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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로 우주 정복? 스타워즈 캐릭터 무장한 '스톰탁주' [술도락 맛홀릭] <6>
우리 술과 클래식 음악, 그리고 외계인. 전혀 공통점이 없어 보이는 3가지가 만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클래식 음악으로 술을 빚던 경남의 한 양조장이 최근 영화 ‘스타워즈’ 캐릭터를 앞세운 막걸리를 출시했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만남의 사연이 궁금해 밀양시 단장면으로 향했다.
■전통주, 클래식 선율에 취하다
중앙고속도로 밀양IC를 빠져나와 단장천과 논밭이 펼쳐진 시골길을 달리길 5분여. 도로 안쪽으로 대형 문주와 입구를 갖춘 신식 건물이 나타난다. 4년 전, 인근 태룡리에서 단장리로 자리를 옮긴 ‘밀양클래식술도가’(옛 단장양조장)이다. 입구 주차장에 세워 둔 냉장탑차부터 눈길을 끈다. 차량 화물칸 겉면이 온통 스타워즈 캐릭터인 ‘스톰트루퍼’ 그림으로 가득하다.
“경운기 모는 스톰, 부채춤 추는 스톰, 김장 담그는 스톰 등 더 재밌는 그림이 많습니다. 요즘 젊은 양조인들이 늘고 있잖아요. 좀 재밌게 표현해 보고 싶었죠.” 배현준(37) 총괄매니저가 환한 웃음으로 취재진을 맞으며 설명을 보탠다.
여기까지만 보면 밀양클래식술도가를 신생 양조장으로 여기기 쉽지만, 무려 90년 넘는 역사를 지녔다. 시골마을에 흔히 있을 법한 양조장은 2009년 배 매니저의 장인 박종대(64) 대표가 인수하면서 달라졌다. 박 대표가 어린 시절 뛰놀던 바로 그 양조장이었다. 그는 ‘단장양조장’으로 간판을 바꿔 달고 클래식 음악을 활용해 술을 빚기 시작했다.
“클래식의 잔잔하고 섬세한 리듬이 발효·숙성 과정에서 효모의 활동성을 깨웁니다. 효모가 어떻게 활발하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술의 맛이 달라지거든요.”
박 대표의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유는 ‘클래식 발효’가 오랜 연구 끝에 탄생한 비법이기 때문이다. 양조장 운영은 15년째지만 박 대표가 실제로 술을 빚은 기간은 배 이상이다. 그는 고향으로 귀농하기 전까지 부산에서 웨딩스튜디오를 운영하며, 자택에 술방을 마련해 끊임없이 맥주·막걸리·와인 등을 빚었다. 어린 시절 어머니 어깨너머로 보고 배운 가양주 문화가 자연스럽게 취미로 이어졌다. 우리 술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지금처럼 높지 않던 시절, 그는 전통주 동호회에서 활동하며 멀리 호남 지역까지 강의를 다니기도 했다.
박 대표의 또 다른 취미는 클래식 음악 듣기다. 집이건 스튜디오건 클래식 선율이 끊어질 않았다. ‘일탈’처럼 보이는 우리 술과 클래식의 만남이 박 대표에겐 ‘일상’이었던 셈이다.
단장양조장에서 밀양클래식술도가로, 2019년 확장 이전을 하면서도 바뀌지 않은 건 ‘클래식’이다. 체험동과 제조동 전체에서 박 대표가 선곡한 클래식 선율이 울려 퍼진다. ‘톡 톡 토독 톡 톡 토도독….’ 곡과 곡 사이 잠깐의 침묵이 흐르자 발효조 안에서 또 다른 연주가 들려온다. 발효 막바지 단계에서 기포가 터지면서 내는, 술 익는 소리다.
“밤에 음향을 낮추면 (효모의)활동성이 떨어지고, 낮에 음향을 올리면 활동성이 올라가요. 잔잔한 선율에서 악센트가 센 파트로 바뀌어도 활동성이 떨어진답니다.” 배 매니저의 설명을 듣고 다시 보니 음악에 맞춰 술이 춤을 추는 듯하다.
■캐릭터 술 앞세워 세계로, 우주로
밀양클래식술도가는 ‘클래식’의 또 다른 의미인 ‘전통’을 강조한다. 박 대표는 줄곧 전통적인 방법을 고수하면서 직접 배양한 효모를 사용해 쌀과 누룩, 천연감미료 등으로 술을 빚는다.
처음엔 클래식막걸리와 클래식청약주 2종이었지만 해를 거듭하면서 한층 다양해졌다. 특히 아들 같은 사위, 배 매니저가 5년 전 합류하면서 신선한 변화가 일었다.
“처음엔 양조장이 뭔지도 몰라 간장을 만드는 곳인가 싶었어요. 아버지 기술이 참 좋은데 알릴 방법이 없어 너무 막막했죠.”
부산에서 유통사를 운영하던 그는 전국 양조장을 100군데 넘게 돌아다니며 벤치마킹과 실험을 거듭했고, ‘전통’과 ‘변화’의 갈림길에서 두 가지 모두를 선택했다.
고민 끝에 2018년 탄생한 ‘마실꾸지’는 꾸지뽕 열매를 손수 갈아 넣어 만든 막걸리다. 살구빛 빛깔에서 연상되듯 젊은 층이 좋아할 만한 새콤달콤한 향미가 특징이다. 뒤이어 출시한 ‘밀양대추막걸리’는 자연탄산이 가득한 샴페인 막걸리다. 일주일에 100병씩 소량만 생산하기 때문에 선착순 전화 주문만 받는다.
2021년 선보인 ‘밀양탁주’는 기존 클래식막걸리에서 밀을 빼고 100% 쌀로만 빚은 막걸리다. 정부 ‘술품질인증’을 획득하고 밀양이란 지역명까지 더해져 특히 주변 캠핑장을 찾는 이들에게 인기다.
꾸준한 실험과 변화 속에서 작심하고 만든 술이 있으니 바로 ‘스톰탁주’다. 최근 온라인 판매를 시작했는데 SNS 등으로 소문이 나면서 금세 밀양클래식술도가의 대표작으로 떠올랐다.
외관도 이름처럼 독특하다. 술병 전체를 영화 ‘스타워즈’의 캐릭터 중 하나인 ‘스톰트루퍼’(스톰) 이미지로 채웠다. 병뚜껑 위에도 스톰 얼굴(헬멧) 캡을 씌워 소장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수많은 캐릭터 중 왜 스톰일까.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 서울의 (주)우주라이크와 협업하면서 ‘그냥 캐릭터만 활용한 술이 아니라, 전혀 다른 종류의 술을 만들어 보자’는 얘기를 나눴어요. 스톰 캐릭터 자체가 백색이라 막걸리하고도 닮았잖아요. 영국 셰퍼톤 디자인 스튜디오와 연결되면서 정식 라이선스 계약까지 맺었죠.”
막걸리로 ‘지구정복’을 넘어 ‘우주정복’을 하겠단 야심찬 스토리텔링처럼, 배 매니저는 외국인에게 익숙한 스톰 캐릭터를 통해 해외 입맛을 사로잡겠단 계획이다. 그러기 위해 술의 기본인 맛부터 많은 신경을 썼다. 밀양탁주와 주원료는 같지만 쌀의 함량을 늘렸고, 12~13일 발효를 거친 뒤 사흘 동안 저온숙성을 더했다.
실제로 스톰탁주를 한 모금 들이켜자 같은 뿌리인 밀양탁주와는 전혀 다른 향미가 느껴진다. 은은한 달콤함 속에 포도를 닮은 과실 향이 풍기는 이색적인 맛이다.
■클래식·외계인과 어울리는 맛은
스톰탁주는 누구나 가볍게 마실 수 있는 6도와 애주가를 위한 17도, 2종이 있다. 특히 17도는 물을 전혀 섞지 않은 원주로, 알코올의 쏘는 맛이 강하기 때문에 얼음을 섞거나 다른 음료와 함께 마시면 좋다. 온라인에선 6도와 17도를 묶은 세트도 판매하는데, 취향에 따라 두 술을 원하는 비율로 섞어 마실 수 있다.
밀양 쌀로 세 번 빚어 삼양주의 부드러움을 지닌 스톰탁주는 한식과 양식 모두와 어울린다. 밀양클래식술도가를 찾으면 갓 생산된 술과 궁합이 맞는 음식도 맛볼 수 있다. 지금의 자리로 확장 이전하면서 막걸리 체험공간인 ‘카페표충로’를 함께 열었는데, 방문객들의 요구로 현재는 식당처럼 운영되고 있다.
식사류 대표메뉴는 밀양탁주(또는 차) 한 잔이 함께 나오는 ‘새싹불고기비빔밥’이다. 새싹잎과 산채나물, 소불고기 등을 곁들인 푸짐한 비빔밥과 탁주의 조합은, 농사일을 하다 먹는 막걸리와 새참 같은 느낌이다. 안주류로는 돼지수육과 오돌뼈 등이 있다. 수육은 껍질 부위를 바삭하게 구운 식감이 매력이고, 땡초가 들어간 매콤한 오돌뼈도 절로 술을 부른다.
밀양클래식술도가는 스톰탁주를 시작으로 비슷한 계열의 자매품과 시즌별 술도 출시할 예정이다. 해외 수출도 올해부터 본격화한다. 다음 달 7일에는 서울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에서 스톰탁주 정식 출시 행사가 열린다.
글·사진=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기자들의 시음평]
▶김희돈 스포츠라이프부 부장
“청포도 같은 상큼한 향이 느껴지다 강한 끝맛을 남긴다. 독특한 캐릭터처럼 독특한 맛.”
▶남형욱 디지털미디어부 기자
“꽃향기와 함께 과일 향이 많이 난다. 이국적인 향 때문에 누군가는 거부감이 들 수도….”
▶김동우 편집파트 기자
“라벤더 같은 꽃향기에 맛도 독특. 요즘처럼 날이 풀리는 시기에 잘 어울릴 것 같다.”
▶이지민 디지털미디어부 에디터
“신기한 맛이다. 살짝 포도 향이 느껴지며, 입 안에 남는 게 없이 부드럽게 넘어간다.”
[전문가의 맛 코멘트]
▶이지민 대동여주도 대표
“입국에서 유래한 뽀얀 컬러를 갖추고 있으며, 제성은 맑게 잘 되어 있다. 입자감도 곱고 바디감도 미디엄 이하로 라이트한 느낌이다. 외관에서 주는 남성미 뿜뿜한 이미지와는 달리 향은 정반대 느낌이다. 부드러운 곡향과 함께 달콤새콤한 청포도 향이 가득 피어오른다. 맛에서도 향에서 느낀 관능적 특성이 이어지며, 음료수처럼 술렁 넘어간다. 천연감미료가 들어가 입안에 텁텁함이 남지는 않으나 단맛이 길게 남는다. 막걸리 입문자나 단맛을 선호하는 분들이 환영할 만한 막걸리다.”
-제품명 : 스톰탁주
-양조장 : 밀양클래식술도가(경남 밀양시)
-내용량 : 600mL
-알코올 : 6.0%
-원재료 : 쌀·입국·정제수·천연감미료
2023-03-15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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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바람처럼 '새콤·달콤·상큼'…부산 다대포서 만난 '딸기막걸리' [술도락 맛홀릭] <5>
낙조로 유명한 부산 다대포해수욕장, 몰운대 입구에 가면 3대째 이어져 온 주점 ‘할매집’이 있다. 1979년부터 1대 시할머니가, 뒤를 이어 2대 시어머니도 손수 술을 빚었다. 이름조차 없던 할매집 동동주는 3대째에 이르러 완전히 달라졌다. 변화를 이끈 주인공은 MZ세대 ‘며느리’이다.
■딸기, 막걸리에 빠지다
사하구 다대동의 한 아파트단지 상가 2층. 통유리 안으로 묘한 풍경이 비친다. 부드러운 파스텔톤 타일과 아기자기한 인테리어를 보면 카페 같은데, 창가엔 대형 스테인리스 통이 줄지어 섰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봄바람처럼 은은한 향이 코끝을 자극한다. 술이 익어 가는 내음이다.
공간의 주인장인 박미화(38) ‘올빚찬주’(옛 순진도가) 양조장 대표는 빨강·노랑·하양 뚜껑의 막걸리를 내놓으며 취재진을 맞았다. 셋 중 빨간 뚜껑에 유난히 눈길이 간다. 라벨도 핑크빛, 내용물도 핑크빛이다. 박 대표가 1년 동안 시행착오를 거쳐 완성한 딸기막걸리 ‘올빚베리’이다.
“제가 ‘알쓰’(술을 잘 못 마시는 사람을 일컫는 ‘알코올 쓰레기’의 줄임 말)여서 소주 같은 독한 술은 못 마셔요. 술내 안 나는 순한 술을 좋아하다 보니 제 입에 제일 맛있는 술을 만들었죠.”
결혼 전 전혀 다른 분야에서 일한 박 대표는 20대 시절부터 시어머니 장사를 도우며 술 만드는 재미에 빠져들었다. 밥으로 먹는 쌀이 술로 변하는 게 마냥 신기했던 그는 10여 년이 흐른 지금, 냄새만 맡아도 술 익은 정도를 알아맞히는 수준이 됐다.
