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로 채워진 도시, 사람 사는 향기는 어디로…

박석호 기자 psh21@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부산연구원 부산학연구센터 <부산의 아파트> 발간
부산 아파트의 등장→확산→진화 과정 면밀히 추적
아파트 중심 주거 형태, 부산 시민 삶에 명암 드리워
지속가능한 시나리오 '부산형 아파트' 등 대안 제시


황령산에서 내려다 본 부산 아파트 전경. 이인미 작가 제공 황령산에서 내려다 본 부산 아파트 전경. 이인미 작가 제공

부산시가 2003년 ‘부산다운 건축상’을 제정한 후 그동안 18개 아파트 단지가 이 상을 받았다. 수상작들의 공통점은 당대 최고 높이를 다시 쓴 초고층 아파트나 해변의 조망이 양호한 아파트라는 점이다. 아파트 높이나 입지 등을 놓고 ‘부산다운 건축’을 선정했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부산연구원 부산학연구센터는 지난해 부산 시민의 삶과 역사에 큰 영향을 끼친 주제를 선정해 ‘2025 부산학 교양총서’ 3권을 발간했다. 이 가운데 <부산의 아파트: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은 아파트라는 주거 형태를 통해 부산 시민의 정체성을 파헤쳐 주목받고 있다.

부산은 개항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근대 도시로 발전했다. 한국전쟁으로 귀환 동포와 피란민이 부산으로 밀려 들어 산자락 경사지까지 판잣집이 빼곡하게 들어섰다. 무허가 불량주택 정비를 앞세워 저층 아파트 공급이 시작되었고 서서히 늘어난 아파트는 부산의 도시 공간 대부분을 채우고 있다. 산이 많고 주택용지가 부족한 부산에서는 주택의 고밀화가 가능한 아파트가 새로운 주택 유형으로 빠르게 자리 잡을 수밖에 없었다.

부산 최초의 아파트로 불렸던 중구 남포동의 '청풍장'. 부산일보DB 부산 최초의 아파트로 불렸던 중구 남포동의 '청풍장'. 부산일보DB

부산 최초의 아파트는 어디일까. 1941년 건립된 중구 남포동의 ‘청풍장’이다. 조선도시경영회사 직원 가족용 주택으로 3층(이후 4층으로 증축)에 18세대가 거주했다.

그런데 시대에 따라 관련법규가 바뀌면서 ‘정답’도 달라졌다. 1960년대 법규에 따르면 부산 최초의 아파트는 1960년 11월(사용검사일 기준) 들어선 중구 창선동의 ‘신창아파트’이다. 4층에 24세대가 들어왔다. 2010년 5월 골조를 제외한 내·외부를 리모델링해 1~2층은 상가로, 그 외는 주거로 사용한다.

현재의 법규를 적용하면 부산 최초 아파트는 1967년 건설된 중구 신창동의 ‘신생아파트’이다. 6층 건물에 29세대가 살았다. 주택으로 쓰는 층수가 5개 층 이상이어야 아파트로 정의되기 때문이다.

부산은 늘어나는 인구를 수용하기 위해 주택을 빨리 짓는 것은 목표로 부산시, 부산주택사업소, 대한주택공사와 같은 공공부문이 주도해 공동주택을 공급했다. 부산시가 시행한 첫 토지구획정리사업은 초읍연지지구(1963년 ~1969년)로, 여기에는 연지시영아파트(404세대) 등이 들어서 공공 아파트 시대를 열었다.

1960년대 후반부터는 고지대에 대규모 아파트를 건설하는 붐이 일었다. 중구 보수·신창·영주동, 동구 초량·수정·좌천·범일동, 부산진구 범천동 일대가 대상이었다. 단위 세대당 공급면적은 12평(전용 8평)이었다. 특징은 거실 공간이 발달하지 않았고, 채광·통풍을 위해 부엌이 남향인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1970~1980년대에는 10층 이상의 중층 아파트가 등장하기 시작했고 민간 건설업체가 주도한 아파트들이 하나둘씩 들어섰다. 1990년대부터는 해운대신시가지(1997년)를 필두로 화명·명지·정관신도시 등이 조성되고, 노후 주거지 재개발 사업이 진행되면서 대단지 아파트들이 본격적으로 지어졌다.

2000년대부터는 초고층화·고급화·대형화되기 시작한다. 부산 최초의 50층 이상 아파트는 2005년 건설된 해운대구 센텀시티의 더샵센텀아파트다. 2019년 건설된 해운대구 엘시티더샵은 85층으로 현재 부산에서 가장 높은 아파트이다.

2023년 기준 부산의 주택 132만 9355호 가운데 아파트는 92만 155호로 70%를 차지한다. 부산의 아파트는 해운대구에 가장 많이 있으며 다음으로 서면 일대의 부산진구, 화명신도시가 조성된 북구, 가락타운이 있는 사하구에 많이 분포한다.

부산학연구센터 측은 “원도심이나 수영강, 황령산 일대 등 여러 각도에서 바라보는 아파트는 자연 또는 주변의 거주지와 조화를 이루기 보다는 아파트 단위의 개체적인 존재일 뿐”이라며 “표준화·획일화된 아파트는 부산을 ‘익명의 도시’로 만들고, 부산 사람의 기질마저 움츠러들게 한다. 아파트가 부산의 자연과 얼굴을 가린다”고 비판했다.

부산 남구와 수영구 일대 아파트. 김종진 기자 kjj1761@ 부산 남구와 수영구 일대 아파트. 김종진 기자 kjj1761@

부산이 아파트로 채워지는 동안 삶의 기억들이 점철된 마당, 골목길, 작은 텃밭 사이로 드러나던 사람 사는 향기와 이웃은 뭉개지고 지워졌다고 저자는 아쉬워한다. 초고층 아파트의 미래에 대한 고민도 담았다. 현재의 50층 아파트가 사회적 수명을 다하는 30년 후에 철거하고 100층 아파트를 건설하는 것은 기술적·사업적으로나 법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단언한다.

그러면서 부산의 지속가능한 주거 형식으로 3개의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먼저 공공이 나서 재개발 가능한 산복도로변 부지를 선정해 공공재 차원에서 구조체를 제공하고 민간투자로 마감 등의 건축공사를 하는 ‘부산형 아파트’이다.

또 적은 비용으로 노후 주거지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리사이클링이 가능한 친환경 ‘저렴주택’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령화와 1인 가구 증가 등 사회적 급변을 완화할 수 있도록 소모적인 복지비 지원 보다는 리모델링에 공적 자금을 투입해야 한다고 했다.

이 책은 3개 부분으로 구성됐다. 1부에는 부산 아파트의 등장과 확산, 그리고 고밀화·거대화되는 과정을 추적했다. 2부에서는 아파트 생활문화의 변화, 아파트 확산이 부산 시민의 삶에 끼친 명암 그리고 부산 아파트의 미래를 전망했다. 1부와 2부 사이에는 부산을 기반으로 오랜 기간 도심 풍경을 기록해온 사진 작가 이인미가 20여 년간 촬영한 부산 아파트의 다양한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다.


박석호 기자 psh21@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

    • 강원일보
    • 경남신문
    • 경인일보
    • 광주일보
    • 대전일보
    • 매일신문
    • 전북일보
    • 제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