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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매콤한 낙지도, 부드러운 치즈도 홀린 ‘동래아들’ [술도락 맛홀릭]
일본에서 사케 전문가로 활동한 한국인. 뒤늦게 우리 술에 빠져 고향 부산으로 돌아온 청년. 수많은 시도 끝에 완성한 막걸리로 ‘대상’까지 받았고, 이제는 한국의 양조 문화를 세계에 알리려 한다. 부산의 한 주택가에서 태어난 ‘동래아들’ 이야기이다.
■돌고 돌아, 우리 술에 빠지다
부산 동래구의 한 주택가에 있는 빛바랜 타일 외벽의 3층짜리 건물. 전통주 양조장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아 보이지만, 부산 대표 술로 떠오른 ‘동래아들’ 막걸리가 탄생한 곳이다.
양조장 ‘기다림’ 조태영(41) 대표에게 동래아들은 ‘부캐’(또 다른 캐릭터) 혹은 분신 같은 술이다. 20년 동안 술을 공부해 온 세월의 무게와 경험치, 전문성이 한 병 한 병 고스란히 담겨 있다.
갓 불혹을 넘긴 청년 양조인이지만 술 관련 경력은 여느 장인 못지않다. 20대 초반 술을 공부하러 일본으로 건너갔고 바텐더와 소믈리에, 일본 전통주인 사케 전문가로도 활동했다.
“일본에선 바텐더를 굉장히 품격 있는 전문직으로 여겨요. 60대에도 활동하는 바텐더가 있을 정도죠. 사케 전문가 자격증을 따서 현지인을 가르쳤는데, 한국인 강사라 그런지 더 좋아했던 것 같아요.”
부지런히 유럽 와이너리를 오가며 와인 공부도 하는 등 정신없이 술에 빠져 지내던 조 대표에게 우연히 새로운 술이 찾아왔다. 2011년 서울에서 열린 한 전통주 행사에 참석했다가 전통 방식으로 제대로 빚은 우리 술을 맛본 것이다.
“소곡주처럼 올드한 느낌의 술이었는데, 와인 같기도 사케 같기도 한 게 오묘했어요. 뭔가 가능성이 있겠다는 생각에 독학으로 우리 술을 빚기 시작했죠.”
맥주·사케·위스키까지 홈브루잉(자가양조)을 하던 그였지만 막걸리 양조는 처음이었다. 숙취가 심한 체질이 외려 도움이 됐다. 정통 발효법으로 막걸리를 빚었더니, 마신 다음 날 전혀 숙취가 없었다. ‘기존 막걸리는 왜 숙취가 심할까’ ‘지레 막걸리를 기피하는 사람들에게 숙취 없는 맛을 보여 줄 방법은 없을까’ 물음은 꼬리를 물었고, 결국 해결책을 찾아 창업을 결심했다.
■옥동자 ‘동래아들’이 탄생하기까지
2011년 한국으로 돌아온 조 대표는 우리 술에 대해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관련 지식과 경험이 무르익었을 무렵 동래구 사직동 주택가에 1인 스타트업 ‘제이케이크래프트(JKCRAFT)’를 차렸다. 양조장을 제조 공장처럼 운영하기 싫어 선택한 장소였다.
“일본에선 300~400년 된 양조장이 집 근처에 있어요. 우리나라도 옛날엔 ‘가양주’ 문화가 있었잖아요. 양조를 제조가 아닌 문화로 보고 색다른 공간에서 표현해보고 싶었습니다.”
처음 가보는 길인 만큼 걸림돌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지역특산주 면허로는 부산 1호인 데다, 주택가에 양조장이 들어선 전례가 없다 보니 행정기관의 허가를 받기까지 무려 1년이 걸렸다.
긴 기다림 끝에 2015년 양조 허가를 받은 제이케이크래프트는 이듬해 첫 번째 술 ‘기다림34’를 선보였다. 발효부터 숙성까지 100일이나 걸리고, 가격도 1만 2000원으로 당시로선 선뜻 지갑을 열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맛을 보고 만족스러워하다가도 가격을 얘기하면 다들 손사래를 쳤어요. 초창기엔 국내 영업이 힘들어 술을 메고 일본으로 다녀야 했죠. 후쿠오카 일식당 등 20여 곳에 ‘라이스 와인(Rice Wine)’이라 홍보하며 판매를 했어요.”
‘기다려온’이란 브랜드로 비누·샴푸·트리트먼트 등 발효 제품도 출시하며 사업을 확장할 무렵, 조 대표는 안주하지 않고 또 한 번 도전에 나섰다. ‘기다림34’ 생산을 전면 중단하고 좀 더 대중적인 술 개발에 나선 것이다.
기다림에 담긴 초심과 철학을 그대로 가져와 2019년 양조장 ‘기다림’을 만들었고, 1년 뒤 첫 작품 ’동래아들’ 막걸리를 선보였다. “기다림 막걸리가 와인을 만들 듯 제가 제일 잘하는 공법으로 빚었다면, 동래아들은 음료수처럼 만들었어요. 누구든지 편하게 마실 수 있기를 바라면서요.”
■호불호 없는 음료수처럼 빚은 술
부산 강서구 해포도 쌀로 빚은 동래아들 막걸리는 하얀 빛깔부터 시선을 끈다. 병을 잘 흔들어 투명한 잔에 따르면 술인지 우유인지 분간하기 힘들 정도다. 맛 또한 막걸리스럽지 않다. 산미가 거의 없고, 목 넘김은 우유나 요구르트처럼 부드럽다. 하얀 바탕에 파스텔톤 하늘색으로 디자인한 술병 라벨과 딱 어울리는 이미지의 맛이다.
막걸리란 술 특유의 개성을 옅게 해, 외려 개성 있는 막걸리로 거듭난 느낌. 날카로운 산미를 부드럽게 다듬기 위해 일반적으로 잘 쓰지 않는 범주의 누룩과 미생물을 사용했다는 게 조 대표의 설명이다. “전통주를 빚을 때 누룩을 바꾸는 건, 마치 요리사가 쓰던 칼을 바꾸는 것과 같아요. 직원들도 굉장히 의아해했죠.”
사실, 동래아들 막걸리는 2020년 말 출시 이후 8차례 맛의 변화가 있었다. 조 대표는 직원들이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미세한 변화를 주면서 지금의 동래아들을 완성했다. 꾸준히 작은 변화를 시도한 이유는 맛의 균질함, 즉 품질 때문이다.
“한국의 전통적인 양조 방식은 불안정한 측면이 있어요. 10여 년 전 막걸리 세계화 붐이 일었다가 실패한 이유도 품질 때문이었어요. 외국인들에게 할머니 손맛을 얘기하면 안 통하거든요. 수제의 감성을 가지면서도 발효는 과학적이어야 합니다.”
조 대표는 안정적인 발효를 위해 밑술 단계에서 젖산을 활용하는 기초 작업을 추가했다. 덕분에 밑술에 덧술을 더한 이양주이면서도, 세네 번 빚은 삼양주·사양주 같은 깊이감이 있다.
균질한 맛을 향한 집념은 결국 우리 술 전문가들의 인정을 받았다. 지난해 ‘대한민국 주류대상’에서 대기업 국순당과 함께 ‘대상’(탁주-생막걸리 부문)의 영예를 안았다.
조 대표는 더 높은 단계의 품질 안정화를 위해 스마트 팩토리처럼 양조 공정을 시스템화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같은 프로 끓이면 똑같은 맛이 나는 라면처럼, 언제 어디서나 간편하게 빚어 똑같은 술맛을 낼 수 있는 공정을 개발해 양조를 업으로 하려는 이들에게 보급할 계획이다.
조 대표의 더 큰 꿈은 우리나라 양조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일이다. 그 첫걸음으로 부산지역 대표 맛집 중 하나인 ‘원조 안경희 개미집’과 손을 잡았다. 양조장과 음식을 결합한 커뮤니티 공간을 상반기 중 부산에 선보이고, 하반기엔 일본 오사카에 2호점을 열 예정이다.
■부드러움과 매콤함, 극과 극의 조화
우유와 치즈가 만나면 느끼할 수 있지만, 우유 같은 동래아들 막걸리와 치즈는 멋진 마리아주(궁합)를 이룬다. 부드러움과 부드러움이 만나 한층 부드럽게 어우러지는 느낌이다. 치즈가 듬뿍 들어간 피자류도 동래아들과 곁들이기에 좋다.
동래아들의 부드러움은 정반대로 매운 음식과도 잘 어울린다. 50년 역사의 ‘원조 안경희 개미집’과 공동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표 메뉴인 낙곱새는 신선한 재료와 특유의 매콤한 양념으로 입맛을 돋운다. 낙지는 한국산과 가장 맛이 비슷한 중국산 중에서도 최고 등급을 매달 샘플 테스트를 통해 엄선한다. 큼지막한 한우곱창은 당일 도축장에서 공수해 오는데, 곱창에 반해 찾는 이들도 많다고 한다.
현재 동래아들 막걸리는 온라인과 메가마트 동래·남천점, 보틀숍과 일부 주점에서 판매하며 개미집 같은 일반 식당에선 맛볼 수 없다. 동래아들과 개미집이 합작하는 커뮤니티 공간이 그래서 더 기다려진다.
글·사진=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기자들의 시음평]
▶김희돈 스포츠라이프부 부장
“요구르트 약간 섞은 우유맛. 막걸리에 대한 고정관념을 깬다.”
▶남형욱 디지털미디어부 기자
“달콤한데 끝맛은 상큼. 치즈와 함께 마시니 서로 잘 섞인다.”
▶이상배 디지털미디어부 기자
“탄산이 없어 부드러움에 부드러움을 더한다. 와인향이 난다.”
▶이지민 디지털미디어부 에디터
“묵직하고 무거운 느낌인데, 달달해서 술술 잘 넘어간다.”
[전문가의 맛 코멘트]
▶이지민 대동여주도 대표
“초창기 동래아들이 정겨운 동네 토박이 같은 느낌이라면 지금의 동래아들은 좀 더 대중성 있게, 마시기 편하면서도 산뜻함이 더해졌다. 곡물의 질감도 적당히 느껴지면서 담백하며, 밀키한 느낌에 요구르트의 새콤함과 싱그러움이 더해져 맛있는 막걸리가 탄생한 느낌. 치즈 무스 케이크, 화이트 롤케이크, 생크림 케이크 등과 함께 맛보면 완벽한 디저트 페어링이 완성될 것 같다.”
