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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영철의 사리 분별] 지역 살릴 마지막 골든타임, 진심이 필요하다
서울 등 수도권 면적은 우리 국토 11.8%에 불과하다. 하지만 인구와 자본의 절반 이상이 수도권에 몰려 있다. 특히 좋은 일자리 대부분이 수도권에 밀집하면서 지역 청년 유출 현상은 심각한 상황이다. 수도권이 블랙홀처럼 인구를 빨아들이면서 지역의 상당수는 소멸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1982년 수도권 과밀화를 막기 위한 수도권정비계획법을 시작으로 다양한 지역 균형발전 정책들이 추진됐다. 더욱이 노무현 대통령 때인 2004년 국가균형발전특별법을 제정해 공공기관 지방 이전을 하는 등 균형발전을 위한 국가 차원의 노력이 있었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다. 수도권과 지역 격차는 되레 더 커졌고, 기형적으로 과밀화된 수도권이 국가 발전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된 상황이다.
이재명 대통령에 앞서 1948년 이승만 초대 대통령을 시작으로 13명이 국정을 이끌었다. 역대 정권의 최우선 목표는 시대에 따라 달랐다. 198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산업화 기틀을 닦거나 수출 경쟁력을 높이는 데 치중했다. 당시 수도권 집중화는 짧은 시간에 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는 정책으로 받아들여졌다. 선택과 집중으로 효율성을 높여 나름의 결과를 도출했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이후에도 선택과 집중, 효율성을 앞세운 단기적 시각의 국정 운영이 당연시됐다는 것이다. 이런 상태로 시간은 흘렀고 수도권 일극주의는 고착됐다. 우리는 먹고살 만해진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도 지역 균형발전을 위한 초석을 쌓고 씨앗을 뿌리는 데 무신경했다. 이제 지역은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이 대통령 집권 기간은 수도권 일극주의를 타파해 국토 불균형을 해소할 수 있는 마지막 골든타임이라고 할 수 있다. 지역에 씨앗을 뿌리고 모종을 이식하는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 수도권과 지역의 극단적인 양극화가 불러온 지역 황폐화 문제에 대한 신속한 처방과 장기적 정책 추진이 절실하다.
이 대통령은 최근 내년도 예산안에 대한 국회 기조연설과 중앙지방협력회의 등을 통해 지역 균형발전에 대한 다양한 계획을 밝혔다. 우선 국회 기조연설에서 ‘지방 우선, 지방 우대’ 원칙을 강조했다. 지방 자율재정 예산 규모를 3조 8000억 원가량에서 약 10조 6000억 원으로 세 배 가까이 늘려 자율성을 대폭 확대했다고도 설명했다. 지난 12일 중앙지방협력회의에서는 수도권 일극 체제 개선과 지방자치 확대를 약속했다. 이 대통령은 특히 “지방재정 분권 확대,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 등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이 취임 직후부터 밝힌 지역소멸 대책 등 균형발전 계획은 현재까지 긍정적 평가를 받는다. 그렇지만 정권 교체 여부에 흔들리지 않는 초장기적 국정과제로 자리매김시키려면 추가적인 제도적 장치는 물론 이 사태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흔들림 없는 문제 해결 의지가 필요하다.
현재 지구촌 대다수 나라들도 지역소멸이라는 난제에 봉착했다. 이런 가운데도 문제 해결을 위해 고군분투한 다른 나라들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프랑스 미테랑 전 대통령은 1981년 취임하자마자 프랑스 최초의 지방분권법 ‘드페르법’ 제정을 추진했다. 법안이 통과되면서 전체 예산 13%에 불과했던 지방정부 예산은 22%까지 증가했다. 지방정부 투자가 늘면서 지방 고용률도 급증했다. 프랑스대혁명 이후 가장 혁명적인 정책이라는 찬사가 쏟아졌다. 2019년 스페인에서는 지역소멸 등 ‘영토 불균형’ 문제를 치유하겠다는 기치를 내 건 ‘테루엘 엑시스테’라는 정당이 상원과 하원에 진출, 지역 정당 연쇄 창당을 이끌어냈다. 일본은 〈부산일보〉가 최근 기획 보도한 ‘지역소멸 대안, 원격근무’ 시리즈의 지적처럼 지역에 대기업 원격근무 직원을 채용할 수 있는 환경을 적극 조성하고 있다. 홋카이도 기타미시, 후쿠시마현 아이즈시, 도쿠시마현 가미야마초 등 원격 근무 활성화에 나선 도시에는 다양한 전문 기술을 가진 인력들이 몰려들고 있다. 캐나다 레라블 자치구의 경우엔 녹지인 그린존에 집을 짓도록 허용하는 ‘농지 59’라는 파격적인 정책을 도입했다.
그렇다면 다양한 지역 균형발전과 지역소멸 해소 정책 시행에 앞서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지금이 골든타임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사안의 위중함을 깨달아야 문제를 진심으로 대하게 된다. 앞서 언급한 다른 나라들의 사례도 정확한 사태 인식과 문제를 해결하려는 진심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정부가 지역 균형발전을 위해 가장 절실한 가덕신공항 개항 목표를 당초 2029년 12월에서 최근 2035년으로 6년이나 늦춘 점 등은 지금이 골든타임이라는 인식 자체가 부재하다는 방증으로 읽힌다. 나아가 지역 균형발전에 대한 이 대통령의 공언이 진심인지 의구심마저 들게 한다. 우리는 지금 지역을 살릴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을 지나고 있다. 허우적대는 지역을 보고 더 이상 좌고우면해서는 안 된다.
