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욱의 글로벌 산책] 외면하는 사이 훅 다가온 재앙, 기후변화
국립부경대 국제지역학부 교수
7월에야 시작하는 장마는 '비상 신호'
생태계 변화가 지정학적 위기도 초래
논쟁보다 국제협력 실천 등 서둘러야
6월 말이 생일인 필자의 기억 속 생일은 언제나 장맛비와 함께였다. 생일 아침 미역국을 먹고 우산을 쓴 채 학교로 향했다. 신발 속으로 빗물이 스며들고 교복 바짓단이 금세 젖곤 했던 게 6월 말의 당연한 풍경이었다.
올해는 달랐다. 한반도에서는 예년보다 장마가 늦어졌고, 7월에 들어서야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될 것이라는 전망이 이어지고 있다. 예년 같으면 습하고 무더웠을 6월 말이 오히려 건조하고 맑은 날씨 속에 지나가고 있다. 물론 잠시 쾌적한 날씨를 반길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결코 반가운 현상이 아니다.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던 계절의 질서가 조금씩 무너지고 있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반면 같은 시기 서유럽은 정반대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스페인과 프랑스, 이탈리아 등에서는 기온이 40도를 넘는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지고 있다. 학교가 휴교하고 철도 운행이 차질을 빚고 있으며, 도로와 활주로가 열을 견디지 못해 시설 점검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미 폭염으로 수백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보도도 이어지고 있다.
우리 역시 안전지대가 아니다. 지난해 우리나라는 기록적 폭염을 경험하였다.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최고 체감온도가 40도 안팎까지 치솟았고, 열대야가 장기간 이어졌다. 철도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레일 온도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자 안전을 위해 KTX와 일반열차는 감속 운행을 실시하였고, 연착이 크게 늘어났다. 기후변화는 이제 휴가철 불편을 넘어 사회 기반시설과 국가 운영 시스템까지 흔들고 있다.
우리가 아무리 외면하려고 하여도 기후위기는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현실이며, 이미 우리의 삶을 하나씩 바꾸고 있다.
기후변화는 단순히 날씨가 조금 달라지는 문제가 아니다. 우리의 식탁과 산업, 그리고 국가 경제의 구조 자체를 변화시키고 있다. 제주도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감귤은 이제 남해안과 전남 지역까지 재배지가 확대되고 있으며, 사과의 주산지도 점차 북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반대로 고랭지에서 재배되던 일부 농산물은 생산이 어려워지고 있다.
바다의 변화는 더욱 심각하다. 수온 상승으로 동해에서 흔히 잡히던 오징어는 어획량이 급감하였고, 국민 생선이었던 명태는 사실상 국내 바다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여름철 고수온 현상은 광어와 굴 양식에도 큰 피해를 주고 있다. 특히 굴은 적정 수온을 벗어나면서 폐사가 늘어나고 있으며, 양식 어민들은 매년 반복되는 피해에 생계를 걱정하고 있다. 바다는 기후변화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공간이 되었고, 그 피해는 결국 어민과 소비자 모두에게 돌아오고 있다.
기후위기는 이제 지정학적 문제와도 연결되고 있다. 동해에서 명태가 사라지면서 현재 우리가 소비하는 명태와 명란 대부분은 러시아산에 의존하고 있다. 그런데 국제정세는 또 다른 문제를 만들어냈다. 미국의 대러시아 제재로 인해 미국 시장에 명란젓을 수출하는 우리 기업들은 러시아산 명태알을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결국 미국에 수출하려면, 훨씬 비싼 알래스카산 원료를 사용해야 하고, 이는 생산비 상승과 기업 경쟁력 약화로 이어진다. 기후변화가 바다의 생태계를 바꾸고, 지정학이 공급망을 흔들면서 우리의 식탁과 수출 산업이 동시에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오늘날 기후위기와 지정학은 더 이상 별개의 문제가 아니다. 하나의 위기가 다른 위기를 증폭시키며 서로 연결되고 있다.
그럼에도 세계의 일부 유력 정치인들은 여전히 기후변화를 부정하거나 과장된 문제로 치부한다. 당장의 성장률과 선거를 의식한 정치적 계산은 과학자들의 경고보다 앞서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나 자연은 정치 일정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북극의 빙하는 계속 줄어들고, 해수면은 조금씩 상승하며, 이상기후는 해마다 새로운 기록을 만들어내고 있다. 기후위기는 찬성과 반대로 선택할 수 있는 정치적 의제가 아니라 이미 우리 앞에 닥친 현실이다.
이제 기후위기는 환경정책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식량안보와 에너지안보, 공급망과 국제무역, 국가안보를 모두 아우르는 핵심 의제가 되었다. 기후정책은 곧 경제정책이며 산업정책이고 외교안보정책이다. 앞으로 국가의 경쟁력은 얼마나 빠르게 변화에 적응하고 새로운 산업을 육성하며 국제협력을 확대하느냐에 달려 있다.
올해 생일을 맞으며 문득 깨닫는다. 예전에는 달력을 보며 계절을 기억했다. 그러나 이제는 변해버린 기후가 달력을 다시 쓰고 있다. 늦어진 장마는 단순한 계절의 변덕이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가 보내는 분명한 경고다.
이제 필요한 것은 무의미한 논쟁이 아니라, 과학에 기반한 정책과 국제협력, 그리고 우리 모두의 실천이다. 늦어진 장마가 우리에게 남긴 교훈을 우리는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