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중소 건설사 ‘수의계약 미끼’ 보이스피싱 극성
공공기관 사칭 미팅 일정 잡고
유령 업체 통해 견적 요청 전화
도시공사 등 앞다퉈 주의 공지
업계 “가뜩이나 힘든데” 울화통
지난달 부산 A 건설업체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낙동강관리본부 직원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뒤 “수의계약 관련 협의할 것이 있으니 본부로 방문해 달라”고 했다. 그런 뒤 일주일이 지나 다시 연락이 왔고, 미팅 일정을 잡았다. 미팅 날짜 3일 전, 담당자는 “낙동강관리본부에서 심장제세동기(AED) 60대가 긴급히 필요하지만 조달청 등록 단가가 높아 예산 집행이 어렵다”며 특정 업체를 통해 견적을 받아줄 수 있는지 요청했다. 해당업체 대표 명함도 전달했다. 대리구매를 해주면 추후 대금을 지급하겠다고 했는데, 업체에 확인한 결과 모두 8400만 원의 견적이 나왔다. 송금만 남은 시점, 이상한 낌새를 느낀 직원이 최초 연락처로 다시 연락한 결과, 보이스피싱 관련 이용 정지 번호라는 안내가 나왔다.
건설경기 침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역 중소 건설업체들을 대상으로 한 보이스피싱 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업체들은 가뜩이나 힘든 상황에서 ‘수의계약’이라는 달콤한 단어를 앞세운 사기까지 기승을 부리고 있다며 울분을 터뜨렸다. 부산경찰청과 부산전문건설협회, 부산도시공사와 같은 공공기관들도 앞다퉈 ‘계약 사칭 주의’ 표지판을 건물 입구에 세우거나 홍보 유의물을 만들어 “공공기관은 선입금을 요청하지 않습니다”고 알리고 있지만 사기 범행은 계속되고 있다.
6일 대한전문건설협회 부산시회는 “기존 공사 정보를 갖고 접근해 기관 담당자 사칭을 하며 추가공사를 요구하는 수법이 많고 최근에도 계속 피해 사례들이 접수되고 있다”면서 “반드시 해당 발주기관의 공식 대표전화 또는 계약 담당 부서를 통해 사실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최근 부산도시공사로 확인 요청이 온 직원 명함과 긴급입찰 관련 공문을 공사가 따져본 결과, AI로 만들어진 위조 명함과 공문으로 확인됐다. 존재하지도 않는 직원 이름이 도시공사 로고가 박힌 명함에 적혀 있고, 공문에는 도시공사 사장 직인도 찍혀 있었다. 모두 가짜로 확인됐다.
수천만 원이 이체되는 피해 사례들도 속속 접수되고 있다. 부산경찰청에 따르면, 방수공사업체를 운영하는 B 씨에게 부산 모 공단 시설팀장이라며, 방수 공사를 의뢰하고 싶으니 현장답사를 와달라는 연락이 왔고 명함도 전달됐다. 현장답사 예정일 전날, 가짜 시설팀장은 휴대용 가스감지기를 대리 구매해주면 대금을 지급하겠다고 했다. 결국 범인들이 소개한 업체에서 알려준 계좌로 7150만 원이 이체되는 피해가 발생했다.
건설업체를 운영하는 피해자 C 씨에게도 부산 모 학교 주무관이라며 연락이 와 학교 공사를 위한 미팅을 하고 견적을 내자고 했다. 그 후 다시 연락이 와 소방점검으로 질식소화포 구입이 급하니 교육청 납품업체로 연락해 더 싸게 대리구매 해주면 이후 비용처리 해주겠다고 했다. C 씨는 주무관이 소개해 준 업체에서 알려준 계좌로 9200만 원을 이체했다.
최근에는 취약계층 폭염대비물품을 공급해야 한다며 대리구매를 요청하는 등 수법이 더 다양해지고 있다. 피해 사례가 늘며 법무법인으로의 소송 문의도 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부산경찰청 관계자는 "사기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단체·대량 주문시 반드시 예약금이나 선입금을 요청하고, 신분과 연락처는 해당기관의 공식 전화번호로 직접 확인할 필요가 있다"면서 "공공기관은 절대 대리구매를 요구하지 않으므로 대리구매 요청은 단호히 거절하고, 비대면은 모든 게 가짜일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이현정 기자 yourfoot@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