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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피랑 날개 벽화 새단장했다는데…경남 벽화마을 3곳
새로운 것을 보고 배우는 물음표 여행, 직접 체험하는 느낌표 여행, 휴식 같은 쉼표 여행…. 서로 다른 사람들의 모습처럼 여행의 취향 역시 각양각색이다. 날씨가 추워지면 견문을 넓히는 여행이나 역동적인 여행은 왠지 부담스럽다. 이럴 때엔 한적함과 여유로움을 즐기는 여행이 안성맞춤이다. 오지 마을이나 산동네에 자리한 벽화마을은 도시 생활의 번잡함을 잠시 잊고 한갓짐을 만끽할 수 있어 그런 여행의 취향을 충족해 줄 수 있다. 흰여울문화마을, 감천문화마을, 안창마을 등 전국적으로 이름이 난 부산 지역 벽화마을 못지않게 경남에도 거리 부담 없이 다녀올 만한 벽화마을이 여럿 있다. 동심과 감성을 동시에 충전할 수 있는 벽화마을로 떠나 보자.
■마산에 가면 ‘가고파꼬부랑길벽화마을’
가고파꼬부랑길벽화마을은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추산동과 성호동 일대 30여 가구를 잇는 골목에 조성됐다. 아담한 언덕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들 사이로 마을 이름처럼 꼬불꼬불 이어지는 골목길이 나 있다. ‘꼬부랑’은 꼬불꼬불하게 휘어짐을 뜻한다. ‘가고파’는 마산에서 태어난 시인 이은상이 지은 시이자, 한국의 대표적인 가곡인 ‘가고파’에서 이름을 따왔다. 경남은행이 골목길을 정비했고, 경남미술협회 소속 미술작가 32명이 담벼락과 좁은 골목길에 아기자기 꼬까옷을 입혔다.
창원시립마산문신미술관에서 신추산아파트 쪽으로 200m가량 걸으면 언덕바지 집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아래 담벼락에는 액자 모양의 벽화들이 줄지어 반긴다. 어린이 그림책 <우리는 어린이 시민> <우리 집 하늘> <언제나 사랑해>의 장면들을 벽화로 그려 냈다. 벽화마을에 왔음을 금세 알아챈다. 바로 옆에는 벽화마을 안내판이 있다. 안내판을 끼고 돌면 무지개 색깔 계단이 나온다. 벽화마을로 오르는 입구다. 계단을 오르면 양쪽 담벼락에 파스텔톤 색감을 배경으로 낙타와 원숭이, 코끼리, 호랑이가 뛰어논다. 꼬부랑 골목길을 따라가다 보면 우물이 나온다. 이 우물은 가뭄에도 마르지 않으며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듯한 물을 공급해 줘 마을 주민들에게 생명수 역할을 했다고 한다. 지금은 쓰이지 않지만, 100년 넘게 형태가 보존돼 있어 ‘백년 우물’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우물 둘레에는 돌을 쌓아 올린 것처럼 그림을 그려 넣었다.
가고파꼬부랑벽화마을 골목길은 400여m밖에 안 된다. 모두 둘러보는 데 20~30분이면 족해 괜스레 느긋해진다. 미국의 만화 ‘심슨 가족’에 나오는 캐릭터가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다 깜짝 놀라는 그림과 꼬부랑 할머니 노래 그림, 행복 버스 그림, 날개 그림 등 다양한 벽화를 만나 볼 수 있다. 고지대에 올라서면 멀리 마창대교와 마산 일대의 탁 트인 풍경도 감상할 수 있다. 가고파꼬부랑길벽화마을은 아이들에게 인기가 있는 그림책들을 곳곳에 그려 놓았다는 점에서 차별화되는 벽화마을이다. <연탄집> <고민 식당> <우리 할아버지> <우리 할머니는 못 말려> 등 그림책을 액자 형식으로 그려 놓은 벽화를 보면, 아이들이 “내가 읽은 책이야”라고 반갑게 얘기할지 모른다.
■고성에 가면 ‘배둔 골목정원’과 ‘초선 벽화마을’
공룡엑스포로 유명한 ‘공룡 도시’ 고성에는 소소하지만 그냥 지나치면 아쉬운 벽화마을들이 있다. 배둔 골목정원도 그런 곳이다. 경남 고성군 회화면 배둔마을의 한 골목길(관인로 21번길 19)이 2020년 셉테드(CPTED‧범죄예방디자인)를 적용한 안심 골목길로 탈바꿈했다. 70~80m 정도 되는 골목길 담장에는 공룡과 꽃을 주제로 한 다양한 벽화가 그려져 있다. 흔히 도시에서 범죄 예방을 위해 도입하는 셉테드 기법이 농촌 마을에 적용됐다는 점에서 새롭다. 농촌에서 사람들이 도시로 빠져 나가고 농촌의 골목길들도 혼자 걷기 무서운 곳이 돼 버렸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 한편으론 씁쓸하다. 골목정원 입구에는 ‘경찰 집중 순찰 구역’이라는 안내판이 달려 있다.
골목정원에 그려진 벽화들은 앙증맞고 귀엽다. 고성 공룡엑스포의 마스코트인 ‘온고지신’ 공룡들이 벽화 속에서 뛰어놀고 있다. 꽃과 풀이 그려진 담벼락에는 새들을 위한 둥지와 화분이 설치돼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 ‘모나리자’를 패러디한 벽화는 신비스러운 미소를 띠는 여인 대신 공룡이 다소곳이 두 손을 모으고 있다. 원작처럼 눈썹이 없다. 우스꽝스러우면서도 기발하다.