올빚찬주의 대표작이자 가장 최근에 개발한 올빚베리는 박 대표가 가장 아끼는 술이다. 가게 손님이 많은 봄·여름·가을에는 한 달에 2000병씩 팔린다. 온라인 판매 없이 순수하게 주점 등 오프라인으로만 판매되는 양이다. 전문가들도 맛을 인정해 대한민국 주류대상에서 2020년, 2021년 연속으로 탁주 부문 ‘대상’(공동)을 받기도 했다.
박 대표는 인공 향료를 넣지 않고 진짜 딸기로만 향과 맛을 낸다. 딸기 함량을 탁주의 기준 한도인 20%까지(초과하면 ‘과실주’로 분류)로 가득 채운다. 간간이 씹히는 딸기 씨도 재밌는 식감이다.
“처음엔 무턱대고 딸기를 많이 넣었는데 술내도 많이 나고 제가 생각했던 맛이 아닌 거예요. 딸기 넣는 시점과 양을 조절하면서 최대한 향과 맛을 살리려고 정말 노력했어요.”
올빚베리를 유리잔에 따라 향을 맡으니, 딸기 느낌이 강하진 않다. 그런데 한 모금 마시자 입 안에서 딸기의 향미가 은은하게 퍼져나간다. 막걸리 입문자에겐 부담 없고, 독한 술에 익숙한 애주가라면 딸기주스처럼 여길 맛이다.
박 대표는 맛과 향 못지않게 외양에도 신경을 썼다. 핑크빛을 내기 위해, 고두밥에 ‘홍미(紅米)’를 섞어 딸기 느낌을 한층 살렸다. 라벨 디자인도 MZ세대 감성에 맞춰 귀엽게 수정했다.
■전통, 변화를 응원하다
‘올바르게 빚어 가득 채운 술’. 올빚찬주 양조장의 시작은 2018년 여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시어머니의 뒤를 이어 할매집 뒤쪽 부엌 좁은 공간에서 술을 빚던 박 대표는 남편과 상의 끝에 가게와 양조장을 분리하기로 결심했다.
처음엔 지금의 자리 인근에 5평짜리 공간을 마련하고 양조장 이름을 ‘순진도가’라 지었다. 시할머니(순희), 시어머니(순자), 남편(진만)의 이름을 따 박 대표가 작명했다.
“돌이켜 보면 진짜 멋모르고 차린 것 같아요. 5평 이상이어야 허가가 난다고 해서 이틀 정도 알아보고 그냥 5평짜리 공간을 구한 거거든요.”
양조장을 차린 뒤 술만 잘 빚으면 될 줄 알았는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관련 법에 따라 챙겨야 할 서류만 해도 한두 개가 아니었다. 물어볼 데도 마땅치 않아 울기도 많이 울었다. 순진도가란 명칭도 순탄치 않았다. 비슷한 이름의 양조장이 있어 3년 넘도록 상표 등록이 안 됐다. 고민 끝에 지난해 5월께 지금의 자리로 확장 이전하면서 양조장 이름도 바꿨다.
규모를 키웠다곤 해도 여전히 15평 정도의 소규모 양조장이다. 돈을 벌 때마다 하나씩 장비를 갖춰, 현재는 몇몇 발효와 제성 단계에서 기계를 활용한다.
“처음엔 무조건 손으로 술을 빚어야 맛있다는 고정관념이 있었어요. 하지만 더 일정한 맛을 내고, 더 길게 가기 위해 생각을 바꿨죠.” 박 대표는 “하나씩 설비를 갖추어 가는 재미도 있다”며 유쾌하게 웃어 보였다.
올빚찬주에는 올빚베리 말고도 3가지 술이 더 있다. 찹쌀로만 빚은 막걸리인 ‘올빚찹쌀’과 과거 시할머니·시어머니표 술을 개량한 ‘올빚곡주’ 5도·8도 등이다. 올빚곡주 8도는 유일하게 두 번 빚은 이양주이다. 한 달 넘게 숙성하고 월 70병밖에 생산하지 않아 웬만해선 맛보기 힘들다.
올빚곡주 5도는 예전 할매집 동동주가 뿌리지만 맛은 확연히 다르다. 예전 술이 산성누룩을 써 산미가 강한 반면, 올빚곡주 5도는 다른 누룩을 사용해 새콤달콤한 맛이 특징이다. 여기에 부드러움과 달콤함을 더해 좀더 대중적인 막걸리로 개발한 게 찹쌀막걸리인 올빚찹쌀이다.
가업을 물려받았지만, 수십 년 동안 내려오던 전통의 술맛을 바꾸는 건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시어머니의 평가는 어떨까. “그동안 술 빚느라 건강이 안 좋아지셔서 술을 안 드시는데, 얼마 전 올빚곡주(5도) 맛을 보셨어요. ‘너무 맛있다’며 칭찬해 주시는데 정말 감동이었죠.”
■‘새콤달콤’ 딸기막걸리와 어울리는 맛은…
앞으로 박 대표의 목표는 신제품 출시도 사업 확장도 아닌 품질이다. 전통 누룩을 쓰는 만큼 ‘주질’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데 집중할 계획이다. 또 하나 바람이 있다면 온라인 판매다. 현행법상 지역특산물을 사용한 ‘지역특산주’가 아니면 온라인에서 술을 팔 수 없다. 소규모 양조장인 올빚찬주는 그때그때 조금씩 재료를 사서 빚기 때문에 해당이 안 된다.
“저처럼 막걸리를 좋아하시는 분들이 소규모 양조장을 차리는 사례가 앞으로 많아질 거예요. 온라인 판매 기준이 완화돼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 전통주를 좀 더 편하게 구입해서 마실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실제로 올빚찬주의 작은 규모를 보고 양조장 창업에 자신감을 얻어가는 이들도 있다고 하니, 머지않아 부산 곳곳에서 소규모 양조장이 생겨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올빚베리 딸기막걸리의 주 판매처는 박 대표의 남편이 운영하는 ‘할매집’이다. 당연히 할매집 안주와 잘 어울린다. 대표메뉴는 문어·수육·야채무침과 쌈이 조합된 ‘삼합’. 특히 문어는 다대포 앞바다에서 통발낚시로 직접 잡아 올린 자연산이다.
칼칼한 국물과 어우러진 해물어묵탕도 추천 메뉴다. 게·조개 등 자연산 해물과 부산어묵·쌀떡이 들어간 조합이 푸짐하다. 땡초가 들어간 매운 부추전도 궁합이 맞다.
올빚베리의 새콤달콤함은 매운 맛뿐만 아니라 기름진 음식의 느끼함도 덜어 준다. 입소문이 나면서 이제는 부산지역 족발집과 양고기 식당에서도 딸기막걸리를 맛볼 수 있다. 일부 전통주점과 전통주 보틀숍에서도 구매가 가능하다.
글·사진=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기자들의 시음평]
▶김희돈 스포츠라이프부 부장
“첫맛은 상큼, 끝맛에서 알코올 기운이 살짝. 기분 좋은 취기를 원하는 입문자용 막걸리.”
▶남형욱 디지털미디어부 기자
“되게 자연스러운 과일 막걸리 느낌. 샤베트처럼 얼려서 시원하게 먹어도 맛있을 것 같다.”
▶이상배 디지털미디어부 기자
“딸기 향은 별로 안 난다. 색깔은 딸기우유인데, 달달함보다는 새콤한 딸기 맛을 강조한 듯.”
▶이지민 디지털미디어부 에디터
“새콤달콤 자연스러운 딸기 맛이라 가볍게 즐기기 좋다. 귀여운 라벨도 20~30대 취향 저격.”
[전문가의 맛 코멘트]
▶이지민 대동여주도 대표
"완숙된 딸기라기보다는 딸기가 익어가는 과정에서 맡을 수 있는 풋풋한 향이 느껴지며, 단향과 함께 새콤한 향이 약하게 올라온다. 딸기 향의 강도는 전반적으로 라이트한 느낌. 맛은 (술꾼 입장에선) 마치 딸기 음료처럼 가볍게 넘어간다. 알코올 도수도 크게 느껴지지 않고 적당한 새콤달콤함이 있어,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분들도 즐기기 좋겠다."
-제품명 : 올빚베리(딸기막걸리)
-양조장 : 올빚찬주(옛 순진도가·부산 사하구)
-내용량 : 750mL
-알코올 : 6.0%
-원재료 : 쌀·홍미·딸기·누룩·정제수·효모·감미료 등
2023-03-01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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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 꿈꾸다 술 연구…달 생각하며 빚은 '일월삼주' [술도락 맛홀릭] <4>
귀농을 꿈꾸던 20대 청년이 있었다. 10년이 흘러 그는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술을 빚는다. 양조를 넘어 전통주 연구에 빠져든 부산 청년을 만나러 경남 함안으로 향했다.
■만화에서 출발해 오기로 도전한 우리 술
함안군 군북면 월촌리 한 도로변에 자리한 샌드위치 패널 건물. 간판 하나 없는 이곳은 김 대표가 홀로 전통주를 연구·개발·생산·유통하고 있는 양조장, 아니 연구소다.
‘빛올’이란 양조장 이름부터 예사롭지 않다. 아침 해처럼 빛이 올라온다는 의미와 오가닉(친환경) 재료를 쓴다는 점을 강조해 김비성(36) 대표가 직접 지었다. 정식 명칭은 ‘빛올양조연구소’. 실제로 김 대표는 연구원처럼 흰색 가운 차림으로 취재진을 맞았다.
“제품을 만들 때 정밀하고 체계적이어야 하잖아요. 추후엔 발효 관련 연구 과제도 수주해 운영할 계획이어서 연구소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빛올양조연구소는 효모를 접종·배양하는 시설과 흡광도측정기 등 여느 양조장에는 없는 각종 실험 장비를 갖추고 있다. 대표 사무실을 겸한 공간 명칭도 ‘실험실’이다. 이 실험실은 술이 익어가는 ‘담금실’과 문 하나 사이로 연결된다.
김 대표가 우리 술에 입문하게 된 계기부터 흥미롭다. 부산에서 나고 자란 그는 잔병치레가 많아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경남 등지로 등산을 자주 다녔다. 그렇게 자연과 친해졌고, 자연스럽게 농촌 생활에 관심을 갖게 됐다. 도시 청년으로서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그는 대학을 졸업하기 전부터 체계적으로 귀농 준비를 시작했다.
처음부터 전통주 양조장을 생각했던 건 아니다. 눈을 띄우고 불을 지핀 건 만화였다. “귀농을 하면 음식도 직접 만들어야 하니 한때 모든 관심사가 요리였어요. <식객>이란 만화를 보다 술 만드는 방법이 나오길래 한 번 빚어 봤는데 너무 맛이 없는 겁니다. 그래서 오기가 생겼죠.”
100번이고 200번이고 집에서 술을 빚으며 시행착오를 겪다 전통주 교육기관의 존재를 알게 됐고, 체계적으로 배우면서 우리 술의 매력에 푹 빠졌다. 실패하면 성공할 때까지 계속 도전하는 성격 덕분에 김 대표는 곧 전통주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아마추어로 참가한 2018년 궁중술빚기 대회에서 장관상을 받는 등 각종 대회에서 수상이 이어졌다.
하지만 양조장을 차리고, 술을 출시하는 건 차원이 다른 일. 부산대 대학원(식품영양학)에서 미생물을 연구하고, 서울을 오가며 전문적인 전통주 교육을 받는 등 수년간 준비하고 또 준비했다. 비용을 아끼려 양조장 건물은 건축일을 하시는 아버지와 함께 손수 지었다. 실험 장비들도 중고로 구하거나 여기저기서 지원을 받아 마련했다.
2021년에야 사업자 등록을 하고, 이듬해 비로소 첫 번째 술이 탄생했다. 귀농을 준비한 지 10년 만에 김 대표의 꿈이 빛을 본 것이다. 빛올의 술이 더 값져 보이는 이유다.
■익어가는 청년의 꿈, 달을 생각하며 빚다
‘일월삼주(一月三舟·하나의 달을 세 배에서 본다)’. 술 이름에서도 고민의 흔적이 엿보인다. 같은 달도 사람에 따라 달리 보이듯, 누룩으로 빚은 술의 다양하고 풍성한 맛의 특징을 이름에 담았다.
“하나의 원주에서 일주(탁주), 이주(약주), 삼주(소주)가 나오는 점도 일월삼주의 의미와 딱 맞아떨어져요. 게다가 이곳 마을 이름도 월촌(月村)이거든요.”
일월삼주는 탁주인 ‘일주142’, 약주인 ‘이주’, 현재 개발 중인 ‘삼주’(소주)까지 모두 3종이다. 일주는 지난해 7월, 이주는 같은 해 10월 출시됐다. 두 술 모두 알코올 도수가 거의 원주에 가까운 14.2도이다.
이주는 일주를 맑게 걸러낸 술이어서 같은 뿌리지만, 향과 맛은 확연히 차이가 난다. 일주는 진한 막걸리 특유의 질감을 보여 준다. 산미도 강해 누룩 막걸리 특유의 맛을 좋아하는 애주가라면 구미가 당길 만하다. 풍성한 과실향과 새콤달콤한 향미를 지닌 이주는 입맛을 돋우는 식전주로 좋다. 일주·이주 모두 높은 알코올 도수에 비해 부드럽게 감기는 맛이다. 다만 연거푸 몇 잔 기울이다 보면 화끈한 알코올 기운이 올라온다.