2025-11-25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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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영철의 사리 분별] 퇴행의 시대, 가장 강력한 의무에 대하여
인류는 법과 관습, 규칙 등 다양한 규율에 근거해 삶을 이어간다. 규율은 지적 체계에 기반한 공동체 가치관을 통해 힘을 얻는다. 공동체를 지탱하는 가치관은 먼 과거에서 현재에 이르는 유구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인류가 온갖 시행착오를 겪으며 지켜온 것들이다. 우리가 별다른 생각 없이 누리는 자유, 평화, 민주주의, 평등, 다양성, 인도주의, 인권 등은 치열한 노력으로 일궈낸 귀중한 유산인 셈이다. 공동체 가치관의 좋고 나쁨은 그 뿌리를 이루는 지적 체계의 질과 공고함에 비례한다. 지성이 빛을 잃고 무지와 야만에 굴복할 때, 즉 전체주의와 권위주의 등 병적인 공동체 가치관으로 무장한 개인들이 장악한 집단과 국가가 힘을 얻을 때마다 세계대전 등 인류를 퇴행시키는 암흑의 시대가 어김없이 도래했다.
병든 공동체 가치관이 촉발한 퇴행적 사건들의 부작용은 너무도 치명적이다. 대규모 살육과 문명 기반 파괴 등을 딛고 다시 일어서는 데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린다. 더욱이 역사를 돌이켜보면 대규모 전쟁 등 인류사적 퇴행은 누적된 퇴행들의 종합적인 귀결일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소중한 정신적 유산들이 무너지고 반지성적 행태들이 난립하는 바로 그 순간을 가장 경계해야 한다. 더욱이 지적 체계와 공동체 가치관 등의 유산은 보기보다 약하고 작은 충격에도 쉽게 바스러지는 속성을 갖고 있다. 미리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못하면 어느 순간 거대한 퇴행의 물결에 휩쓸려 그동안 이뤄온 소중한 유산을 모두 잃고 야만의 시대를 장기간 감내해야 한다. 그렇다면 지금 이 시대는 어떠한가. 현재 지구촌이 무척 위태로운 처지에 놓여있다는 경고가 도처에서 이어진다.
크고 작은 퇴행의 증거는 너무도 많다. 우선 세계 최강 국가인 미국을 들여다보자. 미국이 자유민주주의 선거를 통해 다시 선출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보편적 가치에 기반한 기존 세계질서와 공동체 가치관을 스스럼없이 훼손하고 있다. 인류가 어렵게 구축한 상호주의를 무시하는 일방적 관세 부과, 각종 차별적 발언, 자발적 재산 공개 거부, 기후 위기 조롱 등 민주 사회에서 상상키 어려운 반지성적 리더로서의 면모를 보인다. 남북전쟁 등을 통해 힘들게 구축한 공동체 가치관과도 상반된다. 트럼프 대통령을 거듭 지지한 과반수 미국 국민들은 더 많은 경제 이익을 원하는 것일까. 아니면 중국 등 후발 경쟁국에 대한 분노적 감정에 굴복한 것인가. 최소한 그들이 타협과 협력을 중시하는 진일보한 지적 공동체를 염원치 않는 것은 명백해 보인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의 퇴행은 미국이라는 공동체 전반에 걸친 가치관 퇴행의 방증이라는 추정도 가능하다.
미국뿐만이 아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구축된 상호주의에 기반한 ‘탈식민 세계화’라는 인류사적 흐름은 이미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다. 힘에 의한 자국 이익 추구 경향이 노골화하면서 짧은 평화의 시기가 끝났다는 탄식이 이어진다. 영국은 이미 2020년 유럽연합에서 정식 탈퇴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3년째 참혹한 전쟁을 이어가고 있다. 가자지구 갈등은 일상이 되었고, 중국은 대만 침공을 공공연한 목표로 삼고 있다. 북한과 중국, 이란, 러시아 등 이른바 반미축과 미국과 일본 등의 신냉전 갈등은 갈수록 격화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핵무장 경쟁은 숨 가쁘게 진행되고 있다. 세계대전의 뼈아픈 교훈은 온데간데없다. 한국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격한 토론이 민주주의의 본질이라고 하더라도 한국 정치권에서는 숙의민주주의라고 하기 어려운 조롱과 상대 악마화 등이 판치고 있다. 정치 실종이 일상화하면서 한국 사회에서도 집단과 개인 이기주의, 편가르기가 심화되는 등 공동체 가치관에 심각한 퇴행이 발생하고 있다.
이대로 가면 인류의 불행한 역사가 다시 반복될 것이라는 지적이 거세다. 물론 인류 역사는 짧은 평화와 기나긴 암흑의 반복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무지와 야만이 판치는 퇴행이 초래한 참담한 과거와 불행한 삶에 대해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인류는 사회적 진화를 거듭하며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현재를 사는 인류는 과거에서 전승한 정신적 유산들을 다듬고 발전시켜 미래로 전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삶이 세대에서 세대로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은 물론 한 세대의 잘못된 선택이 미래 많은 세대의 삶까지 망칠 수 있다는 단순한 섭리부터 깨달아야 한다. 시간이 현 세대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공감대가 확산될 때 현재의 각종 퇴행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짧은 성장통에 그칠 수 있다. 우리는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아름다운 가치를 지키고 보전하는 것은 물론 희망의 씨앗을 많이 뿌려 후인들에게 전달해야 한다. 욕망에 사로잡힌 불행한 현재를 미래 세대에 떠넘기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이야말로 오늘을 사는 모든 개인들에 부여된 가장 강력한 의무라는 것을 서둘러 자각하길 소망한다.
2025-10-23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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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영철의 사리 분별] 트럼프주의 10년,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세계사의 주역으로 등장한 지도 벌써 10년째로 접어들었다. 2016년 그가 처음 당선된 이후 많은 것이 달라졌다. 당시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우면서 이민자와 성소수자 혐오는 물론 인종차별 발언까지 서슴지 않던 그의 모습은 지구촌에 큰 충격을 안겼다. 트럼프 대통령이 올 1월 재선 임기를 시작한 뒤에는 충격을 넘어 혼돈의 나날이 이어지고 있다. 기존 질서를 아예 무시한 일방적인 상호 관세 부과 등으로 인해 전 세계는 그야말로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다.