고성군 마암면 초선마을에 있는 초선 벽화마을은 소박하며 정답다. 동고성농협 마암지점에서 마암초등학교까지 왕복 2차로 도로를 사이에 두고 양쪽 350여m 구간 30여 채의 집 담장이 벽화로 수놓였다. 고성의 명소인 옥천사나 장산숲으로 가는 길에 잠시 들러 볼 만한 곳이다. 벽화마을 길을 걷다 보면 유난히 귀여운 어린이 벽화가 많다. 벽화마을의 주제가 ‘아이들이 뛰놀고 싶은 동네’다. 그도 그럴 것이 벽화마을의 끝 지점에 마암초등학교가 있다. 아이들 등굣길과 딱 어울린다. 마암초등학교 건물은 벽화마을처럼 알록달록 물들어 있어 벽화마을과 조화롭다. 벽화마을 구간의 가로수는 은행나무다. 머지않은 봄에 새잎이 돋으면 벽화들과 멋들어지게 어우러진다.
■통영에 가면 새 옷 입은 ‘동피랑 벽화마을’
통영 통피랑 벽화마을은 통영 시가지의 중심지인 강구안 언덕에 위치한 달동네다. 한때 재개발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지만, 지역 주민과 지역 사회가 집 담장과 벽에 벽화를 그려 넣어 되살아났다. 입소문을 타고 지금은 전국적인 명소가 됐다. 동피랑 벽화마을은 2년에 한 번씩 대형 벽화를 중심으로 그림을 교체한다. 동피랑 벽화마을이 전국적인 명성을 유지하는 데엔 이런 변화의 노력도 한몫했다. 동피랑 벽화마을에 안 가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가 본 사람을 찾기 힘든 이유도 이 때문일지 모른다.
동피랑 벽화마을엔 새로운 대형 벽화 10점이 그려졌다. 지난해 5월부터 10월까지 5개월간 작업을 거쳐 새 옷을 입었다. 이번이 8번째 벽화 교체다. 지난해 동피랑 벽화 그리기 공모에 참여한 54개 팀 중 지정 공모에는 밥장(장석원)과 곽동희 등 2개 팀이 선정됐고, 자유 공모에는 하루살이, 아우라, 누리봄, ART4+, 아트인, 김혜진, 이임숙, 통영여고 미술동아리 등 8개 팀이 선정됐다.
벽화마을로 접어들자마자 오르막 길목에 밥장(장석원)의 벽화 ‘붉은순신 검은통영’이 눈에 들어온다. 붉은 바다를 배경으로 이순신 장군과 함께했던 시간, 통영 바다를 품고 산 사람들, 동네마다 넘실거리던 자유로운 영혼과 예술 등을 표현했다. 검정과 빨강으로만 색을 구성해 강렬한 이미지다.
벽화에 애정을 품고 시선을 돌리다 보면 바뀐 벽화들을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동피랑 벽화마을의 벽화 중 포토존으로 단연 으뜸이었던 날개 벽화도 곽동희 팀의 손길을 거쳐 새로워졌다. 커다란 날개 뒤로 통영 바다와 고래 구름, 등대 등을 배경으로 그려 넣어 한결 역동적이다. 작은 건물 벽에 하늘로 날아오르는 우주선이 그려져 있어 다가가 보니 빈집 공간에 이색적인 우주정원이 나타난다. 아우라팀의 벽화다. 계단을 올라 빈집 안으로 들어가니 밤하늘에 혜성이 긴 꼬리를 끌며 빛나고 있다. 우주비행사도 보인다.
봉긋 솟은 섬과 바닷속 해초를 형상화한 벽화(하루살이팀), 하와이의 자연을 연상케 하는 보태니아트(식물의 특징을 표현한 그림) 벽화(김혜진팀), 우리나라 전통 색상인 오방색(청·적·황·백·흑)으로 그려낸 동양화 느낌의 벽화(이임숙팀)도 동피랑 벽화마을에 새롭게 터를 잡고 반갑게 맞아 준다. 숨은 그림 찾기마냥 새로운 벽화들을 찾는 재미가 쏠쏠하다.
2023-02-0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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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 온천 여행 떠난 울진, 온천만 하고 오면 후회할걸
며칠 따뜻한 겨울 날씨에 괜스레 기후 우울증을 앓았다. 기우였다. 우리나라 겨울 날씨는 삼한사온이다. 곧 동장군이 기승을 부린다. 추위엔 온천 생각이 간절해진다. 전국에 많은 온천공이 뚫렸고 온천욕을 할 수 있는 곳이 많다. 그렇다고 다 같은 온천이 아니다. 경북 울진은 예부터 피부와 건강에 좋은 온천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울진 여행은 낯설다. 물리적 거리 부담 탓이다. 발길이 적은 곳은 한갓져 좋다. 온천만 즐기기엔 다소 아쉽다. 그래서 욕심을 내 1박 2일 여정을 빼곡히 채웠다. 해안도로를 따라 위치하고 있는 보석 같은 명소를 빠짐 없이 찾다 보면 온천 여행은 어느새 여행의 부제가 된다.
■월송정에 탄복하고 이현세 만화거리에서 추억 여행
울진의 대표적인 온천 명소는 덕구온천과 백암온천이다. 각각 울진의 북쪽과 남쪽 끝에 있다. 효율적으로 여행하려면 어느 온천의 숙소에 묵을지 꼼꼼히 따져 봐야 한다. 해안길을 따라 올라갔다 다시 내려오며 울진의 명소들을 두루 훑을 요량으로 북쪽 덕구온천호텔&콘도를 숙소를 정했다. 부산에서 울진까지 만만찮은 거리지만 찾아가기는 쉽다. 부산~울산~포항 고속도로를 쭉 달린 뒤 동해안을 따라 난 7번 국도나 917번 지방도 등 해안도로를 오르면 된다.
