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황석영은 왜 챗GPT로 소설 썼나?

김상훈 논설위원 neat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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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 문학의 거장’ 황석영 작가가 신작 소설 <할매> 집필 과정에서 챗GPT를 활용했다는 사실을 공개해 문단에 신선한 충격을 줬다. 80대 노장 작가가 생성형 인공지능이라는 첨단 기술을 창작 도구로 받아들였다는 점에서 문학 영역도 AI(인공지능)의 자장으로 들어왔다는 상징성이 컸기 때문이다. 그동안 영화·드라마, 미술 장르에서는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판도를 빠르게 바꿔 왔지만, 문학 분야에서는 상대적으로 변화 속도가 늦었다. 언어와 감정을 섬세하게 다루는 문학의 특성을 고려할 때 전격 도입이 쉽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황석영 작가처럼 문학계에서 AI를 ‘도구’로 활용하는 시도가 더 활발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황석영(왼쪽) 작가가 유튜브 채널 ‘이혜성의 1% 북클럽’에 출연해 <할매>를 AI의 도움을 받아 썼다고 밝히고 있다. 유튜브 채널 ‘이혜성의 1% 북클럽’ 캡처 사진. 황석영(왼쪽) 작가가 유튜브 채널 ‘이혜성의 1% 북클럽’에 출연해 <할매>를 AI의 도움을 받아 썼다고 밝히고 있다. 유튜브 채널 ‘이혜성의 1% 북클럽’ 캡처 사진.

83세 거장과 챗GPT의 만남

황석영 작가의 소설 <할매>는 금강 하구 전북 군산시 하제마을의 600년 된 팽나무를 중심축으로 삼아, 조선 초기부터 근현대까지의 역사를 생명·생태의 관점에서 다시 엮어낸 작품이다. 이야기는 시베리아에서 남하한 개똥지빠귀 한 마리의 죽음에서 출발한다. 새의 뱃속에 있던 씨앗이 서해 갯벌에 내려앉고, 그 씨앗이 600년을 버틴 팽나무 ‘할매’로 자라난다. <할매>는 인간 종(種)의 역사를 넘어 ‘생명 전체의 역사’를 다루는 작품이다. 팽나무 한 그루에 600년의 세월을 실어 ‘삶·죽음·문명·순환’이라는 근원적 물음을 던진다.

황 작가는 지난달 유튜브 채널 ‘이혜성의 1% 북클럽’에 출연해 <할매>를 AI의 도움을 받아 썼다고 솔직하게 밝혔다. 그는 유튜브에서 챗GPT를 조수로 활용했다고 말했다. 소설의 구성 방법, 시대 배경, 글쓰기 형식 등 대여섯 개의 요소를 입력해 놓고 인공지능(AI)과 대화를 나누며 논문을 쓸 정도로 풍부한 자료를 구축했다는 것이다. 특히 하이데거의 난해한 저서 <존재와 시간>의 핵심 개념, 불교의 시간적·관념적 배경을 놓고 AI와 문답을 주고받으며 어렵지 않게 정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 작품에서는 불교적 요소인 석가모니의 ‘연기론’(緣起論)이 묻어 나온다. 죽은 개똥지빠귀의 몸속에 있던 팽나무 열매 씨앗이 팽나무가 되어 자라고, 팽나무에 다시 개똥지빠귀들이 날아와서 열매를 먹는 장면이 그러하다. 모든 존재와 현상이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원인과 조건(인연)에 의지해 서로 연결되어 생겨나고 사라진다는 불교의 가르침이 녹아 있다. 작가는 ‘무명’(어리석음)에서 시작해 ‘노사’(늙고 죽음)에 이르는 12가지 고리로 윤회의 과정을 설명한다.


소설가 황석영이 지난해 12월 9일 서울 중구 달개비에서 열린 장편소설 <할매>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소설가 황석영이 지난해 12월 9일 서울 중구 달개비에서 열린 장편소설 <할매>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AI를 생산적으로 활용한 거장

황 작가는 유튜브에서 인공지능과의 협업에서 “활용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많이 갖고 준비해야 한다. 준비 없이 (AI에게) 해보라고 해서는 말이 안 된다”고 했다. 인공지능이 기계적인 알고리즘의 결점을 지녀 질문자 성향을 파악해서 그대로 밀고 나간다는 것이다. 질문의 품질이 우수할수록 수준 높은 답변이 나온다는 사실을 간파한 셈이다.

황 작가는 챗GPT가 문학작품이나 그림을 만든다면, 서툴고 투박했던 인간의 손길이 사라지고 매끈함만 남아 굉장히 어색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것이 AI의 부족한 측면이며 오히려 못 그린 것 같은 인간의 면모가 더 강조되고 오래갈 것이라고 본다.

