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열리고 대륙 뚫린다”… ‘부산발 해양수도’ 구상 본격화 [부산은 열려 있다]

이호진 기자 jin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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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경제 : 항구에서 플랫폼으로

⑤ 해양수도와 바닷길 확장

미·러·북 등 관계 정상화 되고
신공항 완공 땐 항구·철도·항만
명실상부한 ‘트라이포트’ 완성
부산, 해양수도권 도시의 중심
동남권 함께 북극항로 시대 개막

열린 부산의 상징이자 최고 인프라인 부산항. 신항 4부두 상공에서 바라본 윗쪽 부두 뒤로 진해신항이 건설돼 북극항로 시대의 물동량을 감당하게 된다. 부산항만공사 제공 열린 부산의 상징이자 최고 인프라인 부산항. 신항 4부두 상공에서 바라본 윗쪽 부두 뒤로 진해신항이 건설돼 북극항로 시대의 물동량을 감당하게 된다. 부산항만공사 제공

부산이 태생적으로 열린 도시일 수 있었던 이유는 바다와 항구에 있다. 임진왜란 이후 통신사를 일본에 보낸 영가대가 부산진성에 복원돼 있고, 지금으로부터 딱 150년 전 근대 개항에 이르렀다. 일제 강점기 수탈과 침략의 교두보였던 부산항은 한국전쟁 시기에는 보급로이자 피란수도의 마지막 생명선이었고, 산업화 시기 무역입국의 상징으로 급성장했다. 부산항발전협의회 박인호 공동대표는 한국이 일군 경제 성장을 일컫는 ‘한강의 기적’을 ‘부산항의 기적’으로 바꿔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조선시대부터 국제 무역항인 부산항은 필연적으로 다른 나라와의 거래·교류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게 했고, 피란수도 1000일 동안은 팔도 피란민이 옹기종기 모여 문화의 용광로를 이뤘다.

부산의 개방성은 북극항로 시대를 맞아 더 빛을 발할 기회를 맞았다. 부산항이 북극항로 거점항으로 자리잡으면 물류·조선·해양기자재 등 연관 산업도 성장하고, 다국적 인력과 자본 유입이 기대된다. 남방항로 거점 싱가포르 사례가 이런 변화상의 사례다. 지금도 아시아에서 미주로 향하는 항로의 마지막 거점항으로서 지위가 확고한데, 북극항로가 열리면 유럽 항로의 마지막 거점항이 될 수 있다.

부산시가 지난해 발주한 ‘북극항로 거점 도시 연구용역’ 책임자인 동아대 정성문 교수는 “대한민국과 부산에게 4가지 지정학적 기회가 찾아오고 있다”고 말한다. 그가 일컫는 4가지 기회는 한반도 평화시대, 신북방·남방 경제권의 가교역, 동북아 에너지 허브(남북러 천연가스관), 동북아 물류 허브(북극항로)를 말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야 하지만, 미국과 러시아·북한 사이 관계가 정상화된다면 남북 육상 교통로와 가스관 연결이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이미 서울~평양~베이징 고속철도 논의가 한중 정상회담에서 다뤄지기도 했다. 이렇게 되면 철도로 한반도 등줄기를 타고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가서 시베리아횡단철도(TSR)로 유럽을 향할 수도 있고, 부산~서울~베이징 경로로도 유럽을 향할 수 있다. 가덕신공항까지 들어서면 항구와 철도, 항만이 연결되는 명실상부한 트라이포트가 완성되는 것이다.

정 교수는 북극항로 시대에 대비하려면 부울경이 화물만 거쳐가는 환적지가 아니라 기술과 금융, 산업, 문화가 융합된 복합 네트워크의 중심이자 글로벌 공급망의 중요 거점이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물건만 스쳐가는 것이 아니라, 머무르고 재생산되고, 자본과 지식이 축적돼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곳이 돼야 한다는 의미다.

정 교수도 말하지만, 부산 홀로 북극항로 시대를 끌고 갈 수 없다. 북극항로가 필요로 하는 광범위한 산업을 동남권이 분담해야 한다. 이를 위해 부산이 해양수도권 도시를 이끄는 리더십을 보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주변 지역 동반성장을 이끄는 배려의 리더십을 보일 때, 북극항로라는 외부로부터의 기회가 한반도 동남권은 물론 동북아 거점 해양 허브로 도약하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동북아 액체 화물 허브를 지향하는 울산, UN국제물류센터 유치 등 진해신항 배후단지에 융합 물류 중심지 조성을 추진하는 경남 등과 협력해야 한다. 특히 포항시는 기초자치단체로서는 드물게 최근 노르웨이 트롬쇠에서 열린 ‘2026 북극 프런티어 컨퍼런스’에 관계자 7명을 파견하는 열의를 보였다. 포항시는 이 컨퍼런스에서 메탄올, 암모니아 등 차세대 연료 공급망을 영일만항 물류 인프라와 결합해 무탄소 선박 항로(Green Corridor)를 구축하겠다는 로드맵을 제시하기도 했다. 철광석·케미컬·에너지 부문에 강점이 있는 여수·광양도 나름의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런 점에서 부산시와 해양수산부가 함께 동남권 지자체 사이의 역할 분담을 협의할 협력 틀을 마련할 필요성이 대두된다. 이 틀 속에서 동남권 지자체들은 각 지역 특성에 맞는 해양특화산업단지 조성, 외국인 친화적 정주 환경 구축, 해양 인재 양성 프로그램을 구체화해야 한다. 특히 부산은 울산·경남과의 광역 협력을 통해 메가시티 차원의 경쟁력을 확보하고 중복 투자를 방지하는 거버넌스에 나서야 한다.

또 시민사회는 동남권에 구축될 해양수도권이 지속할 수 있도록 유지하는 주축이다. 부울경은 물론 여수·광양권과 포항권까지 서로의 처지와 문화를 인정하고 교류하는 주체로 나설 필요가 있다. 대학·연구기관도 인재 양성과 연구개발에서 좁은 지역의 한계를 벗어나 교류·협력할 필요가 있다.

북극항로 상업화 시점은 2030년대부터라는 것이 대체적인 예측이다. 초기 투자를 하더라도 수익을 거두는 데에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부산의 개방성이라는 역사적 자산이 북극항로라는 시대적 기회, 해양수도권이라는 정책적 비전과 맞물릴 때, 동남권과 대한민국 모두에게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수 있다고 관련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이호진 기자 jin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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