울진에 접어들어 가장 먼저 닿은 곳은 후포항 인근 등기산스카이워크와 등기산공원이다. 스카이워크에 올라 아래로 내려다본다. 속을 훤히 비추는 청록빛 바다가 아름답고도 한편으론 아찔하다. 스카이워크 옆 바다 위로 솟은 자그마한 바위섬은 소원 성취 효험이 팔공산 갓바위에 비견된다는 후포갓바위다. 갓바위를 보며 가족의 건강을 빈다. 등기산공원은 스카이워크와 현수교 형태의 짧은 출렁다리로 연결돼 있다. 해발 54m 야트막한 공원에는 1968년 최초 점등한 후포등대가 우뚝 서 있다. 공원 곳곳에는 전 세계 유명 등대들을 본뜬 미니어처 등대들이 있다. 장난감처럼 앙증맞다.
울진을 여행한다면 꼭 가 보라고 추천하고 싶은 곳이 있다. 월송정(越松亭)이다. 신라의 국선 영랑, 남랑, 술랑, 안랑이 이곳의 풍경에 반해 놀다 갔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중국 월나라에 있던 소나무를 배에 싣고 와 심었기 때문에 월송정이라 부른다는 얘기도 있다. 관동팔경 중 하나로 예부터 시인·묵객들이 하나같이 명승에 탄복한 곳이다. 월송정에 올라 동해와 소나무 숲을 눈에 담는다. 소나무 숲 사이로 난 길을 따라 동해 바다로 조금만 걸어가면 구산해수욕장이다. 모래가 어찌 이리 고울까, 물은 또 어찌 이리 맑을까…. 한적함은 감동의 울림을 더해 준다. 월송정과 구산해수욕장의 빼어난 경치를 주섬주섬 주머니에 담아 평생 꺼내 보며 즐기고 싶다.
첫째 날 마지막 여정은 이현세 만화거리다. 만화거리는 울진군 매화면사무소에 시작해 매화 4길을 중심으로 1길과 3길 일부 구간이다. 1980~90년대 <공포의 외인구단> <남벌> <아마게돈> 등의 작품으로 명성을 떨친 만화 거장 이현세의 작품들이 마을 어귀부터 골목 담장 곳곳에 벽화로 뒤덮였다. 까치, 오혜성, 엄지, 마동탁, 백두산…. 40~50대 이상이라면 만화나 영화로 접했던 만화 속 캐릭터가 벽화를 통해 되살아났다. 추억이 새록새록 돋아난다.
■덕구온천에서 온천욕 즐기고 원탕 찾아 트레킹
덕구온천은 국내 565개 온천 중 유일한 자연용출 온천이다. 인위적으로 온천공을 뚫어 뽑아내는 온천도, 물이 모자라 지하수를 데워 섞거나 다른 첨가물을 넣는 온천도 아니라는 뜻이다. 덕구온천호텔&콘도 모든 객실에는 자연용출 온천수가 공급된다. 객실에 있는 온천욕탕에 몸을 담그니 여행객의 피로가 스르르 사라진다. 근육통이 사라지고 몸은 매끈매끈 윤이 난다. 덕구온천은 칼륨, 칼슘, 철, 탄산 등의 성분이 많이 함유된 섭씨 42.4도의 약알카리성 온천수다. 신경통, 근육통, 피부 질환 등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한다. 하루 약 2000톤의 온천수가 응봉산 중턱에서 솟아난다. 덕구온천호텔&콘도를 비롯해 주변 온천욕장에서 끌어다 쓰고 있지만 모두 소화하기 벅차 그냥 흘려 보내는 양도 엄청나다고 한다.
객실에서 즐기는 온천욕으로 아쉽다면 스파월드와 대온천장을 이용하면 된다. 스파월드에서는 온천 물줄기나 기포로 근육의 피로를 풀고, 노천탕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곳에 앉아 겨울 온천욕의 묘미를 느낄 수 있다. 대온천장에서는 자수정사우나와 옥사우나를 즐길 수 있다.
덕구온천을 찾았다면 덕구계곡 트레킹을 빠뜨려선 안 된다. 덕구계곡의 절경 속을 걸으며 덕구온천 태생의 신비(?)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덕구온천콘도 건물 옆에서 시작해 덕구계곡을 따라 온천수가 솟구치는 ‘원탕’까지 갔다 돌아오는 왕복 8km 코스다. 2시간 30분가량 걸린다. 짧지 않지만 걷다 보면 잡념이 사라지고 자신에 충실해진다. 그도 그럴 것이 걸은 지 얼마 안 돼 스마트폰 통신망과 데이터망이 불통이다. 걸으며 세계의 유명 교량을 본뜬 12개의 다리도 차례로 만날 수 있다.
반환점인 원탕에 이르렀다. 돌기둥 같은 곳에서 온천수가 솟아오른다. 온천수가 흘러 내리다 돌기둥 주변에 얼어 붙어 이색적인 장면을 연출한다. 덕구온천이 태어난 곳이 바로 원탕이다. 원탕에서 솟는 온천수가 덕구계곡을 따라 설치된 송수관을 통해 덕구온천 온천장까지 보내진다고 한다. 원탕 옆엔 족욕탕이 있다. 걷느라 지친 발을 담그니 다시 걸어갈 힘이 생긴다. 공용 수건이 걸려 있지만 개인 수건을 챙겨 가면 좋다.
