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거제 노거수 용역보고서 오류투성이…안내판도 엉터리
2024년 실태조사 용역 발주
용역사 61곳 80개체 보고서
시, 지난해 노거수 지정 고시
시민모임 실측 조사결과 딴판
제원 오류에 수종마저 엉터리
푸조·느티나무→팽나무 등재
3개체는 주소지에 존재 안해
시민모임 ‘노거수를 찾는 사람들’ 대표활동가인 박정기 씨가 거제시 둔덕면 술역리 내평숲에서 고목들 소개하고 있다. 박 씨 왼쪽이 노거수로 지정된 나무다. 안내판에는 느티나무로 표기돼 있지만 실제 수종은 팽나무다. 박 씨 오른쪽에 있는 게 느티나무다. 밑에 사진은 매끈한 수피를 가진 팽나무 줄기(왼쪽)와 각질처럼 껍질이 벗겨지는 느티나무 줄기. 일반이이 봐도 구분이 가능하다. 김민진 기자
경남 거제시가 역사·문화적 가치가 높은 노거수를 체계적으로 보호·관리하기 위해 용역비 2000여만 원을 들여 확보한 실태 자료가 오류투성이인 것으로 드러났다. 노거수 기준에 못 미치는 중·장령목을 억지로 포함하는가 하면 수종을 잘못 표기한 사례도 다수 발견됐다. 심지어 존재하지도 않는 개체를 버젓이 목록에 올린 개체도 확인됐는데, 거제시는 이를 토대로 노거수 지정 절차를 진행하고 현장에는 엉터리 안내판까지 세웠다.
7일 <부산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거제시는 2024년 10월 관내 한 산림법인에 수의계약 형태로 ‘노거수 실태 조사 및 DB 구축 용역’을 의뢰했다. 계약금액은 1942만 3000원. 용역사는 한 달 남짓 조사를 거쳐 보고서를 제출했고, 거제시는 이를 토대로 이듬해 4월 총 61곳, 80개체를 노거수로 지정 고시했다.
그러나 시민모임인 ‘노거수를 찾는 사람들’ 검증 결과, 노거수로 지정된 개체의 소재지, 수종, 본수, 수령, 흉고직경, 수고 등이 실물과 일치하는 개체는 없었다. 시민모임 실측 자료를 보면 통상 노거수는 수령 100년 이상, 가슴높이 둘레 3m 또는 직경 1m 이상 개체를 특정하는데, 최소 23개체는 이에 못 미쳤다. 나머지도 수령과 직경이 실제와 딴판이었다. 이 중 13개체는 아예 수종을 잘못 등재했다. 팽나무를 느티나무라 하거나, 푸조나무·느티나무·고로쇠나무를 팽나무로 표기하는 식이다. 수목도감에 수록된 정명(공식 명칭)인 곰솔 대신 이명인 해송으로 표기한 개체도 7개 있었다.
거제시 둔덕면 술역리 내평숲 노거수. 세 그루 모두 느티나무로 안내돼 있지만 실제 수종은 팽나무다. 김민진 기자
설상가상 지정번호 1, 1-1호가 부여된 일운명 망치리의 수령 180년, 90년 느티나무 두 그루와 지정번호 2호인 일운면 구조라리의 수령 200년 팽나무 한 그루는 ‘부존재’로 확인됐다. 이미 사라졌거나 처음부터 없었던 나무를 마치 있는 것처럼 속였다는 것이다. 여기에 학계나 행정에선 노거수 제원을 수고(높이), 수관(가지나 잎이 무성한 부분) 폭, 가슴높이 둘레로 특정하는데 정작 수관 폭은 배제하고 둘레를 직경으로 표시한 탓에 DB구축 자료 가치 역시 사실상 없다는 게 시민모임 주장이다.
그럼에도 거제시는 이 보고서를 근거로 80개체 모두에 노거수 지위를 부여하고, 29곳에는 추가 예산 2051만 원으로 엉터리 정보를 새긴 안내판까지 설치했다. 수령 140~180년 고목 세 그루가 노거수로 지정된 술역리 내평숲 나무의 경우, 안내판은 느티나무라 소개하고 있지만 실제 수종은 팽나무였다. 진짜 느티나무는 바로 옆에 뿌리내리고 있다.
거제 출신으로 시민모임을 이끌고 있는 대표활동가 박정기 씨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언성을 높였다. 노거수는 마을을 기반으로 하는 생활권 수목으로 대다수가 이미 알려져 있고 접근성도 좋아 조사가 쉬운 데다, 대표 수종인 팽나무와 느티나무는 줄기와 잎 모양부터 판이해 비전문가도 구분이 가능한 데도 이 같은 오류가 발생했다는 건 조사 자체가 부실했다는 방증이라는 것이다.
시민모임 ‘노거수를 찾는 사람들’ 대표활동가인 박정기 씨가 거제시 둔덕면 술역리 내평숲에서 노거수로 지정된 고목들 소개하고 있다. 김민진 기자
박 씨는 “2년 전 조사라는 점을 고려해도 현실과 간극이 너무 크다. 터무니없이 작은 개체는 억지로 욱여넣고 정작 가치 있는 개체는 빠지는 등 명확한 기준도 없다”면서 “착오가 아닌 조사 실적을 부풀리기 위한 꼼수로 보인다. 수치는 차치하더라도 근처에도 없는 나무를 있는 것처럼 특정한 부존재 사례나 수종 오류는 전문 용역 보고서에선 결코 용납될 수 없는 문제”라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거제시와 용역사는 일부 오류와 오차가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단순 실수라고 해명했다. 거제시는 “당시 용역은 시 전역을 대상으로 규격에 맞는 수목을 전수 조사하거나 발굴하는 게 아니라 기존에 관리하던 노거수 자료를 보완하려는 조처였다”면서 “특히, 부존재 개체는 담당과에서 관리하던 내부 자료와 실제 GPS 좌표를 매치하는 과정에 발생한 문제”라고 설명했다. 용역사 역시 “지번 범위가 넓다 보니 생긴 오류”라고 했다. 그러면서 “현재 재조사를 진행 중이다. 고시 내용과 비교해 잘못된 부분은 보완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