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션 뷰] AI시대 성장축, 동남권이 돼야 하는 이유
이성우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선임연구위원
첫째, 항만·공항이 만들어내는 물류데이터
둘째, 해저 케이블 집중된 글로벌 네트워크
셋째, 풍부한 에너지와 냉각 시스템의 조화
최근 인공지능(AI)과 디지털 경제의 확산으로 데이터는 석유를 대체하는 새로운 전략 자산으로 자리 잡고 있다. 과거 국가 경쟁력이 항만, 공항, 철도, 도로 등 물류 인프라에 의해 결정되었다면 이제는 데이터센터, 해저케이블, 클라우드 네트워크와 같은 디지털 인프라가 국가의 미래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디지털 인프라 정책은 여전히 수도권 중심 사고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현재 국내 데이터센터 대부분이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으며, 이에 따라 전력 부족, 부지 확보 난항, 주민 민원 증가, 네트워크 과부하 등의 문제가 동시에 발생하고 있다. 수도권에 국가의 모든 디지털 인프라를 집중하는 방식은 효율성 측면에서도 한계에 도달했고 국가 안보와 재난 대응 측면에서도 상당한 위험 요소를 안고 있다. 이제는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 국토 균형발전과 국가 디지털 경쟁력 강화를 동시에 실현하기 위해 부산을 중심으로 한 동남권을 글로벌 공급망 데이터 허브로 육성해야 한다. 동남권은 수도권이 갖지 못한 세 가지 결정적 강점을 보유하고 있다.
첫째, 세계적 수준의 항만과 공항이 만들어내는 방대한 물류 데이터다. 부산항은 세계적인 환적항이자 대한민국 최대 무역 관문이다. 진해신항과 가덕신공항이 완성되면 동남권은 항만·공항·철도가 연계된 세계적인 트라이포트 체계를 갖추게 된다. 항만과 공항은 단순한 물류 거점이 아니다. 선박과 화물, 컨테이너, 차량, 항공기, 창고, 통관 등에서 실시간으로 생성되는 데이터의 보고다. 미래의 스마트 항만과 스마트 물류는 결국 데이터를 기반으로 운영된다. AI가 선석 배정과 화물처리 계획을 수립하고, 디지털 트윈이 물류 흐름을 예측하며, 자율주행 장비가 항만을 운영하는 시대에는 데이터가 곧 경쟁력이다. 부산은 이미 대한민국 최대의 물류 데이터 생산지이며 앞으로는 글로벌 물류 데이터의 중심지가 될 잠재력을 갖고 있다.
둘째, 동남권은 대한민국의 글로벌 데이터 관문이다. 현재 우리나라에 연결된 국제 해저 케이블 9개 중 7개가 부산과 동남권에 집중되어 있다. 이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과거 항만이 세계 물류가 모이는 관문이었다면 해저 케이블은 세계 정보가 모이는 디지털 항만이다. 글로벌 인터넷 트래픽의 95% 이상이 해저 케이블을 통해 이동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부산은 이미 대한민국 최대의 국제 데이터 게이트웨이인 셈이다. 싱가포르가 동남아시아의 데이터 허브가 된 이유 역시 해저 케이블과 항만이 결합된 전략적 위치 덕분이다. 홍콩, 싱가포르, 두바이와 같은 글로벌 허브 도시들은 모두 물류와 데이터가 동시에 집결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부산 역시 동북아 물류 허브에 더해 글로벌 데이터 허브로 성장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 특히 AI 시대에는 데이터의 이동 속도가 국가 경쟁력을 결정한다. 글로벌 클라우드 기업과 AI 기업들이 해저케이블 인근에 대규모 데이터센터를 구축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부산은 이미 그 입지적 조건을 확보하고 있으며, 이제 필요한 것은 국가 차원의 전략적 투자와 지원뿐이다.
셋째, 동남권은 데이터센터 운영에 필요한 에너지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AI 데이터센터는 막대한 전력을 소비한다. 최근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데이터센터 입지를 선정할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요소 역시 전력 공급 능력이다. 동남권은 원전과 LNG 발전소, 산업단지를 기반으로 안정적인 전력 공급 체계를 갖추고 있다. 수도권이 전력 부족과 송전망 한계에 직면해 있는 것과 달리 동남권은 대규모 전력 수요를 감당할 수 있는 여력이 존재한다. 더욱 주목해야 할 점은 바다를 활용한 냉각 시스템이다. 데이터센터 운영비의 상당 부분은 서버 냉각 비용이 차지한다. 부산과 동남권은 풍부한 해수를 활용한 냉각 시스템 구축이 가능하다. 해수 냉각은 일반 공조 방식보다 전력 소비를 크게 줄일 수 있으며 탄소배출 감소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이는 운영비 절감뿐 아니라 ESG 경영과 탄소중립 시대에도 중요한 경쟁력이 된다.
결국 동남권은 물류 데이터, 글로벌 네트워크, 에너지라는 세 가지 핵심 요소를 모두 보유한 대한민국 유일의 지역이다. 더 중요한 것은 이것이 단순히 부산만의 발전 전략이 아니라는 점이다. 대한민국은 수도권 집중으로 인한 성장 한계와 지역 소멸이라는 이중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국가의 새로운 성장축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에서 동남권의 데이터 허브 전략은 국토 균형발전의 새로운 해법이 될 수 있다. 과거 산업화 시대의 성장축이 경부축이었다면 AI 시대의 성장축은 데이터축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부산을 중심으로 한 동남권이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