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원픽] 잘못 들어선 길에도 기쁨과 슬픔이…
칼릴 지브란의 시 ‘길이 보이면 걷는 것을 생각한다’ 중에서
김주원 부산오페라하우스 시즌 발레단 예술감독
김주원 부산오페라하우스 시즌 발레단 예술감독. 김주원 제공
발레는 ‘만들어진 규칙’ 속에 ‘정해진 경로의 목적지를 향한 길’을 걷는 것이라 생각했다. 음악이 시작되는 순간, 동작과 호흡, 시선의 방향까지 이미 정해져 있는 듯이.
무대 위의 길은 분명했다. 어디서 돌아야 하는지, 어디서 멈춰야 하는지, 그리고 그 끝에서 무엇을 만나게 될지도 알고 있었다. 나는 그 길 위에서 춤으로 40여 년을 걸었다.
어느 날, 칼릴 지브란의 시 ‘길이 보이면 걷는 것을 생각한다’ 한 구절이 마음에 들어왔다. ‘길 끝에는 무엇이든 있고 무엇과도 만나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자신이 꿈꾼 최선의 길로 들어설 수 없다. 그래도 가야 한다.’ 짧은 문장이었지만 나의 시선은 글귀에 오래 머물렀다. 무용수로 살아온 시간은 분명한 길 위에 있었다. 그러나 지금 나는 새로운 길 앞에 서 있다. 누군가가 그어 놓은 동선이 아니라, 스스로 방향을 찾아야 하는 길이다.
이 길이 내가 꿈꾸던 모습 그대로인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인생에는 처음부터 완성된 길 같은 것은 없는지도 모른다. 걸어가면서 비로소 길이 되는 것인지도.
지브란은 또 이렇게 말한다. ‘잘못 들어선 길 그 길에도 기쁨과 슬픔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 문장을 좋아한다. 살다 보면 누구나 자신이 다른 길을 선택했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돌아보면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은 순탄했던 시간보다 예상하지 못했던 우회로들이었다. 무대 위에서도 그랬다. 완벽했던 공연보다 실수와 시행착오가 더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칼릴 지브란의 시가 실려 있는 책 <내 인생을 풍요롭게 만드는 한 편의 시-365 하루에 한 편씩 읽는 세계의 명시> 표지. 김주원 제공
그래서 이제는 좋은 길과 나쁜 길을 구분하기보다, 내가 들어선 길을 어떻게 걸어갈 것인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발레할 때 좋은 무대는 화려한 기술만으로 완성되지 않았다. 진정성을 가득 채운 철학과 정확한 자세, 정직한 호흡, 그리고 한 걸음을 끝까지 책임지는 마음이 필요했다.
삶도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예술감독이라는 이름 앞에서 나는 이제 새로운 길에 발을 내디뎠다. 길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길 끝에는 언제나 새로운 기쁨과 슬픔이 있고, 또 새로운 길이 있다.
오늘도 나는 길 위에 선다. 무대의 막이 오르기 직전, 객석의 숨소리가 조용히 가라앉던 그 순간의 떨림으로. 다시 한 걸음을 내딛는다. 김주원 부산오페라하우스 시즌 발레단 예술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