일월삼주는 쌀·물·누룩으로만 빚는다. 쌀은 오리농법으로 키운 함안지역 친환경 찹쌀 ‘도란미’를 쓴다. 단양주임에도 세 번, 네 번 빚은 삼양주·사양주 같은 깊이가 있다. 45일이라는 긴 발효 기간에다 직접 배양한 ‘빛올효모’를 넣어 맛의 깊이를 더했다는 게 김 대표의 설명이다. 이주는 일주를 여과한 뒤 한 달 정도 더 숙성을 한다.
“연잎주를 만드는 과정에서 발견한 효모를 배양해서 쓰고 있어요. 누룩도 자가 누룩으로 대체하려고 시도 중이고요. 이주의 경우 여과를 통해 일주의 탁한 부분은 물론 효모까지 걸러내기 때문에 전혀 다른 맛이 납니다.” 차분한 설명 속에서 홀로 연구·실험하며 고군분투했을 시간들이 느껴진다.
아직은 1인 기업이지만, 김 대표의 마음 속엔 더 큰 꿈이 익어가고 있다. 도수가 낮은 7도짜리 탁주를 올해 출시하고, 뒤이어 25도짜리 증류식 소주인 ‘삼주’를 선보일 계획이다. 일월삼주 3종 세트가 완성되면, 함안 특산품인 수박을 활용한 수박 막걸리도 내년쯤 내놓겠단 구상이다.
120평 규모의 양조장 건물 중 현재 사용하는 공간은 절반 정도. 나머지는 김 대표가 펼칠 또 다른 미래를 위해 남겨 뒀다.
“빈 공간을 예쁘게 꾸며서 일반 사람들이 시음도 하고 양조장 견학을 할 수 있게끔 운영하고 싶어요. 그보다 먼저 직원을 둬야 할 정도로 생산(판매)량을 늘리는 게 1차 목표입니다.”
현재 일주와 이주의 월 판매량은 각 1000병 정도. 탁주 못지않게 약주의 판매 비율이 높다. 온라인 쇼핑몰과 보틀숍, 부산지역 일부 주점에서 만나볼 수 있다.
■일월삼주와 생선구이·소수육이 만나면…
일월삼주는 알코올 도수가 높다 보니 술술 마시기보단 식전주, 혹은 식사와 곁들여 조금씩 음미하길 추천한다. 보통의 탁주·약주처럼 기본적으로 한식과 궁합이 맞는데, 매콤한 음식에는 이주보다 일주가 더 잘 어울린다.
일월삼주와 어울릴 함안지역 맛집 중엔 ‘전원휴게소’란 생선요리 전문점이 있다. 식사 시간대엔 넓은 주차장이 가득 들어찰 정도로 손님이 몰린다. 메뉴는 단출하게 생선(모둠)구이·생선조림·갈치조림 단 3가지. 주인장이 부산과 여수 등지를 돌며 가격대가 맞는 가장 신선한 생선을 공수해 온다고 한다. 모둠구이에는 이주, 칼칼한 양념이 배인 조림에는 일주가 어울린다.
무한리필인 밥과 미역국, 쌈(배추·다시마)에서 시골 밥상의 넉넉한 인심이 느껴진다. 계절별로 10여 가지 생선 중 골라 구워낸 모둠구이는 물론, 미역국에 들어가는 생선도 그때그때 바뀌기 때문에 시기별로 다양한 생선을 맛볼 수 있다. 매일 요리에 쓰인 생선을 화이트 보드에 ‘오늘의 생선’으로 소개한다.
함안과 지척인 의령에는 소고기가 유명하다. 소고기 음식 중에서도 별미인 소수육은 김 대표가 추천하는 조합이다.
일월삼주를 더 맛있게 마시려면 시원하게 보관하길 권한다. 특히 일주는 냉동실에 2시간 정도 넣어 두거나 얼음잔에 부은 뒤 흔들어 마시면 한층 부드럽고 깊은 맛을 즐길 수 있다.
글·사진=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기자들의 시음평]
▶김희돈 스포츠라이프부 부장
(일주) "허한 속과 취기를 동시에 채우는, 땀 흘리며 모내기 한 뒤 마시는 농주 같은 느낌."
(이주) "매실 원액을 마시는 것처럼 향이 엄청 강하다. 향도 맛도, 압도적인 바디감이다."
▶이상배 디지털미디어부 기자
(일주) "걸쭉하게 새콤하면서 달다. 매실 느낌의 새콤함이 받쳐줘 단맛이 물리지 않는다."
(이주) "매실주 향이 나면서, 뒷맛은 약주의 진한 여운. 젊은 층도 친숙하게 마실 수 있을 듯."
▶이지민 디지털미디어부 에디터
(일주) "맛있는데 세다. 속 안에서 뜨끈뜨끈한 게 느껴진다. 그냥 마시면 훅 갈 것 같은..."
(이주) "새콤한데 끝맛이 살짝 고소하다. 향도 새콤달콤한데, 과일주보다 훨씬 고급스럽다."
▶정윤혁 디지털미디어부 PD
(일주) "진한 막걸리 하면 상상되는 바로 그 느낌. 높은 알코올 도수에 비해 세진 않다"
(이주) "처음엔 독한 느낌이 들다 점점 옅어져 무겁지 않다. 잔향이 입안에 계속 남는다."
[전문가의 맛 코멘트]
▶이지민 대동여주도 대표
(일주) "향에서 새콤한 과실이 떠오른다. 적당히 익은 자두를 깨물었을 때의 새콤함, 청매실의 싱그러움 등과 함께 곡물과 견과류의 구수함이 저변에 은근하게 깔려 있다. 향의 특징이 맛에서도 그대로 이어지는데, 원주에 가까운 농밀함과 곡류의 단맛에 강한 산미가 더해져 맛을 완성한다. 농축미·감칠맛이 강해 입을 자꾸만 다시게 된다. 입맛 없을 때나 더울 때 차갑게 마시면 없던 입맛도 돌아올 것 같다. 대중 막걸리에 익숙한 분들에겐 어려운 맛일 듯. 술꾼들에게 권하고 싶은 막걸리다."
(이주) "막 오픈했을 땐 향이 다소 갇힌 듯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깨어난다. 일주에서 느껴진 과실 산미가 전체적인 맛을 형성한다. 단맛보다 산미가 조금 더 강해 술맛을 리드하는 느낌인데, 둘이 탄탄하게 어우러지며 후미까지 쭉 한 몸으로 이어진다. 식전주로 입맛을 돋우는 데 아주 좋을 듯."
-제품명 : 일월삼주 '일주142' / '이주'
-양조장 : 빛올양조연구소(경남 함안군)
-내용량 : 350mL
-알코올 : 14.2%
-원재료 : 쌀·누룩·빛올효모·정제수
2023-02-15 [0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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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매콤한 낙지도, 부드러운 치즈도 홀린 ‘동래아들’ [술도락 맛홀릭] <3>
일본에서 사케 전문가로 활동한 한국인. 뒤늦게 우리 술에 빠져 고향 부산으로 돌아온 청년. 수많은 시도 끝에 완성한 막걸리로 ‘대상’까지 받았고, 이제는 한국의 양조 문화를 세계에 알리려 한다. 부산의 한 주택가에서 태어난 ‘동래아들’ 이야기이다.
■돌고 돌아, 우리 술에 빠지다
부산 동래구의 한 주택가에 있는 빛바랜 타일 외벽의 3층짜리 건물. 전통주 양조장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아 보이지만, 부산 대표 술로 떠오른 ‘동래아들’ 막걸리가 탄생한 곳이다.
양조장 ‘기다림’ 조태영(41) 대표에게 동래아들은 ‘부캐’(또 다른 캐릭터) 혹은 분신 같은 술이다. 20년 동안 술을 공부해 온 세월의 무게와 경험치, 전문성이 한 병 한 병 고스란히 담겨 있다.
갓 불혹을 넘긴 청년 양조인이지만 술 관련 경력은 여느 장인 못지않다. 20대 초반 술을 공부하러 일본으로 건너갔고 바텐더와 소믈리에, 일본 전통주인 사케 전문가로도 활동했다.
“일본에선 바텐더를 굉장히 품격 있는 전문직으로 여겨요. 60대에도 활동하는 바텐더가 있을 정도죠. 사케 전문가 자격증을 따서 현지인을 가르쳤는데, 한국인 강사라 그런지 더 좋아했던 것 같아요.”
부지런히 유럽 와이너리를 오가며 와인 공부도 하는 등 정신없이 술에 빠져 지내던 조 대표에게 우연히 새로운 술이 찾아왔다. 2011년 서울에서 열린 한 전통주 행사에 참석했다가 전통 방식으로 제대로 빚은 우리 술을 맛본 것이다.
“소곡주처럼 올드한 느낌의 술이었는데, 와인 같기도 사케 같기도 한 게 오묘했어요. 뭔가 가능성이 있겠다는 생각에 독학으로 우리 술을 빚기 시작했죠.”
맥주·사케·위스키까지 홈브루잉(자가양조)을 하던 그였지만 막걸리 양조는 처음이었다. 숙취가 심한 체질이 외려 도움이 됐다. 정통 발효법으로 막걸리를 빚었더니, 마신 다음 날 전혀 숙취가 없었다. ‘기존 막걸리는 왜 숙취가 심할까’ ‘지레 막걸리를 기피하는 사람들에게 숙취 없는 맛을 보여 줄 방법은 없을까’ 물음은 꼬리를 물었고, 결국 해결책을 찾아 창업을 결심했다.
■옥동자 ‘동래아들’이 탄생하기까지
2011년 한국으로 돌아온 조 대표는 우리 술에 대해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관련 지식과 경험이 무르익었을 무렵 동래구 사직동 주택가에 1인 스타트업 ‘제이케이크래프트(JKCRAFT)’를 차렸다. 양조장을 제조 공장처럼 운영하기 싫어 선택한 장소였다.
“일본에선 300~400년 된 양조장이 집 근처에 있어요. 우리나라도 옛날엔 ‘가양주’ 문화가 있었잖아요. 양조를 제조가 아닌 문화로 보고 색다른 공간에서 표현해보고 싶었습니다.”
처음 가보는 길인 만큼 걸림돌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지역특산주 면허로는 부산 1호인 데다, 주택가에 양조장이 들어선 전례가 없다 보니 행정기관의 허가를 받기까지 무려 1년이 걸렸다.
긴 기다림 끝에 2015년 양조 허가를 받은 제이케이크래프트는 이듬해 첫 번째 술 ‘기다림34’를 선보였다. 발효부터 숙성까지 100일이나 걸리고, 가격도 1만 2000원으로 당시로선 선뜻 지갑을 열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맛을 보고 만족스러워하다가도 가격을 얘기하면 다들 손사래를 쳤어요. 초창기엔 국내 영업이 힘들어 술을 메고 일본으로 다녀야 했죠. 후쿠오카 일식당 등 20여 곳에 ‘라이스 와인(Rice Wine)’이라 홍보하며 판매를 했어요.”
‘기다려온’이란 브랜드로 비누·샴푸·트리트먼트 등 발효 제품도 출시하며 사업을 확장할 무렵, 조 대표는 안주하지 않고 또 한 번 도전에 나섰다. ‘기다림34’ 생산을 전면 중단하고 좀 더 대중적인 술 개발에 나선 것이다.
기다림에 담긴 초심과 철학을 그대로 가져와 2019년 양조장 ‘기다림’을 만들었고, 1년 뒤 첫 작품 ’동래아들’ 막걸리를 선보였다. “기다림 막걸리가 와인을 만들 듯 제가 제일 잘하는 공법으로 빚었다면, 동래아들은 음료수처럼 만들었어요. 누구든지 편하게 마실 수 있기를 바라면서요.”
■호불호 없는 음료수처럼 빚은 술
부산 강서구 해포도 쌀로 빚은 동래아들 막걸리는 하얀 빛깔부터 시선을 끈다. 병을 잘 흔들어 투명한 잔에 따르면 술인지 우유인지 분간하기 힘들 정도다. 맛 또한 막걸리스럽지 않다. 산미가 거의 없고, 목 넘김은 우유나 요구르트처럼 부드럽다. 하얀 바탕에 파스텔톤 하늘색으로 디자인한 술병 라벨과 딱 어울리는 이미지의 맛이다.
막걸리란 술 특유의 개성을 옅게 해, 외려 개성 있는 막걸리로 거듭난 느낌. 날카로운 산미를 부드럽게 다듬기 위해 일반적으로 잘 쓰지 않는 범주의 누룩과 미생물을 사용했다는 게 조 대표의 설명이다. “전통주를 빚을 때 누룩을 바꾸는 건, 마치 요리사가 쓰던 칼을 바꾸는 것과 같아요. 직원들도 굉장히 의아해했죠.”
사실, 동래아들 막걸리는 2020년 말 출시 이후 8차례 맛의 변화가 있었다. 조 대표는 직원들이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미세한 변화를 주면서 지금의 동래아들을 완성했다. 꾸준히 작은 변화를 시도한 이유는 맛의 균질함, 즉 품질 때문이다.
“한국의 전통적인 양조 방식은 불안정한 측면이 있어요. 10여 년 전 막걸리 세계화 붐이 일었다가 실패한 이유도 품질 때문이었어요. 외국인들에게 할머니 손맛을 얘기하면 안 통하거든요. 수제의 감성을 가지면서도 발효는 과학적이어야 합니다.”
조 대표는 안정적인 발효를 위해 밑술 단계에서 젖산을 활용하는 기초 작업을 추가했다. 덕분에 밑술에 덧술을 더한 이양주이면서도, 세네 번 빚은 삼양주·사양주 같은 깊이감이 있다.