이미 우리가 예전에 알던 세상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마가(MAGA)’ 구호에 밀려 기존 국제사회의 중대한 원칙인 다자주의에 입각한 상호주의와 자유무역체제 등은 변변한 저항조차 못한 채 역사 속으로 퇴장하고 있는 중이다. 다양성을 중시하는 포스트모더니즘도 일상이 된 ‘퇴행의 역습’을 언제까지 버텨낼지 장담할 수 없는 형국이다. 미국과 중국, 러시아 등을 주축으로 한 신냉전 체제도 한층 공고해지는 분위기다. ‘힘에 의한 평화’ 논리가 다시 힘을 얻으면서 1991년 구 소련 연방 해체로 찾아왔던 짧은 평화의 시기가 사실상 끝났다는 탄식도 이어진다. 그리고 우리는 최근 미국에 3500억 달러를 투자하겠다는 약속을 하고도 현지에서 일하던 한국 노동자들이 쇠사슬에 묶인 채 무분별하게 구금되는 장면을 지켜봐야만 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점은 10년 전 다소 기이하게까지 느껴졌던 트럼프 대통령의 거친 말투와 행동, 반지성적 논리가 이젠 뉴노멀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른바 트럼프주의의 확산이다. 트럼프주의의 골자는 우익 포퓰리즘, 미국 내셔널리즘, 반세계화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더욱이 ‘트럼프주의 10년’의 영향으로 극우 성향 정당들이 전 세계적으로 한층 강력한 영향력을 획득했다. 유럽의 경우 헝가리 민족주의 성향 피데스당, 프랑스 극우 국민연합, 오스트리아의 자유당, 체코 긍정당, 네덜란드 자유당 등은 트럼프 대통령의 구호를 차용해 ‘유럽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슬로건까지 내걸었다. 정치 이념도 트럼프 대통령과 판박이다. 이들은 EU의 친환경 노선을 비판하고 공식 행정 문서에 사용하는 성별을 남성과 여성만 인정하기로 한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에도 적극 호응한다. 특히 그들은 트럼프주의가 더 이상 이단이 아니라 주류라고 선언한다.
가장 큰 문제는 트럼프주의 확산 이면에 강력한 포퓰리즘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 선거 시스템의 한계를 교묘하게 파고드는 포퓰리즘은 트럼프주의의 주된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포퓰리즘은 보수와 진보, 극우와 극좌 모두에게 매우 유용하다. 선거 전략뿐만 아니라 정당 운영 논리, 국정 운영 방향도 포퓰리즘적 손익계산서를 토대로 수립되는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도 경제적 불평등 심화와 정치적 양극화라는 환경 속에서 미국 사회 불안정성이 증대된 데 따른 유권자들의 표심 변화를 정확히 읽고 공략한 데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포퓰리즘은 심각한 후유증을 유발한다. 포퓰리즘은 편가르기를 통해 힘을 얻고 세력을 확장하기 때문이다. 집권과 정권 재창출에 매몰된 정치 지도자들은 대중들을 상대로 상대 진영에 대한 불만과 불안감을 조장하는 데 골몰한다. 이 과정에 가장 우려되는 점은 포퓰리즘식 선동이 상대 진영에 대한 지지층의 증오를 유발한다는 것이다. 유권자가 깨어있지 못할 경우 정치가 부추긴 증오로 인한 부작용은 심각한 상황을 초래한다. 이런 점에서 최근 트럼프주의 지지자인 미국 보수 활동가 찰리 커크 암살 사건은 많은 점을 시사한다. 용의자인 타일러 로빈슨은 “그의 증오에 질렸다”고 범행 동기를 밝혔다. 증오가 증오를 낳고, 결국 임계점을 넘어 참극으로 치달은 것이다. 지금도 진영 논리식 분노 표출과 복수를 주문하는 목소리가 이어지는 등 이 사건의 파장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더 안타까운 것은 피해자가 32세, 용의자 22세로 모두 미래를 이끌 청년층이라는 점이다.
트럼프주의 10년, 계속 이대로 흘러가도 괜찮은 것인가. 트럼프주의와 포퓰리즘은 우리 사회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세대와 계층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목격되는 극심한 분열과 갈등은 우리 사회의 공동체적 연대에 깊은 상처를 내고 있다. 지적체계에 기반한 평화와 평등, 인류애, 이타심, 다양성 등 그동안 힘들게 구축한 보편적 가치들도 흔들리고 있다. 이 와중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트럼프는 모든 점에서 옳다(Trump was right about everything)’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서로 자신이 전적으로 옳다고 주장하는 사회는 그 자체로 심각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인류가 트럼프주의와 포퓰리즘 부작용으로 인한 집단 퇴행을 극복하는 데는 앞으로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소통과 화합으로 공존의 길을 찾는 통합의 리더십이 절실한 시절이다.
2025-09-18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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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영철의 사리 분별] 다자주의 흔드는 퇴행의 시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각국에 부과한 상호관세가 지난 7일 발효됐다. 상호관세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으나 무차별적이고 예의에 어긋난 관세율 책정은 트럼프 대통령의 일방적 의중에 따른 것이었다. 기준은 오로지 미국의 국익이었다. 이번 상호관세는 기존 세계 질서에 큰 충격을 안겼다. 가장 주목할 것은 이번 관세 파동으로 기존 국제 사회의 가장 큰 원칙인 다자주의가 사실상 붕괴됐다는 것이다.
다자주의는 국제 문제를 한 국가가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다수 국가가 협력적인 자세로 해결하는 것을 말한다. 강대국에 유리한 힘의 논리를 억제하고 약소국 권익을 지키기 위한 취지다. 다자주의는 어느 날 갑자기 구축된 것이 아니다. 제1차, 제2차 세계대전 등 지구촌을 큰 혼돈으로 몰아넣은 초대형 재앙과 냉전 시대를 겪으면서 서서히 자리 잡은 것이다. 갈등보다는 평화, 차별보다는 비차별, 일방주의보다는 상호주의에 의해 국가 간 갈등과 분쟁을 해결하는 것이 모두에게 이롭다는 공감대를 바탕으로 한 인류의 진일보한 성과물이었다. 특히 이런 국제 질서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인류는 개방성과 자유주의적 가치를 바탕으로 인도주의 문화의 발전, 진일보한 지적 체계 구축과 확산 등의 효과도 함께 거뒀다.
