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가장 오래된 도시 타이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곳
시내 곳곳에 다양한 고적 남아
벵골 보리수 뒤덮인 ‘안핑수옥’
나무와 집 하나된 이색적 모습
타이난의 정신적 성지 ‘공자묘’
부산 느낌 물씬나는 ‘션농지에’
국내 프로야구 구단의 스프링캠프로 각광 받는 타이난은 대만에서 가장 오랜된 도시다. 타이난은 네덜란드가 대만 남부를 점령했던 1624년부터 수도 역할을 했다. 1894년 타이베이로 수도를 옮기기 전까지 270년간 대만의 중심 도시였다. 시내 곳곳에서 다양한 고적 문화를 만날 수 있고, 개발과 보존의 대립 속에 신구 조화의 흔적들을 느낄 수 있다.
대만 타이난의 덕기 상사 건물 뒤편에 있는 안핑수옥. 벵골 보리수가 벽을 뚫고 지붕을 덮으면서 나무와 집이 하나가 된 기이한 모습을 하고 있다.
■안핑수옥과 덕기 상사
16세기 대항해시대 네덜란드를 비롯한 유럽인들은 타이난의 안핑항을 기점으로 대만을 지배했다. 이후 네덜란드를 몰아낸 명나라와 청왕조,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안핑항은 중심 무역항의 기능을 했다. 이 때문에 많은 외국인이 안핑에 회사를 설립했다. 그중 영국인들이 설립한 덕기·이기·화기 상사와 미국인이 설립한 내기 상사, 독일인들이 설립한 동흥 상사 등 5곳이 ‘안핑 오양행’으로 불렸다. 지금은 덕기 상사와 동흥 상사 건물만이 남아 역사를 증언한다.
덕기 상사 건물은 안핑수옥(안핑 트리하우스)로도 알려져 있다. 상사 건물 뒤편에 자리하고 있는 안핑수옥은 덕기 상사의 창고였다. 일제 강점기였던 1911년에는 대일본염업주식회사 안핑출장소의 창고로 사용됐다.
이곳은 집이 나무에 얹혀 있는 듯한 이색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벵골 보리수가 벽을 뚫고 지붕을 덮으면서 나무와 집이 하나가 됐다. 이같은 기이한 모습은 벵골 보리수의 특성 때문이다. 이 나무는 뿌리에서 강한 산을 뿜어내 석회암을 녹일 수 있어 석회 반죽 벽돌로 지은 집을 에워쌀 수 있었던 것이다. 이후 건축가들이 트리하우스의 구석구석을 감상할 수 있도록 각종 시설을 설치하면서 이 건물은 타이난의 유명 관광 명소가 됐다. 18세기 유럽인들이 살았던 덕기 상사 내부를 둘러 본 많은 관광객들은 안핑수옥의 신기함에 넋을 잃었다.
인근의 안핑 옛 거리도 가볼 만 하다. 곳곳에 눈에 띄는 고풍스러운 건물들은 시간의 흐름이 멈춘 듯한 모습이다. 대만 최초의 상업 거리답게 온갖 물건이 진열된 야시장 분위기다. 작은 골목이 연결돼 골목골목 누비는 재미가 쏠쏠하다.
타이난 공자묘 내 대성전에 관광객이 기도를 올리고 있다. 이곳은 공자의 사당으로 공자 탄신일에 성대한 의식이 치러지는 곳이다.
■대만 최초 학교 타이난 공자묘
안핑 옛거리를 뒤로 하고 공자묘로 향했다. 택시로 20여 분 거리를 달려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공자묘에 도착했다. 대만 사람들은 우리나라와는 달리 스쿠터(모터바이크)를 많이 타고 다닌다. 그래서일까. 우리나라 만큼 대중교통 이용이 쉽지 않다. 특히 타이난에서 택시잡기가 정말 힘들다. 그럴 땐 우버 앱을 이용하거나 편의점에서 ATM기기를 통해 택시를 호출하면 쉽게 이용 가능하다.
타이난의 공자묘는 공자의 뜻을 따르기 위한 사당이다. 대만으로 이주한 공자의 후손이 1655년 지었다. 대만의 첫 번째 공자사원이자 중국 본토에서 넘어온 사람들이 대만 원주민들을 교육하기 위한 최초의 학교였다. 타이난은 그만큼 옛 대만의 중심지였고, 관문이었다.
타이난 공자묘는 총 15개 건축물이 있는데 학교와 사원이 함께 들어서 있다. 명나라를 재건하겠다는 정성공의 뜻에 따라 인재를 양성하는 최고의 교육기관 역할을 했다. 최고의 학교라는 뜻의 ‘전대수학(全臺首學)’이란 현판이 붙어 있다.