균질한 맛을 향한 집념은 결국 우리 술 전문가들의 인정을 받았다. 지난해 ‘대한민국 주류대상’에서 대기업 국순당과 함께 ‘대상’(탁주-생막걸리 부문)의 영예를 안았다.
조 대표는 더 높은 단계의 품질 안정화를 위해 스마트 팩토리처럼 양조 공정을 시스템화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같은 프로 끓이면 똑같은 맛이 나는 라면처럼, 언제 어디서나 간편하게 빚어 똑같은 술맛을 낼 수 있는 공정을 개발해 양조를 업으로 하려는 이들에게 보급할 계획이다.
조 대표의 더 큰 꿈은 우리나라 양조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일이다. 그 첫걸음으로 부산지역 대표 맛집 중 하나인 ‘원조 안경희 개미집’과 손을 잡았다. 양조장과 음식을 결합한 커뮤니티 공간을 상반기 중 부산에 선보이고, 하반기엔 일본 오사카에 2호점을 열 예정이다.
■부드러움과 매콤함, 극과 극의 조화
우유와 치즈가 만나면 느끼할 수 있지만, 우유 같은 동래아들 막걸리와 치즈는 멋진 마리아주(궁합)를 이룬다. 부드러움과 부드러움이 만나 한층 부드럽게 어우러지는 느낌이다. 치즈가 듬뿍 들어간 피자류도 동래아들과 곁들이기에 좋다.
동래아들의 부드러움은 정반대로 매운 음식과도 잘 어울린다. 50년 역사의 ‘원조 안경희 개미집’과 공동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표 메뉴인 낙곱새는 신선한 재료와 특유의 매콤한 양념으로 입맛을 돋운다. 낙지는 한국산과 가장 맛이 비슷한 중국산 중에서도 최고 등급을 매달 샘플 테스트를 통해 엄선한다. 큼지막한 한우곱창은 당일 도축장에서 공수해 오는데, 곱창에 반해 찾는 이들도 많다고 한다.
현재 동래아들 막걸리는 온라인과 메가마트 동래·남천점, 보틀숍과 일부 주점에서 판매하며 개미집 같은 일반 식당에선 맛볼 수 없다. 동래아들과 개미집이 합작하는 커뮤니티 공간이 그래서 더 기다려진다.
글·사진=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기자들의 시음평]
▶김희돈 스포츠라이프부 부장
“요구르트 약간 섞은 우유맛. 막걸리에 대한 고정관념을 깬다.”
▶남형욱 디지털미디어부 기자
“달콤한데 끝맛은 상큼. 치즈와 함께 마시니 서로 잘 섞인다.”
▶이상배 디지털미디어부 기자
“탄산이 없어 부드러움에 부드러움을 더한다. 와인향이 난다.”
▶이지민 디지털미디어부 에디터
“묵직하고 무거운 느낌인데, 달달해서 술술 잘 넘어간다.”
[전문가의 맛 코멘트]
▶이지민 대동여주도 대표
“초창기 동래아들이 정겨운 동네 토박이 같은 느낌이라면 지금의 동래아들은 좀 더 대중성 있게, 마시기 편하면서도 산뜻함이 더해졌다. 곡물의 질감도 적당히 느껴지면서 담백하며, 밀키한 느낌에 요구르트의 새콤함과 싱그러움이 더해져 맛있는 막걸리가 탄생한 느낌. 치즈 무스 케이크, 화이트 롤케이크, 생크림 케이크 등과 함께 맛보면 완벽한 디저트 페어링이 완성될 것 같다.”
-제품명 : 동래아들 막걸리
-양조장 : 기다림(부산 동래구)
-내용량 : 750mL
-알코올 : 6.0%
-원재료 : 정제수·쌀·누룩·젖산
2023-02-0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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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로 또 같이, '산청 전통주' 맥 잇는 부자(父子) 양조장 [술도락 맛홀릭] <2>
산과 물의 고장 경남 산청(山淸)에 가면 할아버지에서 아버지·아들까지, 3대째 전통을 이어 가고 있는 양조장이 있다. 반백 년 역사의 양조장에서 아버지는 전통 방식을 고집하고, 아들은 바로 옆에 새 양조장을 차려 전통의 틀을 깨려 도전 중이다. 우리 술의 전통과 미래, 신구의 오묘한 조화를 꿈꾸고 있는 이웃한 부자(父子) 양조장을 찾았다.
■父, 전통이 익어 가는 ‘산청양조장’
산청읍내 최중심지에서 조금 떨어진 곳. 산청소방서와 길 하나 사이를 두고 사이좋게 자리한 두 개의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왼쪽 새 건물은 아버지 김대환(63) 씨가 운영하는 ‘산청양조장’, 오른쪽은 옛 산청양조장 공간에 청년창업가인 아들 김태건(32) 대표가 차린 ‘몬스터빌리지’ 양조장이다.
산청양조장은 공식 기록으로만 50년 넘는 역사를 지녔다. 김 대표의 할아버지가 1971년 인수를 했는데, 그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훨씬 오래된 셈이다.
지난해 가을 산청양조장은 아버지 김 씨의 오랜 바람인 ‘산청약주’를 정식 출시했다. 김 씨가 할머니 어깨너머로 본 옛 방식 그대로 빚어, 지인들하고만 나누던 술이었다. 2021년 지역특산주 약주 면허를 갖추고, 바로 옆 부지에 새 건물을 지어 확장 이전을 하면서 제품화의 길이 열렸다.
김 씨의 할머니 레시피에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 약재로 유명한 산청의 상황버섯을 넣었다는 점이다. “술은 술다워야지 다른 향이 강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이것저것 첨가해 본 결과 상황버섯의 향이 특출나지 않아 술맛을 그대로 표현할 수 있겠더라고요.”
MZ세대인 김 대표가 보기엔 산청약주는 아버지의 고집 그 자체다. “일반 막걸리를 빚는 공정도 힘든데, 약주는 몇십 배 더 힘들어요. 대량 생산을 위해 기계의 힘을 빌리는 막걸리와 달리 약주는 60~70년대처럼 직접 짜는 방식을 고집하세요. 그러다 보니 여과도 숙성도 너무 오래 걸려요.”
산청 메뚜기쌀과 청정 지하수로 빚은 산청약주는 주모(밑술)를 포함해 4차례 술을 빚는 ‘사양주’이다. 발효만 한 달 이상, 옛 방식대로 70L짜리 한 통 분량을 짜는 데만 일주일이 걸린다. 이후 100일 동안 저온 창고에서 숙성 과정을 거친다. 다 합치면 수개월이 걸리는 지난한 과정이다.
100일이 지났다고 해서 곧바로 술을 출시하는 건 아니다. 최종적으로 아버지 김 씨의 입맛을 통과해야 한다. 최근 전통주 콘텐츠·유통 플랫폼인 대동여주도와 함께 카카오메이커스에서 진행한 판촉 행사에도 아버지 입맛을 통과해 출고일을 맞추느라 애를 먹었다.
“당도와 산도를 체크했을 때 소수점 단위 차이밖에 안 나는데 아버지는 ‘조금 더 숙성시켜야 된다’고 하시더라고요. 결국 막판에 온가족이 동원돼 턱걸이로 출고일을 겨우 맞출 수 있었어요.”
고생스러운 전통 방식을 따르는 대신 김 대표와 아버지는 1년에 세 번만 약주를 빚기로 합의를 봤다. 한 번에 1000병씩 생산하니, 연간 고작 3000병만 맛볼 수 있다.
깊은 정성, 오랜 시간이 담긴 술이어서 그런지 투명한 병에 담긴 산청약주의 영롱한 황금 빛깔이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한 잔 따라 천천히 들이키자 상황버섯의 은은한 향미가 오랫동안 입안에 맴돈다. 고급진 약주인 만큼 제사상이나 명절 차례상에 제격이다.
■子, 새로움이 샘솟는 ‘몬스터빌리지’
학창 시절부터 산청양조장에서 아버지 일을 도운 김 대표는 지난해 큰 도전에 나섰다. 대학 후배 2명과 의기투합해 새 산청양조장 바로 옆, 비어 있던 옛 건물에 따로 양조장을 차린 것이다. 산청양조장의 명성에 기댈 수도 있지만 김 대표는 새로움을 택했다. 본인과 멤버들을 형상화한 캐릭터를 만들고, 양조장 이름도 전통주스럽지 않은 ‘몬스터빌리지’라고 지었다.
몬스터빌리지의 시작은 김 대표가 2019년 제주도에서 열린 ‘양조기술교실’에 참가한 게 계기였다. “진짜 색다른 술이 너무 많고, 온라인에서 술을 팔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어요. 신세계였죠. 산청지역에선 저희 술이 판매량이 높으니까 나름 괜찮다고 생각했었는데, 우물 안 개구리처럼 이대로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후 김 대표는 한국가양주연구소와 신라대 우리술 전문인력 양성과정 등을 찾아다니며 전통주에 대해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처럼 술을 잘 못 마시는 사람, 전통주 입문자를 위한 양조를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술 잘 마시는 사람들을 위한 술은 계속 개발되고 잘 팔리는데, 왜 술이 약한 사람을 위한 술은 없을까’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개발한 술이 ‘설레’예요.”
‘저 세상의 달달함을 보여 주겠다’는 각오로 만들었다는 ‘설레’는 라벨부터 핑크색으로 달달함을 물씬 풍긴다. 본인 캐릭터 ‘청산’이 발그레한 볼로 웃고 있는 디자인도 재밌다.
설레가 세상에 나온 지 1년쯤 지난 지난해 12월, 김 대표는 크리스마스를 맞아 ‘소풍’을 출시했다. ‘설레가 너무 달다’는 평가를 반영해 단맛을 줄인 천연탄산 막걸리이다. 설레와 달리 아버지의 막걸리 레시피를 많이 가져와 누룩 대신 입국을 사용했고, 적당한 단맛·신맛·쓴맛을 고루 갖추기 위해 천연감미료도 넣었다. 소풍 전날 기분 좋은 떨림과 소풍 때 행복했던 순간이 떠오르는, 행복할 때 마시기 좋은 술이라는 게 김 대표의 설명이다. 알코올 함량을 5.5%로 낮춰 한결 마시기 편한데, 숫자에서 어린이날이 연상된다.
산청양조장과 산청약주에 아들 김 대표의 손길이 더해졌듯, 몬스터빌리지에도 아버지의 노하우가 스며들고 있다. 같은 듯 다른 듯, 따로 또 같이, 부자의 두 양조장은 산청을 넘어 전국으로 이름을 알려 나가고 있다.
지난해 두 양조장은 경사가 겹쳤다. 산청양조장은 산청군 1호로 중소벤처기업부의 ‘백년소공인’에, 몬스터빌리지는 ‘로컬크리에이터’에 선정됐다. 올해는 몇 년 전부터 준비해 온 신제품을 출시할 계획이다. 산청양조장은 약주에 소주를 섞어 빚는 ‘과하주’를, 몬스터빌리지는 다양한 도수(19~50도)의 증류식 소주를 선보일 예정이다.
아들의 도전이 걱정이던 아버지도 이제는 응원하는 마음이 더 크다. “술이 발효돼 잘 익는 데 시간이 필요하듯, 지금의 시간들이 몇 년 뒤엔 아들에게 빛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산청의 나물, 전통한정식 맛보려면
깊은 맛을 지닌 산청약주는 전을 비롯해 한국의 전통음식, 달콤한 막걸리 설렘과 소풍은 매운 음식과 잘 어울린다.
산청양조장에서 자동차로 3분, 산청약초시장 인근 춘산식당에 가면 이들 술과 궁합이 맞는 전통한정식을 맛볼 수 있다. 춘산(특)정식의 메인은 산청흑돼지로 요리한 석쇠고추장구이. 3가지 맛이 난다는 ‘삼채’가 결들여져 매콤한 불향 속에 건강한 맛이 느껴진다.
죽순 무침을 비롯해 다양한 나물들 역시 산청에서 자란 것들이다. 가지·깻잎과 함께 나오는 파래 튀김은 모양도 맛도 이색적이다. 산청 메뚜기쌀과 향미찹쌀로 지은 솥밥은 윤기가 흐르고, 장식처럼 섞인 색깔 쌀이 보는 재미도 더한다. 된장찌개에는 논고동과 함께 방아가 들어가 소화를 돕는다.
아쉽게도 일반 식당에선 산청약주나 설렘·소풍을 판매하지 않는다. 대신 산청양조장의 오랜 술인 산청생막걸리와 산청팔도주는 춘산식당을 비롯해 산청 곳곳에서 만나볼 수 있다.
글·사진=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2023-01-1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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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건축가가 빚은 막걸리’ [술도락 맛홀릭] <1>
가가호호 술을 빚던 시절이 있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사라졌던 가양주(家釀酒) 문화가 100년 만에 다시 부활하고 있다. 현재까지 발급된 지역특산주 면허만 1400건에 이르고, 해마다 새로운 양조장과 전통주가 탄생한다.