하지만 이번 미국의 관세 정책은 다자주의는 물론 인류가 그간 이뤄낸 문명적, 지성적 성과를 정면으로 무시하는 것이다. 더욱이 다자주의 무역질서를 상징하는 세계무역기구(WTO) 등의 존재도 부정하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은 상호관세 발효와 동시에 WTO 체제 종식을 선언했다. 제2차 세계대전 말 연합국이 자유주의에 기초한 경제 질서 확립을 논의하며 1944년 출범시킨 브레튼우즈 체제 51년, 그리고 그 이후 1995년 시작된 WTO 체제 30년 등 총 81년의 역사를 가진 지구촌 자유무역체제가 역사 속으로 사라질 운명을 맞은 것이다.
이것은 어떤 의미일까. 국제 사회나 인류 전체적으로 볼 때 미국 독단적 다자주의 종식 움직임은 명백한 퇴행이다. 인류는 기나긴 시간 동안 무수한 변곡점을 거쳐 현재를 맞았다. 인류가 맞은 현재는 과거 수많은 퇴행의 위기에 맞서 한 걸음이라도 앞으로 나아가려던 지난한 노력들의 결과물인 셈이다. 그 필사적인 과거의 노력들은 자유, 민주, 평등, 인류애, 화합, 인도주의, 다자주의 등 보편적인 가치를 확립하는 동시에 개인과 공동체의 삶의 질을 증진하는 성과도 거뒀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에 다른 국가에 드러낸 강압적 태도는 인류 시계를 먼 과거로 되돌리는 역사적 퇴행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이번 상호관세 사태로 야기된 기존 질서 파괴가 끝이 아니라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일방적 상호관세 부과는 확실한 목적을 갖고 있다. 미국을 독보적인 세계 최강 국가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특히 미국은 어느덧 자신들을 위협할 만큼 성장한 중국을 강하게 견제하는 것을 최고의 목표로 삼고 있다. 미국은 당초 클린턴과 부시 2기 대통령 집권기 등을 거치면서 중국이 자신들의 경쟁 상대가 될 것이라고 판단하지 않았다. 심지어 클린턴 대통령 때인 1993년에는 중국에 대륙간탄도미사일 등에 필요한 고급 기술을 대거 수출하기 위해 법을 개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중국이 안보와 경제 분야에서 엄청난 발전 속도를 보이면서 미국은 현재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태다. 트럼프 1기와 바이든 정부를 거쳐 다시 트럼프 대통령이 재집권하면서 미국의 전략 변화는 이미 예견됐다. 이번 상호관세 사태에서도 입증됐듯이 미국은 중국 견제라는 최우선 목표 달성을 위해 역사적 퇴행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세계 경찰국가 역할도 더 이상 수행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기존 국제 질서를 미국 국익 위주로 전환하는 데 더욱 집중할 전망이다.
한국 입장에서는 미국이 동맹국을 챙기지 않는 것은 물론 강압까지 일삼고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데다 중국을 도외시할 수도 없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 낀 한국의 운명은 너무도 위태롭다. 민감한 지정학적 위치, 수출 의존적 경제 구조 등에 따른 부담도 크다. 미국은 중국을 저지하기 위해 우리에게 국방비 증액, 군사적 역할 확대도 주문하고 있다. 대외 전략의 전면적 재검토는 물론 다자주의 복원 노력 등을 통해 새로운 국제 질서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25일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다. 클린턴 정부의 안일한 대중국 정책이 30여 년 뒤 다자주의 붕괴라는 인류 퇴행을 초래했듯이 오판은 후일 반드시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국가 미래를 위한 최선의 전략 마련을 당부한다.
천영철 논설위원 cyc@busan.com
2025-08-12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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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영철의 사리분별] 대한민국 미래 동력 북극항로와 부울경 메가시티
인류 문명사를 뒤흔들 새로운 길이 열린다. 심지어 이 길은 부산·울산·경남을 경유해 지나간다. 부울경이 지구촌 누구나 부러워하는 ‘글로벌 초역세권’이자 아시아의 관문으로 발돋움할 절호의 기회를 맞은 것이다. 이 길은 부울경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을 살릴 미래 동력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작 어마어마한 ‘복권’에 당첨된 부울경은 아직까지 이 길의 가치를 제대로 깨닫지 못하는 듯하다. 이 길은 북극항로를 말한다.
북극항로는 반갑지만 슬픈 길이다. 얼어붙은 북극해가 지구온난화로 녹으면서 비로소 상업적 선박 운항을 꿈꿀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유럽과 아시아를 최단 거리로 연결하는 새로운 글로벌 해상 루트인 북극항로는 시베리아 북쪽 연안을 경유하는 북동항로, 캐나다 영역의 북부 북극해를 통과하는 북서항로, 아직까지 얼어붙어 상업적으로 활용할 수 없는 북극점 횡단 항로 등의 세 코스로 나눌 수 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길은 북동항로다. 북동항로는 유럽 발트해에서 노르웨이 북구를 거쳐 러시아 북극 연안을 따라 항해한 뒤 동시베리아와 베링해협을 지나 한반도 동해로 진입, 한국, 일본, 중국 등 동북아시아로 연결된다.
북극항로가 우리에게 중요한 이유는 유럽에서 일본과 중국, 한국 등 아시아로 오가는 선박들이 부울경 항만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그동안 지구촌은 유럽~아시아 물류 운송을 위해 말라카해협과 수에즈운하를 통과하는 항로를 수백 년 동안 이용했다. 하지만 북극항로가 상용화되면 사정이 완전히 달라진다. 북극항로는 1만 2700km로 2만 1000km에 달하는 기존 항로보다 훨씬 짧다. 운송 시간뿐만 아니라 연료비 등 물류 수송 비용이 대폭 줄어든다.