-제품명 : 동래아들 막걸리
-양조장 : 기다림(부산 동래구)
-내용량 : 750mL
-알코올 : 6.0%
-원재료 : 정제수·쌀·누룩·젖산
2023-02-0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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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도락 맛홀릭] 따로 또 같이, '산청 전통주' 맥 잇는 부자(父子) 양조장
산과 물의 고장 경남 산청(山淸)에 가면 할아버지에서 아버지·아들까지, 3대째 전통을 이어 가고 있는 양조장이 있다. 반백 년 역사의 양조장에서 아버지는 전통 방식을 고집하고, 아들은 바로 옆에 새 양조장을 차려 전통의 틀을 깨려 도전 중이다. 우리 술의 전통과 미래, 신구의 오묘한 조화를 꿈꾸고 있는 이웃한 부자(父子) 양조장을 찾았다.
■父, 전통이 익어 가는 ‘산청양조장’
산청읍내 최중심지에서 조금 떨어진 곳. 산청소방서와 길 하나 사이를 두고 사이좋게 자리한 두 개의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왼쪽 새 건물은 아버지 김대환(63) 씨가 운영하는 ‘산청양조장’, 오른쪽은 옛 산청양조장 공간에 청년창업가인 아들 김태건(32) 대표가 차린 ‘몬스터빌리지’ 양조장이다.
산청양조장은 공식 기록으로만 50년 넘는 역사를 지녔다. 김 대표의 할아버지가 1971년 인수를 했는데, 그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훨씬 오래된 셈이다.
지난해 가을 산청양조장은 아버지 김 씨의 오랜 바람인 ‘산청약주’를 정식 출시했다. 김 씨가 할머니 어깨너머로 본 옛 방식 그대로 빚어, 지인들하고만 나누던 술이었다. 2021년 지역특산주 약주 면허를 갖추고, 바로 옆 부지에 새 건물을 지어 확장 이전을 하면서 제품화의 길이 열렸다.
김 씨의 할머니 레시피에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 약재로 유명한 산청의 상황버섯을 넣었다는 점이다. “술은 술다워야지 다른 향이 강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이것저것 첨가해 본 결과 상황버섯의 향이 특출나지 않아 술맛을 그대로 표현할 수 있겠더라고요.”
MZ세대인 김 대표가 보기엔 산청약주는 아버지의 고집 그 자체다. “일반 막걸리를 빚는 공정도 힘든데, 약주는 몇십 배 더 힘들어요. 대량 생산을 위해 기계의 힘을 빌리는 막걸리와 달리 약주는 60~70년대처럼 직접 짜는 방식을 고집하세요. 그러다 보니 여과도 숙성도 너무 오래 걸려요.”
산청 메뚜기쌀과 청정 지하수로 빚은 산청약주는 주모(밑술)를 포함해 4차례 술을 빚는 ‘사양주’이다. 발효만 한 달 이상, 옛 방식대로 70L짜리 한 통 분량을 짜는 데만 일주일이 걸린다. 이후 100일 동안 저온 창고에서 숙성 과정을 거친다. 다 합치면 수개월이 걸리는 지난한 과정이다.
100일이 지났다고 해서 곧바로 술을 출시하는 건 아니다. 최종적으로 아버지 김 씨의 입맛을 통과해야 한다. 최근 전통주 콘텐츠·유통 플랫폼인 대동여주도와 함께 카카오메이커스에서 진행한 판촉 행사에도 아버지 입맛을 통과해 출고일을 맞추느라 애를 먹었다.
“당도와 산도를 체크했을 때 소수점 단위 차이밖에 안 나는데 아버지는 ‘조금 더 숙성시켜야 된다’고 하시더라고요. 결국 막판에 온가족이 동원돼 턱걸이로 출고일을 겨우 맞출 수 있었어요.”
고생스러운 전통 방식을 따르는 대신 김 대표와 아버지는 1년에 세 번만 약주를 빚기로 합의를 봤다. 한 번에 1000병씩 생산하니, 연간 고작 3000병만 맛볼 수 있다.
깊은 정성, 오랜 시간이 담긴 술이어서 그런지 투명한 병에 담긴 산청약주의 영롱한 황금 빛깔이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한 잔 따라 천천히 들이키자 상황버섯의 은은한 향미가 오랫동안 입안에 맴돈다. 고급진 약주인 만큼 제사상이나 명절 차례상에 제격이다.
■子, 새로움이 샘솟는 ‘몬스터빌리지’
학창 시절부터 산청양조장에서 아버지 일을 도운 김 대표는 지난해 큰 도전에 나섰다. 대학 후배 2명과 의기투합해 새 산청양조장 바로 옆, 비어 있던 옛 건물에 따로 양조장을 차린 것이다. 산청양조장의 명성에 기댈 수도 있지만 김 대표는 새로움을 택했다. 본인과 멤버들을 형상화한 캐릭터를 만들고, 양조장 이름도 전통주스럽지 않은 ‘몬스터빌리지’라고 지었다.
몬스터빌리지의 시작은 김 대표가 2019년 제주도에서 열린 ‘양조기술교실’에 참가한 게 계기였다. “진짜 색다른 술이 너무 많고, 온라인에서 술을 팔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어요. 신세계였죠. 산청지역에선 저희 술이 판매량이 높으니까 나름 괜찮다고 생각했었는데, 우물 안 개구리처럼 이대로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후 김 대표는 한국가양주연구소와 신라대 우리술 전문인력 양성과정 등을 찾아다니며 전통주에 대해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처럼 술을 잘 못 마시는 사람, 전통주 입문자를 위한 양조를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술 잘 마시는 사람들을 위한 술은 계속 개발되고 잘 팔리는데, 왜 술이 약한 사람을 위한 술은 없을까’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개발한 술이 ‘설레’예요.”
‘저 세상의 달달함을 보여 주겠다’는 각오로 만들었다는 ‘설레’는 라벨부터 핑크색으로 달달함을 물씬 풍긴다. 본인 캐릭터 ‘청산’이 발그레한 볼로 웃고 있는 디자인도 재밌다.
설레가 세상에 나온 지 1년쯤 지난 지난해 12월, 김 대표는 크리스마스를 맞아 ‘소풍’을 출시했다. ‘설레가 너무 달다’는 평가를 반영해 단맛을 줄인 천연탄산 막걸리이다. 설레와 달리 아버지의 막걸리 레시피를 많이 가져와 누룩 대신 입국을 사용했고, 적당한 단맛·신맛·쓴맛을 고루 갖추기 위해 천연감미료도 넣었다. 소풍 전날 기분 좋은 떨림과 소풍 때 행복했던 순간이 떠오르는, 행복할 때 마시기 좋은 술이라는 게 김 대표의 설명이다. 알코올 함량을 5.5%로 낮춰 한결 마시기 편한데, 숫자에서 어린이날이 연상된다.
산청양조장과 산청약주에 아들 김 대표의 손길이 더해졌듯, 몬스터빌리지에도 아버지의 노하우가 스며들고 있다. 같은 듯 다른 듯, 따로 또 같이, 부자의 두 양조장은 산청을 넘어 전국으로 이름을 알려 나가고 있다.
지난해 두 양조장은 경사가 겹쳤다. 산청양조장은 산청군 1호로 중소벤처기업부의 ‘백년소공인’에, 몬스터빌리지는 ‘로컬크리에이터’에 선정됐다. 올해는 몇 년 전부터 준비해 온 신제품을 출시할 계획이다. 산청양조장은 약주에 소주를 섞어 빚는 ‘과하주’를, 몬스터빌리지는 다양한 도수(19~50도)의 증류식 소주를 선보일 예정이다.
아들의 도전이 걱정이던 아버지도 이제는 응원하는 마음이 더 크다. “술이 발효돼 잘 익는 데 시간이 필요하듯, 지금의 시간들이 몇 년 뒤엔 아들에게 빛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산청의 나물, 전통한정식 맛보려면
깊은 맛을 지닌 산청약주는 전을 비롯해 한국의 전통음식, 달콤한 막걸리 설렘과 소풍은 매운 음식과 잘 어울린다.
산청양조장에서 자동차로 3분, 산청약초시장 인근 춘산식당에 가면 이들 술과 궁합이 맞는 전통한정식을 맛볼 수 있다. 춘산(특)정식의 메인은 산청흑돼지로 요리한 석쇠고추장구이. 3가지 맛이 난다는 ‘삼채’가 결들여져 매콤한 불향 속에 건강한 맛이 느껴진다.
죽순 무침을 비롯해 다양한 나물들 역시 산청에서 자란 것들이다. 가지·깻잎과 함께 나오는 파래 튀김은 모양도 맛도 이색적이다. 산청 메뚜기쌀과 향미찹쌀로 지은 솥밥은 윤기가 흐르고, 장식처럼 섞인 색깔 쌀이 보는 재미도 더한다. 된장찌개에는 논고동과 함께 방아가 들어가 소화를 돕는다.
아쉽게도 일반 식당에선 산청약주나 설렘·소풍을 판매하지 않는다. 대신 산청양조장의 오랜 술인 산청생막걸리와 산청팔도주는 춘산식당을 비롯해 산청 곳곳에서 만나볼 수 있다.
글·사진=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2023-01-1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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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도락 맛홀릭] <1> 통영 ‘건축가가 빚은 막걸리’
가가호호 술을 빚던 시절이 있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사라졌던 가양주(家釀酒) 문화가 100년 만에 다시 부활하고 있다. 현재까지 발급된 지역특산주 면허만 1400건에 이르고, 해마다 새로운 양조장과 전통주가 탄생한다.
전통주엔 지역의 특색이 오롯이 담겼다. 지역에서 나는 재료로 술을 빚어, 특산음식과도 잘 어울린다. <부산일보>는 ‘술도락맛홀릭’ 기획시리즈를 통해 부울경의 전통주 양조장을 탐방하며 지역의 맛과 가치를 재조명한다. 이지민 대동여주도 대표 등 전통주 전문가도 힘을 보탠다. 이 대표는 “지역의 제철 식재료와 술의 조합이 주는 만족감은 경험해 본 사람만 알 수 있다”며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부산·경남권 양조장을 조명하는 시도는 지역의 가치를 재발견한다는 점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설계부터 준공까지, 건물을 짓는 마음으로 빚은 전통주가 있다. 재료는 쌀과 물, 누룩이 전부다. 비움의 건축 철학을 온전히 담아낸 술. 그 고집스러운 맛을 찾아 경남 통영으로 향했다.
■이름부터 예사롭지 않은 ‘건막’
경남 통영시 산양읍, 미륵산자락의 마을. 막다른 샛길의 끝에 햇살을 잔뜩 머금은 붉은 기와의 전원주택이 나타난다. 박준우·김은하 부부가 양조장과 식당을 운영하며 어린 딸과 함께 생활하는 보금자리이다.