매년 공자탄신일(9월 28일)에는 대성전(大成殿) 앞에서 공자탄신일을 기리는 성대한 의식이 열린다. 지난 12일에는 성대한 의식 대신 대성전을 화폭에 담으려는 미술 동호인들이 손놀림이 분주했다. 대성전 실내에서는 공자의 뜻을 기리려는 사람들의 기도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공부의 신을 모신 문창각에 학생들이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다.
공자묘에는 공부의 신을 모신 문창각(文昌閣)이 있다. 괴성루(魁星樓)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타이난 공자묘 건축물 중에서 유일하게 누각 형태를 하고 있다. 1층은 사각형, 2층은 원형, 3층은 팔각형으로 천원지방(天圓地方·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 등 만물을 포용하고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곳은 입시와 승진시험 등을 앞두고 대만 현지인들이 찾는 곳인데, 40여 명의 학생들이 문창각 앞에서 해설사의 설명을 귀담아 듣고 있었다.
공자묘 내에는 반달 모양의 특이한 연못이 있다. 반지(泮池)라는 곳인데, 천자의 학교는 ‘벽옹’이라 하여 사면이 물로 둘러싸여 있지만, 제후의 학부나 지방 관학은 남쪽만 반쯤 물이 있어 ‘반궁(泮宮)’이라 했다고 한다.
공자묘를 나와 큰길을 건너면 푸중지에 골목이 있다. 음식점과 노점, 기념품 가게들이 즐비하게 늘어서서 상권을 형성하고 있다. 푸중지에 골목에 곳곳에서 신을 모신 종교 시설을 쉽게 볼 수 있다. 재물과 건강을 기원하는 곳으로 제법 인상적이다. 어묵과 토란, 면요리 등 간단한 대만 현지식을 즐길 수도 있다.
한국에서도 입소문이 난 타이난 션농지에. 각종 소품점과 카페 등이 있어 데이트 성지로 각광받고 있다.
■부산과 닮은 션농지에
푸중지에에서 도보로 10여 분 걷다 보면 우리나라에서도 제법 입소문이 난 션농지에(神農街)를 볼 수 있다. 청나라 때 형성된 작은 거리인데 아기자기한 소품점과 가구점, 카페가 있어 데이트 성지로 알려져 있다. 신발 상점에서부터 영화 캐릭터 판매점, 서점, 다기, 빈티지 의류, 잡화 등 없는 게 없다. 사원도 여럿 보인다. 대표적인 것이 1830년에 설립된 도교 사원 금화부가 있다. 삼국지 관우를 신격화한 곳이다.
이곳에는 대만이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을 때 세워진 일본식 건물이 대부분 남아 있는데 200년 이상 된 건물도 있다. 거리를 다니다 보면 부산과 많이 닮아 있음을 느낀다. 일제시대 건물이 그렇고, 건물 내 풍경이 그렇다. 예술가와 청년 사업가들이 함께하는 빈티지한 감성도 부산도 비슷하다.
특히 이곳은 밤이 아름답다. 건물마다 달린 등의 불빛과 검푸른 하늘이 어우러져 아름답고 이색적인 모습을 연출한다. 먹거리도 빼놓을 수 없다. 젊은 감성의 카페는 물론 야시장에서 꼬치구이를 비롯해 두부튀김, 굴전 등 현지식도 제대로 맛볼 수 있다.
대만에서 가장 오래된 하야시 백화점. 단순한 쇼핑 공간이 아닌 격동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가장 오래된 하야시 백화점
션농지에서 걸어서 15분이면 대만에서 가장 오래된 백화점을 만날 수 있다. 하야시 백화점은 1932년 일제시대에 개장해 100년 가까이 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하야시 백화점은 대만에서 두 번째로 생긴 백화점이다. 대만의 첫 백화점인 타이베이의 ‘키쿠모토 백화점’이 문을 닫는 바람에 가장 오래된 백화점의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이 건물은 타이난 최초로 엘리베이터가 생긴 것으로도 유명하다. 현재는 신형 엘리베이터가 운행되고 있지만, 성인 5명이 타기도 좁았다.
5층 규모인 백화점은 단순한 쇼핑 공간이 아니다. 대만의 근대화와 일제 강점기라는 격동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6층 옥상에는 대만에선 유일하게 일본 식민지 시대에 세워진 신사가 자리하고 있다. 옥상에는 제2차 세계대전 말기 미군의 공습으로 생긴 탄흔도 남아 있다. 현재도 백화점으로 운영되고 있으나 현대식 백화점과는 다른 아기자기한 모습이다. 계단과 바닥 문양이 일제 시대 그대로다.
김진성 기자 paperk@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