전통주엔 지역의 특색이 오롯이 담겼다. 지역에서 나는 재료로 술을 빚어, 특산음식과도 잘 어울린다. <부산일보>는 ‘술도락맛홀릭’ 기획시리즈를 통해 부울경의 전통주 양조장을 탐방하며 지역의 맛과 가치를 재조명한다. 이지민 대동여주도 대표 등 전통주 전문가도 힘을 보탠다. 이 대표는 “지역의 제철 식재료와 술의 조합이 주는 만족감은 경험해 본 사람만 알 수 있다”며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부산·경남권 양조장을 조명하는 시도는 지역의 가치를 재발견한다는 점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설계부터 준공까지, 건물을 짓는 마음으로 빚은 전통주가 있다. 재료는 쌀과 물, 누룩이 전부다. 비움의 건축 철학을 온전히 담아낸 술. 그 고집스러운 맛을 찾아 경남 통영으로 향했다.
■이름부터 예사롭지 않은 ‘건막’
경남 통영시 산양읍, 미륵산자락의 마을. 막다른 샛길의 끝에 햇살을 잔뜩 머금은 붉은 기와의 전원주택이 나타난다. 박준우·김은하 부부가 양조장과 식당을 운영하며 어린 딸과 함께 생활하는 보금자리이다.
박준우 대표(거북이와 두루미 양조장)가 섬마을에서 쏟아지는 햇살과 바닷바람을 담아 만들었다는 막걸리는 이름부터 예사롭지 않다. ‘건축가가 빚은 막걸리’(건막). 글자 그대로 건축가인 박 대표가 ‘혼자’ ‘손으로’ 빚은 술이다.
2021년 가을 세상에 나온 이 막걸리의 탄생 배경도 남다르다. 사드 사태를 겪으며 박 대표의 중국 현지 건축 프로젝트에 지장이 생겼고, 물질적·정신적으로 힘든 시기에 전통주의 세계와 만났다. “한국가양주연구소에서 교육 과정을 마친 아내가 막걸리를 빚어 줘서 마셨는데, 다음 날 머리가 하나도 안 아픈 거예요. 또 빚어 달라고 했는데 안 주길래 직접 만들기로 했죠.”
마침 집에 은행대출 사은품으로 받은 찹쌀이 잔뜩 쌓여 있었다. 인터넷에 나온 레시피대로 술빚기에 도전했다. 결과는 실패였다. 이후 7년간 찹쌀과 멥쌀, 물의 비율을 달리하며 독학으로 술빚기에 도전하길 130여 차례. 박 대표는 매번 그 공식을 엑셀파일로 정리했고, 마침내 32번째 레시피에서 최적의 비율을 찾아냈다.
사계절 비슷한 맛을 낼 수 있는 온도·습도를 조합한 ‘저온숙성법’, 12일간 발효조에서 1차 발효를 한 뒤 냉장고에서 열흘 동안 2차 숙성시키는 ‘혐기성 발효’ 등도 수차례 시행착오를 거쳐 완성한 비법이다.
박준우 건축가의 비움 철학 온전히 담은 술
7년간 130여 차례 도전, 최적 비율 찾아내
첨가제 없이 쌀·물·누룩만 사용 손수 빚어
■빛깔은 막걸리, 맛은 스파클링 와인
‘건축가가 빚은 막걸리’의 가장 큰 특징은 발효 과정에서 스스로 만들어진 ‘천연탄산’이다. 병뚜껑을 살짝 열면 미세한 입자의 탄산이 바닥부터 올라오며 침전물과 자연스럽게 뒤섞인다. 빛깔만 막걸리일 뿐, 눈을 감고 마시니 스파클링 와인 같은 풍미가 느껴진다.
해산물과 ‘마리아주’(궁합)를 이루는 화이트 와인처럼, 건막도 해산물과 제격이다. 특히 박 대표의 아내 김은하 대표가 운영하는 식당 ‘야소주반’의 모든 메뉴는 건막을 위한 요리라 할 만하다. 식당은 당일 새벽 싱싱한 재료를 사서 당일 소진하기 때문에 예약제로 운영된다.
취재진이 방문한 날에도 김 대표는 당일 새벽시장에서 공수해 온 ‘개체굴’을 내놓았다. 핑거라임을 얹어 한입에 넣자 우리나라 굴의 진한 맛이 입안 가득 퍼진다. 연이어 유리잔에 따른 건막을 한 모금 마시니, 마법처럼 굴향이 배가된다. 천연탄산이 터지면서 향을 한층 돋우는 것이다. 유리잔은 탄산감을 살려 줘 날음식, 도자기잔은 탄산을 잡아 줘 익힌 음식에 적합하다고 한다.
“와인동호회에서 자주 찾아와 즐기다 가시곤 해요. 와인을 싸 들고 온 사람들이 저희 술만 먹다가 돌아가기도 하죠.” 김 대표의 설명에 왜 건막을 ‘내추럴 와인’이라고 소개하는지 고개가 끄덕여진다.
술 애호가들의 입소문에다 겨울철이 되면서 건막의 몸값은 더욱 높아졌다. 공급이 부족해 최근엔 식당에서 팔아야 할 술이 동나버렸다.
주문은 밀려들지만 ‘건축가가 빚은 막걸리’는 한 번에 80병밖에 생산하지 않는다. 박 대표가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고 혼자서 손으로 직접 빚기 때문이다. 생산량을 조금씩 늘렸지만, 한 달 최적의 목표를 618병으로 잡았다. 박 대표 혼자서 감당할 수 있는 최대치이면서, 건축설계 때 적용하는 황금비율(1 대 1.618)이기도 하다. “대량생산을 하려면 공정을 자동화해야 하고, 그러면 사람 손을 떠나게 돼요. 이 술에는 제 손에서 시작하는 정성, 저만의 가치가 담겨 있어요.”
■한 병 한 병에 담긴 느림·비움의 철학
박 대표는 양조장이 둥지를 튼 야솟골의 자연을 최대한 활용해 ‘느리게’ 술을 빚는다. 전날 오후 8시에 두 시간 동안 쌀을 씻은 뒤 불리고, 다음날 새벽 5시부터 마당에 누룩을 널어 해풍을 맞힌다. 고두밥을 쪄서 자연 바람에 잘 말린 뒤, 오후가 돼서야 물에 재운 누룩과 고두밥을 골고루 섞는 치대기 작업에 비로소 돌입한다. 물은 제조용과 청소용을 철저히 구분해 술 제조에는 청정 지하수만 사용한다. 인근 고성군의 유기농 쌀 등 모든 재료는 유기농만 고집한다.
늦둥이 딸도 힘을 보탠다. “유치원에 가기 전에 아이에게 고두밥을 먹여 봐요. ‘아빠 더 주세요!’라고 하면 이번 술은 성공이죠. 아이들은 절대 미각을 지녔거든요.”
건막 양조의 전 과정엔 박 대표가 건축가로서 강조해 온 ‘공(空)의 개념’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쌀과 물, 누룩을 제외한 어떤 첨가제나 탄산도 인공적으로 넣지 않는다.
투명한 병과 라벨도 인상적이다. 막걸리의 빛깔과 천연탄산 알갱이를 온전히 볼 수 있다. 화려한 디자인의 여느 전통주와 달리 겉멋을 빼고 속을 그대로 드러내보인다는 점에서 이 또한 ‘공(空)’이다.
술맛을 향한 집념으로 박 대표는 올해부터 변화를 꾀하고 있다. “서울의 한 보틀숍에서 저희 술을 맛봤는데 전혀 다른 맛이어서 충격을 받았어요. 영상 3도에서 보관할 때 제일 안정적인데 배송 과정에서 술이 변해버린 거죠.”
이에 온전한 맛을 유지하기 위해 천연탄산 막걸리는 ‘야소주반’에서만 판매하고, 외부에는 탄산 없는 막걸리만 공급할 계획이다. 두 번 빚은(이양주) ‘약주’도 선보일 예정이다. 조만간 지역특산주 면허를 갖추면, 그동안 전국 20여 개 오프라인 매장에서만 만날 수 있던 건막을 온라인에서도 간편하게 구매할 수 있게 된다.
천연탄산 터지며 스파클링 와인 같은 풍미
부인 김은하 씨 운영 ‘야소주반’ 음식과 궁합
한 달 618병 생산…통영 굴 등 해산물에 제격
■싱싱한 해산물과 ‘통영 굴’ 맛보려면
겨울은 건막의 계절이라 할 만하다. 건막에 어울리는 대표음식인 굴이 제철이기 때문이다. 통영은 우리나라 대표 굴 산지이지만 굴 요리 전문점이 많은 편은 아니다.
그중 중앙전통시장 인근 ‘한마음식당’은 다양한 굴 요리를 맛볼 수 있어 여러 방송에서도 소개됐다. 특히 굴·대패삼겹·김치를 불판에 구워 쌈 싸 먹는 ‘굴삼합’이 대표 메뉴다. 메뉴를 개발한 장수형 대표는 “삼겹살 기름이 굴에 스며들어 부드러우면서도 고소한 맛을 더한다”며 “김치가 기름기를 잡아 주면서 삼합이 조화를 이룬다”고 설명했다.
굴탕수육은 세 단계에 걸쳐 튀김가루, 계란물, 빵가루를 입혀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식감을 자랑한다. 수제 소스를 결들이면 어린이도 좋아할 만한 맛이다. 옛 통영 어머님들의 레시피를 따라 살짝 데친 굴로 부친 굴전은 물기가 적어 비린맛이 없다. 이밖에도 굴무침, 굴찜, 생굴 등 굴 요리 종합세트를 맛볼 수 있다.
현지인들은 통영의 싱싱한 해산물을 맛보려는 이들에게 서호시장과 통영중앙전통시장을 추천한다. 서호시장은 새벽시간대 경매부터 시작하는데, 노점상은 오전 10시쯤 파하고 이후 중앙전통시장으로 자리를 옮긴다. 중앙전통시장은 서호시장보다 좀 더 늦게, 저녁시간대까지 문을 연다.
2023-01-0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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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입맛에 맞는 커피 한 잔 내려 보실래요
“악마처럼 검고, 지옥처럼 뜨겁고, 천사처럼 순수하며, 사랑처럼 달콤하다.” 프랑스의 정치가이자 외교관이었던 샤를 모리스 드 탈레랑 페리고르의 말이다. 한국인의 커피 사랑은 더 커지고 있다. 시내 번화가는 물론이고 주택가와 한적한 교외까지 어딜 가도 카페를 만날 수 있다. 따뜻한 커피 한잔이 몸과 마음을 녹이는 계절이다. 복잡한 생각은 내려놓고 내 입맛에 맞는 커피 한잔 내려 보자.
■통계가 보여주는 한국인의 커피 사랑
‘성인이 가장 좋아하는 음료 1위’.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조사한 <2021 식품소비행태 통계보고서>에 따르면 19세 이상 성인이 가장 좋아하는 음료 1위는 20.6%가 응답한 ‘커피’(인스턴트, 원두, 캔)였다. 2위는 ‘100% 과일주스’(12.7%), 3위는 흰 우유(10.0%) 순이었다. 테이크아웃 커피도 8.8%로 5위를 차지해 커피의 인기를 더했다. 연령대별 선호도를 보면 20대는 커피 12.1%로 과일주스 14.2%보다 선호도가 낮았다. 하지만 30대 이후는 커피가 선호 음료 1위였다. 30대 19.7%, 40대 21.3%, 50대 24.3%, 60대 23.7%, 70대 이상 21.7%가 커피를 선택했다.
‘성인 10명 중 7명 이상은 1일 1커피’. 최근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가 발간한 <월간소비자> 10월호에는 성인 500명을 대상으로 한 ‘홈카페 소비자 인식 및 지출 비용 조사’ 결과가 실렸다. 응답자의 75.8%가 하루 1잔 이상 커피를 마신다고 답했고, 12.2%는 일주일에 5~6회, 8%는 일주일에 3~4회, 4%는 일주일에 1~2회라고 답했다. 한 달 평균 커피 구매비는 10만 3978원이었다.
‘한국 원두 수입량 15만 780t, 세계 6위.’ 국제커피기구(ICO, International Coffee Organization)의 세계 커피 소비량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는 세계 6위 규모의 커피 소비 국가다. 2020년 10월~2021년 9월 커피 수입량은 유럽연합 241만 5060t, 미국 161만 8920t, 일본 44만 3160t, 러시아 28만 860t, 캐나다 24만 660t, 한국 15만 780t이었다.
■원두 맛의 차이를 느끼는 게 포인트
“사실 핸드 드립 커피 내리는 방법은 유튜브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어요. 여러 종류의 커피 원두를 접해 보는 기회라고 생각해도 좋습니다.” 부산 연제구 연산동의 부산 바리스타 외식음료 학원의 핸드 드립 원데이 클래스를 맡은 양승일 아폴로 커피로스터스 대표의 말이다. 1시간 30분여 동안 이뤄지는 원데이 클래스는 핸드 드립 추출 방법을 가르쳐 주며, 나에게 맞는 원두를 찾을 수 있게 도와준다.
핸드 드립은 중력을 이용한 커피 추출 방식으로, 드리퍼만 갖추면 집에서도 간편하게 커피를 내려 마실 수 있다. “초보자가 유량을 일정하게 조절하면서 나선형으로 물을 붓는 게 쉽지는 않습니다. 최근 커피 드립 트렌드는 옛날만큼 철저하거나 까다롭지 않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추출하는 커피의 양과 원두의 양만 정해 놓으면 일관적인 맛을 낼 수 있습니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드립커피에 쓰이는 원두 양은 15g이 기준이었지만 요즘은 20g이 보편적이라고 한다. 한국인의 입맛이 ‘진한 커피’를 선호하는 것으로 바뀐 것이다. 따뜻한 커피를 내릴 땐 원두 20g에 물 300g, 아이스 커피를 만들 땐 원두 20g에 물 200g이 기본 비율이다.