박준우 대표(거북이와 두루미 양조장)가 섬마을에서 쏟아지는 햇살과 바닷바람을 담아 만들었다는 막걸리는 이름부터 예사롭지 않다. ‘건축가가 빚은 막걸리’(건막). 글자 그대로 건축가인 박 대표가 ‘혼자’ ‘손으로’ 빚은 술이다.
2021년 가을 세상에 나온 이 막걸리의 탄생 배경도 남다르다. 사드 사태를 겪으며 박 대표의 중국 현지 건축 프로젝트에 지장이 생겼고, 물질적·정신적으로 힘든 시기에 전통주의 세계와 만났다. “한국가양주연구소에서 교육 과정을 마친 아내가 막걸리를 빚어 줘서 마셨는데, 다음 날 머리가 하나도 안 아픈 거예요. 또 빚어 달라고 했는데 안 주길래 직접 만들기로 했죠.”
마침 집에 은행대출 사은품으로 받은 찹쌀이 잔뜩 쌓여 있었다. 인터넷에 나온 레시피대로 술빚기에 도전했다. 결과는 실패였다. 이후 7년간 찹쌀과 멥쌀, 물의 비율을 달리하며 독학으로 술빚기에 도전하길 130여 차례. 박 대표는 매번 그 공식을 엑셀파일로 정리했고, 마침내 32번째 레시피에서 최적의 비율을 찾아냈다.
사계절 비슷한 맛을 낼 수 있는 온도·습도를 조합한 ‘저온숙성법’, 12일간 발효조에서 1차 발효를 한 뒤 냉장고에서 열흘 동안 2차 숙성시키는 ‘혐기성 발효’ 등도 수차례 시행착오를 거쳐 완성한 비법이다.
박준우 건축가의 비움 철학 온전히 담은 술
7년간 130여 차례 도전, 최적 비율 찾아내
첨가제 없이 쌀·물·누룩만 사용 손수 빚어
■빛깔은 막걸리, 맛은 스파클링 와인
‘건축가가 빚은 막걸리’의 가장 큰 특징은 발효 과정에서 스스로 만들어진 ‘천연탄산’이다. 병뚜껑을 살짝 열면 미세한 입자의 탄산이 바닥부터 올라오며 침전물과 자연스럽게 뒤섞인다. 빛깔만 막걸리일 뿐, 눈을 감고 마시니 스파클링 와인 같은 풍미가 느껴진다.
해산물과 ‘마리아주’(궁합)를 이루는 화이트 와인처럼, 건막도 해산물과 제격이다. 특히 박 대표의 아내 김은하 대표가 운영하는 식당 ‘야소주반’의 모든 메뉴는 건막을 위한 요리라 할 만하다. 식당은 당일 새벽 싱싱한 재료를 사서 당일 소진하기 때문에 예약제로 운영된다.
취재진이 방문한 날에도 김 대표는 당일 새벽시장에서 공수해 온 ‘개체굴’을 내놓았다. 핑거라임을 얹어 한입에 넣자 우리나라 굴의 진한 맛이 입안 가득 퍼진다. 연이어 유리잔에 따른 건막을 한 모금 마시니, 마법처럼 굴향이 배가된다. 천연탄산이 터지면서 향을 한층 돋우는 것이다. 유리잔은 탄산감을 살려 줘 날음식, 도자기잔은 탄산을 잡아 줘 익힌 음식에 적합하다고 한다.
“와인동호회에서 자주 찾아와 즐기다 가시곤 해요. 와인을 싸 들고 온 사람들이 저희 술만 먹다가 돌아가기도 하죠.” 김 대표의 설명에 왜 건막을 ‘내추럴 와인’이라고 소개하는지 고개가 끄덕여진다.
술 애호가들의 입소문에다 겨울철이 되면서 건막의 몸값은 더욱 높아졌다. 공급이 부족해 최근엔 식당에서 팔아야 할 술이 동나버렸다.
주문은 밀려들지만 ‘건축가가 빚은 막걸리’는 한 번에 80병밖에 생산하지 않는다. 박 대표가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고 혼자서 손으로 직접 빚기 때문이다. 생산량을 조금씩 늘렸지만, 한 달 최적의 목표를 618병으로 잡았다. 박 대표 혼자서 감당할 수 있는 최대치이면서, 건축설계 때 적용하는 황금비율(1 대 1.618)이기도 하다. “대량생산을 하려면 공정을 자동화해야 하고, 그러면 사람 손을 떠나게 돼요. 이 술에는 제 손에서 시작하는 정성, 저만의 가치가 담겨 있어요.”
■한 병 한 병에 담긴 느림·비움의 철학
박 대표는 양조장이 둥지를 튼 야솟골의 자연을 최대한 활용해 ‘느리게’ 술을 빚는다. 전날 오후 8시에 두 시간 동안 쌀을 씻은 뒤 불리고, 다음날 새벽 5시부터 마당에 누룩을 널어 해풍을 맞힌다. 고두밥을 쪄서 자연 바람에 잘 말린 뒤, 오후가 돼서야 물에 재운 누룩과 고두밥을 골고루 섞는 치대기 작업에 비로소 돌입한다. 물은 제조용과 청소용을 철저히 구분해 술 제조에는 청정 지하수만 사용한다. 인근 고성군의 유기농 쌀 등 모든 재료는 유기농만 고집한다.
늦둥이 딸도 힘을 보탠다. “유치원에 가기 전에 아이에게 고두밥을 먹여 봐요. ‘아빠 더 주세요!’라고 하면 이번 술은 성공이죠. 아이들은 절대 미각을 지녔거든요.”
건막 양조의 전 과정엔 박 대표가 건축가로서 강조해 온 ‘공(空)의 개념’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쌀과 물, 누룩을 제외한 어떤 첨가제나 탄산도 인공적으로 넣지 않는다.
투명한 병과 라벨도 인상적이다. 막걸리의 빛깔과 천연탄산 알갱이를 온전히 볼 수 있다. 화려한 디자인의 여느 전통주와 달리 겉멋을 빼고 속을 그대로 드러내보인다는 점에서 이 또한 ‘공(空)’이다.
술맛을 향한 집념으로 박 대표는 올해부터 변화를 꾀하고 있다. “서울의 한 보틀숍에서 저희 술을 맛봤는데 전혀 다른 맛이어서 충격을 받았어요. 영상 3도에서 보관할 때 제일 안정적인데 배송 과정에서 술이 변해버린 거죠.”
이에 온전한 맛을 유지하기 위해 천연탄산 막걸리는 ‘야소주반’에서만 판매하고, 외부에는 탄산 없는 막걸리만 공급할 계획이다. 두 번 빚은(이양주) ‘약주’도 선보일 예정이다. 조만간 지역특산주 면허를 갖추면, 그동안 전국 20여 개 오프라인 매장에서만 만날 수 있던 건막을 온라인에서도 간편하게 구매할 수 있게 된다.
천연탄산 터지며 스파클링 와인 같은 풍미
부인 김은하 씨 운영 ‘야소주반’ 음식과 궁합
한 달 618병 생산…통영 굴 등 해산물에 제격
■싱싱한 해산물과 ‘통영 굴’ 맛보려면
겨울은 건막의 계절이라 할 만하다. 건막에 어울리는 대표음식인 굴이 제철이기 때문이다. 통영은 우리나라 대표 굴 산지이지만 굴 요리 전문점이 많은 편은 아니다.
그중 중앙전통시장 인근 ‘한마음식당’은 다양한 굴 요리를 맛볼 수 있어 여러 방송에서도 소개됐다. 특히 굴·대패삼겹·김치를 불판에 구워 쌈 싸 먹는 ‘굴삼합’이 대표 메뉴다. 메뉴를 개발한 장수형 대표는 “삼겹살 기름이 굴에 스며들어 부드러우면서도 고소한 맛을 더한다”며 “김치가 기름기를 잡아 주면서 삼합이 조화를 이룬다”고 설명했다.
굴탕수육은 세 단계에 걸쳐 튀김가루, 계란물, 빵가루를 입혀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식감을 자랑한다. 수제 소스를 결들이면 어린이도 좋아할 만한 맛이다. 옛 통영 어머님들의 레시피를 따라 살짝 데친 굴로 부친 굴전은 물기가 적어 비린맛이 없다. 이밖에도 굴무침, 굴찜, 생굴 등 굴 요리 종합세트를 맛볼 수 있다.
현지인들은 통영의 싱싱한 해산물을 맛보려는 이들에게 서호시장과 통영중앙전통시장을 추천한다. 서호시장은 새벽시간대 경매부터 시작하는데, 노점상은 오전 10시쯤 파하고 이후 중앙전통시장으로 자리를 옮긴다. 중앙전통시장은 서호시장보다 좀 더 늦게, 저녁시간대까지 문을 연다.
2023-01-0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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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입맛에 맞는 커피 한 잔 내려 보실래요
“악마처럼 검고, 지옥처럼 뜨겁고, 천사처럼 순수하며, 사랑처럼 달콤하다.” 프랑스의 정치가이자 외교관이었던 샤를 모리스 드 탈레랑 페리고르의 말이다. 한국인의 커피 사랑은 더 커지고 있다. 시내 번화가는 물론이고 주택가와 한적한 교외까지 어딜 가도 카페를 만날 수 있다. 따뜻한 커피 한잔이 몸과 마음을 녹이는 계절이다. 복잡한 생각은 내려놓고 내 입맛에 맞는 커피 한잔 내려 보자.
■통계가 보여주는 한국인의 커피 사랑
‘성인이 가장 좋아하는 음료 1위’.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조사한 <2021 식품소비행태 통계보고서>에 따르면 19세 이상 성인이 가장 좋아하는 음료 1위는 20.6%가 응답한 ‘커피’(인스턴트, 원두, 캔)였다. 2위는 ‘100% 과일주스’(12.7%), 3위는 흰 우유(10.0%) 순이었다. 테이크아웃 커피도 8.8%로 5위를 차지해 커피의 인기를 더했다. 연령대별 선호도를 보면 20대는 커피 12.1%로 과일주스 14.2%보다 선호도가 낮았다. 하지만 30대 이후는 커피가 선호 음료 1위였다. 30대 19.7%, 40대 21.3%, 50대 24.3%, 60대 23.7%, 70대 이상 21.7%가 커피를 선택했다.
‘성인 10명 중 7명 이상은 1일 1커피’. 최근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가 발간한 <월간소비자> 10월호에는 성인 500명을 대상으로 한 ‘홈카페 소비자 인식 및 지출 비용 조사’ 결과가 실렸다. 응답자의 75.8%가 하루 1잔 이상 커피를 마신다고 답했고, 12.2%는 일주일에 5~6회, 8%는 일주일에 3~4회, 4%는 일주일에 1~2회라고 답했다. 한 달 평균 커피 구매비는 10만 3978원이었다.