■국립해양박물관에서 바닷속 탐험, 하트해변에선 낭만을
아이들과 가족 여행을 한다면 국립해양과학관에 들르면 좋다. 과학관에서는 오는 3월 12일까지 ‘해양과학 속 고래와의 만남’ 특별기획전이 열리고 있다. 고래의 종류와 생태, 고래 연구 방법 등을 찬찬히 둘러볼 수 있다. ‘바다에 쓰레기 버리지 않기’ ‘고래야 아프지마! 우리가 이산화탄소 줄일게’…. ‘행복한 바다, 행복한 고래를 위한 다짐’ 화이트보드에 아이들이 고사리손으로 써 놓은 글귀들은 어른들의 이기심을 돌이켜 보게 한다. VR체험관과 3면 영상관 등도 이용할 수 있다. 3층 상설전시관은 당분간 리모델링 중이어서 관람이 안 된다.
과학관 밖에는 파도소리 놀이터가 있다. 다양한 놀이 시설로 아이들이 뛰어놀기 좋다. 바다 쪽으로 연결된 다리(393m)를 걸으면 바닷속전망대에 이른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면 7m 아래 바닷속이다. 유리창엔 바다 달팽이가 붙어 있다. 크고 작은 물고기가 유영하고, 성게들이 호기롭게 다가온다. 유리창은 2주에 한 번 청소한다는 친절한 안내문도 붙어 있다.
과학관에서 해안가를 따라 내려오면 죽변항이 나온다. 죽변항은 후포항과 함께 울진에서 싱싱한 대게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죽변항 인근에는 모노레일을 탈 수 있는 죽변해안스카이레일과 울진에서 최초로 건립(1910년 11월)된 죽변등대가 있다. 호젓한 매력이 있는 죽변등대에서 대나무 숲길로 내려가면 해안가 언덕에 집 한 채가 그림처럼 있다. 드라마 <폭풍 속으로> 세트장이다. ‘어부의 집’ 앞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면 하트해변이 보인다. 하트 모양을 꼭 닮았다.
망양정으로 향했다. 해안가에서 240m만 언덕 위로 걸어 올라가면 된다. 망양정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관동팔경 중 으뜸이어서 조선 숙종은 ‘관동제일루(關東第一樓)’라는 현판을 하사했다. 가사문학의 대가 정철은 〈관동별곡〉에서 망양정의 절경을 노래했다. 망양정에 올라 동해를 굽어본다. 망망대해가 기운차게 뻗어 나간다.
망양정에서 해맞이광장까지 이어지는 바람소리길에서는 팬플룻 모양의 풍경이 바람에 나부끼며 은은한 소리를 낸다. 흐트러진 마음이 고요해진다. 해맞이광장에 오르면 울진대종과 소망나무 전망탑, 어린왕자 조형물 등이 차례로 눈에 들어온다. 망양정과 해맞이광장은 왕피천케이블카를 타고 해맞이정류장에 내려 둘러봐도 된다.
2023-01-1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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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욜로 갈맷길] ①더 비기닝-고즈넉한 어항·아기자기 등대 한 번에 즐긴다
새해가 되니 여기저기에서 ‘운동할 결심’이다. 의지를 불태우지만 곧 흐지부지 작심삼일이기 십상이다. 걷기는 어떨까? 인간은 ‘호모 에렉투스’(직립보행 인간)에서 진화하지 않았던가. 누구나 걷기 때문에 걷는 건 운동이 아니거나 운동이 되지 않는다고 치부하기 쉽다. 하지만 결코 얕잡아 봐선 안 된다. 걷기는 대표적인 유산소 운동이다. 심폐 기능을 개선하고 성인병 발병률을 낮춘다. 허리 디스크와 무릎 연골을 튼튼하게 한다. 특별한 장비도 필요 없다. 걷는 시간만큼 수명이 늘어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미국의 건축가이자 도시계획가 케빈 클린켄버그는 자신의 책 <걷기의 재발견>에서 “걷기는 삶의 질을 높이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 했다.
걸으려 마음만 먹으면 주변의 모든 곳이 운동장이다. 걷기 좋은 길이 있다면 그건 최신식 운동장이다. 부산에는 걷기 좋은 길이 있다. 바로 ‘욜로 갈맷길’이다. 지난해 기존 갈맷길(9개 코스 23개 구간 278.8km) 중에 ‘부산 사람이라면, 부산에 오면 꼭 한 번 걸어 봐야 할 길’이라는 콘셉트로 10개 코스(총 100km)를 추렸다. 갈맷길의 축소판이다. 욜로는 MZ 세대 등에서 유행하는 ‘YOLO(You Only Live Once)’와 경상도 방언 ‘욜로(여기로)’가 발음이 비슷한 것에 착안한 중의적 이름이다. 욜로 갈맷길은 대중교통과 잘 연계돼 접근성이 좋다. 코스별 10km 안팎으로 부담도 적다. 코스별로 볼거리, 먹거리, 즐길 거리로 테마를 입혀 테마 재료를 찾는 재미도 있다. <부산일보>는 욜로 갈맷길을 한 달에 한 코스씩 완보한다. 숨은 매력을 널리 알리고 또 다른 걷기 초보들의 도전을 응원한다.
■걷기 초보, 욜로 갈맷길에 도전하다
욜로 갈맷길 1코스는 기장군 임랑해수욕장~일광해수욕장 간 9.1km 구간이다. 첫 번째 코스인 만큼 코스 이름도 ‘갈맷길 더 비기닝’이다. 아점을 든든히 챙겨 먹고 길을 나섰다. 임랑해수욕장까지는 동해선 월내역에서 내려 조금만 걸어가면 된다. 부산도시철도 2호선 벡스코역에서 동해선으로 환승했다. 걷기의 취지가 무색해지지 않으려면 자가용 이용은 금물. 철저히 BMW(Bus·Metro·Walk)여야 한다.
