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일 칼럼] 전자정부 진화와 AI 에이전트 부산 시정
수석논설위원
오늘 전자정부의 날… 행정 혁신 견인
전산화, 모바일 거쳐 AI 대전환까지
전재수 시장 당선인 'AI 허브' 구상
전통 산업에 인공지능 접목 체질 강화
지자체도 'AI 우선' 원칙 도입해야
시민 체감 변화, 도시 경쟁력 밑거름
“그 업무는 우리 부서 소관이 아닙니다. 전화를 돌릴 테니 끊기면 ○○○○번으로 다시 하세요.”
관공서에 전화했을 때 마주치던 익숙한 풍경이다. 어렵사리 연결된 곳에서는 다시 다른 부서로 넘기고 수화기 너머로 연결음이 반복되기 일쑤다. 미로 같은 관공서 업무 체계 탓에 담당자를 찾는 과정 자체가 고역이 되기 십상이다.
물론 이러한 불편은 상당 부분 개선됐다. 대한민국은 행정 서비스의 디지털화로 세계 최고 수준의 전자정부를 구축했다. 과거 주민센터에서 처리하던 많은 민원이 스마트폰과 컴퓨터, 무인민원발급기로 처리할 수 있게 됐다. 한국은 2010년 유엔 전자정부평가 세계 1위를 시작으로 전자정부 선도국의 위상을 굳혔다. 이러한 성과를 기념하기 위해 정부는 2017년 6월 24일을 전자정부의 날로 지정했다.
전자정부는 종이 문서를 전산화하고 이를 행정 정보망에 연결·공유해 온라인에서 서비스하는 것에서 시작해 모바일로 확장됐다. 이어 정부 데이터를 연결해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하는 디지털플랫폼정부 개념으로 진화했고, 현 이재명 정부 들어서는 AI 대전환이 더해졌다. 하지만 국민은 여전히 어떤 지원금이 있는지 찾아야 하고, 어떤 서류가 필요한지 알아봐야 하고, 여러 기관 사이트를 들락날락해야 한다. 이른바 ‘AI 딸깍’이라는 자동화의 시대이지만 행정 서비스는 여전히 불편하다. 부처별, 기관별 칸막이를 없애겠다는 정책이 현장에서 피부로 체감될 정도로 실행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서울에서 부산으로 이주하려는 30대 맞벌이 다자녀 부부가 맞닥뜨릴 상황을 살펴보자. 전입신고, 자동차 등록 변경, 각종 공과금 이전, 자녀 전학, 다자녀 혜택 신청, 반려동물 등록, 전기·수도·도시가스 이전…. 이들 민원을 처리하려면 정부24, 국민신문고, 교육청, 구청, 공기업 사이트를 제각각 찾아다녀야 한다. 디지털화는 성공했지만, 국민이 행정을 찾아다니는 구조 자체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많은 공공기관이 앞다퉈 AI를 도입하고 있다. 조직 내 규정과 업무 지침, 과거 사례, 결재 문서를 학습한 지능형 검색엔진을 구축하고, 이를 챗봇으로 활용해 행정 효율을 높인다. 나아가 비서처럼 업무를 대행해 주는 AI 에이전트(에이전틱 AI)도 각광받는다. 생성형 AI는 주어진 질문에 응답할 뿐이지만 AI 에이전트는 필요한 정보를 찾고 여러 시스템을 연결해 실제 업무를 수행하는 단계다. AI 에이전트를 적용하면 기다리지 않고 찾아가는 행정으로 프레임 전환이 가능하다.
이러한 변화는 중앙정부뿐 아니라 지방정부에도 새로운 과제를 던지고 있다. 부산시장 인수위원회는 전재수 당선인의 핵심 공약인 ‘AI 대전환’을 구체화하기 위해 지난 17일 전문가 정책 간담회를 열었고, 23일에는 현장 기업의 의견을 청취하는 자리를 가졌다. 피지컬 AI를 위시한 스마트항만과 해양 AI 산업, 제조업 AX(AI 전환)는 부산의 성장 엔진을 교체하는 중차대한 사업이다.
그런데, 부산 AI 전환 대역사에서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과제가 AI 행정 혁신이다. 부산을 AI 허브로 만들겠다는 전 당선인의 미래 비전은 시민의 삶과 지역 경제를 이끄는 부산 시정 자체에 AI를 도입하는 것으로 입증해야 한다. 이미 공약으로 제시한 행정·복지·의료 예약을 돕는 AI 생활비서 서비스와 AI 안전 도시 시스템 등을 확장·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는 AI 대전환이 국가 전략이라면, AI 에이전트 시정은 이를 행정 현장에서 구현하는 실천 모델이다.
부산에서 복지, 청년, 저출생, 고령화 등의 업무에 AI 에이전트가 도입된다면 어떨까. ‘부산시 청년 비서’가 취업 준비생이 묻기도 전에 월세 지원, 청년 디딤돌 카드, 주거 지원, 고용노동부 청년지원사업을 제안하는 식이다. 청년이 지원 사업을 검색하는 것이 아니라 AI가 먼저 “당신은 월세 지원 대상입니다. 신청하시겠습니까”라고 묻는 것이다. 같은 방식으로 신혼부부·임신부·1인 가구·독거노인·취약계층에게도 맞춤형 AI 에이전트가 필요한 서비스를 먼저 알려 주고, 원할 경우 신청과 연결까지 대행하는 것이다. 단순 업무가 자동화되면 공무원이 정책 기획, 복지 사각지대 발굴, 재난 대응 같은 곳에 집중할 수 있는 효과도 기대된다.
전재수 부산 시정이 이끄는 AI 대전환 성공에 부산의 미래가 걸렸다. 다만, 행정이 먼저 AI 혁신을 솔선수범해야 한다. 그래야 시민들이 AI 대전환의 필요성을 체감할 수 있다. AI 활용을 전제로 업무 절차를 재설계하는 ‘AI 우선’(AI by Design) 원칙을 세우고 민원이 제기되기 전에 행정이 먼저 찾아가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산업 현장의 AI만큼 중요한 것이 시민이 체감하는 AI다. 부산의 AI 대전환은 공장과 항만에서만이 아니라 시청과 구청, 복지관과 보건소에서 완성돼야 한다.
김승일 수석논설위원 dojun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