‘한국 원두 수입량 15만 780t, 세계 6위.’ 국제커피기구(ICO, International Coffee Organization)의 세계 커피 소비량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는 세계 6위 규모의 커피 소비 국가다. 2020년 10월~2021년 9월 커피 수입량은 유럽연합 241만 5060t, 미국 161만 8920t, 일본 44만 3160t, 러시아 28만 860t, 캐나다 24만 660t, 한국 15만 780t이었다.
■원두 맛의 차이를 느끼는 게 포인트
“사실 핸드 드립 커피 내리는 방법은 유튜브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어요. 여러 종류의 커피 원두를 접해 보는 기회라고 생각해도 좋습니다.” 부산 연제구 연산동의 부산 바리스타 외식음료 학원의 핸드 드립 원데이 클래스를 맡은 양승일 아폴로 커피로스터스 대표의 말이다. 1시간 30분여 동안 이뤄지는 원데이 클래스는 핸드 드립 추출 방법을 가르쳐 주며, 나에게 맞는 원두를 찾을 수 있게 도와준다.
핸드 드립은 중력을 이용한 커피 추출 방식으로, 드리퍼만 갖추면 집에서도 간편하게 커피를 내려 마실 수 있다. “초보자가 유량을 일정하게 조절하면서 나선형으로 물을 붓는 게 쉽지는 않습니다. 최근 커피 드립 트렌드는 옛날만큼 철저하거나 까다롭지 않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추출하는 커피의 양과 원두의 양만 정해 놓으면 일관적인 맛을 낼 수 있습니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드립커피에 쓰이는 원두 양은 15g이 기준이었지만 요즘은 20g이 보편적이라고 한다. 한국인의 입맛이 ‘진한 커피’를 선호하는 것으로 바뀐 것이다. 따뜻한 커피를 내릴 땐 원두 20g에 물 300g, 아이스 커피를 만들 땐 원두 20g에 물 200g이 기본 비율이다.
“커피를 내리기 전에 먼저 종이 필터를 적셔서 종이 냄새를 빼는 린싱 과정은 생략해도 괜찮지만 뜸을 들이는 과정은 꼭 필요해요. 뜸을 들이지 않는 것은 준비운동 없이 운동하는 것과 똑같아요. 원두가 품고 있는 가스를 빼내고 잘 추출되도록 예열하는 과정입니다.”
먼저 40g의 물을 붓고 30초간 뜸을 들였다. 그다음 뜨거운 물 110g을 부어 추출을 시작했다. 물을 붓는 기본 방법은 나선형. 드리퍼의 가운데에서 바깥쪽으로, 바깥에서 다시 가운데로 나선형으로 둥글게 물을 붓자 원두가 머핀처럼 둥글게 부풀어 올랐다. 일명 ‘커피빵’이다. 커피빵 크기를 보면 원두의 신선도를 알 수 있다. 로스팅한 지 오래된 원두는 크게 부풀어 오르지 않는다. 드리퍼에 물이 다 빠지기 전에 3차로 물을 부어 총 300g의 커피를 추출했다. 추출 시간은 2분 30초~3분 30초 사이. 이날 맛본 원두는 케냐 AA, 과테말라 안티과, 콜롬비아 수프레모 등 세 가지였다. “과테말라 원두는 스모키 향이 나면서 중후하고요, 콜롬비아는 균형이 잘 잡혀 있고 향이 풍부합니다. 케냐 원두는 신맛, 와인 향, 과일 향 등을 가지고 있어요. 어떤 원두가 입맛에 맞나요?” 수강생들은 원두 맛의 차이를 느끼는 것에 집중했다.
■“간편한 드립백, 원두 용량 아시나요?”
“집에서 핸드 드립 커피에 도전했다가 중간에 그만두는 분이 많습니다. 핸드 드립은 간편함이 장점인데 까다롭게 추출 방법을 지키려다 보면 선뜻 손이 가지 않아요.” 그래서 양 대표는 추출 방법보다는 원두 선택에 무게중심을 두라고 조언했다. 기본적으로 드리퍼는 있어야 하지만 드립 전용 주전자인 드립 포트와 저울은 굳이 없어도 된다는 게 양 대표의 설명이다. “유리나 도자기로 만든 드리퍼는 예열이 늦지만 보온성이 좋고요, 스테인리스 드리퍼는 빨리 뜨거워지지만 빨리 식어요. 하지만 비전문가가 차이를 느끼기는 어렵습니다. 내 눈에 예쁜 걸 사세요. 그래야 한 번이라도 더 내려서 먹게 되지요. 저울이 없다면 추출한 양만큼만 뜨거운 물을 끓이거나 정수기에서 받으면 됩니다.”
홈카페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커피 전문점들은 간편한 드립백 제품을 판매용으로 내놓고 있다. 집에서도 카페에서 마신 커피 맛을 느끼기 위해서 직접 사기도 하고, 캠핑용이나 선물용으로도 인기다. 하지만 막상 드립백을 마셔보면 그 맛이 느껴지지 않는다. 드립백을 제대로 내리는 방법을 물었더니 양 대표가 반대로 질문을 던졌다. “드립백에 원두가 몇 그램 들어 있는지 알고 있나요?” 머그잔이나 찻잔 한 잔을 채울 수 있는 양이 아닐까 했더니 아니란다. 드립백에 든 원두는 대부분 10g 선이라고 한다. 그러니 카페에서 맛본 드립커피의 맛을 내려면 드립백 두 개를 내려야 한다. 즐겨 마시는 찻잔의 높이가 낮다면 드립백 거치대를 이용하면 더 좋다. “언제 어디서나 간편하게 커피를 마시려고 드립백을 이용하잖아요. 굳이 나선형으로 물을 붓지 않아도 됩니다. 대신 뜸은 들여 주시고요. 드립커피의 이상적인 물 온도는 95도이지만 가정용 정수기의 뜨거운 물 정도면 충분합니다.”
커피 맛을 내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원두이다. “원두가 커피 맛의 90%를 차지합니다. 케냐 원두 맛이 좋게 느껴졌다면 에티오피아나 탄자니아 등 아프리카산 원두를 더 경험해 보시고요, 강렬하고 중후한 맛이 좋다면 브라질이나 코스타리카 등 남미 쪽 원두를 마셔 보세요.” 사람마다 입맛이 다르니 각자 느끼는 ‘최고의 커피’ 역시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니 커피를 즐길 때 가장 염두에 둘 것은 ‘내 취향에 맞는 원두 찾기’이다.
2022-11-0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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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 이야기] 제철 맞은 굴
‘클레오파트라의 음식’ 굴의 계절이 돌아왔다.
지난달 24일 경남 통영 굴수하식수협 공판장에서는 2022년 햇굴 초매식 행사가 열렸다. 초매식은 한 해의 첫 위판 경매에 앞서 풍어와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행사다. 통영에서 생산되는 굴은 청정해역으로 평가받는 1만1542㏊의 바다에서 자라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품질의 우수성과 안전성을 인정받고 있다.
굴은 아연 등의 영양소가 풍부하고 피부미용에 좋은 칼슘과 비타민도 대량 함유하고 있다. 그래서 ‘바다의 우유’라고 불리기도 한다. 미인의 상징인 BC 1세기 고대 이집트의 여왕 클레오파트라가 피부 미용을 위해 굴을 즐겨 먹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경상대학교 산학협력단의 한 회사는 2016년 굴에서 추출한 펩타이드 성분인 든 마린타임 핸드크림을 출시하기도 했다.
지구상에 굴이 처음 등장한 것은 2억 년 전으로 추정된다. 1억 4500만 년 전 화석이 발견되기도 했다. 중석기 시대 인류는 간조 때 굴을 채취해 불에 구워 먹었다.
BC 20세기 무렵 일본에서는 굴을 양식하기도 했다. 특히 고대 로마인은 굴을 매우 좋아했다. 그들에게 굴은 간식이자 디저트였다. 고대 로마의 여러 유적에서 굴 껍질 흔적이 흔하게 발견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굴은 날것으로 먹을 수도 있지만, 굽거나 훈연하거나 찌거나 튀기거나 볶거나 삶거나 염장해서 먹을 수도 있다. 나라에 따라 버터를 바르거나 소금을 뿌려 먹기도 한다.
굴은 과거에는 정력제로 알려지기도 했다. 미국과 이탈리아 식품전문가들이 연구한 바에 따르면 굴에는 성 호르몬을 증가시키는 아미노산이 풍부하다.
굴이 정력제로 좋다는 이야기는 사실 신화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리스신화에 따르면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는 바다에서 굴 껍질을 타고 등장한다. 그녀는 사랑의 화살을 쏘는 에로스를 낳았다. 그래서 아프로디테가 타고 온 굴 껍질은 정력에 효과를 낸다는 소문이 퍼진 것이다.
고대 로마인은 이 이야기를 사실이라고 믿었다. 19세기의 유명한 바람둥이 카사노바도 고대 로마인과 비슷하게 생각했다. 그는 하루 평균 50~60개의 굴을 먹었다. 반면 유대인은 굴을 먹지 않는다. 무슬림에게도 굴 섭취는 금기 사항이다.
굴에는 영양 성분이 풍부하다. 요리한 굴 100g을 기준으로 할 경우 열량은 79칼로리에 불과하다. 영양소는 단백질 9g, 탄수화물 4g, 지방 3g, 아연 1일 섭취 권유량의 555%, 비타민 B12 1일 섭취 권유량은 538%, 셀레늄 1일 섭취 권유량의 56%, 철 1일 섭취 권유량의 40%, 구리 1일 섭취 권유량의 493% 등이다. 이밖에 망간, 황, 비타민E, 칼슘 등도 들어 있다. 오메가3 지방산도 풍부하게 들어 있다.
최근에는 굴에 항산화 역할을 하는 DHMBA라는 성분이 들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각종 시험관 연구 결과에 따르면 DHMBA의 항산화 효과는 테트라메칠크로만카복실산(트롤록스)보다 15배나 뛰어나다. 트롤록스는 산화스트레스를 예방하기 위해 흔히 사용되는 비타민E 혼합성분이다. 앞으로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를 더 진행해야 하지만 실험실 연구 결과대로라면 굴에서 채취한 DHMBA는 간 건강을 지키는 데 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통영에서는 1960년대부터 굴 양식이 시작됐다. 지금은 세계각지로 수출될 만큼 맛과 영양, 신선함에 있어 단연 최고라는 평가를 받는다. 올 겨울에는 굴을 즐겨 찾음으로써 건강과 미용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2022-11-02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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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 바닷바람 느낌 물씬 싱싱한 해물탕
부산 해운대해수욕장 이벤트광장에서 해운대역까지 이어지는 구남로는 전국적으로 유명한 여름 휴가철의 성지다. 더위를 피해 해운대해수욕장으로 달려온 관광객은 밤낮으로 구남로를 지나다닌다. 많은 숙소와 크고 작은 식당, 그리고 밤을 휘황찬란하게 밝히는 술집들이 구남로를 가득 메우고 있기 때문이다.