동해선 월내역에서 도로를 건너 마을 샛길을 지나 월내해안길로 접어든다. 탁 트인 바다에 마음이 뻥 뚫린다. 월내해안길을 따라 나 있는 해맞이로를 20분 정도 걸으면 1코스의 시작점인 임랑해수욕장에 다다른다. ‘임랑’은 아름다운 송림과 달빛에 반짝이는 은빛 파랑에서 각각 한 글자씩 따왔다고 한다. 그 이름처럼 백사장 뒤쪽 병풍 같은 소나무 숲과 은빛 바다가 아름답다. 오래된 민박집들이 줄지어 있고 담장 벽화에는 ‘겨울아 어서 가라’ 봄꽃이 피었다. 부산의 다른 해수욕장들과 다르게 개발의 손길이 아직 닿지 않아 고즈넉한 어촌의 정취가 남아 있다. 임랑해수욕장 끝자락 임랑문화공원에는 철강왕 박태준 포항제철 초대 회장을 기리는 박태준 기념관이 있다. 화려하지도 거창하지도 않으며 작고 소박하지만 위엄과 품격을 갖췄다.
박태준 기념관에서 10시 방향으로 꺾어 해안으로 나 있는 일광로를 따라 20분가량 쭉 걸으면 문동방파제와 문중방파제가 나온다. 두 방파제는 양팔을 뻗어 바다를 끌어안은 듯하다. 문동방파제와 문중방파제 사이 항구는 중동항이다. 문중항과 문동항으로 분리돼 있던 어항이 하나로 합쳐져 중동항이 됐다.
중동항 부둣가에서 카메라를 들었다. 와이드샷으로 펼치니 문동방파제에 있는 빨간 등대, 문중방파제에 있는 하얀 등대에서부터 저 멀리 붕장어 등대, 갈매기 등대, 야구 등대까지 5개의 등대가 한 폭의 사진에 모두 담긴다. 등대 풍년이다.
■붕장어 마을 들렀다 신평소공원에선 잠깐 휴식
칠암항은 중동항과 나란히 붙어 있다. 문중방파제에서 5분 정도 걸으면 ‘칠암 붕장어 마을’이라고 써 있는 큰 안내판이 반긴다. 붕장어 횟집과 구잇집이 즐비하다. 일본말인 ‘아나고’로 아직도 많이 불리지만 우리말인 붕장어가 바른 말이다. 기름기를 쭉 빼고 잘게 썬 붕장어회는 고슬고슬한 흰 쌀밥 같기도 하고, 눈꽃 같기도 하다. 깻잎에 붕장어회를 올리고, 콩가루, 초장과 버무린 양배추까지 올려 싸 먹는 맛은 고소하고 담백해 일품이다. 칠암이 잘 알려진 이유도 지역 특산 붕장어회 덕분이다. 걷다 출출해지면 붕장어회로 식도락을 즐겨봄 직하다.
칠암항에는 붕장어 등대와 갈매기 등대, 야구 등대가 있다. 붕장어 등대는 칠암항을 대표하는 붕장어를, 갈매기 등대는 부산의 시조인 갈매기, 야구 등대는 ‘구도 부산’을 상징한다.
칠암항에서 해안길을 따라가다 보면 나란히 붙어 있는 해파랑길과 갈맷길 이정표가 보인다. 해파랑길은 부산 오륙도 해맞이공원에서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동해안의 해변길, 숲길, 마을길을 이어 구축한 50개 코스(총 길이 750km)의 걷기 여행길이다. 해파랑길 3코스는 기장 임랑해수욕장에서 대변항까지 이어지는데, 욜로 갈맷길 1코스는 해파랑길 3코스와 겹친다.
해안가를 조금 걸으면 야트막한 언덕 위에 신평소공원이 나온다. 신평소공원은 범선 모양 전망대를 비롯해 팔각정, 분수대가 있는 작은 공원이다. 전망대에 오르니 갯바위들이 오밀조밀 모여 빼어난 풍광을 선사한다. 신평소공원은 공원 해안가 갯바위 퇴적층에서 공룡의 발자국이 발견된 곳이기도 하다.
신평소공원 벤치에서 잠시 휴식한 뒤 다시 걷다 만난 어항은 동백항이다. 동백항 부둣가 연석에 그려진 새빨간 동백꽃들이 인상적이다. 동백항 끝자락에 있는 동백해녀복지회관은 건물만 덩그러니 남아 있고 문을 닫았다. 고령화와 수산 자원 감소 등으로 사라져가는 해녀들이 떠오른다.
■바다 정취 만끽하며 걸으면 어느새 갯마을로
부경대 수산과학연구소를 두르는 길을 따라 걸으면 온정마을로 이어진다. 온정마을로 접어드는 길목에는 ‘온정마을 버스킹 공간’이라는 팻말이 붙은 공간이 나온다. 동해가 내려다 보이는 작고 아담한 공원이다. 온정마을은 고리 원전이 건립되면서 이곳으로 집단 이주해 만들어진 마을인데, 지금은 카페촌이 됐다.
온정마을을 지나면 왼쪽으로는 동해가 오른쪽으로는 해송이 이어지는 차로(일광로) 옆을 따라 2km가량 걸어야 한다. 특별한 볼거리가 없어 30분 정도 상념을 떨치고 걸을 수 있다. 덕분에 걷기에 충실해진다. 간간이 나무 덱 길이 나오지만 전체적으로 제대로 된 보도가 없다. 그래서 안전에 유의해야 한다.
