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값 최고가격 지정될까…시장왜곡·재정부담 등 부작용에 고심
대통령 지시에 정부 실무검토 착수했지만
공급기피, 구매대란 등 부작용 가능성 커
유류세 인하와 비축유 방출 등 종합 검토
국내 주유소 휘발유와 경유 가격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는 가운데 7일 인천 중구의 한 주유소 앞에 저렴한 가격의 주유소를 찾는 대형화물차량과 승용차들이 늘어 서 있다. 연합뉴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전쟁 충격으로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이 L당 1900원에 육박하자 정부가 최고가격 지정을 검토하고 나섰다.
하지만 1997년 유가 자유화 조치 이후 30년간 사실상 사문화된 비상조치인 데다 시장 왜곡과 재정 부담 등 감당해야 할 부작용이 만만치 않아 정부의 고심도 깊어지는 모양새다.
8일 정부부처에 따르면 정부가 ‘최고가격 지정제’'라는 초강수를 검토하게 된 것은 중동사태 발발후 주유소 기름값이 곧바로 수직상승했기 때문이다. 통상 국제유가가 국내 기름값에 반영되기에는 2주일 정도 시차가 있는데 이번엔 바로 반영됐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5일 “유류 공급에 심각한 차질이 빚어진 것도 아닌데 갑자기 주유소 휘발유 가격이 폭등했다”며 석유류 제품에 최고가격 지정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정부는 즉각 전면 대응에 나섰다. 범부처 합동점검단이 6일부터 불법석유 유통, 매점매석, 가짜석유·혼합판매 등 불공정 행위 집중 단속에 나섰다. 공정위는 주유소들의 가격 담합 여부를 조사하고 법무부도 유가 담합 등 시장 교란 행위에 대해 대검찰청에 대응을 지시했다. 재정경제부는 유류세 인하 여부를 검토 중이다.
이와 함께 정부는 아랍에미리트(UAE)로부터 총 600만 배럴 이상의 원유를 긴급 도입하기로 했다.
정부의 전방위적 압박에 국내 정유 4사를 회원사로 둔 대한석유협회, 석유대리점들의 단체인 한국석유유통협회, 주유소 사업자를 대표하는 한국주유소협회 등 석유 3단체는 6일 “국제 유가 인상분이 주유소 가격에 급격히 반영되지 않도록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국내 주유소 기름값 상승세는 쉽게 꺾이지 않고 있다. 특히 국제유가가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기준으로 배럴당 90달러가 넘자 앞으로 기름값 상승세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석유공사가 운영하는 오피넷에 따르면 8일 오전 10시 기준으로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은 1893원으로, 하루 전보다 4원이 더 올랐다. 오름폭은 줄어들었지만 앞으로 기름값 2000원 시대가 초읽기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이에 정부는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 사업법’을 근거로 최고가격 지정 고시를 위한 실무 검토에 착수했다. 이 조항은 석유 가격이 현저히 등락해 국민 경제의 안정을 해칠 우려가 있을 때 산업통상부 장관이 판매 가격의 최고액을 직접 지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위반 시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이 부과되고, 초과 수익은 정부가 환수한다.
다만 실제 도입 여부를 놓고 조심스러운 분위기가 감지된다.
산업부 관계자는 “석유 최고가격 지정을 포함해 모든 정책적 옵션을 열어두고 검토하는 단계”라며 “시장 부작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기에 도입 시기를 예단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만약 정부가 인위적으로 시장에 개입해 가격을 누를 경우, 정유사와 주유소의 수익성이 악화해 공급 물량을 줄이거나 판매를 기피하는 ‘공급 절벽’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이는 소비자의 구매 대란으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
또 석유사업법에는 사업자의 손실을 국가가 보전해 줄 수 있다는 규정이 포함돼 있다. 유가 상승세가 장기화할 경우 민간의 적자를 세금으로 메워야 해 막대한 재정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정부는 유류세 인하폭 확대와 비축유 방출 등 다른 대안도 종합적으로 검토한 뒤, 최고가격제 발동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김덕준 기자 casiopea@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