나야 하는 이유다.
정치철학자 낸시 프레이저는 모든 시민이 생계 부양자인 동시에 돌봄 제공자가 되는 ‘보편적 돌봄 제공자’ 모델을 제시한다. 이는 돌봄이 여성이나 저임금 노동자의 몫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 모두의 기본값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통합돌봄이 필요한 사람에게 제공되는 제도라면, 보편적 돌봄은 모든 사람이 언젠가 돌봄의 당사자가 된다는 전제 위에서 사회를 다시 설계하는 기준이다.
새해가 시작되면서 전국의 지자체장들은 신년사에서 ‘민생 안정’과 ‘혁신 성장’을 외쳤다. 그러나 돌봄은 단순한 민생 안정의 하위 과제가 아니다. 돌봄의 질을 높이고 돌봄 노동을 존중하는 과정에서 사회의 지속 가능성과 새로운 성장과 혁신의 가능성도 열릴 수 있다. 돌봄이 특정 성별의 굴레나 가계의 부담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잇는 연결의 언어가 될 때, 우리 사회는 고립과 외로움이라는 구조적 위기를 넘어설 수 있다.
통합돌봄제도 시행을 앞둔 올해가 대한민국 돌봄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원년이 되기를 바란다. 제도가 현장에 스며들고, 그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의 노동이 정당하게 평가받으며, 모든 시민이 돌봄의 주체임을 자각하는 사회. 아틀라스가 짊어졌던 무거운 짐을 우리 모두가 조금씩 나눌 때, 돌봄은 비로소 비상의 날개를 달고 우리 삶을 더욱 단단하게 떠받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