일광로를 따라 쭉 걷다 삼기물산 건물에서 왼쪽으로 꺾어 들어가면 이동항이 보인다. 임랑항, 중동항, 칠암항, 동백항…. 벌써 다섯 번째 어항이다. 이동항에서 1코스의 종착점인 일광해수욕장까지 가는 길에는 해안가 쪽으로 드넓은 공터가 눈에 들어온다. 지난해 10월 열린 ‘2030부산월드엑스포’ 유치 기원 BTS 공연 후보지였던 옛 한국유리 공장 부지다. ‘여기가 거기구나’ 힐끔힐끔 쳐다본다.
일광해수욕장으로 가는 길엔 이천항이 있다. 이천항이 있는 기장군 일광면 이천리는 1953년 발표된 오영수의 단편소설 ‘갯마을’의 무대가 된 곳이다. 이천항으로 가는 길모퉁이 벽에는 영화 ‘갯마을’ 속 장면들이 액자 형태로 붙어 있다. 길모퉁이를 돌면 횟집이 빼곡히 줄지어 있다. 한 모녀가 얘기를 나누며 생선을 마리는 모습이 정겹다.
강송교를 건너 일광해수욕장에 다다랐다. 일광해수욕장 초입 별님공원에서 돌비석 하나를 발견한다. ‘난계 오영수 갯마을 문학비’다. 문학비에는 소설 속 한 구절을 새겨 놓았다. ‘서(西)로 멀리 기차 소리를 바람결로 들으며, 어쩌면 동해 파도가 돌각담 밑을 찰싹대는 H라는 조그만 갯마을이 있다…’ 소설 ‘갯마을’의 첫머리다. 그 기차 소리가 들리는 곳이 지금의 동해선 일광역이다.
걷기 앱을 이용해 측정한 1코스 완보 시간은 3시간 15분, 걸음 수는 1만 6837걸음, 거리는 11.45km였다. 1코스는 어촌·어항의 고즈넉함과 바다 풍광이 아기자기한 등대와 어우러져 아름다운 코스다.
2023-01-1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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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의 시작, 상서로운 기운 넘치는 산청에서…
다사다난했던 한 해가 가고 새해가 밝았다. 올해는 가슴속 무거운 시름은 덜어 내고 행복한 일들로 채울 수 있는 한 해가 됐으면 한다. 한 해의 첫머리, 좋은 기운을 받을 수 있는 곳으로 떠나는 여행은 어떨까? 뒤로는 남서쪽 지리산과 북동쪽 황매산이 감싸며 앞으로는 남강과 접하는 배산임수의 명당, 길운이 들어와 대운이 열리고, 산 좋고 물 좋아 몸과 마음이 절로 위로되고 정화되는 곳, 상서로운 고장 산청으로 향했다.
■한방의 건강한 기운 품은 ‘산청 동의보감촌’
경남 산청군 금서면에 있는 동의보감촌은 왕산과 필봉산 아래 널찍이 자리잡은 산청군을 대표하는 관광 명소다. 산간 오지였던 산청을 전국적으로 알린 곳이기도 하다. <동의보감>은 조선시대 의관 허준이 중국과 조선의 의서를 집대성해 1610년에 저술한 의학서다. 동의보감과 무슨 연관이 있길래 동의보감촌이라는 이름으로 관광지를 만들었을까. 이곳은 원래 고령토 폐광 지역이었다. 예부터 약초로 유명했던 산청군은 테마가 있는 관광산업을 키워 보고자, 소설 <동의보감>과 드라마 ‘허준’에서 실존 인물인 허준과 허준의 스승으로 묘사된 가상의 인물 유의태를 활용해 한의학과 약초를 테마로 2008년 동의보감촌을 개장했다. 이후 한방자연휴양림과 치유의숲, 산약초체험단지 등을 잇따라 조성하며 현재 그 부지만 해도 약 70만 평에 달한다.
동의보감촌이 산청을 알리는 대표 관광지가 된 건 정부가 <동의보감> 발간 400주년과 유네스코 기록유산 등재를 기념해 2013년 개최한 ‘2013 산청세계전통의약엑스포’를 통해서다. 엑스포 기간 방문객이 216만 명으로 국내에서 열린 지역 엑스포 중 방문객이 가장 많았다. 산청군은 10년 만인 올해 9월 15일부터 10월 19일까지 ‘2023 산청세계전통의약항노화엑스포’를 개최한다. 올해 엑스포 개최를 계기로 명실상부한 우리나라 한방항노화힐링·웰니스관광 1번지로 자리매김하겠다는 계획이다. 엑스포에 거는 기대가 큰 만큼 행사 장소인 동의보감촌을 새 단장하고 있다. 영산인 지리산 자락에 깨끗한 공기와 물을 기반으로 자생하는 1000여 종의 약초에 얘깃거리를 입혀 지역의 관광 자원으로 십분 활용한 산청군의 노력이 가상하다.
■한방기체험장으로 가면 좋은 기운이 ‘팍팍’
동의보감촌은 엑스포주제관, 산청한의학박물관, 산청약초관과 같은 상설 전시관과 한방테마공원, 약초테마공원 등 야외 시설, 숙박이 가능한 한방자연휴양림, 허준순례길 1·2·3코스 등 숲길 걷기 코스로 구성돼 있다.
동의보감촌 주차장에서 나서면 도로가 두 갈래로 나뉜다. 오른쪽으로 가면 산청한의학박물관, 산청약초관, 한방기체험장을 지나 한방자연휴양림까지 닿는다. 왼쪽으로 가면 엑스포주제관과 한방테마공원을 거쳐 산청한방가족호텔과 동의본가, 한방자연휴양림까지 이어진다. 큰 도로로 일주할 수 있게 돼 있어 차로 동의보감촌 전체를 둘러봐도 되지만, 여유롭게 소소한 볼거리와 즐길 거리를 챙기려면 도보 일주를 추천한다. 걸어서 모두 둘러보는 데는 2~3시간 정도 걸린다.
