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우리 딸 기사 좀 써주면 안 될까요"
김동주 사회부 부장
어머니는 자신의 딸 이야기를 기사로 써 줄 수 없냐며 편집국으로 전화를 걸어 왔다. 딸은 호텔 관련 전공자가 아닌데도 호텔리어인 아버지의 뒤를 따라 호텔에서 일한 지 3년째라고 했다. 어머니 목소리에는 딸을 대견해하는 마음이 가득했다.
전화의 요지는 “딸을 응원해주고 싶은데 신문에 한 번 실리면 힘이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안타깝지만 개인의 직업 생활을 응원하는 사연만으로 기사를 쓰기는 어렵다고 설명하고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그 전화는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우리는 취업이나 성공, 합격 같은 결과에는 박수를 보내지만, 그 과정에서 묵묵히 버티는 시간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취업을 준비하는 시간도, 첫 직장에서 적응하는 시간도, 실패를 딛고 다시 일어서는 시간도 대부분 개인의 몫으로 남겨 둔다. 사회는 “왜 아직도?”라고 묻는 데는 익숙하지만 “잘하고 있다”는 말에는 인색하다.
최근 만난 초록우산 부산지역본부장은 요즘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누군가는 자기 편이라는 믿음”이라고 말했다. 예전처럼 경제적 결핍을 겪는 아이보다 “어차피 저는 안 될 것 같아요”라며 시작도 하기 전에 가능성을 접어버리는 아이들이 더 많다고 했다. 경쟁은 치열해졌고 비교는 일상이 됐지만, 실패했을 때 기댈 사람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누군가는 끝까지 내 편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다시 도전할 용기도 생긴다는 그의 말은 아이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20·30대 ‘쉬었음’ 인구는 71만 7000명으로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쉬었음’은 일자리를 찾지 않는 사람이지만 그 배경은 하나로 설명하기 어렵다. 그 안에는 취업 준비와 진로 탐색, 재충전 등 서로 다른 사정이 담겨 있다. 물론 모든 ‘쉬었음’ 청년이 취업을 준비하는 과정에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들을 하나의 시선으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누군가는 더 나은 진로를 찾기 위해 잠시 멈췄을 것이고, 누군가는 반복된 실패를 견디다 숨을 고르고 있을 것이다. 그 시간을 무조건 ‘나태함’으로 해석하는 순간 이들은 더 깊은 고립으로 내몰릴 수 있다.
한국직업능력연구원 역시 청년들이 노동시장을 아예 포기했다기보다 사회로 첫발을 내딛는 시점이 전보다 늦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20대 초반 일에서 멀어지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4세의 취업 비중은 최근 15년 사이 크게 줄었지만,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의 취업 비중은 높아졌다. 사회는 이 공백을 개인의 의지 문제로 돌리지만, 사실 사회적 연대와 제도적 지지가 필요한 구간이다.
우리 사회는 ‘멈춤’을 너무 쉽게 ‘실패’로 오해한다. 취업이 늦어지면 능력을 의심받고, 잠시 쉬어가면 의지마저 의심받는다. 성과만 인정받는 사회에서 묵묵히 버티는 이들은 갈 곳을 잃고 쉽게 소외된다. 응원이 가장 필요한 사람은 결승선을 통과한 사람이 아니라 오늘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이 아닐까.
전화를 걸어 왔던 어머니가 원했던 것은 기사 한 편이 아니라 딸을 향한 응원이었는지도 모른다. 3년째 호텔리어의 길을 묵묵히 걷고 있는 그의 딸에게, 그리고 아직 과정을 살아내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김동주 기자 nicedj@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