1년 내내 외지인의 발걸음이 끊어질 틈이 없는 구남로에서 20년 가까이 한자리를 지킨 식당이 있다. 수요가 많은 만큼 경쟁도 치열할 텐데 세월이 두 번 바뀔 기간 동안 꾸준히 제자리를 유지했다면 실력이 어지간한 곳은 아니다. 구남로 한쪽 모퉁이 해운대해변로265번길에 있는 이른바 해물탕 골목에 자리를 잡은 ‘홍도해물탕갈치조림’(대표 윤영조, 배정애 부부)이 바로 그곳이다.
윤 대표는 35년 전 이곳에 노래방을 열었다. 음식에 취미가 많았던 그는 틈틈이 요리학원에 다닌 끝에 조리사자격증을 취득했다. 노래방 시대는 저물었다고 판단한 윤 대표는 2003년 11월 1일 홍도해물탕을 개업했다.
코로나 19가 발생하기 이전에는 가게 문을 하루 24시간 열었다. 주방장과 직원도 여러 명 고용했다. 지금은 직원을 구하기도 어려워 사실상 부부끼리만 가게를 운영한다.
홍도해물탕의 주 메뉴는 해물탕이다. 여기에 최근에는 갈치조림도 인기를 얻는 메뉴다. 해물탕은 전복, 낙지, 가리비, 키조개, 모시조개 등의 살아 있는 해산물과 생물 해산물 10여 가지를 기본 재료로 만든다. 주문이 들어오면 해산물에 멸치, 황태, 무, 대파 등을 넣어 끓인 육수를 붓는다. 또 고춧가루와 마늘 등을 섞은 양념장과 콩나물, 각종 채소를 넣어 손님 상에 가져간다.
윤 대표는 “해물탕이 맛있으려면 해산물이 신선해야 한다. 본래의 맛이 우러나는 게 가장 좋다. 그래서 특별한 육수, 양념 재료는 넣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해물탕의 육수는 시원하고 깔끔했다. 많이 맵지 않고 약간 얼큰할 정도였다. 해운대해수욕장에서 갯비린내를 담고 선선하게 불어오는 가을 바닷바람 같은 느낌을 주는 국물이었다. 싱싱한 해물은 잘 익어 부드럽고 신선했다. 질기지 않으면서 적당히 씹는 맛이 있을 정도로 졸깃했다.
갈치조림에는 해물탕 용으로 끓인 육수를 붓고 무, 호박, 두부를 넣는다. 철에 따라 감자나 고구마를 첨가할 때도 있다. 양념은 마늘, 고춧가루를 기본 재료로 한다. 여기에 특이하게도 된장을 약간 섞는다. 윤 대표의 처가인 경남 산청군 생초면에서 만든 시골 된장이다.
갈치조림 국물에서는 된장 맛이 연하게 느껴졌다. 진하지는 않았지만 구수한 맛을 이끌어낼 정도였다. 국물 맛은 매콤하면서 진하고 깊은 게 밥을 끌어당기는 맛이었다. 갈치도 잘 익은데다 양념이 잘 배어 매콤하고 부드러웠다.
홍도해물탕 손님의 90%는 외지인이다. 특히 젊은 연인보다는 부부, 가족끼리 여행을 온 사람이 많이 찾아온다. 윤 대표는 “한 번 먹어본 사람은 다음에 오면 꼭 다시 방문한다. 어떤 손님은 사흘 동안 해운대를 여행하면서 매일 찾아오기도 했다”고 말했다.
윤 대표가 잊지 못하는 손님은 인천 강화도에서 온 사람이다. 시간이 비어 승용차로 해운대 일대를 구경시켜 준 게 계기가 돼 의형제의 인연을 맺었다. 그 손님은 나중에 버스 한 대를 빌려 강화도 지인을 모두 태우고 홍도해물탕을 다시 찾아왔다. 이것이 계기가 돼 나중에는 사과 같은 과일이나 농산물을 선물로 받기도 했다. 하지만 코로나가 터진 이후로는 못 내려와 섭섭하다는 게 윤 대표의 아쉬움이다.
윤 대표는 “외지에서 온 손님이 다른 지인의 소개를 받아 왔다고 하면 기분이 좋다. 이제는 나이가 많아 부부끼리 운영한다. 손님을 많이 받는 것보다는 인연을 소중히 여기면서 재미있게 일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2022-11-0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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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M 픽’ 밀면부터 현지인 맛집까지… ‘아미’ 필수 코스
부산에는 30년 넘게 고객의 발걸음을 끌어당기는 식당이 적지 않다. 이렇게 긴 세월 동안 무너지지 않고 버텼다는 것은 맛에서만큼은 일가견을 갖고 있다는 이야기다. BTS 공연을 보러 부산에 와서 전통의 맛집을 둘러보지 않는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일이다.
■동래밀면
30년 가까이 많은 단골이 드나든 식당이라면 맛을 믿어도 되지 않을까. 동래구 수안동 동래119구조대 인근에 있는 ‘동래밀면’이 바로 그런 식당이다.
1994년에 문을 연 이 곳은 코로나 19 이전에는 매일 2000~3000명이 몰리던 인기 맛집이었다. 나중에는 세계적 인기그룹 BTS의 RM 김남준이 찾아간 사실이 밝혀져 인기를 더 높였다. 동래밀면’의 식탁 중 하나에는 여러 나라 ‘아미’가 이곳을 찾아 가져다놓은 RM사진이 가득하다. 이른바 ‘BTS 맛집 성지’인 셈이다.
밀가루에 옥수수 전분을 5대1의 비율로 섞은 면은 졸깃하고 구수하다. 냉면처럼 질기지 않으면서 밀가루 면보다 씹는 맛이 좋다.
물밀면의 육수는 사골을 12시간 우려낸 국물에 감초, 계피 등 한약재와 양파, 무, 생강, 마늘, 후추 등 채소를 넣고 10시간 끓여 만든다. 향긋하고 담백한 맛이 일품이다. 비빔밀면의 양념에는 고춧가루와 마늘, 생강, 파인애플, 키위, 소금이 들어간다. 매콤하면서 상큼하고 달콤한 게 밀면의 3대 특징이라는 신맛, 단맛, 매운맛이 골고루 느껴진다.
겨울에는 들깨칼국수가 인기를 끈다. 찹쌀가루를 섞은 밀가루 반죽이 인기의 비결이다. 부추를 갈아 넣은 뒤 저온 냉장고에서 하루 숙성시킨 파란색 반죽의 존득하게 씹는 맛이 좋다. 들깨가루에 땅콩가루를 섞어 넣어 고소하다.
■함흥냉면갈비탕
동래구 온천동에는 올해 33년째 이어오고 있는 냉면집이 있다. 녹천탕, 천일탕 등 유명한 온천탕 바로 앞에 자리를 잡은 ‘함흥냉면갈비탕’이 바로 그곳이다. 메뉴는 간단하다. 물냉면과 비빔냉면, 갈비탕과 육개장 딱 4가지다.
물냉면의 면은 메밀과 전분을 반씩 섞어 만든다. 비빔냉면은 고구마 전분만으로 만든다. 냉면 국물은 소 사골과 사태 살을 6시간 정도 끓여 만든다. 여기에 소고기, 닭고기와 간장, 계피, 통생강, 통마늘을 넣어 만든 ‘짬탕’을 섞어 더 끓이면 비빔냉면 육수가 된다. 육수에 양파, 파, 고춧가루를 섞은 게 비빔냉면 양념이다. 물냉면 육수는 잡맛이 없이 부드럽고 깨끗하고 상큼한 맛이다. 기름기가 완전히 제거된 육수여서 담백하다. 고객들이 특히 좋아하는 것은 비빔냉면 양념이다. 부드러운데다 매운 느낌이 별로 없는 게 특징이다.
갈비탕은 미국산 갈비를 잘라 핏물을 12시간 정도 뺀 다음 삶아서 육수를 내고 양파, 파, 생강 등의 양념을 넣어 끓인다. 갈비탕 국물은 담백하면서 은근하게 깊은 맛을 낸다. 육개장 국물도 보통 맛이 아니다. 닭기름과 소기름을 서너 시간 미리 곤다. 손님이 주문하면 비빔냉면 육수용으로 만든 짬탕을 넣고 버섯, 고사리, 숙주나물에 고춧가루와 소기름을 넣어서 볶은 양념을 첨가해 끓인다. 육개장 국물은 그야말로 입안을 깔끔하고 상큼하게 만들어 준다.
■가야포차선지국밥
부산진구 가야2동 가야고등학교 앞에서 30년 넘게 선지국밥과 수구레국밥을 팔아온 ‘가야포차선지국밥’. 오직 국밥 하나만으로 강산이 세 번이나 변할 세월을 지켜왔으니 솜씨 하나만큼은 충분히 인정해주고도 남을 만한 곳이다.
가야포차선지국밥의 가장 큰 특징은 간장이다. 그냥 간장이 아니라 생선을 집어넣어 발효시킨 어간장이다. 평범한 간장과 비교해 감칠맛이 뛰어나다. 국에 넣으면 훨씬 깊은 맛을 낸다.
가야포차선지국밥의 주요 메뉴는 수구레국밥과 선지국밥이다. 수구레는 소의 가죽과 살코기 사이의 부위다. 쫄깃쫄깃한 식감이 가장 큰 특징이다. 선지는 가장 신선한 소피를 사용해 직접 만든다. 그래서 비린내가 나지 않고 부드럽다.
두 국밥의 국물은 똑같다. 콩나물, 무, 갈빗살에 간장을 넣어 끓인 뒤 다시 수구레를 넣고 1시간 30분 동안 삶으면 국물이 완성된다. 갈빗살과 수구레가 들어가 입맛을 끌어당기는 풍미를 주는 수구레국밥은 여기에 수구레를 넣고, 선지국밥은 선지를 넣고 데운다. 국물은 같지만 마지막에 수구레와 선지가 들어간 탓에 국물 맛은 꽤 달라진다. 선지국밥은 가볍고 시원하다. 수구레국밥은 기름기가 조금 더 많아 고소하고 진한 맛을 낸다. 저녁에 찾는 손님들이 즐겨 찾는 술안주는 수구레무침과 돼지석쇠구이다.