동의보감촌의 진면목을 보려면 엑스포주제관과 산청한의학박물관에 먼저 들러야 한다. 한의학의 역사와 세계인의 문화유산이 된 <동의보감>에 대해, 그리고 전 세계 전통의약에 대해 공부할 수 있다. 엑스포주제관과 산청한의학박물관 연결로 서쪽으로는 커다란 황금빛 거북 조형물인 황금장수거북이 눈에 들어온다. 거북 조형물 중에서는 세계 최대 크기라고 한다. 예부터 황금색은 부귀를, 거북은 장수를 뜻한다고 한다. 만지면 부귀와 장수를 일거양득할 수 있다는 말에 거북을 어루만지는 관람객들이 심심찮게 보인다.
한방테마공원과 약초테마공원은 산책하기 좋다. 한방테마공원에는 거대한 곰과 호랑이 조형물이 있다. 단군 신화에서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 곰과 호랑이에게 환웅이 쑥과 마늘을 준 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한의약 처방이었다는 발상에서 조형물을 만들었다니 흥미롭다.
한방테마공원에서 한방기체험장 앞 초객정까지는 산책로가 있다. 허준순례길 1~3코스이자 오장육부 테마길이다. 오장육부 테마길은 산책로마다 오장육부 이름을 붙였다. 안내판에는 각 장기에 좋은 약재를 소개하고 있다. 산책로 곳곳에는 ‘산약초를 채취하지 맙시다’라는 경고문이 보인다. 동의보감촌 일대에 자생하는 약초가 그만큼 많기 때문이란다.
동의보감촌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곳은 단연 한방기체험장이다. 한방기체험장에는 3개의 돌이 있다. 귀감석, 석경, 복석정 이렇게 3석이다. 3석은 배산임수의 명당 산청에서도 가장 좋은 기운이 집중된다는 명당 중의 명당에 있어 3석에 머리를 대고 기도를 하면 큰 병이 낫고, 임신이나 승진과 같은 대운을 얻는다고 한다. 산청 출신의 박항서 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은 1년에 한 번 귀감석을 찾아 좋은 기운을 얻은 덕에 승승장구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해에도 두 차례나 찾았다고 한다. 거북 등 모양의 귀감석에 담긴 얘기도 재밌다. 아이를 갖지 못했던 부부가 황매산에 있던 큰 돌에 기도를 한 뒤 아이를 가졌고, 이후 그 돌이 좋은 기운을 갖고 있다는 소문이 나면서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고 한다. 127톤이나 된다고 하니 길운의 무게감이 묵직하다.
한방기체험장 바로 옆에는 출렁다리인 ‘무릉교’가 있다. 210m 길이의 출렁다리에 올라서면 발 아래로는 필봉산 숲이, 북동쪽으로는 멀리 황매산의 웅장한 자태가 한눈에 들어온다.
■성철 스님과 조식 선생의 발자취를 찾아서
산청이 배출한 인물도 많다. 현대 불교 최고의 고승인 성철 스님과 실천 유학을 강조한 조선 중기 대표적인 유학자 남명 조식 선생, 중국 원나라에서 목화씨를 가져와 목화 재배와 보급에 기여한 고려 말기 문신 문익점 등이다. 산청을 찾았다면 그들의 발자취를 뒤따라가 보는 것도 좋은 역사 여행이다.
산청군 단성면에 자리한 겁외사는 성철 스님의 무소유 정신이 깃든 불교의 성지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는 성철스님의 대표적인 법문은 누구나 한번쯤 들어 봤을 법하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절’이라는 뜻의 겁외사는 스님을 추모하고 뜻을 기리는 사찰이다. 대웅전에는 한국 수묵화의 대가 김호석 화백이 그린 성철 스님 진영이 걸려 있고 외부에는 스님의 출가, 수행, 설법, 다비식 장면 등을 묘사한 벽화가 그려져 있다.
겁외사 가장 안쪽 성철 스님의 생가터에는 생가를 복원해 놓았다. 안채에는 성철 스님이 해인사 백련암에서 생활했던 방이 그대로 재현돼 있다. 생가터에 있는 포영당에는 성철 스님이 평소 수없이 손질해 입은 두루마기와 고무신을 비롯해 평소 생활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소장 도서와 메모지, 유필 자료 등이 전시돼 있다. 노창운 문화관광해설사는 “기워 입은 흔적이 많은 스님의 두루마기는 성철 스님의 검소함과 무소유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유품”이라고 설명했다.
겁외사에서 차로 15분 정도 달리면 덕천서원이 있다. 남명 조식 선생의 제자들이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설립한 서원이다. 덕천서원에서 차로 3분 정도 거리엔 산천재가 있는데, 산천재는 조식 선생이 생의 후반부를 보내며 학문을 연구하고 제자를 양성했던 곳이다. 조식 선생은 퇴계 이황과 함께 조선 영남학파의 쌍두마차였다. 실천을 강조하고 사회 현실과 정치적 모순을 비판한 그의 학문은 제자들에게도 이어졌고, 굳건한 선비 정신은 임진왜란 때 의병 활동에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문익점이 장인 장천익과 중국에서 가져온 목화를 시험 재배했던 목면시배유지도 가까운 곳에 있다. 전시관에 들르면 어느새 우리나라 의복 혁명의 출발점에 서게 된다.