“커피를 내리기 전에 먼저 종이 필터를 적셔서 종이 냄새를 빼는 린싱 과정은 생략해도 괜찮지만 뜸을 들이는 과정은 꼭 필요해요. 뜸을 들이지 않는 것은 준비운동 없이 운동하는 것과 똑같아요. 원두가 품고 있는 가스를 빼내고 잘 추출되도록 예열하는 과정입니다.”
먼저 40g의 물을 붓고 30초간 뜸을 들였다. 그다음 뜨거운 물 110g을 부어 추출을 시작했다. 물을 붓는 기본 방법은 나선형. 드리퍼의 가운데에서 바깥쪽으로, 바깥에서 다시 가운데로 나선형으로 둥글게 물을 붓자 원두가 머핀처럼 둥글게 부풀어 올랐다. 일명 ‘커피빵’이다. 커피빵 크기를 보면 원두의 신선도를 알 수 있다. 로스팅한 지 오래된 원두는 크게 부풀어 오르지 않는다. 드리퍼에 물이 다 빠지기 전에 3차로 물을 부어 총 300g의 커피를 추출했다. 추출 시간은 2분 30초~3분 30초 사이. 이날 맛본 원두는 케냐 AA, 과테말라 안티과, 콜롬비아 수프레모 등 세 가지였다. “과테말라 원두는 스모키 향이 나면서 중후하고요, 콜롬비아는 균형이 잘 잡혀 있고 향이 풍부합니다. 케냐 원두는 신맛, 와인 향, 과일 향 등을 가지고 있어요. 어떤 원두가 입맛에 맞나요?” 수강생들은 원두 맛의 차이를 느끼는 것에 집중했다.
■“간편한 드립백, 원두 용량 아시나요?”
“집에서 핸드 드립 커피에 도전했다가 중간에 그만두는 분이 많습니다. 핸드 드립은 간편함이 장점인데 까다롭게 추출 방법을 지키려다 보면 선뜻 손이 가지 않아요.” 그래서 양 대표는 추출 방법보다는 원두 선택에 무게중심을 두라고 조언했다. 기본적으로 드리퍼는 있어야 하지만 드립 전용 주전자인 드립 포트와 저울은 굳이 없어도 된다는 게 양 대표의 설명이다. “유리나 도자기로 만든 드리퍼는 예열이 늦지만 보온성이 좋고요, 스테인리스 드리퍼는 빨리 뜨거워지지만 빨리 식어요. 하지만 비전문가가 차이를 느끼기는 어렵습니다. 내 눈에 예쁜 걸 사세요. 그래야 한 번이라도 더 내려서 먹게 되지요. 저울이 없다면 추출한 양만큼만 뜨거운 물을 끓이거나 정수기에서 받으면 됩니다.”
홈카페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커피 전문점들은 간편한 드립백 제품을 판매용으로 내놓고 있다. 집에서도 카페에서 마신 커피 맛을 느끼기 위해서 직접 사기도 하고, 캠핑용이나 선물용으로도 인기다. 하지만 막상 드립백을 마셔보면 그 맛이 느껴지지 않는다. 드립백을 제대로 내리는 방법을 물었더니 양 대표가 반대로 질문을 던졌다. “드립백에 원두가 몇 그램 들어 있는지 알고 있나요?” 머그잔이나 찻잔 한 잔을 채울 수 있는 양이 아닐까 했더니 아니란다. 드립백에 든 원두는 대부분 10g 선이라고 한다. 그러니 카페에서 맛본 드립커피의 맛을 내려면 드립백 두 개를 내려야 한다. 즐겨 마시는 찻잔의 높이가 낮다면 드립백 거치대를 이용하면 더 좋다. “언제 어디서나 간편하게 커피를 마시려고 드립백을 이용하잖아요. 굳이 나선형으로 물을 붓지 않아도 됩니다. 대신 뜸은 들여 주시고요. 드립커피의 이상적인 물 온도는 95도이지만 가정용 정수기의 뜨거운 물 정도면 충분합니다.”
커피 맛을 내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원두이다. “원두가 커피 맛의 90%를 차지합니다. 케냐 원두 맛이 좋게 느껴졌다면 에티오피아나 탄자니아 등 아프리카산 원두를 더 경험해 보시고요, 강렬하고 중후한 맛이 좋다면 브라질이나 코스타리카 등 남미 쪽 원두를 마셔 보세요.” 사람마다 입맛이 다르니 각자 느끼는 ‘최고의 커피’ 역시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니 커피를 즐길 때 가장 염두에 둘 것은 ‘내 취향에 맞는 원두 찾기’이다.
2022-11-0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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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 이야기] 제철 맞은 굴
‘클레오파트라의 음식’ 굴의 계절이 돌아왔다.
지난달 24일 경남 통영 굴수하식수협 공판장에서는 2022년 햇굴 초매식 행사가 열렸다. 초매식은 한 해의 첫 위판 경매에 앞서 풍어와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행사다. 통영에서 생산되는 굴은 청정해역으로 평가받는 1만1542㏊의 바다에서 자라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품질의 우수성과 안전성을 인정받고 있다.
굴은 아연 등의 영양소가 풍부하고 피부미용에 좋은 칼슘과 비타민도 대량 함유하고 있다. 그래서 ‘바다의 우유’라고 불리기도 한다. 미인의 상징인 BC 1세기 고대 이집트의 여왕 클레오파트라가 피부 미용을 위해 굴을 즐겨 먹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경상대학교 산학협력단의 한 회사는 2016년 굴에서 추출한 펩타이드 성분인 든 마린타임 핸드크림을 출시하기도 했다.
지구상에 굴이 처음 등장한 것은 2억 년 전으로 추정된다. 1억 4500만 년 전 화석이 발견되기도 했다. 중석기 시대 인류는 간조 때 굴을 채취해 불에 구워 먹었다.
BC 20세기 무렵 일본에서는 굴을 양식하기도 했다. 특히 고대 로마인은 굴을 매우 좋아했다. 그들에게 굴은 간식이자 디저트였다. 고대 로마의 여러 유적에서 굴 껍질 흔적이 흔하게 발견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굴은 날것으로 먹을 수도 있지만, 굽거나 훈연하거나 찌거나 튀기거나 볶거나 삶거나 염장해서 먹을 수도 있다. 나라에 따라 버터를 바르거나 소금을 뿌려 먹기도 한다.
굴은 과거에는 정력제로 알려지기도 했다. 미국과 이탈리아 식품전문가들이 연구한 바에 따르면 굴에는 성 호르몬을 증가시키는 아미노산이 풍부하다.
굴이 정력제로 좋다는 이야기는 사실 신화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리스신화에 따르면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는 바다에서 굴 껍질을 타고 등장한다. 그녀는 사랑의 화살을 쏘는 에로스를 낳았다. 그래서 아프로디테가 타고 온 굴 껍질은 정력에 효과를 낸다는 소문이 퍼진 것이다.
고대 로마인은 이 이야기를 사실이라고 믿었다. 19세기의 유명한 바람둥이 카사노바도 고대 로마인과 비슷하게 생각했다. 그는 하루 평균 50~60개의 굴을 먹었다. 반면 유대인은 굴을 먹지 않는다. 무슬림에게도 굴 섭취는 금기 사항이다.
굴에는 영양 성분이 풍부하다. 요리한 굴 100g을 기준으로 할 경우 열량은 79칼로리에 불과하다. 영양소는 단백질 9g, 탄수화물 4g, 지방 3g, 아연 1일 섭취 권유량의 555%, 비타민 B12 1일 섭취 권유량은 538%, 셀레늄 1일 섭취 권유량의 56%, 철 1일 섭취 권유량의 40%, 구리 1일 섭취 권유량의 493% 등이다. 이밖에 망간, 황, 비타민E, 칼슘 등도 들어 있다. 오메가3 지방산도 풍부하게 들어 있다.
최근에는 굴에 항산화 역할을 하는 DHMBA라는 성분이 들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각종 시험관 연구 결과에 따르면 DHMBA의 항산화 효과는 테트라메칠크로만카복실산(트롤록스)보다 15배나 뛰어나다. 트롤록스는 산화스트레스를 예방하기 위해 흔히 사용되는 비타민E 혼합성분이다. 앞으로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를 더 진행해야 하지만 실험실 연구 결과대로라면 굴에서 채취한 DHMBA는 간 건강을 지키는 데 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통영에서는 1960년대부터 굴 양식이 시작됐다. 지금은 세계각지로 수출될 만큼 맛과 영양, 신선함에 있어 단연 최고라는 평가를 받는다. 올 겨울에는 굴을 즐겨 찾음으로써 건강과 미용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2022-11-02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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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 바닷바람 느낌 물씬 싱싱한 해물탕
부산 해운대해수욕장 이벤트광장에서 해운대역까지 이어지는 구남로는 전국적으로 유명한 여름 휴가철의 성지다. 더위를 피해 해운대해수욕장으로 달려온 관광객은 밤낮으로 구남로를 지나다닌다. 많은 숙소와 크고 작은 식당, 그리고 밤을 휘황찬란하게 밝히는 술집들이 구남로를 가득 메우고 있기 때문이다.
1년 내내 외지인의 발걸음이 끊어질 틈이 없는 구남로에서 20년 가까이 한자리를 지킨 식당이 있다. 수요가 많은 만큼 경쟁도 치열할 텐데 세월이 두 번 바뀔 기간 동안 꾸준히 제자리를 유지했다면 실력이 어지간한 곳은 아니다. 구남로 한쪽 모퉁이 해운대해변로265번길에 있는 이른바 해물탕 골목에 자리를 잡은 ‘홍도해물탕갈치조림’(대표 윤영조, 배정애 부부)이 바로 그곳이다.
윤 대표는 35년 전 이곳에 노래방을 열었다. 음식에 취미가 많았던 그는 틈틈이 요리학원에 다닌 끝에 조리사자격증을 취득했다. 노래방 시대는 저물었다고 판단한 윤 대표는 2003년 11월 1일 홍도해물탕을 개업했다.
코로나 19가 발생하기 이전에는 가게 문을 하루 24시간 열었다. 주방장과 직원도 여러 명 고용했다. 지금은 직원을 구하기도 어려워 사실상 부부끼리만 가게를 운영한다.
홍도해물탕의 주 메뉴는 해물탕이다. 여기에 최근에는 갈치조림도 인기를 얻는 메뉴다. 해물탕은 전복, 낙지, 가리비, 키조개, 모시조개 등의 살아 있는 해산물과 생물 해산물 10여 가지를 기본 재료로 만든다. 주문이 들어오면 해산물에 멸치, 황태, 무, 대파 등을 넣어 끓인 육수를 붓는다. 또 고춧가루와 마늘 등을 섞은 양념장과 콩나물, 각종 채소를 넣어 손님 상에 가져간다.
윤 대표는 “해물탕이 맛있으려면 해산물이 신선해야 한다. 본래의 맛이 우러나는 게 가장 좋다. 그래서 특별한 육수, 양념 재료는 넣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해물탕의 육수는 시원하고 깔끔했다. 많이 맵지 않고 약간 얼큰할 정도였다. 해운대해수욕장에서 갯비린내를 담고 선선하게 불어오는 가을 바닷바람 같은 느낌을 주는 국물이었다. 싱싱한 해물은 잘 익어 부드럽고 신선했다. 질기지 않으면서 적당히 씹는 맛이 있을 정도로 졸깃했다.
갈치조림에는 해물탕 용으로 끓인 육수를 붓고 무, 호박, 두부를 넣는다. 철에 따라 감자나 고구마를 첨가할 때도 있다. 양념은 마늘, 고춧가루를 기본 재료로 한다. 여기에 특이하게도 된장을 약간 섞는다. 윤 대표의 처가인 경남 산청군 생초면에서 만든 시골 된장이다.
갈치조림 국물에서는 된장 맛이 연하게 느껴졌다. 진하지는 않았지만 구수한 맛을 이끌어낼 정도였다. 국물 맛은 매콤하면서 진하고 깊은 게 밥을 끌어당기는 맛이었다. 갈치도 잘 익은데다 양념이 잘 배어 매콤하고 부드러웠다.
홍도해물탕 손님의 90%는 외지인이다. 특히 젊은 연인보다는 부부, 가족끼리 여행을 온 사람이 많이 찾아온다. 윤 대표는 “한 번 먹어본 사람은 다음에 오면 꼭 다시 방문한다. 어떤 손님은 사흘 동안 해운대를 여행하면서 매일 찾아오기도 했다”고 말했다.
윤 대표가 잊지 못하는 손님은 인천 강화도에서 온 사람이다. 시간이 비어 승용차로 해운대 일대를 구경시켜 준 게 계기가 돼 의형제의 인연을 맺었다. 그 손님은 나중에 버스 한 대를 빌려 강화도 지인을 모두 태우고 홍도해물탕을 다시 찾아왔다. 이것이 계기가 돼 나중에는 사과 같은 과일이나 농산물을 선물로 받기도 했다. 하지만 코로나가 터진 이후로는 못 내려와 섭섭하다는 게 윤 대표의 아쉬움이다.