글·사진=남태우 선임기자 leo@busan.com
2022-10-13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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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FF 2022] 맛집
영화의 바다에 풍덩 빠지는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이 다가왔다. 기왕 부산에 왔다면 ‘1000개의 얼굴’을 가진 영화 못지않게 다양한 부산의 맛에 빠져보는 것은 어떨까. 다만 맛에 너무 취하면 영화관 입장 시간을 놓칠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동래밀면: BTS도 반했다… 22시간 우려낸 사골 육수 ‘일품’
30년 동안 많은 단골이 드나든 식당이라면 맛을 믿어도 되지 않을까. 동래구 수안동 동래119구조대 인근에 있는 ‘동래밀면’은 그런 식당이다. 1994년에 문을 연 이 곳은 코로나 19 이전에는 매일 2000~3000명이 몰리던 인기 맛집이었다. 세계적 인기그룹 BTS의 RM 김남준이 찾아간 사실이 밝혀져 인기를 더 높였다.
밀가루에 옥수수 전분을 5대1의 비율로 섞은 면은 졸깃하고 구수하다. 물밀면의 육수는 사골을 12시간 우려낸 국물에 감초, 계피 등 한약재와 양파, 무, 생강, 마늘, 후추 등 채소를 넣고 10시간 끓여 만든다. 향긋하고 담백한 맛이 일품이다. 비빔밀면의 양념을 만들 때에는 먼저 믹서로 야채를 잘게 간다. 고춧가루와 마늘, 생강, 파인애플, 키위 등과 소금을 추가해 버무리면 완성이다. 매콤, 상큼, 달콤해서 밀면의 3대 특징이라는 신맛, 단맛, 매운맛을 골고루 느낄 수 있다.
겨울에는 들깨칼국수가 인기다. 찹쌀가루를 섞고 부추를 갈아 넣은 파란색 반죽은 존득하게 씹는 맛이 좋다. 들깨가루에 땅콩가루를 섞어 넣어 고소하다.
함흥보쌈사계절냉면:고구마 전분 100%로 만든 면발의 쫄깃함
영도구 남항시장공영주차장 인근의 ‘함흥보쌈사계절냉면’은 그야말로 스타 냉면집이다. 소상공인진흥공단의 ‘백년가게’에 이어 부산경제진흥원의 ‘스타소상공인’으로 뽑혔으니 스타라고 부를 만하다.
올해로 개업 33년을 맞은 함흥보쌈사계절냉면에서 사용하는 면은 고구마 전분 100%이다. 물냉면 육수의 기본은 사골양지를 삶은 국물이다. 여기에 마늘 같은 채소를 넣어 다시 끓이면 된다. 육수는 깔끔하고 담백한데다 잡스러운 맛은 전혀 없다. 비빔냉면의 양념은 양파가 많이 들어가는 게 특징이다. 양념의 양파 맛은 꽤 강하지만 거슬리는 게 아니라 묘하게 입맛을 끌어당긴다.
보쌈도 냉면 못지않게 인기를 끄는 메뉴다. 고기에 당귀, 감초, 메주콩, 생강 등을 넣어 삶는다. 고기가 메주콩 액을 흡수하면 고소하고 감칠맛이 더해진다. 고기를 삶을 때에는 두시간 가량 물에 담가 핏물을 뺀다. 고기는 부드럽고 달콤하다. 식당에서 직접 만든다는 보쌈김치는 많이 달지 않고 신선하다. 무말랭이는 적당히 잘 익은데다 씹는 맛이 좋다.
금정산성창녕집:1960년대 시작된 염소·오리고기 전통 맛집
맛이 달라지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연륜이다. 1960년대에 문을 열어 금정구 금정산성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금정산성창녕집’의 염소고기와 오리고기를 먹어보면 연륜의 중요성을 이해할 수 있다.
최고 인기 메뉴는 오래 숙성시킨 양념으로 구운 흑염소숯불구이, 오리숯불구이다. 한약재를 넣어 끓인 한방토종오리백숙도 인기를 끈다. 염소숯불구이 양념은 여러 단계를 거쳐 만든다. 오동나무, 월계수 등 한약재 일곱 가지를 끓여 발효시킨 다음 개복숭아, 간장에 마늘, 파 등을 넣는다. 한방오리백숙에 들어가는 한약재는 오가피, 엄나무, 월계수, 대추, 당귀 등 7가지다. 따뜻한 물로 데쳐 오리고기에서 기름기를 걷어낸 뒤 물과 소금을 넣고 1시간 이상 끓이면 된다.
오리숯불구이는 매콤하다. 고추장, 고춧가루를 기본으로 하는 양념 덕분이다. 엄나무, 뽕나무, 꾸지뽕나무를 삶고 다시마를 넣어 10분간 우려낸 후 간 배, 양파와 간장, 고추장, 고춧가루를 넣어 한 달간 숙성시킨다.
통나무하우스:정갈한 집밥 생각나는 한식 코스요리 ‘엄지척’
동래구 온천장 농심호텔 앞에 자리를 잡은 ‘통나무하우스’의 주요 메뉴는 점심 특선과 저녁 코스 요리다. 둘 다 다양한 한식으로 구성됐다. 점심 특선의 경우 파전, 취나물 무침, 말린 도루묵 무침, 전복 내장 미역국, 돼지불고기, 배추 겉절이, 두부 졸임, 나물, 가자미 구이, 잡채, 꼬막 무침 등이 나온다. 음식 하나하나에 정성이 가득 든 게 느껴진다.
된장과 참기름으로 무친 취나물은 신선하면서 고소하고 짭짤하다. 말린 도루묵 무침은 겉은 쫄깃하고 속은 부드러워 입맛을 끌어당긴다. 미역국은 향긋한 바다 냄새와 고소한 맛이 조화롭다.
돼지불고기는 짜지 않으면서 깊은 맛이 좋다. 꽈리고추를 넣고 소고기를 갈아 섞은 두부 졸임은 담백한 맛이 조화를 잘 이룬다.
글·사진=남태우 선임기자 leo@busan.com
2022-09-22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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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 이야기] 초밥의 위기…기후 변화, 일본 가다랑어·와사비에 영향
일본 남서부 고치 현은 수백 년 동안 이어온 가다랑어 어업으로 유명한 곳이다. 가다랑어는 일본에서 회나 초밥, 또는 가쓰오부시(가다랑어포)를 만들어 먹는 중요한 요리 재료다.
고치 현의 어부들은 최근 들어 전례 없이 이상한 현상을 목격하면서 걱정이 많아졌다. 아주 살찐 가다랑어가 많이 잡힌다는 사실이다. 가다랑어가 살찐다는 것은 플랑크톤 같은 먹이가 많아졌다는 걸 의미한다. 플랑크톤이 늘어났다는 것은 바다의 수온이 높아졌다는 사실을 뜻한다. 실제로 고치 현 앞의 토사 만 수온은 지난 40년 사이에 섭씨 2도 가량 높아졌다. 즉 살찐 가다랑어는 기후변화를 상징하는 장면인 것이다.
가다랑어가 통통하다면 어민으로서는 돈을 더 벌 수 있다. 그런데 왜 이들은 걱정하는 것일까. 단기적으로 보면 가다랑어 무게가 많이 나가니 당장은 수입이 늘어나지만 장기적으로는 그렇지 않다. 수온이 계속 오르면 미네랄이 풍부한 해수가 수면으로 올라오지 못하게 된다. 나중에는 플랑크톤이나 작은 물고기가 줄어들고 가다랑어는 결국 굶어죽게 된다.
일본 어업은 어민의 고령화로 애를 먹고 있다. 이미 최근 30여 년 사이에 많은 어민이 어업에서 손을 뗐다. 이런 터에 기후변화 때문에 가다랑어처럼 환금성이 높은 어종이 사라지면 어업에 치명적 타격을 줄 수 있다.
머지않은 장래에 가다랑어로 만드는 회나 초밥, 가쓰오부시를 못 먹게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높아지고 있다. 40년 전만 해도 수십 개였던 고치 현의 가쓰오부시 공장은 최근 들어 서너 개로 줄었다. 남은 공장들도 머지 않아 문을 닫지 않을 수 없을 거라고 우려한다.
와사비도 가쓰오부시와 비슷한 처지로 내몰렸다. 와사비를 키우려면 기온이 너무 높아도 안 되고 습도가 지나치게 높아도 안 된다. 와사비 생산에 가장 적합한 기온은 21도 정도다. 최근 들어 일본 최대의 와사비 생산지인 시즈오카의 기온은 30도를 훨씬 넘는다. 시즈오카만 그런 게 아니다.
해발 1000m 이상 산이 많은 오쿠타마 산맥에 자리 잡은 도쿄 북서부의 오쿠타마 마을은 19세기부터 와사비 농사를 지었다. 이곳에서도 기온 상승 때문에 와사비 농사가 잘 안 돼 농가 75%가 농사를 포기했다. 기온이 높아진데다 과거보다 비가 많아지고 심지어 홍수도 자주 일어난다. 수질도 과거에 비해 매우 나빠졌다. 지금처럼 기온이 계속 높아지면 머지않아 와사비를 더 이상 재배할 수 없게 될 지도 모른다고 현지 농민은 걱정한다.
가다랑어와 와사비가 사라지면 결국 일본 초밥에도 결정적 타격을 미치게 된다. 두 재료가 없는 초밥은 생각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과연 기후변화는 일본 음식문화의 상징인 초밥마저 없애버리거나 변화시키게 될까. 안타까운 일이지만 어두운 전망은 점점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2022-07-27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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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 이야기] 옥수수의 양면성… 세계서 많이 소비되는 식물 중 하나, 재배 위해선 환경오염 불가피
7월은 옥수수 출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시기다. 전북 여수에서는 찰옥수수 출하를 앞두고 백화점, 방송 등을 활용해 홍보 활동을 벌이고 있다.
전남 나주와 해남에서도 옥수수(사진) 출하가 시작됐다. 충북 옥천에서는 7월 16~17일 제12회 옥수수, 감자 축제를 연다.
옥수수는 1만여 년 전 멕시코에서 처음 재배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메리카 대륙에 첫 발을 디딘 유럽인인 콜럼버스는 옥수수를 유럽에 소개했다. 동양의 경우 중국에서 옥수수 재배를 처음 시작했다.
옥수수는 전 세계에서 많이 소비되는 식물 중 하나다. 용도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빵은 물론 과자를 굽는 데 사용하기도 하고, 소 등 가축에게 먹이기도 한다. 통나무처럼 난방 연료로도 많이 쓰인다. 최근에는 에탄올 생산 원료로서의 가치도 높다.
