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친절은 강자의 덕목이다

권상국 기자 ks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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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대건 ‘사람 얻는 일’이 가장 중요
전 시장 측근 중용한 민선 9기 첫 인사
전재수 시장이 강조한 친절의 첫 결실
임기 내내 사람 얻는 시정으로 이어지길

〈초한지〉와 〈삼국지〉는 중국을 대표하는 양대 고전이다.

그러나 마니아라면 두 작품이 주는 울림이 완전히 다르다는 걸 안다. 〈삼국지〉가 영웅호걸들이 펼치는 무용담을 담았다면 〈초한지〉는 사람을 얻고 사람을 잃는 처세를 담았다. 전란 속에서 인간군상이 선택하고, 배신하고, 인내하고, 결단하는 생존의 기록인 셈이다.

〈초한지〉에서 가장 극명하게 대비되는 인물은 단연 한고조 유방과 서초패왕 항우다. ‘힘으로 산을 뽑고, 기운이 세상을 덮었다’는 천하의 명장이 바로 항우다. 항우는 유방과 7번을 싸워 7번을 내리 이겼다.

그때마다 유방은 질그릇처럼 깨지며 도망치기를 바빴다. 달아나는 수레의 무게를 줄이려 자식마저 내던졌다는 기록도 남아 있으니 그 궁색함이야 오죽했을까. 누가 봐도 천하의 주인은 항우였다.

그러나 항우를 무너뜨린 것은 유방의 칼도 아니고 하늘의 뜻도 아니었다. 결국 사람이었다.

항우는 충신 범증의 조언을 고깝게 여기고, 피붙이가 아닌 장수를 믿지 않았다. 공을 세운 신하에게 봉지 내려주기를 아까워 해 ‘도장 모서리가 닳도록 만지작 거렸다’고 했다. 뛰어난 신하는 하나둘 곁을 떠난 것은 당연지사. ‘한삼걸’ 중 하나인 한신도 벼슬은 항우 밑에서 시작했지만 결국 유방의 품에 안겼다.

유방의 사람 씀씀이가 그사이 빛을 발했다. 전쟁은 한신을 믿었고, 행정은 소하에게 일임했으며, 외교는 장량에게 의지했다. 자신보다 뛰어난 사람을 곁에 두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공은 함께 나누고, 사람은 끝까지 붙잡았다. 유방이 일곱 번을 내리 지고도 결국 천하를 얻을 수 있었던 이유다.

최근 전재수 부산시장이 꺼낸 ‘친절’이란 화두가 관가에서 화제다. 전 시장은 자리마다 “친절한 직원을 추천해 달라” “친절은 여유에서 나오고, 유능함에서 나온다”며 거듭 친절을 강조하고 있다.

오거돈 전 시장은 2018년까지 무소속 신분을 유지하다 부산시장 선거 전 민주당에 입당했다. 따지고 보면 사실상 부산의 첫 민주당 시장은 전 시장이다. 그랬던 그의 입에서 나온 첫 단어는 ‘파격’이나 ‘쇄신’ ‘구습 타파’가 아니었다. 뜻밖의 ‘친절’이었다. 공무원 조직의 경계심을 달래고 오 전 시장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영리한 처신이라는 반응이 부산시 안팎에서 나온다.

물론 초나라 귀족 출신 항우도 아픈 부하를 만나면 눈물을 흘릴 만큼 정이 깊었다고 한다. 개인에게는 크나큰 장점일 수 있지만, 조직을 이끄는 리더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 성정이다.

조직 전체를 책임지는 리더에게 친절함이란 다른 문제다. 사람 하나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과 조직 전체를 살리는 판단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 사람의 정과 공적인 결단은 자주 충돌한다.

새 시정이 출범하는 과정에서 전임 시장의 주요 공약을 전담했던 부서의 개편은 불가피하다. 주요 부서장의 교체 역시 어쩔 수 없는 인사의 과정이다. 그러나 전 시장은 지난 3일 첫 고위 간부 인사에서 박형준 전 시장의 비서실장을 파격적으로 승진자 명단에 넣었다. 당사자의 평판과 능력을 감안한 조처라고 했다. 적지 않은 상징성을 갖는 인선이다. 전 시장이 강조한 친절함이 필부의 친절함뿐 아니라 리더의 친절함까지 포함하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장이 바뀌면 사람부터 갈아치우는 게 일상화된 관가의 풍경이다. 내 편과 네 편을 가르고, 전임의 흔적을 지우는 것이 공식처럼 여겨졌다. 그러니 출신과 과거를 따지지 않고 사람을 두루 품고 일하겠다는 메시지는 강자의 친절함이라 할만하다.

특히나 민선 9기로 넘어오며 부산시는 대대적인 조직개편을 앞두고 있다. 개편의 강도나 방향을 놓고 조직 내 술렁임이 상당하다. 첫 인사에서 보인 그 친절한 리더십이 이 술렁임을 잠재우고 보다 안정감 있게 시정을 끌어갈 원동력이 될 것임은 자명한 일이다.

고전이 고전으로 남는 이유는 시대가 달라져도 그 울림이 계속되는 까닭이다. 200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지만 인간과 조직의 본질이 변하지 않았다. 사람을 얻고 마음을 얻는 자가 성공한다는 진리는 여전히 유효하다. 항우의 실패도, 유방의 성공도 결국 사람에게서 비롯됐다.

민선 9기의 성패가 전 시장이 강조한 친절에 달린 이유도 여기 있다. 친절이 구호에 그치지 않아야 한다. 시장의 태도가 되고 인사의 원칙이 돼야 한다.

친절함이 부산시의 운영 철학이 된다면, 그래서 그 첫 마음가짐이 내내 이어진다면 그건 속된 이미지 관리가 아니다. 사람을 얻는 시정이다.

권상국 사회부 부장 ksk@busan.com


권상국 기자 ks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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