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출퇴근 함께한 목소리, 성우 강희선 씨 별세
출근길 지하철과 TV 속 애니메이션에서 익숙하게 들리던 목소리가 멈췄다.
부산과 서울 지하철 안내방송, 애니메이션 ‘짱구는 못말려’의 봉미선(짱구 엄마)과 맹구 목소리로 사랑받은 성우 강희선 씨가 지난 4일 오전 2시 10분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65세.
서울 출신인 고인은 중경고와 서울예술전문대 방송연예과를 졸업했다. 배우를 꿈꿨지만 지도교수의 권유로 성우의 길에 들어섰다. 1979년 TBC 성우극회 10기로 데뷔했고, 이듬해 방송 통폐합으로 KBS 성우 15기가 됐다. 이후 KBS 성우극회장과 한국성우협회 수석 부이사장을 지내며 국내 성우계를 대표하는 목소리로 활동했다.
고인의 목소리는 세대를 넘나들었다. 첫 더빙작인 ‘빨간 머리 앤’을 시작으로 ‘베르사유의 장미’ ‘공각기동대’ ‘캡틴 플래닛’ 등 수많은 애니메이션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외화 전성기에는 샤론 스톤, 미셸 파이퍼, 줄리아 로버츠, 니콜 키드먼 등 할리우드 배우들의 한국어 더빙을 맡아 사랑받았다.
무엇보다 1996년부터는 서울 1~8호선과 부산 1~4호선 지하철 안내방송을 맡으며 시민들의 일상에 가장 익숙한 목소리로 자리했다. 음정 변화가 거의 없는 안내방송이 가장 어려운 작업이었다고 회상했던 그는 일부 노선이 기계음으로 바뀐 뒤 “사람의 정서가 없더라”며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젊은 세대에게는 짱구 엄마와 짱구 친구인 맹구 목소리로 더욱 친숙하다. "엄마는 절대 널 미워하지 않아"라는 봉미선의 목소리는 세대를 넘어 시청자들의 기억에 남았다. 시사교양 프로그램 ‘무한지대 큐!’와 ‘비타민’에서도 특유의 목소리로 활약했다.
고인은 2002년 KBS 성우연기대상 최우수외화연기상, 2005년 KBS 성우연기대상 최우수연기상, 2018년 대중문화예술상 국무총리 표창을 받았다.
2021년 대장암 간 전이로 시한부 2년을 선고받았지만 끝까지 마이크를 놓지 않았다. 47차례 항암치료를 받으면서도 짱구 극장판 녹음을 14시간 넘게 소화했고, 병실에서 지하철 안내방송을 녹음하기도 했다.
아들 안은석(독립영화 투자제작사 본필름 대표) 씨는 “항상 성우 일에 신념을 가지고 있었고 사랑하신 분이었다”고 말했다.
김동주 기자 nicedj@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