옥수수는 수분 76%, 탄수화물 19%, 단백질 3%, 지방 1% 등으로 구성돼 있다. 옥수수 가루 100g의 열량은 86㎈다. 옥수수에는 비타민 B 등의 비타민 성분이 풍부하다. 또 섬유질과 미네랄은 물론 마그네슘, 인, 아연, 망간 등 다른 영양소도 함유돼 있다.
옥수수 수염은 간에 매우 좋다. 요로감염증 치료에도 도움이 된다. 중국 전통의학이나 북미, 중미 원주민 민간의학에서도 옥수수 수염을 치료제로 많이 사용했다. 주로 말라리아, 전립선 질병, 심장병 등의 치료제로 환자에게 처방했다. 최근에는 혈압을 낮추는 효과를 가진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게실염 치료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옥수수에게는 치명적 단점이 있다. 바로 지구를 해친다는 사실이다. 지구상에서 생산되는 옥수수의 절반 이상은 가축 사료로 이용된다. 소고기 1kg을 생산하기 위해 필요한 옥수수 양은 8~12kg에 이른다. 효율성이라는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이다.
게다가 옥수수를 생산하려면 엄청난 천연 자원이 소요된다. 다른 곡물보다 물을 많이 흡수하는데다 비료도 더 많이 뿌려야 한다. 비료에는 질산과 인산염이 풍부하다. 바다 오염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두 가지 성분이다. 전 세계 농업의 질산 오염 중 40%는 옥수수 재배 때문이다.
옥수수는 단작농업으로 자란다. 다른 농작물과 교체 재배되지 않는다. 그래서 옥수수는 병충해에 매우 약하다. 농민은 살충제, 제초제를 뿌리지 않을 수 없다. 두꺼운 옥수수 껍질이 살충제를 막아주지만 스며드는 양도 적지 않다. 이런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옥수수에는 유전자조작 품종이 많다.
전 세계에서 기아에 허덕이는 인구는 10억 명 이상이다. 만약 가축을 기르기 위한 옥수수 재배 면적을 줄이고 다른 곡물 재배 면적을 늘리면 환경오염을 감소하면서 식량 생산량을 늘릴 수 있다는 게 환경운동가 및 식량전문가의 주장이다. 과연 지구촌은 이런 주장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2022-06-29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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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S RM도 즐긴 30년 밀면의 깊은 맛
밀면은 부산시가 선정한 ‘부산의 향토음식’이다. 여름이 되면 부산에서는 누구나 밀면을 먹는다. 부산 사람이라면 단골처럼 다니는 ‘추억의 밀면 식당’이 한두 곳 있게 마련이다. 동래 수안동에도 많은 사람이 30년 가까이 밀면을 즐긴 맛집이 있다. 동래119구조대 앞의 ‘동래밀면(대표 구본열)’이 바로 그곳이다.
구 대표는 경남 밀양 상동면 안인리 출신이다. 중학교를 졸업한 뒤 기술을 배우려고 부산의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졸업한 후에는 친척이 운영하던 공장에서 일했다. 나중에는 직접 사업에 손을 댔다.
식당을 시작한 것은 1994년이었다. 처음에는 갈빗집을 하다 업종을 밀면으로 바꿨다. 처음에는 밀면을 제대로 만들지 못했다. 당연히 손님이 찾지 않았다. 다른 밀면 식당을 찾아다니며 맛을 보고 혼자서 공부도 한 덕분에 나름대로 ‘비법’을 개발할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코로나19 이전에는 하루 손님이 3000명을 넘었다.
‘동래밀면’의 식탁 중 하나에는 사진이 잔뜩 놓여 있다. 대형 사진 간판도 세워져 있다. 세계적 인기그룹 BTS의 RM 김남준이다. ‘동래밀면’에서 그가 밀면을 맛보고 간 이후 여러 나라 ‘아미’가 이곳을 찾아와 가져다놓은 사진이다. 이른바 ‘BTS 맛집 성지’인 셈이다.
물 밀면의 육수는 사골을 12시간 우려낸 국물을 기본으로 한다. 여기에 감초, 계피등 한약재 4가지와 양파, 무, 생강, 마늘, 후추 등 채소 7가지를 넣고 10시간 더 끓인다. 육수를 끓였다 식혔다 다시 끓이는 데에만 사흘 걸린다.
물 밀면의 육수부터 떠먹어봤다. 향긋하고 담백한 맛이 일품이었다. 하루에 손님 3000명이 왔다는 말이 거짓말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면은 밀가루에 옥수수 전분을 5대1의 비율로 섞는다. 이렇게 하면 졸깃하면서 구수한 맛이 더해진다. 냉면처럼 질기지는 않으면서 밀가루로만 만든 면보다 훨씬 씹는 맛이 좋다. ‘동래밀면’을 다녀간 한 고객은 인터넷에 ‘여기 물밀면이 진리’라는 댓글을 달았다.
비빔 밀면의 양념은 믹서로 잘게 간 야채를 기본으로 한다. 여기에 고춧가루를 넣은 뒤 마늘, 생강, 파인애플, 키위 등과 소금을 추가한다. 양념은 약간 매콤하면서 상큼하고 달콤하다. 밀면의 3대 특징인 신맛, 단맛, 매운맛이 조화를 잘 이룬 맛이다.
‘동래밀면’의 또다른 장기는 들깨칼국수다. 여름보다는 겨울에 잘 팔리는 메뉴다. 구 대표는 “칼국수에 들깨를 넣은 것은 부산에서는 우리 식당이 처음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들깨칼국수의 핵심은 찹쌀가루를 섞은 밀가루 반죽이다. 부추를 갈아 넣어 파란색인 반죽은 저온 냉장고에 넣어 하루 숙성시킨다. 이렇게 하면 존득하게 씹는 맛이 강해진다. 면이 뚝뚝 끊어지는 경우가 드물다. 들깨는 껍질을 벗겨 가루를 낸 뒤 땅콩가루를 섞어 칼국수에 넣는다. 들깨가루만 넣는 것보다 훨씬 고소하다.
국물은 멸치와 채소를 우려낸 물이다. 밀면 육수처럼 평범해 보이는 칼국수 국물에도 30년 가까운 연륜이 배어 있다. 경험과 연륜을 이길 수 있는 맛은 없다.
왕만두도 인기 메뉴다. 피는 물론 속까지 식당에서 직접 만든다. 속에는 양파, 부추, 호박, 당근, 돼지고기와 비계를 넣는다. 채소 맛이 풍성하게 느껴지는 맛이다. 속이 꽉 차서 씹는 맛도 좋다.
‘동래밀면’은 오랜 역사를 가진 만큼 단골도 많다. 부모를 따라 다녔던 어린이가 어른이 돼 다시 오는 경우도 적지 않다. 서울에 취직한 젊은이가 부산에 돌아오면 가장 먼저 이곳에 밀면을 먹으러 오기도 한다. 인터넷 댓글에도 비슷한 내용이 많다. ‘신랑이 제일 좋아하는 집, 연애할 때 자주 온 곳.’ ‘오랜만에 온 추억의 가게, 여전히 맛있네요.’
2022-06-2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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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 이야기] 블루베리·말린 자두·포도·석류… 류머티즘성관절염 치료에 도움
류머티즘성관절염은 면역 기능 이상 때문에 발생하는 질환이다. 외부 균을 공격해야 하는 면역체계가 거꾸로 인체를 공격하는 바람에 병이 생기는 자가면역질환이다. 이 병에서 완쾌하려면 장기간 약을 복용해야 한다. 이 때문에 부작용 우려가 적지 않다.
외국에서는 식품으로 류머티즘성관절염의 진행을 늦추거나 치료에 도움을 주는 방법에 대한 연구가 이어지고 있다. 인도 KIIT 대학교의 바운다 굽타 박사 연구팀이 최근 실시한 연구도 그중 하나다. 그의 연구 결과는 최근 식품 저널 ‘프런티어스 인 뉴트리션’에 게재됐다. 결론은 ‘슈퍼 푸드를 많이 섭취하면 류머티즘성관절염 진행 지연, 통증 완화 및 치료에 큰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굽타 박사는 언론 인터뷰에서 “특정 섬유질, 채소, 과일, 향신료를 정기적으로 섭취하면 염증을 일으키는 물질을 제거한다. 이를 통해 류머티즘성관절염의 부작용을 줄일 수 있게 해 준다”고 설명했다. 그는 “환자가 잡식성 식사, 음주, 흡연 습관을 없애고 지중해식, 비건식 식습관을 받아들이면 효과를 더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굽타 박사 팀이 류머티즘성관절염 치료에 도움이 된다고 추천한 슈퍼 푸드는 다양하다. 과일 중에는 블루베리(사진), 말린 자두, 포도, 자몽, 석류, 망고, 바나나, 복숭아, 사과가 있다. 곡물류는 밀, 옥수수, 쌀, 귀리, 호밀, 보리, 수수 등이다. 또 올리브오일, 생선오일, 서양지치씨오일은 물론 굳은 요구르트, 검은콩, 생강, 강황, 녹차, 바질차도 포함됐다.
굽타 박사 연구팀에 따르면, 이런 식품은 키토키네스라고 불리는 면역체계에서 분비되는 염증 물질을 감소시킴으로써 관절의 경직성과 통증을 줄인다. 산화스트레스도 감소시켜 인체가 해로운 성분을 해독시키는 힘을 길러준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블루베리에는 염증을 최소화하는 데 도움이 되는 산화방지제, 비타민, 각종 미네랄이 풍부하다. 수년 전 여성 3만 8176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매주 두 번 이상 섭취한 여성의 혈액 내 염증 수준은 미섭취자보다 14% 적었다.
다른 연구에서는 생포도 253g에 해당하는 포도 농축 파우더를 3주간 매일 섭취한 사람들은 염증 지표가 눈에 띄게 줄었다. 올리브오일은 오래전부터 소염 성분이 풍부한 걸로 유명한 식품이다. 한 조사에서는 류머티즘성관절염 환자 49명에게 생선오일과 올리브오일 캡슐을 24주간 매일 섭취시켰다. 그 결과 염증 지표가 크게 낮아졌다. 올리브오일을 섭취한 그룹에서는 38.5%, 생선오일을 섭취한 그룹에서는 40~55% 낮아졌다.
2022-06-01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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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 이야기] '아시아 최고 식당 50선'에 한 번도 포함된 적 없는 부산 식당 언제쯤 선정될까?