북극항로는 아직까지 활짝 열리지 않았다. 현재 하절기 5개월 정도만 운항할 수 있다. 그렇지만 전문가들은 10여 년 후에는 연중 운항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경쟁국인 중국과 일본 등은 이미 치열한 준비에 나서고 있다. 중국은 북극항로를 ‘빙상 실크로드’로 명명하고 인프라 확충을 추진 중이다. 일본은 홋카이도를 북극항로의 중간 거점이자 환적 허브로 만드는 대대적인 육성 정책에 나서고 있다. 북극항로에 필요한 쇄빙선 경쟁도 치열하다. 노르웨이, 핀란드, 러시아 등은 쇄빙과 운항을 동시에 하는 선단을 꾸리는 등 북극항로 활용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북극항로의 중요성과 시급성을 강조한 데 이어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 등을 시작으로 북극항로 대비 전략을 본격 추진한 것은 국가 백년대계를 위해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조금 더 속도를 내야 한다. 해수부가 북극항로 태스크포스를 꾸리는 등 발 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만 범 정부 차원의 정밀한 협업이 시급하다. 부산항을 거점항구로 육성하는 것 등을 골자로 하는 관련 특별법 등 제도적 정비도 서둘러야 한다. 더욱이 북동항로는 국제법상 공해이지만 유빙과 빙산 때문에 러시아의 에스코트를 받아야 통행할 수 있다. 정부 차원에서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에 나서는 등의 장기 전략이 뒤따라야 한다.
부울경도 북극항로 시대를 본격적으로 대비해야 한다. 북극항로 거점항구는 단순히 화물만 오고 가는 장소가 아니다. 물류 환적과 생산, 재가공, 금융거래 등을 할 수 있는 배후단지 인프라를 공동으로 구축해야 한다. 부울경 전체를 첨단산업기술 클러스트화하는 것도 시급하다. 부산항뿐만 아니라 울산신항도 거점항구에 포함시켜 역할을 배분하는 전략도 필요하다. 우물쭈물하다가는 일본과 중국에 밀려 천재일우의 기회를 제대로 살리지 못할 우려가 크다.
이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부울경을 아우르는 초광역 메가시티를 만드는 것이다. 부울경 메가시티는 망국적인 수도권 일극주의를 없애고 새로운 국가 동력을 만들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작 부울경은 각 정당과 지역의 이해관계 때문에 그동안 메가시티 논의를 진전시키지 못했다. 부울경 초광역경제동맹을 출범했으나 경제 협력으로는 메가시티 기능을 수행할 수 없다. 더욱이 행정통합 논의엔 부산과 경남만 참여한 데다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부울경은 메가시티화 논의를 활성화하고 관련 특별법을 추진해야 한다. 이젠 시간이 없다. 부울경 광역단체장들은 메가시티화가 이제 더 이상 선택 사항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 바란다. 부울경이 메가시티라는 큰 날개를 활짝 펼칠 때 북극항로 효과를 극대화하면서 새로운 산업 문명의 중심으로 발돋움할 수 있다. 북극항로라는 거대한 패러다임 전환을 앞둔 지금, 정부와 부울경의 빈틈없는 대응 전략 수립과 추진을 기대한다.
2025-07-15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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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영철의 사리 분별] 그들은 서럽고 막막할 뿐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우리 사회는 현재 거의 모든 부문에서 극심한 분열 양상을 보인다. 이번 대선에서도 입증됐듯이 선거 표심은 이런 안타까운 현실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낸다. 따라서 대선 표심에 숨어있는 각 계층 민심의 핵심을 정확하게 읽어내는 것이 ‘모두의 대통령’이 될 수 있는 전제 조건일 것이다.
지상파 3사의 21대 대선 출구 조사에 따르면 70대 이상 유권자 64%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를, 1.5%가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를 지지했다. 더불어민주당 이 대통령을 지지한 비율은 34%로 집계됐다. 19대 대선 출구 조사에서 70대 이상 22.3%가 민주당 문재인 전 대통령을 지지한 것보다 11% 포인트 높지만 노년층의 보수 지지 성향은 별반 달라지지 않은 느낌이다. 이번 대선이 윤석열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에 대한 심판 성격을 띤 점을 감안하면 노년층의 ‘요지부동 표심’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더욱이 대선 최종 지지율은 이 대통령 49.42%, 김문수 41.15%, 이준석 8.34%로 범 보수 후보 두 명을 합하면 거의 50%에 육박한다. 70대 이상 유권자의 응집력이 상당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 응집력과 표심의 원천은 무엇일까. 한국 유권자들은 통상적으로 합리적 판단보다는 개인이나 세대적 불만에 기인한 분노 감정을 기반으로 투표하는 성향이 강하다. 그렇다면 노년층 표심 원인을 분석하기 전에 그들이 무엇에 분노하고 있는가를 우선적으로 살펴야 한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노인 자살률과 빈곤율이 가장 높다. 여기에 사회적 고립과 노인 우울 문제 등을 감안하면 노년층의 상당수는 불행한 현실을 감내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런 상황을 직시할 때 노년층은 궁극적으로 자신들의 서럽고 분하고 막막한 감정을 투표로 분출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생각이다.
물론 산업 발전 주역인 자신들에 대한 평가 절하로 인한 자긍심 훼손, 이 대통령에 대한 반감, 비상계엄에 대한 견해 차이 등도 표심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세대 갈등, 진영 논리, 보수 정당의 전략적 부추김 등도 이유로 꼽힌다. 심지어 인지부조화와 확증편향 등 낙인성 잣대를 들이대는 시각도 존재한다. 그러나 최근 연구 결과 등에 따르면 이런 해석은 결국 곁가지에 불과하다. 사회적 무관심과 구조적 모순 속에 개선 여지없는 고단한 현실을 계속 버텨내야 한다는 것이 기저에 도사린 가장 핵심 원인이라는 것이다. 즉, 모두의 대통령은 다른 모든 것에 앞서 노인들의 고단한 삶을 개선하고 서러운 눈물을 닦아주는 데 정책 초점을 맞춰야 한다. 노인들의 분노를 이용해 ‘세대 프레임’ 선동을 일삼는 퇴행적 정치 관행도 퇴출시켜야 한다.
