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집을 걷다 - 서도호와 떠도는 기억의 미학
서도호, Nest/s, 2024, 테이트 모던 'Walk the House' 설치 전경, 2025. 테이트 모던 제공
서도호는 서울, 뉴욕, 런던 등 자신이 살아온 집을 반투명한 천으로 다시 만든다. 그의 집은 보통의 단단한 건축물이 아니라, 접히고, 펼쳐지고, 옮겨지고, 다시 세워지는 집이다. 테이트 모던 2025년 전시 제목 ‘집을 걷다’(Walk the House)는 “집 안을 걷는다”는 뜻에 머물지 않고, 이사할 때 집을 해체해 다른 곳으로 옮겨 다시 세운다는 오래된 한국적 기억, 곧 집 자체가 이동한다는 감각도 담겨 있다.
그의 반투명 집은 기억의 비물질적 성격을 드러내기 위한 장치다. 그 집은 아름답지만, 어딘가 슬프다. 천으로 된 벽과 공간, 문손잡이, 전등 스위치, 못과 나사의 흔적까지 정교하게 재현되어 있지만, 그 모든 것은 집의 실체라기보다 ‘피부’다. 보이지만 잡히지 않고, 존재하지만 단단하지 않다. 따라서 기억은 붙잡으려 하면 빠져나가고, 잊었다고 생각하면 문득 되돌아온다.
가스통 바슐라르는 〈공간의 시학〉에서 어린 시절의 집이 우리의 기억과 몽상 속에 계속 되돌아온다고 말한다. 그에게 집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사유와 기억과 꿈을 한데 묶어주는 내밀한 장소다. 구석은 몸을 숨기고 몽상에 잠기는 자리이며, 서랍은 비밀을 간직하는 공간이고, 장롱은 물건과 함께 내밀한 기억이 접혀 있는 장소다. 어린 시절 살았던 집으로 돌아갈 수 없을지라도, 집은 몽상 속에서 다시 살아나 우리 내면의 풍경을 이룬다. 집은 기억의 저장고이자 몽상의 원천이며, 인간이 세계와 만나기 전에 먼저 안온함과 보호를 배우는 첫 우주다.
서도호는 자신이 떠나온 집들을 반투명한 천으로 다시 세운다. 이때 집은 기억과 감정의 ‘피부’가 된다. 그의 작품은 바슐라르가 말한 기억 속의 집을 동시대 미술의 언어로 다시 세운다. 그러나 그의 집은 바슐라르의 시적이고 내밀한 집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서울, 뉴욕, 런던으로 옮겨 다닌 한 개인의 집이면서, 동시에 전쟁과 이주, 유학과 노동,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끊임없이 이동해 온 한국인의 집이기도 하다. 개인의 기억은 사적인 영역에만 머물지 않고, 시대의 폭력과 이동의 역사 속에서 언제나 정치적 흔적을 품는다.
이 지점에서 서도호의 작품은 6·25 한국전쟁 이후 한국인의 공간 감각과 깊이 만난다. 전쟁을 직접 다룬 것은 아니지만, 그의 집은 전쟁 이후 피란, 이주, 분단의 감각을 조용히 환기한다. 6·25는 수많은 사람에게 집을 잃게 한 사건이었다. 고향을 잃고, 가족과 헤어지고, 피란길에 오르고, 낯선 도시에서 임시 거처를 마련해야 했던 사건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집은 때로 주소가 아니라 상처다. 때로 머무는 곳이 아니라, 떠난 뒤에도 우리를 따라오는 유령이다. 서도호의 집은 바로 그 유령을 아름답고도 아프게 보여준다. 그의 집은 걷는다. 그리고 우리도 그 집을 따라 기억의 복도를 걷는다.
미술평론가·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