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션 뷰] 해기인력, 국가전략이다
류동근 국립한국해양대 총장
해양으로 열 미래 책임질 핵심 인프라
국립한국해양대, 대표 양성 거점 역할
이젠 국가 해양인력 컨트롤타워 맡아야
우리가 먹고, 만들고, 수출하며 성장해 온 방식은 결국 하나로 수렴한다. 바다를 통해 연결되는 국가라는 사실이다. 원유·가스·곡물 같은 필수 자원, 반도체·자동차·철강 같은 주력 제품, 그리고 국가 비상 상황에서의 군수·구호 물자 등 이 모든 것이 해상 물류망 위에서 움직인다. 그래서 해운산업은 단순한 ‘운송업’이 아니라 국가 경제와 안보를 동시에 떠받치는 기간산업이다.
그런데 이 동맥이 원활히 흐르려면 배만 있어서는 안 된다. 배를 움직일 사람, 즉 해기인력이 있어야 한다. 선박의 안전 운항, 화물의 안정적 수송, 항해·기관·전자·통신·안전관리 등 고도의 전문성이 결합된 해기역량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특히 친환경 연료 전환, 디지털·자율운항, 사이버 보안과 같은 새로운 기술이 해운 현장에 빠르게 들어오면서, 해기인력은 이제 ‘부족한 직군’이 아니라 ‘국가 경쟁력의 격차를 만드는 직군’이 되고 있다.
미국은 다시 바다를 국가 전략의 한가운데로 불러왔다. 2026년 2월 발표된 ‘America’s Maritime Action Plan(MAP)’은 단순한 조선·해운 정책이 아니다. 이는 산업정책·안보정책·공급망 전략을 하나로 묶은 ‘해양 국가전략’ 선언에 가깝다. 미국이 문제를 인식한 지점은 명확하다. 연간 상선 건조량은 세계의 1%에도 못 미치고, 대형 조선소는 손에 꼽을 정도로 줄었다. 군수 물자, 에너지, 식량 수송까지 외국 선박과 외국 조선에 의존하는 구조는 단순한 산업 경쟁력 문제가 아니라 국가안보의 취약성으로 이어졌다. 여기에 숙련 인력의 고령화와 기술 단절까지 겹치며, 미국은 ‘해양 역량의 구조적 붕괴’라는 표현까지 사용한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대한민국은 해운을 국가 전략의 중심에 놓고 있는가. 해기인력 양성을 단기 인력 수급 문제가 아니라 장기 국가 역량 구축 과제로 다루고 있는가. 그리고 그 답을 실행으로 옮길 수 있는 기반을 우리는 이미 가지고 있는가.
그 기반의 이름이 바로 국립한국해양대학교다. 국립한국해양대학교는 지난 80년 동안 대한민국 해운산업의 성장 곡선과 함께 걸어왔다. 전후(戰後) 폐허 속에서 해상 운송의 복원이 곧 국가 재건의 출발점이던 시절부터, 고도성장기 수출입 물동량이 폭증하던 시기, 세계 조선·해운 강국으로 도약하던 과정, 그리고 글로벌 공급망이 흔들리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국립한국해양대학교는 현장에 투입될 해기사와 해운 전문인력을 꾸준히 길러내며 산업의 ‘사람 기반’을 만든 기관이었다.
해운산업은 ‘설비 산업’이면서 동시에 ‘인력 산업’이다. 선박은 자본으로 살 수 있지만, 해기역량은 시간과 축적이 필요하다. 국립한국해양대학교는 바로 그 축적의 장이었다. 항해사와 기관사를 중심으로 한 전통적 해기인력 양성은 물론, 해운, 항만, 물류, 선박금융, 해사법, 조선, 조선기자재, 해양디지털 분야로 교육과 연구의 스펙트럼을 넓혀오며 산업 변화에 대응해 왔다. 산업의 파고가 높아질 때마다 현장은 “사람이 부족하다”고 말하지만, 사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사람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숙련과 신뢰가 축적된 인력이 부족한 것”이다. 국립한국해양대학교는 그 숙련과 신뢰를 제도적으로 길러내는 대표 거점이었다.
오늘날 해운산업은 또 다른 전환점 앞에 서 있다. 국제 환경규제 강화로 인한 친환경 연료 전환, 디지털 전환과 자율운항 기술의 도입, 공급망 재편과 경제안보 경쟁, 그리고 해상 사이버 위협의 증대까지 현장은 기존의 ‘항해·기관’ 역량에 더해 데이터·AI·보안·신연료 안전관리까지 요구하고 있다. 즉 해기인력은 줄어드는 직업이 아니라, 더 복합적이고 고도화되는 직업으로 바뀌고 있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단순한 인력 확대가 아니라 한국형 해양행동계획이다. 해운을 국가 전략산업으로 재정의하고, 해기인력 양성을 국가가 책임지는 구조로 바꾸는 계획이다. 그 중심에서 국립한국해양대학교는 ‘교육기관’을 넘어 국가 해양인력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아야 한다. 해기사 교육을 강화하되, 친환경 연료·해양 AI·자율운항·디지털 선박·해상 안전·해양 사이버 보안까지 아우르는 통합 역량 체계를 구축하고, 산업·군·공공부문과 연계한 경력 경로를 설계해야 한다. 나아가 실습선과 교육 인프라를 ‘현장 실증 플랫폼’으로 확장해 기술 전환을 교육과 동시에 달성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바다는 국가의 동맥이다. 그리고 해기인력은 그 동맥을 뛰게 하는 심장이다. 대한민국이 해운산업으로 성장해 왔다면, 앞으로도 해양으로 미래를 열어야 한다. 지난 80년 동안 국립한국해양대학교가 해기사 양성과 해운산업 발전에 기여해 온 역사는, 앞으로의 80년을 준비할 가장 확실한 자산이다. 이제 그 자산을 ‘과거의 성과’로 남겨둘 것이 아니라, 국가 전략의 중심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바다는 다시 국가의 일이 되었고, 사람은 그 전략의 출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