청년 표심 문제도 노년층과 별반 다르지 않다. 정확한 대선 통계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선거관리위원회의 선거 전 유권자 의식 조사에 따르면 만 18∼29세 이하 청년 가운데 ‘반드시 투표하겠다’는 응답이 75.3%로 집계됐다. 20대 대선 당시 66.4%보다 8.9% 포인트 높았다. 그들이 적극적으로 투표에 나선 것은 이 세대가 처한 현재 환경이 그만큼 좋지 않다는 방증으로 봐야 한다. 청년들은 기회조차 주지 않는 왜곡된 사회 구조 속에서 ‘연애·결혼·출산 포기’를 강요 당하고 있다. 노년층과 마찬가지로 이들도 서럽고 막막한 현실이 초래한 분노적 감정을 이번 대선에 적극 투영한 것으로 추정된다.
신자유주의 시대 기업들은 정규직 고용을 최소화하고 있다. 번듯한 정규직으로 취업하는 것은 이제 거의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 상당수 청년에게 취업이란 파견직, 단기 계약직, 무기 계약직, 아르바이트직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에게 사회생활은 ‘빈곤의 굴레’에 뛰어드는 것에 다름 아닌 것이다. 더욱이 비정규직의 상당수는 상시적 박탈감과 불안감, 자기 비하와 분노 등 부정적 감정에 시달린다. 결국 이번에 청년 표심이 성별에 따라 엇갈리고 20대 남성이 점점 보수화 경향을 보인 것도 모두 팍팍한 삶의 문제로 귀결된다는 분석이다. 가장 본질적 원인인 좋은 일자리 부족, 고용 불안, 저임금 일자리 만연화에 대한 직접적 처방이 시급하다. 비정규직 문제와 관련해 직접 고용, 동일 노동 동일 임금, 정규직과의 차별 해소 등 혁신적인 청년 노동 대책이 시급하다.
모두의 대통령이 된다는 것은 국민의 아픔을 보듬겠다는 의미일 것이다. ‘인생은 어차피 날 때부터 불공정·불공평하다’라거나 ‘서러움은 각자의 몫’이라는 등 책임을 개인과 해당 세대에게 떠넘기는 행태는 이제 중단되어야 한다. 지금, 서러워 울먹이는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분열 책임을 묻는 날 선 질책이 아니라 공감과 정책적 개선이다.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 때문에 갈수록 모질어지는 세상을 조금 더 따뜻한 공동체로 만드는 사람, 모두의 대통령을 기대한다.
2025-06-12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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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영철의 사리 분별] 과거와 미래가 같지 않기를
12·3 사태 이후 158일째로 접어들었다. 많은 일이 있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파면됐고, 6월 3일 새 대통령을 선출한다. 정치권은 정권 창출을 위해 연일 난타전을 벌이고 있다. 비상계엄 사태는 벌써 잊혀 가는 모양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에 대한 2심 무죄 판결과 유죄 취지 파기환송, 미국발 관세전쟁 등 굵직한 사안이 연이어 휘몰아쳤기 때문일까. 아니면 지난 일을 되돌아보지 않는 우리 사회 관성에 따른 것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되짚을 지적 저력조차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대선 결과에 따라 새 정부가 꾸려지는 등 많은 일들이 또 이어질 것이다. 새 대통령은 산적한 현안 처리를 위해 눈코 뜰 새 없는 시간을 보낼 것이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가장 엄중하게 다뤄야 할 사안은 따로 있다. 새 대통령과 정부는 최우선 과제로 12·3 사태로 드러난 우리 사회의 병증을 정밀하게 들여다봐야 한다. 집권했으니 실익이 없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특히 내란 수사가 진행 중인 만큼 검찰과 법원에 맡겨두면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가장 시급한 것은 12·3 사태와 이후 일련의 사안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우리 사회에 던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답을 찾기 위해 머리를 맞대는 것이다.
과거는 현재를 만들고 현재는 미래를 만든다. 우연한 현재는 없다. 12·3 사태를 두고 윤 전 대통령 개인과 그 주변인들의 자의적인 판단에 의한 사건일 뿐이라고 여기면 안 된다. 그 사태에 도사린 수많은 과거와 과거의 연결점, 그 과거와 현재·미래의 연관성에 주목해야 한다. 헌법재판소는 윤 전 대통령 파면 선고에서 ‘국가긴급권 남용의 역사를 재현하여 사회·경제·정치·외교 전 분야에 혼란을 야기했다’라고 했다. 우리는 ‘역사 재현’에 밑줄을 그어야 한다. 그렇다면 가장 본질적 질문은 윤 전 대통령 등이 대체 어떤 내면 작동 프로그램에 따라 ‘나쁜 역사’를 재현할 결심에 이르렀는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질문은 이어진다. 최고 엘리트 과정을 밟은 국정 지도자가 어떻게 망상적 결단을 내릴 수 있었는가. 구속 취소 뒤 환한 미소를 지으며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인 윤 전 대통령의 행동과 생각을 지배한 내면 가치관은 어떻게 구축되었는가. 국민 기본권을 침해하는 비상계엄을 되레 지지한 일단의 국민과 정치인들은 어떤 연유로 그런 가치관을 형성한 것인가. 12·3 사태가 잉태한 이번 대선을 앞두고도 비상식적 일들은 계속되고 있다. 이재명 후보를 위한 민주당의 ‘방탄 입법’이 대표적이다. 파기환송을 선고한 사법부를 조롱하고 대법원장 탄핵도 거론했다. 국민의힘은 내란 원죄에 대한 반성도 없이 ‘반이재명’ 기치 아래 정치공학적 셈법에만 몰두하고 있다. 내부 권력 쟁취를 위한 ‘무조건 단일화’를 둘러싼 진흙탕 싸움은 이들이 12·3 사태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보여준다. 원하는 것을 위해 어떤 행위라도 불사하는 행태는 맥락적으로 12·3 사태와 다르지 않다. 우리 사회는 정상적 판단과 정치를 기대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인가. 상시적인 비상식, 반지성과 보편적 가치에 반하는 행태들을 보면서 이런 현상은 특정 개인과 집단의 문제가 아닌 사회 구조적 문제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에 이른다.