윤 대표는 “외지에서 온 손님이 다른 지인의 소개를 받아 왔다고 하면 기분이 좋다. 이제는 나이가 많아 부부끼리 운영한다. 손님을 많이 받는 것보다는 인연을 소중히 여기면서 재미있게 일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2022-11-0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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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M 픽’ 밀면부터 현지인 맛집까지… ‘아미’ 필수 코스
부산에는 30년 넘게 고객의 발걸음을 끌어당기는 식당이 적지 않다. 이렇게 긴 세월 동안 무너지지 않고 버텼다는 것은 맛에서만큼은 일가견을 갖고 있다는 이야기다. BTS 공연을 보러 부산에 와서 전통의 맛집을 둘러보지 않는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일이다.
■동래밀면
30년 가까이 많은 단골이 드나든 식당이라면 맛을 믿어도 되지 않을까. 동래구 수안동 동래119구조대 인근에 있는 ‘동래밀면’이 바로 그런 식당이다.
1994년에 문을 연 이 곳은 코로나 19 이전에는 매일 2000~3000명이 몰리던 인기 맛집이었다. 나중에는 세계적 인기그룹 BTS의 RM 김남준이 찾아간 사실이 밝혀져 인기를 더 높였다. 동래밀면’의 식탁 중 하나에는 여러 나라 ‘아미’가 이곳을 찾아 가져다놓은 RM사진이 가득하다. 이른바 ‘BTS 맛집 성지’인 셈이다.
밀가루에 옥수수 전분을 5대1의 비율로 섞은 면은 졸깃하고 구수하다. 냉면처럼 질기지 않으면서 밀가루 면보다 씹는 맛이 좋다.
물밀면의 육수는 사골을 12시간 우려낸 국물에 감초, 계피 등 한약재와 양파, 무, 생강, 마늘, 후추 등 채소를 넣고 10시간 끓여 만든다. 향긋하고 담백한 맛이 일품이다. 비빔밀면의 양념에는 고춧가루와 마늘, 생강, 파인애플, 키위, 소금이 들어간다. 매콤하면서 상큼하고 달콤한 게 밀면의 3대 특징이라는 신맛, 단맛, 매운맛이 골고루 느껴진다.
겨울에는 들깨칼국수가 인기를 끈다. 찹쌀가루를 섞은 밀가루 반죽이 인기의 비결이다. 부추를 갈아 넣은 뒤 저온 냉장고에서 하루 숙성시킨 파란색 반죽의 존득하게 씹는 맛이 좋다. 들깨가루에 땅콩가루를 섞어 넣어 고소하다.
■함흥냉면갈비탕
동래구 온천동에는 올해 33년째 이어오고 있는 냉면집이 있다. 녹천탕, 천일탕 등 유명한 온천탕 바로 앞에 자리를 잡은 ‘함흥냉면갈비탕’이 바로 그곳이다. 메뉴는 간단하다. 물냉면과 비빔냉면, 갈비탕과 육개장 딱 4가지다.
물냉면의 면은 메밀과 전분을 반씩 섞어 만든다. 비빔냉면은 고구마 전분만으로 만든다. 냉면 국물은 소 사골과 사태 살을 6시간 정도 끓여 만든다. 여기에 소고기, 닭고기와 간장, 계피, 통생강, 통마늘을 넣어 만든 ‘짬탕’을 섞어 더 끓이면 비빔냉면 육수가 된다. 육수에 양파, 파, 고춧가루를 섞은 게 비빔냉면 양념이다. 물냉면 육수는 잡맛이 없이 부드럽고 깨끗하고 상큼한 맛이다. 기름기가 완전히 제거된 육수여서 담백하다. 고객들이 특히 좋아하는 것은 비빔냉면 양념이다. 부드러운데다 매운 느낌이 별로 없는 게 특징이다.
갈비탕은 미국산 갈비를 잘라 핏물을 12시간 정도 뺀 다음 삶아서 육수를 내고 양파, 파, 생강 등의 양념을 넣어 끓인다. 갈비탕 국물은 담백하면서 은근하게 깊은 맛을 낸다. 육개장 국물도 보통 맛이 아니다. 닭기름과 소기름을 서너 시간 미리 곤다. 손님이 주문하면 비빔냉면 육수용으로 만든 짬탕을 넣고 버섯, 고사리, 숙주나물에 고춧가루와 소기름을 넣어서 볶은 양념을 첨가해 끓인다. 육개장 국물은 그야말로 입안을 깔끔하고 상큼하게 만들어 준다.
■가야포차선지국밥
부산진구 가야2동 가야고등학교 앞에서 30년 넘게 선지국밥과 수구레국밥을 팔아온 ‘가야포차선지국밥’. 오직 국밥 하나만으로 강산이 세 번이나 변할 세월을 지켜왔으니 솜씨 하나만큼은 충분히 인정해주고도 남을 만한 곳이다.
가야포차선지국밥의 가장 큰 특징은 간장이다. 그냥 간장이 아니라 생선을 집어넣어 발효시킨 어간장이다. 평범한 간장과 비교해 감칠맛이 뛰어나다. 국에 넣으면 훨씬 깊은 맛을 낸다.
가야포차선지국밥의 주요 메뉴는 수구레국밥과 선지국밥이다. 수구레는 소의 가죽과 살코기 사이의 부위다. 쫄깃쫄깃한 식감이 가장 큰 특징이다. 선지는 가장 신선한 소피를 사용해 직접 만든다. 그래서 비린내가 나지 않고 부드럽다.
두 국밥의 국물은 똑같다. 콩나물, 무, 갈빗살에 간장을 넣어 끓인 뒤 다시 수구레를 넣고 1시간 30분 동안 삶으면 국물이 완성된다. 갈빗살과 수구레가 들어가 입맛을 끌어당기는 풍미를 주는 수구레국밥은 여기에 수구레를 넣고, 선지국밥은 선지를 넣고 데운다. 국물은 같지만 마지막에 수구레와 선지가 들어간 탓에 국물 맛은 꽤 달라진다. 선지국밥은 가볍고 시원하다. 수구레국밥은 기름기가 조금 더 많아 고소하고 진한 맛을 낸다. 저녁에 찾는 손님들이 즐겨 찾는 술안주는 수구레무침과 돼지석쇠구이다.
글·사진=남태우 선임기자 leo@busan.com
2022-10-13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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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FF 2022] 맛집
영화의 바다에 풍덩 빠지는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이 다가왔다. 기왕 부산에 왔다면 ‘1000개의 얼굴’을 가진 영화 못지않게 다양한 부산의 맛에 빠져보는 것은 어떨까. 다만 맛에 너무 취하면 영화관 입장 시간을 놓칠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동래밀면: BTS도 반했다… 22시간 우려낸 사골 육수 ‘일품’
30년 동안 많은 단골이 드나든 식당이라면 맛을 믿어도 되지 않을까. 동래구 수안동 동래119구조대 인근에 있는 ‘동래밀면’은 그런 식당이다. 1994년에 문을 연 이 곳은 코로나 19 이전에는 매일 2000~3000명이 몰리던 인기 맛집이었다. 세계적 인기그룹 BTS의 RM 김남준이 찾아간 사실이 밝혀져 인기를 더 높였다.
밀가루에 옥수수 전분을 5대1의 비율로 섞은 면은 졸깃하고 구수하다. 물밀면의 육수는 사골을 12시간 우려낸 국물에 감초, 계피 등 한약재와 양파, 무, 생강, 마늘, 후추 등 채소를 넣고 10시간 끓여 만든다. 향긋하고 담백한 맛이 일품이다. 비빔밀면의 양념을 만들 때에는 먼저 믹서로 야채를 잘게 간다. 고춧가루와 마늘, 생강, 파인애플, 키위 등과 소금을 추가해 버무리면 완성이다. 매콤, 상큼, 달콤해서 밀면의 3대 특징이라는 신맛, 단맛, 매운맛을 골고루 느낄 수 있다.
겨울에는 들깨칼국수가 인기다. 찹쌀가루를 섞고 부추를 갈아 넣은 파란색 반죽은 존득하게 씹는 맛이 좋다. 들깨가루에 땅콩가루를 섞어 넣어 고소하다.
함흥보쌈사계절냉면:고구마 전분 100%로 만든 면발의 쫄깃함
영도구 남항시장공영주차장 인근의 ‘함흥보쌈사계절냉면’은 그야말로 스타 냉면집이다. 소상공인진흥공단의 ‘백년가게’에 이어 부산경제진흥원의 ‘스타소상공인’으로 뽑혔으니 스타라고 부를 만하다.
올해로 개업 33년을 맞은 함흥보쌈사계절냉면에서 사용하는 면은 고구마 전분 100%이다. 물냉면 육수의 기본은 사골양지를 삶은 국물이다. 여기에 마늘 같은 채소를 넣어 다시 끓이면 된다. 육수는 깔끔하고 담백한데다 잡스러운 맛은 전혀 없다. 비빔냉면의 양념은 양파가 많이 들어가는 게 특징이다. 양념의 양파 맛은 꽤 강하지만 거슬리는 게 아니라 묘하게 입맛을 끌어당긴다.
보쌈도 냉면 못지않게 인기를 끄는 메뉴다. 고기에 당귀, 감초, 메주콩, 생강 등을 넣어 삶는다. 고기가 메주콩 액을 흡수하면 고소하고 감칠맛이 더해진다. 고기를 삶을 때에는 두시간 가량 물에 담가 핏물을 뺀다. 고기는 부드럽고 달콤하다. 식당에서 직접 만든다는 보쌈김치는 많이 달지 않고 신선하다. 무말랭이는 적당히 잘 익은데다 씹는 맛이 좋다.
금정산성창녕집:1960년대 시작된 염소·오리고기 전통 맛집
맛이 달라지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연륜이다. 1960년대에 문을 열어 금정구 금정산성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금정산성창녕집’의 염소고기와 오리고기를 먹어보면 연륜의 중요성을 이해할 수 있다.
최고 인기 메뉴는 오래 숙성시킨 양념으로 구운 흑염소숯불구이, 오리숯불구이다. 한약재를 넣어 끓인 한방토종오리백숙도 인기를 끈다. 염소숯불구이 양념은 여러 단계를 거쳐 만든다. 오동나무, 월계수 등 한약재 일곱 가지를 끓여 발효시킨 다음 개복숭아, 간장에 마늘, 파 등을 넣는다. 한방오리백숙에 들어가는 한약재는 오가피, 엄나무, 월계수, 대추, 당귀 등 7가지다. 따뜻한 물로 데쳐 오리고기에서 기름기를 걷어낸 뒤 물과 소금을 넣고 1시간 이상 끓이면 된다.
오리숯불구이는 매콤하다. 고추장, 고춧가루를 기본으로 하는 양념 덕분이다. 엄나무, 뽕나무, 꾸지뽕나무를 삶고 다시마를 넣어 10분간 우려낸 후 간 배, 양파와 간장, 고추장, 고춧가루를 넣어 한 달간 숙성시킨다.
통나무하우스:정갈한 집밥 생각나는 한식 코스요리 ‘엄지척’
동래구 온천장 농심호텔 앞에 자리를 잡은 ‘통나무하우스’의 주요 메뉴는 점심 특선과 저녁 코스 요리다. 둘 다 다양한 한식으로 구성됐다. 점심 특선의 경우 파전, 취나물 무침, 말린 도루묵 무침, 전복 내장 미역국, 돼지불고기, 배추 겉절이, 두부 졸임, 나물, 가자미 구이, 잡채, 꼬막 무침 등이 나온다. 음식 하나하나에 정성이 가득 든 게 느껴진다.
된장과 참기름으로 무친 취나물은 신선하면서 고소하고 짭짤하다. 말린 도루묵 무침은 겉은 쫄깃하고 속은 부드러워 입맛을 끌어당긴다. 미역국은 향긋한 바다 냄새와 고소한 맛이 조화롭다.
돼지불고기는 짜지 않으면서 깊은 맛이 좋다. 꽈리고추를 넣고 소고기를 갈아 섞은 두부 졸임은 담백한 맛이 조화를 잘 이룬다.
글·사진=남태우 선임기자 leo@busan.com
2022-09-22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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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 이야기] 초밥의 위기…기후 변화, 일본 가다랑어·와사비에 영향
일본 남서부 고치 현은 수백 년 동안 이어온 가다랑어 어업으로 유명한 곳이다. 가다랑어는 일본에서 회나 초밥, 또는 가쓰오부시(가다랑어포)를 만들어 먹는 중요한 요리 재료다.
고치 현의 어부들은 최근 들어 전례 없이 이상한 현상을 목격하면서 걱정이 많아졌다. 아주 살찐 가다랑어가 많이 잡힌다는 사실이다. 가다랑어가 살찐다는 것은 플랑크톤 같은 먹이가 많아졌다는 걸 의미한다. 플랑크톤이 늘어났다는 것은 바다의 수온이 높아졌다는 사실을 뜻한다. 실제로 고치 현 앞의 토사 만 수온은 지난 40년 사이에 섭씨 2도 가량 높아졌다. 즉 살찐 가다랑어는 기후변화를 상징하는 장면인 것이다.
가다랑어가 통통하다면 어민으로서는 돈을 더 벌 수 있다. 그런데 왜 이들은 걱정하는 것일까. 단기적으로 보면 가다랑어 무게가 많이 나가니 당장은 수입이 늘어나지만 장기적으로는 그렇지 않다. 수온이 계속 오르면 미네랄이 풍부한 해수가 수면으로 올라오지 못하게 된다. 나중에는 플랑크톤이나 작은 물고기가 줄어들고 가다랑어는 결국 굶어죽게 된다.