영국의 음식 관련 언론 그룹 ‘윌리엄리드 비즈니스 미디어’는 2002년부터 매년 ‘세계 최고 식당 50선’을 발표하고 있다. 2013년부터는 ‘아시아 최고 식당 50선’도 발표하기 시작했다. 전 세계 미식가들에게 아시아의 훌륭한 식당으로 소개함으로써 음식 문화를 건전하게 발전시키자는 게 취지다.
윌리엄리드는 최근 ‘2022년 아시아 최고 식당 50선’을 공개하고 온라인으로 비대면 시상식도 거행했다. ‘아시아 최고 식당 50선’은 선정 위원회에서 고른다. 아시아의 요식업에서 활동하는 전문가 300명으로 이뤄진 위원회다.
올해는 일본 도쿄 중심가 시부야에 있는 퓨전 레스토랑 덴이 1위를 차지했다. 일본 식당이 1위를 차지한 것은 선정 첫 해인 2013년 이후 9년 만이다. 2007년에 문을 연 이 레스토랑은 창의적인 음식과 편안한 식당 분위기 덕분에 높은 점수를 받았다. 에도 시대부터 전해 내려오는 연회용 요리인 가이세키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음식은 도쿄 시민들의 큰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게 선정 위원회의 평이다.
태국 방콕의 전통 음식점 소른이 2위를 차지했다. 이 곳은 태국에서 예약하기 가장 어려운 식당으로 알려져 있다.
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식재료인 게 등을 이용한 칸추피앙이 대표 메뉴다. 요리사의 영혼을 담은 음식이 현지인을 감동시킨다는 게 선정위원회의 설명이다.
이밖에 도쿄의 프랑스 음식점 플로릴레주, 방콕의 전통 요리점 레 두, 홍콩의 광동 요리점 더 체어맨, 오사카의 퓨전 프랑스 음식점 라 시메, 방콕의 독일 음식점 쉬링, 싱가포르의 프랑스 음식점 오데트, 홍콩의 유럽 음식점 네이버후드, 방콕의 전통 음식점 누사라가 10위 안에 이름을 올렸다. 50위 안에 이름을 올린 레스토랑의 나라별 분포를 보면 일본과 중국(홍콩, 마카오 포함)이 각각 열한 곳으로 가장 많다 이어 태국이 아홉 곳이다.
한국에서는 다섯 곳이 이름을 올렸다. 모두 서울에 있는 레스토랑이다. 2014년 서울 청담동에 문을 연 전통 음식점 밍글스는 14위로 우리나라 식당 중에서 가장 높은 순위를 기록했다. 플라자호텔에 있는 발효음식 전문점 주옥은 18위, 청담동의 전통음식점 세븐스 도어는 26위에 이름을 올렸다. 한국 사찰음식 연구에 평생 매진해온 전남 장성군 백양사 천진암의 주지인 정관 스님은 ‘아이콘 상’을 받았다. 선정위원회는 ‘한국 사찰음식을 전 세계에 알리는 스님’이라고 평가했다.
아쉽게도 윌리엄리드가 2013년부터 발표하는 ‘아시아 최고 식당 50선’에 부산 식당이 포함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수도가 아닌 지방 도시도 당연히 순위 안에 들어간다. 일본 후쿠오카와 오사카, 대만의 타이중과 가오슝, 인도네시아 발리 등 다른 나라의 지방 도시는 여러 차례 포함됐다. 스리랑카 콜롬보와 필리핀 마닐라 등 우리나라보다 소득이 낮은 국가의 도시도 들어 있다.
부산이 외면받는 이유로는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먼저 선정위원회가 부산에는 조사하러 오지 않는 것일 수 있다. 아니면 조사하러 오기는 하지만 선정할 자격을 갖춘 식당이 없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느 경우라도 부산으로서는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각 요식업체는 물론 부산시, 부산관광공사의 분발이 필요한 시점이다.
2022-04-06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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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 안 가득 봄향기, 취나물에 취하다!” 통나무하우스
음식 만들기를 좋아한 소녀가 있었다. 종갓집 며느리인 어머니의 어깨 너머로 배운 솜씨를 남에게는 숨겼다. 소녀는 나이가 들어서야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음식 맛을 즐기게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식당을 차렸다. 그 맛에 반해 20년 동안 발걸음을 멈추지 못하는 사람은 한두 명이 아니다.
부산 동래구 온천장 농심호텔 앞에 자리를 잡은 ‘통나무하우스’의 김은훈 사장이 바로 음식을 사랑했던 소녀다. 경남 남해 출신인 그녀는 20년 전 온천장 해동모텔 인근에서 맥주 가게를 열었다. 김 사장은 “애지중지 키운 딸이 힘든 식당 일을 하는 걸 아버지가 싫어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야 식당을 개업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 사장은 맥주를 팔면서 마른안주 대신 수육이나 불고기 전골 등 정성이 들어간 음식을 안주로 내놓았다. 빼어난 손맛에 반한 손님이 몰려들었다. 두 차례 자리를 옮긴 끝에 7년 전에는 현재 위치에서 아예 한식집을 개업했다. 이름은 바꾸지 않고 통나무하우스를 계속 유지했다. 놀랍게도 맥주 가게일 때 찾아오던 손님이 단골로 계속 이어졌다.
통나무하우스의 주요 메뉴는 점심 특선과 저녁 코스 요리다. 김 사장이 점심 특선 음식을 하나둘씩 가져왔다. 파전, 취나물 무침, 말린 도루묵 무침, 전복 내장 미역국, 돼지불고기, 배추 겉절이, 두부 졸임, 나물, 가자미 구이, 잡채, 꼬막 무침 등으로 구성된 메뉴다. 저녁 코스 요리에 비해서는 비교적 ‘간단한’ 편이라는 그녀의 말과는 달리 음식은 상을 가득 메웠다. 첫눈에도 신선하고 깔끔하게 보이는 게 맛있는 기운이 왕성하다. 젓가락을 놀릴 때마다 음식 하나하나에 정성이 가득 든 게 느껴진다. 집에서 차린 식사처럼 정갈하고 사랑스러운 맛이다.
취나물은 된장과 참기름으로 무친 반찬이다. 신선하면서 고소하고 짭짤한 게 한참 무르익은 봄을 입안에 넣는 맛이다. 배추 겉절이는 매일 아침에 만든다. 그래서 신선한 맛이 좋다. 두부 졸임은 꽈리고추를 넣고 소고기를 갈아 섞은 반찬이다. 고추의 은근한 매운 느낌과 소고기의 고소한 맛, 두부의 담백한 맛이 조화를 잘 이뤄 젓가락을 자꾸 끌어당긴다. 나물은 겨울초와 콩나물, 말린 곤드레로 구성돼 있다.
말린 도루묵 무침은 포항에서 미리 반 건조한 도루묵으로 만든다. 튀긴 도루묵에 고추장, 고춧가루, 땡초, 참기름을 넣고 무친 반찬이다. 겉은 쫄깃하고 속은 부드러운 게 입맛을 끌어당긴다. 미역국에는 전복 내장을 넣는다. 원래 내장을 넣으면 비린내가 나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김 사장이 특유의 비법으로 비린내를 잡아 잡냄새는 전혀 나지 않는다. 향긋한 바다 냄새와 고소한 맛이 잘 조화를 이룬다.
돼지불고기는 간장 양념만을 사용한다. 고기를 이틀 정도 간장에 절인 뒤 배, 사과, 키위 등 과일을 갈아 넣는다. 이때 배합 비율을 잘 맞춰야 한다. 짜지 않으면서 깊은 맛이 일품이다. 제철을 맞은 가자미 구이는 고소하다. 원래는 조기를 사용했지만 최근 가격이 너무 올라 할 수 없이 가자미로 바꾸었다. 파전은 얇게 부친다. 얄팍한 파전을 접시에 담으면 여러 겹으로 달라붙어 층을 이룬다. 부드럽고 향긋한 맛이 빼어나 전채로 먹기에 적당하다. 한 장씩 떼어먹는 것도 재미있지만 여러 장이 겹쳐진 채로 먹으면 씹는 맛이 좋다.
통나무하우스의 고객 중 절반가량은 오래 된 단골이다. 흔한 말로 ‘한 번도 안 온 손님은 있어도 한 번만 온 손님은 없는 셈’이다. 김 사장에게 가장 감사한 기억을 남겨준 단골은 코로나19 탓에 힘들었던 2020년에 찾아온 손님이다. 그는 “식사를 하고 돌아가면서 ‘힘든 데 보태 쓰라’며 현금 1000만 원을 주고 갔다. 아주 오래 된 단골은 아니지만 맛을 잘 아는 분이다. 정말 고마웠다. 돈은 쓰지 않고 지금도 갖고 있다”며 환하게 웃었다.
2022-04-06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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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가수 노래 듣고 커피 역사 보고… 화천서 맛본 이색 커피 공간
여행을 다니다 피로를 느낄 때 제대로 우려낸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마시면 더 이상 좋은 게 없다. 다행히 강원도 화천에는 낮에, 그리고 저녁에 커피를 편안하게 음미할 수 있는 이색적인 공간 두 곳이 있다. 카페 ‘해와 달’과 산천어커피박물관이다.
‘해와 달’은 1999년에 데뷔한 부산 출신의 부부가수 ‘해와 달’이 만든 카페다. 장애인 아들을 돌보다 장애인 등을 대상으로 하는 자원봉사 활동에 뛰어든 부부가 화천으로 이사해 만든 공간이다. 이들은 이곳에서 장애인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는 것은 물론이고, 지역 주민들을 모아 사회복지시설과 군부대 등에 음악공연과 봉사활동을 진행한다.‘해와 달’에서는 월요일과 화요일 저녁에는 음악 공연을 즐길 수 있다. 부부가수는 물론 이들을 도와주는 지역주민들이 출연해 다양한 음악을 들려준다.
산천어커피박물관은 커피 자료 수집가인 제임스 리가 평생 모은 커피 관련 기구와 자료를 화천에 기증한 덕분에 만들어졌다. 매우 넓은 곳은 아니지만 곳곳을 자세히 살펴보면 아주 흥미로운 기구가 다양하게 널려 있다는 걸 알게 된다. 19세기 말~20세기 초 유럽과 아프리카, 중동에서 사용하던 로스터, 그라인더, 잔, 에스프레소 머신, 메이커 세트, 포트 등을 전시하고 있다.
박물관만 관람할 수도 있고, 커피를 마실 수도 있다. 커피는 머신으로 내린 아메리카노가 아니라 짙은 정성이 담긴 드립 커피다. 낯선 곳에서 기대하지 않은 맛있는 스페셜티 커피 한 잔을 마시게 되면 색다르게 감동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2022-03-30 [18: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