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일의 곰곰 생각] 중대재해법은 잘못이 없다

김승일 논설위원 dojun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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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영세 사업장 법 적용 확대 갈등
공포 자극 재해 예방 도움 안 돼

확대 시행 6일 만에 3명 숨져
안전 위반 엄벌 필요성 일깨워

산재 둔감한 의식·관행이 잘못
선진 사회 가는 성장통 겪는 중

지난해 10월 철근을 생산하는 부산의 한 제철 공장을 방문했을 때 일이다. 용광로 폐열을 활용해 과채류를 재배하는 공장 부설 스마트팜 견학이 목적이었는데, 시뻘건 쇳물을 다루는 현장치고는 지나치게 ‘질서정연’한 분위기에 눈길이 갔다.

왜 그런지 이유를 물었더니 “회사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이후 사고 예방에 특히 신경을 쓴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위험한 곳이라는 선입견을 가진 외부인 시선에 정돈된 작업 환경이 낯설게 비쳤던 모양이다. 기업이 안전을 최우선에 두면 현장 분위기가 확 바뀐다는 걸 실감한 사례다.

잊힌 기억을 되살린 건 한동안 우리 사회를 양극화시킨 중대재해처벌법 유예 논란이다. 2년의 유예 기간이 끝난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 준비 부족과 경영 애로를 이유로 정부와 여당 그리고 사용자 단체가 유예 연장을 요구했으나 야권과 시민·노동단체는 예정대로 시행을 주장하며 팽팽하게 맞섰다.

결국 유예 법안이 통과되지 않았고 지난달 27일부터 전국 83만 곳의 사업장까지 확대 시행에 들어갔다. 혼란을 최소화하면서 제도 안착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의무가 정부 당국과 기업, 근로자 모두에 주어졌다.

하지만, 논란을 부추긴 이면에 도사린 오해와 무지, 무책임은 우리 사회가 되새김질해야 할 숙제로 남았다.

이 법의 확대 시행을 앞두고 이른바 ‘공포 마케팅’이 넘쳐났다. ‘빵집·식당·카페도 중대재해법 처벌’ ‘사장 구속되면 줄폐업, 해고’…. 정부의 주장을 확대 재생산한 보도가 이어졌다.

장관이 동네 가게를 방문하는 모습을 TV가 비췄고, 급기야 ‘영세 사업자들이 예비 범법자가 된다’는 논리까지 횡행했다. ‘먹고 살기 바쁜데 어떻게 대기업처럼 안전 인력을 두느냐’ 등의 애로 호소도 단골 소재로 등장했다.

반면 법 시행 초기부터 대상 확대를 주장한 노동계의 목소리는 공론장에서 과소 반영됐다. 중대재해법 유예를 둘러싼 논쟁은 기울어진 운동장처럼 ‘닥치고 유예’로 쏠렸다. 그 과정에 계도와 컨설팅 등 사전 준비 작업을 게을리한 정부의 무책임은 가려졌다.

중대재해처벌법 이전에 산업안전보건법이 있다. 모든 산업 현장에 재해가 발생하면 먼저 산업안전법에 따른다.

예컨대 사망 사고는 산업안전법의 과실치사 규정으로 우선 따지게 되어 있다. 중대재해법은 안전 의무에 소홀한 사업주 책임을 분명히 한 것으로 산업안전법에서 한 걸음 나아갔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법 시행 2년 동안 사망 사고라도 중대재해법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제법 있었다.

50인 미만 사업장도 유예 여부와 상관없이 우선 산업안전법의 적용을 받는다. 안전과 보건 인력도 산업안전법 규정이지 중대재해법에서 신설된 것이 아니다. 중대재해법 확대 탓에 영세 기업이 망하고 ‘예비 범법자’로 전락한다는 건 지나친 비약이라는 지적을 받는 이유다.

또 빵집·식당·카페 사장님을 콕 찍어 피해자 프레임을 씌우는 것 역시 억지다.

고용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2022년 산재 사망자 644명 중 제조·건설 현장이 512명(80.9%)으로 절대 다수다. 숙박·음식점업에서 발생한 경우는 1%가 안 된다.

여기서 문제는 2년 유예 중인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과반이 넘는 388명(60.2%)의 산재 사망자가 나왔다는 대목이다. ‘공포 마케팅’의 논리대로라면 동네 가게 사장님 중에 산업안전법으로 처벌받은 전과자가 수두룩이 나왔어야 한다.

중대재해법은 2018년 당시 24세이던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 씨가 발전소에서 숨진 사건이 발단이 됐다. 더 이상의 비극을 되풀이하지 말자는 사회적 합의가 모인 법이다.

그런데 이 법이 소규모 사업장으로 확대 시행된 지 6일 만에 부산 기장의 폐알루미늄 업체, 강원도 평창 태양광 패널 공사 현장, 또 경기도 포천의 금속 공장에서 각각 안타까운 사망 사고가 발생했다.

안전 장구를 제대로 갖추고 규정을 잘 따른 덕분에 가벼운 부상에 그쳤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우리의 경각심은 아직 부족하다. 일하는 사람의 생명을 귀하게 여기자는 중대재해법이 우리 사회에 아직 필요하다는 점을 아프게 일깨우는 사례다.

‘빵집에서 일하다 사망’은 과장된 표현이 분명하지만, 실제 그런 사고가 난다면 처벌된다는 게 법의 취지다. 중대재해법이 잘못된 게 아니라 안전에 둔감한 의식과 관행이 잘못이다. 우리는 선진 사회로 가는 성장통을 겪고 있는 중이다.


김승일 논설위원 dojun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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