일본 어업은 어민의 고령화로 애를 먹고 있다. 이미 최근 30여 년 사이에 많은 어민이 어업에서 손을 뗐다. 이런 터에 기후변화 때문에 가다랑어처럼 환금성이 높은 어종이 사라지면 어업에 치명적 타격을 줄 수 있다.
머지않은 장래에 가다랑어로 만드는 회나 초밥, 가쓰오부시를 못 먹게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높아지고 있다. 40년 전만 해도 수십 개였던 고치 현의 가쓰오부시 공장은 최근 들어 서너 개로 줄었다. 남은 공장들도 머지 않아 문을 닫지 않을 수 없을 거라고 우려한다.
와사비도 가쓰오부시와 비슷한 처지로 내몰렸다. 와사비를 키우려면 기온이 너무 높아도 안 되고 습도가 지나치게 높아도 안 된다. 와사비 생산에 가장 적합한 기온은 21도 정도다. 최근 들어 일본 최대의 와사비 생산지인 시즈오카의 기온은 30도를 훨씬 넘는다. 시즈오카만 그런 게 아니다.
해발 1000m 이상 산이 많은 오쿠타마 산맥에 자리 잡은 도쿄 북서부의 오쿠타마 마을은 19세기부터 와사비 농사를 지었다. 이곳에서도 기온 상승 때문에 와사비 농사가 잘 안 돼 농가 75%가 농사를 포기했다. 기온이 높아진데다 과거보다 비가 많아지고 심지어 홍수도 자주 일어난다. 수질도 과거에 비해 매우 나빠졌다. 지금처럼 기온이 계속 높아지면 머지않아 와사비를 더 이상 재배할 수 없게 될 지도 모른다고 현지 농민은 걱정한다.
가다랑어와 와사비가 사라지면 결국 일본 초밥에도 결정적 타격을 미치게 된다. 두 재료가 없는 초밥은 생각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과연 기후변화는 일본 음식문화의 상징인 초밥마저 없애버리거나 변화시키게 될까. 안타까운 일이지만 어두운 전망은 점점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2022-07-27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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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 이야기] 옥수수의 양면성… 세계서 많이 소비되는 식물 중 하나, 재배 위해선 환경오염 불가피
7월은 옥수수 출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시기다. 전북 여수에서는 찰옥수수 출하를 앞두고 백화점, 방송 등을 활용해 홍보 활동을 벌이고 있다.
전남 나주와 해남에서도 옥수수(사진) 출하가 시작됐다. 충북 옥천에서는 7월 16~17일 제12회 옥수수, 감자 축제를 연다.
옥수수는 1만여 년 전 멕시코에서 처음 재배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메리카 대륙에 첫 발을 디딘 유럽인인 콜럼버스는 옥수수를 유럽에 소개했다. 동양의 경우 중국에서 옥수수 재배를 처음 시작했다.
옥수수는 전 세계에서 많이 소비되는 식물 중 하나다. 용도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빵은 물론 과자를 굽는 데 사용하기도 하고, 소 등 가축에게 먹이기도 한다. 통나무처럼 난방 연료로도 많이 쓰인다. 최근에는 에탄올 생산 원료로서의 가치도 높다.
옥수수는 수분 76%, 탄수화물 19%, 단백질 3%, 지방 1% 등으로 구성돼 있다. 옥수수 가루 100g의 열량은 86㎈다. 옥수수에는 비타민 B 등의 비타민 성분이 풍부하다. 또 섬유질과 미네랄은 물론 마그네슘, 인, 아연, 망간 등 다른 영양소도 함유돼 있다.
옥수수 수염은 간에 매우 좋다. 요로감염증 치료에도 도움이 된다. 중국 전통의학이나 북미, 중미 원주민 민간의학에서도 옥수수 수염을 치료제로 많이 사용했다. 주로 말라리아, 전립선 질병, 심장병 등의 치료제로 환자에게 처방했다. 최근에는 혈압을 낮추는 효과를 가진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게실염 치료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옥수수에게는 치명적 단점이 있다. 바로 지구를 해친다는 사실이다. 지구상에서 생산되는 옥수수의 절반 이상은 가축 사료로 이용된다. 소고기 1kg을 생산하기 위해 필요한 옥수수 양은 8~12kg에 이른다. 효율성이라는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이다.
게다가 옥수수를 생산하려면 엄청난 천연 자원이 소요된다. 다른 곡물보다 물을 많이 흡수하는데다 비료도 더 많이 뿌려야 한다. 비료에는 질산과 인산염이 풍부하다. 바다 오염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두 가지 성분이다. 전 세계 농업의 질산 오염 중 40%는 옥수수 재배 때문이다.
옥수수는 단작농업으로 자란다. 다른 농작물과 교체 재배되지 않는다. 그래서 옥수수는 병충해에 매우 약하다. 농민은 살충제, 제초제를 뿌리지 않을 수 없다. 두꺼운 옥수수 껍질이 살충제를 막아주지만 스며드는 양도 적지 않다. 이런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옥수수에는 유전자조작 품종이 많다.
전 세계에서 기아에 허덕이는 인구는 10억 명 이상이다. 만약 가축을 기르기 위한 옥수수 재배 면적을 줄이고 다른 곡물 재배 면적을 늘리면 환경오염을 감소하면서 식량 생산량을 늘릴 수 있다는 게 환경운동가 및 식량전문가의 주장이다. 과연 지구촌은 이런 주장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2022-06-29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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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S RM도 즐긴 30년 밀면의 깊은 맛
밀면은 부산시가 선정한 ‘부산의 향토음식’이다. 여름이 되면 부산에서는 누구나 밀면을 먹는다. 부산 사람이라면 단골처럼 다니는 ‘추억의 밀면 식당’이 한두 곳 있게 마련이다. 동래 수안동에도 많은 사람이 30년 가까이 밀면을 즐긴 맛집이 있다. 동래119구조대 앞의 ‘동래밀면(대표 구본열)’이 바로 그곳이다.
구 대표는 경남 밀양 상동면 안인리 출신이다. 중학교를 졸업한 뒤 기술을 배우려고 부산의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졸업한 후에는 친척이 운영하던 공장에서 일했다. 나중에는 직접 사업에 손을 댔다.
식당을 시작한 것은 1994년이었다. 처음에는 갈빗집을 하다 업종을 밀면으로 바꿨다. 처음에는 밀면을 제대로 만들지 못했다. 당연히 손님이 찾지 않았다. 다른 밀면 식당을 찾아다니며 맛을 보고 혼자서 공부도 한 덕분에 나름대로 ‘비법’을 개발할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코로나19 이전에는 하루 손님이 3000명을 넘었다.
‘동래밀면’의 식탁 중 하나에는 사진이 잔뜩 놓여 있다. 대형 사진 간판도 세워져 있다. 세계적 인기그룹 BTS의 RM 김남준이다. ‘동래밀면’에서 그가 밀면을 맛보고 간 이후 여러 나라 ‘아미’가 이곳을 찾아와 가져다놓은 사진이다. 이른바 ‘BTS 맛집 성지’인 셈이다.
물 밀면의 육수는 사골을 12시간 우려낸 국물을 기본으로 한다. 여기에 감초, 계피등 한약재 4가지와 양파, 무, 생강, 마늘, 후추 등 채소 7가지를 넣고 10시간 더 끓인다. 육수를 끓였다 식혔다 다시 끓이는 데에만 사흘 걸린다.
물 밀면의 육수부터 떠먹어봤다. 향긋하고 담백한 맛이 일품이었다. 하루에 손님 3000명이 왔다는 말이 거짓말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면은 밀가루에 옥수수 전분을 5대1의 비율로 섞는다. 이렇게 하면 졸깃하면서 구수한 맛이 더해진다. 냉면처럼 질기지는 않으면서 밀가루로만 만든 면보다 훨씬 씹는 맛이 좋다. ‘동래밀면’을 다녀간 한 고객은 인터넷에 ‘여기 물밀면이 진리’라는 댓글을 달았다.
비빔 밀면의 양념은 믹서로 잘게 간 야채를 기본으로 한다. 여기에 고춧가루를 넣은 뒤 마늘, 생강, 파인애플, 키위 등과 소금을 추가한다. 양념은 약간 매콤하면서 상큼하고 달콤하다. 밀면의 3대 특징인 신맛, 단맛, 매운맛이 조화를 잘 이룬 맛이다.
‘동래밀면’의 또다른 장기는 들깨칼국수다. 여름보다는 겨울에 잘 팔리는 메뉴다. 구 대표는 “칼국수에 들깨를 넣은 것은 부산에서는 우리 식당이 처음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들깨칼국수의 핵심은 찹쌀가루를 섞은 밀가루 반죽이다. 부추를 갈아 넣어 파란색인 반죽은 저온 냉장고에 넣어 하루 숙성시킨다. 이렇게 하면 존득하게 씹는 맛이 강해진다. 면이 뚝뚝 끊어지는 경우가 드물다. 들깨는 껍질을 벗겨 가루를 낸 뒤 땅콩가루를 섞어 칼국수에 넣는다. 들깨가루만 넣는 것보다 훨씬 고소하다.
국물은 멸치와 채소를 우려낸 물이다. 밀면 육수처럼 평범해 보이는 칼국수 국물에도 30년 가까운 연륜이 배어 있다. 경험과 연륜을 이길 수 있는 맛은 없다.
왕만두도 인기 메뉴다. 피는 물론 속까지 식당에서 직접 만든다. 속에는 양파, 부추, 호박, 당근, 돼지고기와 비계를 넣는다. 채소 맛이 풍성하게 느껴지는 맛이다. 속이 꽉 차서 씹는 맛도 좋다.
‘동래밀면’은 오랜 역사를 가진 만큼 단골도 많다. 부모를 따라 다녔던 어린이가 어른이 돼 다시 오는 경우도 적지 않다. 서울에 취직한 젊은이가 부산에 돌아오면 가장 먼저 이곳에 밀면을 먹으러 오기도 한다. 인터넷 댓글에도 비슷한 내용이 많다. ‘신랑이 제일 좋아하는 집, 연애할 때 자주 온 곳.’ ‘오랜만에 온 추억의 가게, 여전히 맛있네요.’
2022-06-2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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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 이야기] 블루베리·말린 자두·포도·석류… 류머티즘성관절염 치료에 도움
류머티즘성관절염은 면역 기능 이상 때문에 발생하는 질환이다. 외부 균을 공격해야 하는 면역체계가 거꾸로 인체를 공격하는 바람에 병이 생기는 자가면역질환이다. 이 병에서 완쾌하려면 장기간 약을 복용해야 한다. 이 때문에 부작용 우려가 적지 않다.
외국에서는 식품으로 류머티즘성관절염의 진행을 늦추거나 치료에 도움을 주는 방법에 대한 연구가 이어지고 있다. 인도 KIIT 대학교의 바운다 굽타 박사 연구팀이 최근 실시한 연구도 그중 하나다. 그의 연구 결과는 최근 식품 저널 ‘프런티어스 인 뉴트리션’에 게재됐다. 결론은 ‘슈퍼 푸드를 많이 섭취하면 류머티즘성관절염 진행 지연, 통증 완화 및 치료에 큰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굽타 박사는 언론 인터뷰에서 “특정 섬유질, 채소, 과일, 향신료를 정기적으로 섭취하면 염증을 일으키는 물질을 제거한다. 이를 통해 류머티즘성관절염의 부작용을 줄일 수 있게 해 준다”고 설명했다. 그는 “환자가 잡식성 식사, 음주, 흡연 습관을 없애고 지중해식, 비건식 식습관을 받아들이면 효과를 더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굽타 박사 팀이 류머티즘성관절염 치료에 도움이 된다고 추천한 슈퍼 푸드는 다양하다. 과일 중에는 블루베리(사진), 말린 자두, 포도, 자몽, 석류, 망고, 바나나, 복숭아, 사과가 있다. 곡물류는 밀, 옥수수, 쌀, 귀리, 호밀, 보리, 수수 등이다. 또 올리브오일, 생선오일, 서양지치씨오일은 물론 굳은 요구르트, 검은콩, 생강, 강황, 녹차, 바질차도 포함됐다.
굽타 박사 연구팀에 따르면, 이런 식품은 키토키네스라고 불리는 면역체계에서 분비되는 염증 물질을 감소시킴으로써 관절의 경직성과 통증을 줄인다. 산화스트레스도 감소시켜 인체가 해로운 성분을 해독시키는 힘을 길러준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블루베리에는 염증을 최소화하는 데 도움이 되는 산화방지제, 비타민, 각종 미네랄이 풍부하다. 수년 전 여성 3만 8176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매주 두 번 이상 섭취한 여성의 혈액 내 염증 수준은 미섭취자보다 14% 적었다.
다른 연구에서는 생포도 253g에 해당하는 포도 농축 파우더를 3주간 매일 섭취한 사람들은 염증 지표가 눈에 띄게 줄었다. 올리브오일은 오래전부터 소염 성분이 풍부한 걸로 유명한 식품이다. 한 조사에서는 류머티즘성관절염 환자 49명에게 생선오일과 올리브오일 캡슐을 24주간 매일 섭취시켰다. 그 결과 염증 지표가 크게 낮아졌다. 올리브오일을 섭취한 그룹에서는 38.5%, 생선오일을 섭취한 그룹에서는 40~55% 낮아졌다.
2022-06-01 [22: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