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왕사남’ 흥행에… 울산 엄흥도 비석 재조명

권승혁 기자 gsh0905@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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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인기에 원강서원비 관심 커져
목숨 걸고 단종 시신 거둔 충절과
그 후손들 200년 은둔사 고스란히
주민 재산권 문제로 이전 논란도
역사 관광자원화 등 상생 해법 논의

1994년 온산국가산업단지 조성으로 인해 울산 울주군 삼동면 하작마을로 이전된 원강서원의 전경. 500년 전 단종을 지킨 엄흥도의 정신이 깃든 이곳은 최근 보존 가치와 주민 재산권 보호라는 갈등 사이에서 새로운 상생의 해법을 찾고 있다. 권승혁 기자 1994년 온산국가산업단지 조성으로 인해 울산 울주군 삼동면 하작마을로 이전된 원강서원의 전경. 500년 전 단종을 지킨 엄흥도의 정신이 깃든 이곳은 최근 보존 가치와 주민 재산권 보호라는 갈등 사이에서 새로운 상생의 해법을 찾고 있다. 권승혁 기자

울산 울주군 삼동면 원강서원에 나란히 서 있는 비석. 앞쪽 비석 상단에 엄흥도의 관직과 충절을 기리는 문구가 선명히 새겨져 있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흥행으로 이 기구한 역사의 흔적을 찾는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권승혁 기자 울산 울주군 삼동면 원강서원에 나란히 서 있는 비석. 앞쪽 비석 상단에 엄흥도의 관직과 충절을 기리는 문구가 선명히 새겨져 있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흥행으로 이 기구한 역사의 흔적을 찾는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권승혁 기자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속 실제 주인공인 엄흥도를 기리는 울산의 문화유산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그간 주민 재산권 제한 문제로 갈등의 중심에 섰던 ‘엄공 원강서원비’가 영화의 인기를 계기로 보존과 활용의 가치를 재평가받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23일 울산 울주군 삼동면 둔기리 하작마을 안쪽에는 산을 등지고 선 고즈넉한 건물 한 채가 있다. 바로 엄흥도의 충절을 기리는 ‘원강서원’과 울산시 문화유산자료 ‘증공조참판 엄공 원강서원비’다. 엄흥도는 세조의 서슬 퍼런 감시 속에서도 목숨을 걸고 단종의 시신을 거둔 인물이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에서 배우 유해진이 열연한 바로 그 주인공의 흔적이 이곳 울산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이다.

원강서원비는 사후 공조참판에 증직된 그를 기리고자 순조 20년인 1820년에 세워졌다. 비문은 홍문관 제학 조진관이 짓고, 이조판서 이조원과 동부승지 이익회 등 당대 최고 명필들이 참여해 가치를 더했다. 강화도에서 뱃길로 옮겨온 최상급 석재로 제작된 비석은 높이 212cm 규모로, 지붕돌을 갖춘 당당한 위용을 자랑한다. 엄흥도의 충절과 함께 절의를 숭상하는 조선 후기 사회의 일면이 울산에서도 그대로 나타남을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사료다.

엄흥도의 후손들은 세조의 보복을 피해 성(姓)까지 숨긴 채 충남 공주와 경북 예천 등을 거쳐 울산 언양의 깊은 골짜기로 스며들었다. 이들의 고단한 은둔 생활은 단종이 복위되고 엄흥도의 공훈이 인정받기까지 200여 년간 계속됐다.

기구한 사연은 현대까지 이어졌다. 원강서원비는 본래 울주군 온산읍 대정리에 있었으나 1994년 온산국가산업단지가 들어서면서 현재의 위치로 쫓기듯 옮겨왔다. 하지만 새 정착지에서도 환영받지 못했다. 문화유산 주변 500m 이내가 역사문화환경보존지역으로 묶이면서 건축 제한 등 주민들의 재산권 침해 불만이 빗발쳤기 때문이다. 지난해에는 비석을 울산박물관으로 이전해달라는 집단 민원까지 제기되며 갈등은 정점에 달했다.

그러나 최근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메가 히트로 분위기가 반전되고 있다. 단종의 유배지였던 강원도 영월이 ‘영화 특수’로 관광객이 폭증하는 것을 본 지역사회에서, 울산의 원강서원비 역시 훌륭한 역사 콘텐츠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영월엄씨 문중은 선조의 묘소와 함께 있는 현재 위치를 고수하고 있으나, 일각에서는 울산박물관 이전 등을 통해 주민 민원을 해결하고 동시에 체계적인 관광 자원화를 추진하는 ‘윈윈(Win-Win)’ 전략이 필요하다는 제언도 나온다.

엄주홍 영월엄씨 울산종중 회장은 “서원과 비석, 그리고 그 뒤편에 모셔진 엄흥도의 장남 묘소는 떼려야 뗄 수 없는 하나의 역사적 공간”이라며 “단순히 민원 해결을 위해 비석만 박물관으로 옮기는 것은 문화유산의 본질을 훼손하는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엄 회장은 이어 “1994년 온산에서 이전해올 당시에도 문중의 큰 결단이 있었고, 커다란 비석을 다시 옮기는 것은 현실적으로도 막대한 예산과 노력이 드는 어려운 작업”이라며 “박물관 이전 논의보다는 주민 재산권과 보존 가치가 공생할 수 있는 행정적 대안을 먼저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승혁 기자 gsh0905@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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