한국 현대사는 식민 지배와 민족 분단, 6·25 전쟁, 반복적 내란으로 인한 장기간의 군사 독재, 외환 위기와 경제 파탄 등 세계사에 유래를 찾기 힘들 만큼 다양한 비극으로 점철됐다. 방임된 신자유주의로 인한 불평등도 극심하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사회적 가치관과 집단 지성의 질이 개인 내면 형성에 큰 영향을 끼친다. 특히 부조리한 과거와 현재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할 경우 사회 가치관은 어긋난 방향으로 질주한다. 그런 사회에서 성장한 개인이 온전한 민주 시민의 가치관을 체득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우리 사회가 권위주의와 엘리트주의, 카르텔에 의한 비민주적 조직 운영, 경쟁 일변도 교육 환경, 승자 독식, 극단적 흑백 논리, 반지성주의, 약자 혐오, 잠재된 고도의 폭력성, 이기주의 등 후진적 병폐로 몸살을 앓는 것은 사회 구조적인 가치관 왜곡 현상이 심각하다는 방증으로 봐야 한다. 더욱이 내면적 성숙과 비판적 성찰을 이루지 못한 후유증들이 지금 거대한 부메랑으로 돌아온다는 생각이다.
우리 사회의 재앙적 병증을 치료하려면 근원적 원인을 면밀히 분석해야 한다. 새 대통령 당선자는 초장기적 관점에 근거한 제도적 혁명을 통해 왜곡된 가치관을 바로잡고 참담한 역사의 악순환을 근절해야 한다. 국민들의 자발적인 학습과 성장 의지도 절실하다. 더 나은 민주 시민이 되려는 지속적 노력으로 과거와 다른 미래를 만들어야 한다. 병든 사회는 인간을 병들게 한다. 우리 사회 내면적 병증의 근원을 향한 끊임없는 질문과 해답 모색만이 나쁜 역사의 반복을 막는 유일한 길일 것이다.
2025-05-08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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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영철의 사리 분별] 사랑에는 사랑으로 답해야 한다
지난 4일 오전 11시 22분,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대통령을 파면했다. 국민 반응은 극명하게 갈렸다. “나라가 어떻게 되려고…” “대한민국이 망했다” 등의 탄식 너머엔 “민주주의가 승리했다”라는 환호성이 메아리쳤다. 선고 이후에도 국민은 여전히 반으로 쪼개져 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서치뷰’가 선고 당일 진행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파면 결정 불수용 응답이 44.8%에 달했다. 헌재가 8 대 0으로 탄핵소추를 인용했지만 윤 전 대통령의 복귀를 기대한 국민의 상당수는 파면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심지어 헌재가 국민을 기만했다는 식의 억측도 이어지고 있다.
헌재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국회 군경 투입 등 5가지 소추 사안이 모두 적법하지 않다고 선고했다. 재판관 8명은 자신의 이념 성향과 무관하게 전원일치로 같은 결론에 이르렀다. 사실상 이번 탄핵심판의 결론은 좌고우면할 사안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파면 이외의 선택지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헌재가 결정문을 통해서도 밝혔지만 계엄 목적 자체가 ‘병력을 동원해 국회와의 대립을 타개하려는 것’이기에 이를 불법으로 규정하지 않는 것은 민주주의 근간을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국민을 충격에 빠트리고, 정치·경제·사회 전 분야에 걸쳐 혼란을 야기한 것은 대통령의 책무에 명백하게 반한다. 특히 군인들의 국회 진입을 담은 동영상 등 불법성에 대한 증거까지 다양하게 확보된 상황이다 보니 탄핵 기각이나 각하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헌재의 존립 목적 자체가 권력 통제 속성을 가진 헌법을 수호, 미완성인 민주주의를 보완하는 것이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그렇다면 파면이라는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었던 헌재 선고를 두고 왜 여론은 극심하게 분열되었을까.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 뒤 122일 동안 ‘심리적 내전’이 한층 극렬해지는 상황으로 치달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다양한 주장이 존재하겠지만 분열된 민심의 밑바닥에 깔린 것은 일종의 트라우마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대한민국은 당연한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혼돈의 역사를 이어왔다. 즉,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은 비정상이 정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정상이 비정상으로 매도되는 아프고 서러운 역사를 너무도 많이 목도했다. 탄핵심판 과정에 표출된 극심한 국민 갈등의 기저엔 이런 과거에서 비롯한 ‘불안감’이 도사리고 있었던 듯하다. 찬탄이나 반탄 국민 모두 불법이 합법으로, 합법이 불법으로 둔갑하지는 않을까라는 불안과 초조함 때문에 불면의 밤을 지새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그 불안을 인지 편향 등 병리 현상으로 치부하면 안 된다. 사랑이 없으면 걱정도 없듯이 국민 불안의 가장 깊은 곳엔 이념 성향을 초월한 ‘나라 걱정과 사랑’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라를 걱정하는 국민들의 애국심은 정치권에 의해 철저하게 농락당했다. 정치권은 일말의 죄책감도 없이 습관화된 기만과 선동으로 민심을 격앙시키고 분열시켰다. 진실한 사랑에는 감사와 더 큰 사랑으로 답해야 하는 것이지만 그들은 표 계산과 잇속 챙기기로 일관했다. 극성 유튜버와 일부 극렬 지지층도 국민들의 사랑을 이용해 갈등을 부추겼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선고 직전까지 대통령 직무 복귀를 전망하면서 헌재가 정치적 판단을 할 것이라거나 5 대 3 교착 상태였는데 최근 4 대 4로 됐다는 등의 무책임한 발언으로 민심을 쪼개고 기름을 부었다. 민주당도 마찬가지였다. 탄핵 찬성과 정권교체 여론, 이재명 대표 지지율 등이 동시 상승했기에 재판관들이 파면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식의 자의적 해석으로 일관했다. 팩트에 기반하지 않은 정치권의 목소리는 1987년 민주항쟁 결과물인 헌법재판소의 정체성은 물론 자유와 평화에 기반한 민주주의 정신마저 부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은 다시 조기 대선이라는 격랑 속으로 접어들었다. 정치권은 또 무분별한 진영 싸움에 골몰하고 있다. 국민들의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선거에 이용하려는 아전인수식 선동은 날로 거칠어지고 있다. 그러면서도 소통과 통합을 강조한다. 참으로 이율배반적인 행태가 아닐 수 없다. 탄핵심판 선고를 앞두고 한강 작가는 “파면은 보편적 가치를 지키는 일”이라고 했다. 너무도 당연했던 ‘파면 선고’를 통해 대한국민은 미래를 향한 의미 있는 한 걸음을 또 내디뎠다. 이제는 정치권이 보편적 가치를 이행할 시간이다. 국민의 ‘나라 사랑’에는 더 큰 ‘나라 사랑’으로 화답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 보편적 가치 실천을 향한 첫걸음이 될 것이다.