그는 챗GPT로 추리 소설은 가능할지라도 본격적인 문학작품 생산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본격적인 문학작품은 훨씬 복잡한 상상력의 세계를 넘나들어야 하고, 문학이 가진 가장 큰 특성인 독자가 상상하는 여백을 둬야 하기 때문이다. 황 작가는 <할매>를 창작하면서 챗GPT를 썼는데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연필, 볼펜, 붓, 타이프라이터로 넘어가는 과정과 같다는 것이다.

실제로 황 작가는 ‘얼리 어답터’다. 전동 타자기, 워드프로세서, 매킨토시 등 글쓰기 도구를 빨리 습득했고, 소설 <개밥바라기별>을 인터넷에 연재할 정도였다. 트위터가 처음 나왔을 때는 시인들에게 트위터 시를 빨리 쓰라고 권유했다고 한다.

황 작가는 상상력을 확장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 도구로 AI를 현명하게 사용한 사례다. AI가 창작을 대신한 것이 아니라 사고의 폭을 넓히고 서사 구조를 점검하는 도구로 쓴 것이다. 창작의 주체로서 AI 기술을 생산적 방식으로 활용한 셈이다.


일본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과 나오키상 수상자들이 2024년 1월 17일 도쿄에서 책을 들어 보이고 있다. 왼쪽부터 마키메 마나부, 가와사키 아키코(이상 나오키상 수상자), 구단 리에(아쿠타가와상 수상자). 연합뉴스 일본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과 나오키상 수상자들이 2024년 1월 17일 도쿄에서 책을 들어 보이고 있다. 왼쪽부터 마키메 마나부, 가와사키 아키코(이상 나오키상 수상자), 구단 리에(아쿠타가와상 수상자). 연합뉴스

■ 젊은 작가, AI와 문학 접목 시도

그동안 국내에서는 젊은 작가들을 중심으로 AI와 문학을 접목하는 시도가 있었다. 2023년 김수영문학상 수상 시집인 박참새 시인의 <정신머리>가 대표적이다. 책에 수록된 박 시인의 시 ‘디펜스’(Defense)는 영어 원문, 챗GPT가 번역한 한국어 문장, 시인이 의도한 내용을 담은 한국어 시를 교차 배열했다. 단순 번역을 넘어 AI가 생성한 문장을 시의 일부로 수용한 실험으로 AI와 문학의 협업 가능성을 보여줬다. 일부 젊은 작가들은 챗GPT를 활용해 초고를 구성하거나 스토리 전개를 점검하는 등 ‘AI와의 공저’ 형태를 모색했다. 윤여경 작가 등 7명은 챗GPT와 함께 쓴 소설집 <매니페스토>를 출간하기도 했다.

해외에서는 이미 AI 협업이 문학 실험의 한 장르로 자리 잡았다. 2024년 일본 최고 권위의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도쿄도 동정탑>의 작가 구단 리에가 대표적인 사례다. 구단은 “소설의 약 5%를 챗GPT 문장으로 채웠다”고 밝히며 주목받았다. 당시 심사위원단은 “완성도가 높고 단점을 찾기 어려웠다” “아쿠타가와 수상작 중에서도 굉장히 독특한 작품”이라고 심사평을 했다. 구단은 2025년에는 AI로 소설의 95%를 집필한 신작 <그림자 비>를 발표했다.


■ AI 시대 작가의 역할은

AI 활용이 문학계로 확장하면서 AI 시대 작가의 역할이 조명받는다. 작가는 AI에 어떤 질문을 던질 것인지 결정하고, 결과물 중 무엇을 선택할지 판단하고,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여 문학적 완성도를 구현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AI를 인간의 상상과 서사를 담아낸 새로운 도구로 활용하는 것이다. AI를 완성품을 던져주는 ‘자판기’ 같은 존재로 봐서는 안 된다.

일본 작가 구단 리에는 “AI는 무난한 대답을 내놓는 데 능숙한 도구일 뿐 도구로 무엇을 할 것인가는 인간에게 달려 있다”며 “창작 영역에서도 예술의 영향력은 기술이 가져오는 게 아니라 그것을 다루는 사람이 가져오는 것”이라고 말한다. 모든 작가가 AI를 활용하는 방식은 달라도 좋은 작품을 만들겠다는 본질적 목표는 같다.

AI를 개성 있고 현명하게 다루는 작가일수록 더 큰 창의성과 생산성을 발휘할 수 있다. 다만, AI 기술을 얼마나 비판적이고 지적으로 활용하느냐가 중요하다. AI로 검색한 개별 정보들의 의미를 해석하고 가치 판단을 하고, 이를 활용해 더 풍부한 문학적 표현을 이뤄내는 것이 과제가 됐다.


김상훈 논설위원 neat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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