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수의 지금 여기] 자식을 먼저 보내는 슬픔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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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계묘년 끝자락 한 해를 돌아보니
학교·군대·산업 현장 등 도처에서
젊은이들 안타까운 죽음 잇따라

죽음은 또 다른 ‘나’의 소멸을 의미
저출산 시대 대책도 필요하지만
당장 우리 곁의 청년들부터 지켜야

한 해를 돌아보는 계묘년의 끝자락이다. 늘 그렇듯, 만족과 성취감보다는 반성과 후회가 더 수북한 높이로 쌓이는 시간이다. 밀실(개인)에서도 그렇고, 광장(사회)에서도 그렇다. 올해도 이 땅에는 무수한 죽음이 있었다. 죽음은,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는 일은 극한의 고통이다. 왜 그런가. 망자는 우리의 일부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면식도 없는 이의 죽음 앞에서 상실감 혹은 통증을 느끼는 건 그런 이유다.

히라노 게이치로라는 일본 소설가는 말했다. 인간에게는 여러 종류의 ‘나’가 있다고. ‘나’란 나눌 수 없는 ‘개인(individual)’이 아니라 여러 가지의 ‘나’, 즉 ‘분인(分人·dividual)’들로 존재한다고. 분인은 수많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 각각 특별하게 작동하는 ‘나’ 중의 하나다. ‘나’는 그런 분인의 집합체인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단순히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게 아니다. 그 사람과의 관계로 탄생한 나의 분인을 사랑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분인이란 말이 어색하다면 분신으로 읽어도 된다.

사람을 잃는 일도 마찬가지다. 한 사람이 죽으면 그 사람을 통해서만 가능했던 관계는 사라진다. 나의 분신, 곧 나의 일부를 잃는 것과 같은 것이다. 내 삶에 가장 중요했던 사람이 죽는 경우라면, 나 중 가장 중요한 나도 죽게 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우리는 죽음 앞에서 그토록 고통스럽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가운데 가장 큰 고통은 자식의 죽음일 것이다. ‘천붕지통(天崩之痛)’으로 불리는 부모의 죽음이 있고, 가깝게 지내던 친구와 동료의 죽음도 안타깝지만, 이 슬픔이 제일 크다. ‘참척(慘慽)’이라 했다. 죽음을 어찌 등급 지을 수 있으랴만,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의 ‘참혹한 슬픔’보다 큰 것은 없다.

일찍이 충무공 이순신은 아들 면의 전사 소식에 “온 세상이 깜깜하고 해조차 색이 바래 보인다”고 했다. 정신분석학의 대가 프로이트도, 한국 현대시의 선구자 정지용도, 세계적인 기타리스트 에릭 클랩턴도, 현대문학의 거목 박완서 소설가도 참척의 고통으로 통곡했다. 그런 부모는 죽지 못해 산다. 주변을 둘러보면 자식을 앞세운 부모들이 의외로 많다.

다시 돌아본 올해 한국 사회는 참척의 아픔으로 그늘졌다. 생때같은 젊은이들의 죽음이 여전했다. 지난 7월 서울의 한 초등학교 20대 교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교권 추락이라는 현실에 더해 과중한 업무, 학교의 무관심, 학부모의 폭언이 뒤섞여 젊은 교사를 사지로 내몰았다. “우리는 국가에 대한 의무를 다했는데, 왜 국가는 우리 가족을 지켜주지 못하나.” 유가족은 오열했다. 지난 9월 대전에서도 초등학교 교사가 수년간 학부모 민원과 괴롭힘에 시달리다 유명을 달리했다.

군대가 젊은이들의 무덤인 것도 여전했다. 지금은 군사정권 시절이 아닌데도 의문사나 사고사 혹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가 늘고 있다. 최근 5년간 군인 자살 사고만 320건에 달한다. 불과 얼마 전에도 최전방 부대 소속 육군 소대장의 자살 정황이 뉴스에 보도됐다. 지난 7월에는 채 모 상병이 집중호우 실종자 수색 중 순직했다. 발생해서는 안 될 이른바 ‘인재(人災)’였으나 책임지는 사람은 없었다. 후진적 군대 문화, 지금도 별반 나아진 게 없는 것이다.

젊은 노동자들의 일터인 산업 현장도 다르지 않았다. 2018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사망한 김용균 노동자의 죽음 이후 중대재해처벌법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경영자의 책임을 말단 실무자에게 전가하는 관행과 악습은 반복되고 있다. 노동자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법률 적용은 또다시 미뤄질 조짐이다.

이태원 참사가 불과 1년 2개월 전이었다. 이런 사회적 참척 이후에도 이 땅을 떠나는 젊은이들이 끊이지 않는다. 군부대와 산업 현장, 학교 일선 등 도처에서. 이뿐만 아니다. 정신건강은 우리 사회의 잠재적 불안 요소다. 특히 10·20대 청소년·청년들이 마음의 병이 깊어간다. 우울증·조울증·강박증 같은 정신질환 환자군에서 청년층 비중이 커지고 있음을 통계 자료는 가리킨다.

인구절벽 시대를 맞아 저출산 대책이 비명처럼 쏟아지고 있다. 암울한 현실과 부정적 전망을 부인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우리 옆에 있는 젊은이들부터 지키는 것이 먼저다. 저 모든 ‘사회적 타살’로부터 지금 당장 그들을 보호해야 한다. 우리 곁의 젊은 생명들이 꺼지지 않도록 손을 내미는 게 급선무다.

한 사람의 죽음은 그 사람의 주변으로 무수히 뻗은 분신 사이의 연결을 파괴한다. 젊은이의 죽음이라면 ‘나’가 또 다른 ‘나’와 만날 그 무한한 가능성까지 없앤다는 걸 의미한다. 젊은이의 죽음은 그래서 막아야만 하는 것이다. 결국, 이것이, 인간이 인간인 이유다.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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