2025-04-08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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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영철의 사리 분별] 비정규직의 눈물, 조선 도공의 탄식
경제 상황이 암울하다. 다양한 통계뿐만 아니라 경제 현장을 뒤덮은 짙은 먹구름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불황의 늪에 빠진 한국의 현실을 보여준다. 비상계엄으로 촉발된 불안감과 불확실성 확산까지 겹치면서 기업, 자영업자, 임금 생활자 등 거의 모든 경제 주체들이 비명을 내지른다.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흘러야 이 상황을 극복할 수 있을까. 쉽게 희망을 가질 수 없는 상황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우세하다. 근본적 이유는 무엇일까.
고용 형태 차별에 따른 저임금의 악순환이 경제 현장의 활력을 떨어뜨리는 것은 물론 우리 사회 곳곳에서 심각한 갈등과 부작용을 유발하고 있다. 신자유주의로 촉발된 고용 불안과 임금 절벽, 노후 불안, 경쟁 심화, 좋은 일자리 감소 등이 기나긴 경기 침체와 맞물리면서 인간을 ‘비용’으로 여기는 풍조가 만연하다. 이를 입증하는 가장 명확한 지표는 비정규직 고용이 급증한 것이다. 과거 정규직 업무의 상당 부분을 아르바이트 직원, 파견직(소속 외 노동자), 계약직, 무기 계약직 등 ‘광의의 비정규직’으로 분류되는 이른바 최저임금 노동자들이 수행하고 있다.
하지만 이 고물가 시대에 최저임금 또는 그 이하의 급여로 생활하는 노동자들이 사명감을 갖고 신명나게 일할 수 있을까. 경제 현장의 고착화된 ‘계급주의’는 일터의 활력을 떨어뜨리고 기업 미래마저 불투명하게 한다. 기업이 도산하는 표면적 이유는 매출 감소 또는 사양산업화이지만 실제 원인은 인적자원 운용 실패에 기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사람을 섭섭하게 대하면 망한다는 격언이 생겨난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즉, 기업 비용 절감을 위해 도입된 근시안적인 인력 정책은 후일 기업 존속과 경제 성장, 국가 경쟁력을 저해하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 사회는 인간 중심의 정책과 가치관 실종이 초래한 재앙에 직면한 셈이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최근 발표한 ‘대기업 비정규직 규모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300인 이상 고용 대기업에서 근무하는 비정규직 인원(소속 외 노동자 포함)은 약 238만 명으로 집계됐다. 전체의 41.2%에 달한다. 고용형태공시제를 시작한 2014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라고 한다. 1만 명 이상 대기업의 비정규직 비율은 46.2%에 달한 것으로 분석됐다. 이 보고서를 두고 고용노동부는 실제 대기업 소속 비정규직의 비중은 16%라고 해명하고 있으나 이 역시도 좁은 안목에 불과하다. 대기업을 위해 노동을 제공하는 소속 외 노동자 등 ‘광의의 비정규직’이 늘어났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 더욱이 대기업은 한국 경제를 이끄는 초석이자 미래 경쟁력을 창출하는 역할을 한다. 대기업에서 일하는 비정규직의 비율이 50%에 육박한다는 것은 우리 경제에 ‘경고등’이 켜진 것이다.
임금 절벽에 절규하는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는 조선 도공들이 겪은 끔찍한 역사를 떠올리게 한다. 1697년 음력 3월 6일 승정원일기에 기록된 내용은 참담하다. ‘(광주 관요에서) 굶어 죽은 자가 39명, 힘이 없어 문밖 거동을 못하는 자가 63명, 가족이 흩어진 집은 24가구였다.’ 이에 앞서 조선왕조실록은 1421년 4월 당시 공조에서 올린 상소를 기록했다. ‘진상된 그릇이 오래잖아 파손되니 밑바닥에 장인의 이름을 써 넣어 공들여 만들지 않은 자에게 물어내게 하소서.’ 조선 도공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당시 도공은 천민 대우를 받았다. 장인으로서의 긍지를 느낄 수도 없었을 것이다. 경제적으로도 적합한 대우를 받지 못했다. 오죽하면 국가가 운영하는 관요 종사자가 굶어 죽는 일이 발생했을까.
조선은 당시 유럽에서 최첨단 고부가가치 상품으로 각광받은 자기 생산 기술을 가진 나라였다. 요즘으로 치면 ‘반도체 기술’을 보유한 셈이다. 당시 자기를 만들 수 있는 나라는 중국과 조선, 임진왜란 때 끌고 간 조선 도공들 덕분에 자기 문화를 꽃피운 일본 등에 불과했다. 하지만 조선은 초일류 기술을 보유한 도공들을 푸대접했다. 그 결과로 기술은 무뎌지고 제대로 전승되지 못했다. 결국 조선은 ‘삼성전자’를 스스로 도산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조선 자기 산업이 몰락한 것은 정부의 무능,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신분제, 장기 비전의 실종, 세계 정세 무지에 따른 것이지만 가장 큰 이유는 인간 중심의 가치관, 장기적 안목이 결여된 것이었다.
현재 정부와 기업들이 조선 도공들의 설움을 외면한 조선의 국가 경영자들을 답습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스럽다. 조선 도공들은 지금의 한국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할까. 조선 도공들의 절규는 우리 사회 비정규직의 절규이기도 하다. 무분별한 비정규직 채용을 막고 고용 제도를 재정비하자. 긴 안목으로 인간 중심의 정책을 펴야 한다는 뒤늦은 자각만이 유일한 ‘희망의 씨앗’일 것이다.
2025-03-06 [1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