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권, 첨단산업 없는 전력 생산기지 전락 ‘비상’
‘1800조 투자’ 관건 전력 확보
부산·울산에 추가 원전 가능성
원전·제조업 기반 갖춘 동남권
AI 시대 새 산업 지도 그려야
호남권 반도체 클러스터 추진과 맞물려 신규 원전 필요성이 제기된다. 부산 기장군의 한 마을에서 바라본 고리원전. 김종진 기자 kjj1761@
정부와 대기업이 추진하는 1800조 원 규모 반도체·인공지능(AI) 산업 투자에서 전력이 핵심 인프라로 떠오르면서, 기존 원전 밀집 지역인 동남권은 첨단산업 없는 전력 생산 기지로 전락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추가 원전 건설 가능성이 커진 상황에서 원전 인프라와 제조업 기반을 갖춘 동남권이 AI 시대 새로운 산업 지도를 그려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질 전망이다.
1일 기후에너지환경부에 따르면 기후부는 이르면 오는 10월께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2026~2040년, 이하 전기본)을 발표한다. 정부가 ‘3대 메가 프로젝트’ 발표에서 밝힌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와 호남권 반도체 단지, AI 데이터센터 구축 계획을 고려하면 12차 전기본에는 ‘최소 대형원전 2기 이상+소형모듈원전(SMR)’ 반영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기후부 관계자는 “(3대 메가프로젝트로) 신규 원전 필요성이 커진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앞서 정부는 ‘3대 메가 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서 호남권 반도체 클러스터에 팹 4기를 짓는 데 6.3GW(기가와트) 전기가 필요하다고 밝혔지만, 적기 공급 원칙 외에 세부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6.3GW는 대형 원자력발전소 4.5기 설비용량과 맞먹는 규모다. 삼성과 SK가 계획하는 반도체 산업단지와 AI 데이터센터를 모두 구축하려면 2040년까지 27.7GW 전력 설비가 더 필요하다는 분석도 나왔다.
한국수력원자력에 따르면 현재 국내 운영 중인 원전 26기의 발전 용량은 26GW 규모다. 이중 부산 고리원전에는 5기가, 울산 새울원전에는 2기가 운영 중이다. 울산에는 새울 3·4호기가 건설 중이고, 최근 부산 기장군에는 국내 첫 SMR 1기를 짓기로 결정됐다.
문제는 추가 원전을 지을 경우 전남 영광 한빛원전 주변에 신규 대형원전을 추가로 건설하거나 기존 원전이 있는 부산·울산·경북 지역에 SMR을 더 지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정부는 호남권 반도체 클러스터 전력 공급 방안으로 재생에너지를 들지만, 반도체 생산설비는 0.01초만 전력 공급이 끊겨도 모든 공정이 멈추고 막대한 손실이 발생하기 때문에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이 문제가 된다.
그러나 정부와 삼성전자·SK가 공개한 반도체·AI 산업 투자 계획에서 동남권에 대한 언급은 반도체 소부장 단지와 전력반도체 공공팹, 울산에 SK가 이미 건설 중인 1GW 규모의 데이터센터 1기에 그친다. 피지컬 AI 실증단지로 언급된 대경권과 비교해도 구체적인 투자 규모나 로드맵조차 없다. 전력이 있는 곳에 생산이 있다는 원칙과도 어긋날 뿐 아니라 균형성장 전략과도 배치된다는 불만이 나온다.
부산 상공계 관계자는 “부산은 HMM 등 해운 대기업 이전이 결정되면서 해양수도 중심의 지원 정책이 추진되고 있다고 하지만, 반도체나 AI 투자에서 동남권이 소외되다 보니 첨단산업 유치나 일자리 창출을 기대한 지역에서는 실망감이 클 수밖에 없다”면서 “전재수 부산시장 취임으로 새로운 시정이 출범한 만큼 AI 시대에 걸맞은 미래 먹거리를 가져와야 한다는 기대감이 있다”고 말했다.
전 시장 인수위가 전날 발표한 AI 관련 핵심 공약을 보면 △부산(신항7부두)-아랍에미리트(UAE) AI 항만물류 공동프로젝트 △서부산 제조 AX(인공지능 전환) 산업벨트 구축 △해양 AI 대전환 클러스터(국방, 항만, 조선, 문화 AI 산업 생태계 조성)이 포함돼 있다.
이와 관련해 전 시장은 이날 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해양수도 부산을 위해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도록 R&D(연구개발)부터 실증을 거쳐서 상용화되는 그런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면서 “수도권과 대등하게 경쟁할 수 있는 새로운 성장 엔진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원전과 가까운 곳에 AI 데이터센터 등 첨단산업을 우선 배치하거나 원전 주변에 입주하는 기업에 대해 산업용 전기요금을 할인해주는 지역별 전기요금 차등제 도입에도 속도를 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와 함께 행정통합과 맞물려 부산뿐 아니라 울산, 경남과 공동으로 새로운 미래 산업 지도를 구상해야 할 필요성도 커졌다.
최혜규 기자 iwill@busan.com , 송현수 기자 songh@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