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시장 부탁도 거절하라'는 주문
권승혁 사회2부 차장
“제가 하고 싶은 일이라도, 틀렸으면 틀렸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최근 울산시 싱크탱크인 울산연구원의 인수위원회 업무보고에서 김상욱 울산시장이 꺼낸 이 한마디는 여러 발언 가운데 가장 도드라졌다.
원론적 발언이지만 맥락을 짚어보면 뼈가 있다. 울산연구원은 그간 부울경 메가시티 같은 현안을 놓고 단체장 입맛에 맞춰 용역 결과를 내놓으며 시정의 거수기로 전락했다는 눈총을 받았다. 원장 스스로 “박사 위에 주사(6급 공무원의 옛 호칭) 있다”며 자조할 만큼 공무원 눈치를 보는 연구기관에 단체장이 먼저 독립성을 약속한 것이다.
“저를 포함해 누가 특정인을 채용해 달라고 부탁하더라도 무시하십시오.” 상시 채용 탓에 잡음이 잦았던 울산시설공단 보고에서도 비슷한 주문이 이어졌다. 산하·출연기관 채용 의혹이 수사로 이어진 전례가 숱하고, 온정주의로 포장된 청탁은 관가의 고질병이었다. 일부 시민들 사이에서는 채용 공고를 봐도 ‘어차피 내정자가 있을 것’이라는 냉소가 적지 않았다. 인사권의 정점에 선 단체장이 공개 석상에서 먼저 선을 그은 셈이다.
2028 국제정원박람회 추진단을 향한 쓴소리도 같은 결이다. “이 박람회의 핵심이 무엇인지 시민에게 한마디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2000억 원대 예산이 투입되지만, 정작 상당수 시민은 행사의 실체를 체감하지 못한다. 옛 쓰레기매립장인 박람회장 예정지를 찾은 김 시장이 “꽃을 아무리 심어도 악취가 나면 망신”이라고 꼬집은 것도 이 때문이다. 한 문장으로 요약하지 못하는 것은 기획이 그만큼 설익었다는 방증이다.
이 세 발언은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 앞선 두 발언이 권력 절제라는 ‘원칙’이라면, 마지막은 행정의 본질을 묻는 ‘실용’이다. 물론 취임 초 공정과 소신을 앞세우지 않은 시정은 여태 없었다. 결국 차이는 실천에서 갈린다. 울산연구원이 시장 뜻과 어긋난 결론을 내놓았을 때 그것을 감내하는지, 선거 직후 밀려들 논공행상의 압력 앞에서 다짐을 지키는지, '한 문장 요약'의 잣대를 재검토에 착수한 공연장·트램 사업에도 예외 없이 들이대는지가 그 시금석이다. 시민은 화려한 말보다 반복되는 행동을 기억한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김 시장에게 전체 22석 중 15석을 국민의힘이 차지한 울산시의회와의 협치는 피할 수 없는 험난한 과제다. 야당 시의원 상당수의 취임식 불참은 앞으로 펼쳐질 가시밭길의 예고편에 불과하다. 원칙을 지키면서도 유연한 협치의 기술이 절실한 시점이다.
공직사회 역시 시장의 표정이 아니라 원칙에 공감해 스스로 움직이도록 이끌어야 한다. 말로는 소신을 강조한 채 공약과 결이 다른 보고에 불쾌감부터 드러낸다면, 주변은 금세 ‘예스맨’으로 채워지고 시정의 사각지대는 더욱 커질 것이다.
민선 9기 김상욱호의 성패는 거창한 비전에 있지 않다. 쓴소리에 귀를 열고, 내 사람을 심지 않으며, 시민이 단번에 고개를 끄덕일 정책의 본질을 내놓는 것. 김 시장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시민 주권’의 실체도 결국 거기에서 드러날 것이다.
권승혁 기자 gsh0905@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