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톡톡] '5989'의 정체는 우리 학교 총 생산 문서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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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성 부산교사노조 정책기획국장

“야, 5989…너지?”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영화 ‘추격자’의 한 장면을 떠올리며 묘한 기시감과 함께 무언가 이상함을 느낄 것이다. 영화 속 번호와는 다른, 이 ‘5989’의 정체는 우리 학교의 2025학년도 총 생산 문서 수다. 접수된 문서까지 합쳐본다면 네 자릿수를 넘어 다섯 자릿수까지 넘보는 숫자가 된다. 교육부는 연일 학교 행정업무 경감을 외치지만, 현장에 있는 교사들이 이를 전혀 체감하기 어려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학교 현장에서 교육의 본질에 집중하지 못하게 만드는 ‘범인’은 5989가 맞다. 5989.이를 본교 교원 수로 단순 산술해봐도 1인당 연간 약 427건이라는 압도적인 숫자가 도출된다. 주말과 공휴일을 제외하면 매일 한 건 이상의 문서를 쉬지 않고 생산했다는 뜻이다. 과연 이 수많은 서류 중 아이들의 성장과 배움에 꼭 필요했던 문서는 몇 건이나 되었을까.

시대는 빠르게 변하고 있다. AI의 등장과 함께 변화의 속도는 더욱 가팔라질 것이다.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며 살아갈 인간을 기르는 교육은 필수적이며, 이는 교사들의 깊은 고민과 준비를 통해 더욱 의미 있는 학습으로 다듬어진다. 그렇지만 현실은 어떤가? 교육부와 교육청, 지원청에서 내려오는 각종 지침과 규정들로 인해 교사들은 수업보다 행정 처리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다. 미래 역량과 개별화 교육을 강조하는 시대일수록 교사의 역할은 중요해지지만, 정작 교사가 교육에 몰입할 시간은 줄어드는 역설이 반복되고 있다.

결국 이는 교사 개인의 고충을 넘어, 학생의 배움권과 직결된 문제로 보아야 한다. 학교 내 인터넷 작동이 멈췄던 어느 날이 있었다. 교내의 모든 행정 업무가 마비되었다. 모두가 큰 불편을 겪으리라 생각했지만, 역설적이게도 지금 우리는 그날을 그리워한다. 업무는 멈췄을지언정, 수업은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컴퓨터 화면이 아닌 학생들의 얼굴을 깊게 들여다보며 관심을 기울일 수 있었던 날. 공문 결재가 아닌 동료와 마주 앉아 참된 교육에 대해 고민했던 시간. 아마 우리 모두는 이 본연의 순간에 대한 갈증이 있었을 것이다. 학교라는 공간은 각종 서류 뭉치가 아닌, 살아 숨 쉬는 사람들로 가득 찬 공간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행정업무를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겠지만, 무엇이 우선순위인지는 다시금 생각해야 한다. 교사(敎師)는 가르치는 스승이라는 뜻이다. 우리는 오직 가르치고 싶고, 가르치기 위해 존재하고 싶다. 그렇기에 교사가 본질인 수업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내가 교사라는걸 헷갈리게 만드는 “야, 5989. 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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