2023-01-0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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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LG 창업주 생가 탐방] 재벌집 아들은 알았을까, 할아버지의 깊은 뜻
묵은 해가 저물고 있다. 새해엔 몸도 마음도 좀 더 풍요로워질까. 부자(富者)되기를 소망하는 이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동네가 경남에 있다. 의령군과 함안군, 진주시를 가로지르는 남강 한가운데 우뚝 솟은 ‘솥바위’가 그 중심이다. 조선 후기 한 도인이 ‘솥바위 반경 20리(8km) 안에 큰 부자 셋이 태어날 것’이라고 예언했는데, 실제로 인근에서 삼성 이병철 회장, 금성(LG·GS) 구인회 회장, 효성 조홍제 회장이 탄생했다. 대기업 창업주가 나고 자란 마을에는 과연 솥바위의 상서로운 기운이 흐르는 것일까. 부자의 기(氣)를 받으러 찾아간 이들 생가에서, 돈보다 중요한 걸 배우고 돌아왔다.
■천석꾼의 나눔과 베풂
솥바위에서 자동차로 15분, 직선거리로 북쪽 8km 떨어진 의령군 정곡면 중교리에 삼성 창업주 호암 이병철 선생의 생가가 자리한다. 이달 중순 찾아간 마을 입구엔 선생의 손자인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의 취임을 축하하는 현수막이 내걸려 있었다.
부자분식점, 부자매점, 부자벽화 등 ‘부자 글자’ 세례를 받으며 마을 안쪽으로 들어서자 흙 담장 동판에 ‘호암 이병철 선생 생가’라고 새긴 기와집이 등장한다. 1910년 이병철 회장이 태어난 이 집은 1851년 그의 조부께서 1907㎡의 부지에 손수 지었다. 안채·사랑채·대문채·광채로 이뤄졌는데, 호암재단은 2007년 대대적인 보수를 거쳐 일반인에게 전면 개방했다. 보수 과정에서 기와를 새로 얹고, 지금의 화단 자리에 있던 아래채는 사라졌다.
원형에서 조금 달라졌지만 170년 넘은 고가의 기운은 여전하다. 담장 아래와 화단 등지엔 옛 기와가 쌓여 있고, 광채 안에는 ‘천석지기’ 집안을 엿볼 수 있는 마지막 농기구도 전시돼 있다.
호암 생가의 특징은 우물이 2개라는 점이다. 하나는 안채 앞(안 우물), 하나는 사랑채 앞(바깥 우물)에 있다. 물이 귀했던 시절, 대문을 활짝 열어 동네 사람들과 바깥 우물을 나눴다고 한다.
경상남도 안병섭 문화관광해설사는 “호암 선생 집안은 정곡면·유곡면·지정면까지 농토가 있었는데, 소작농의 아이가 태어나면 미역과 쌀을 갖다 주고 마을 사람들이 결혼하면 옷 세 벌을 선물했다”며 “풍수뿐만 아니라 베풂 덕분에 선생 집안이 더 부자가 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호암 생가는 곳곳에 작은 볼거리가 있다. 생가 동쪽, 거대한 바위 벽을 자세히 보면 거북이와 두꺼비, 떡시루 모양의 돈다발 등 여러 형상이 있어 ‘부자 기바위’라 불린다.
4남매 중 막내였던 이 회장은 열일곱에 사육신 박팽년의 후손인 박두을 여사와 결혼하면서 앞집으로 분가했고,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하기 전까지 이 마을에서 살았다. 분가해 살던 집은 재벌 총수가 된 뒤 크게 다시 지어 생전에 자주 이용했고, 최근에는 이재용 회장도 묵었다고 한다.
생가 구경만으로 아쉽다면 마을 공영주차장(부자주차장)에서 시작하는 ‘부자길’도 걸어볼 만하다. A코스(6.3km)로 방향을 잡으면 소원을 들어준다는 ‘탑바위’와 임진왜란 의병의 기운이 서린 ‘호미산성’ 등을 만나 볼 수 있다.
든든하게 배를 채우려면 의령 특산품이 제격이다. 팥소를 넣은 떡을 망개잎으로 싼 망개떡과 시골장터 맛 그대로인 소고기국밥이 유명하다.
■마음이 더 부자인 마을
호암 생가에서 차량으로 30분 정도 남쪽으로 달리면 제대로 ‘부자마을’이라 부를 만한 동네가 나온다. 진주시 지수면 승산리, 지금의 LG·GS그룹을 일군 능성 구씨와 김해 허씨가 모여 사는 승산마을이다. 두 집안이 이웃사촌이자 사돈을 맺으며 300년 넘게 사이좋게 살아온 이 마을은 LG그룹 공동창업주인 연암 구인회 회장(1907~1969)과 효주 허만정 선생(1897~1952)이 태어나기 전부터 유명했다. “진주는 몰라도 승산은 안다”는 말이 있을 정도의 부자마을로, 구한말에 만석꾼 2가구, 천석꾼은 14가구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마을 초입에서 시작해 골목을 거닐면 LG·GS그룹 기업인의 생가와 본가, 재실 등을 연이어 만나게 된다. LG 구인회 회장 생가, 구 회장의 처가인 허선구 고가, 효주 허만정 본가, 창강정(능성 구씨 대종중 재실), 창애정, 허순구 생가(삼성 이병철 회장 누님댁), 지신고가(허준 생가) 등이 실개천을 따라 이어진다. 마을 앞으로는 지수천이 흐르는데, 풍수에서 돈을 뜻하는 물길이 2개나 마을을 지나는 셈이다.
아쉽게도 현재 구 회장 생가를 비롯해 대부분의 고가는 두 가문에서 관리를 하면서 일반인에겐 공개하지 않고 있다. 대신 진주시 홈페이지에서 신청을 하면, 문화관광해설사와 함께 마을을 구석구석 돌며 구씨 허씨 일가에 얽힌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우연히 관리인을 만나면 잠깐이나마 대문을 열고 내부를 구경해 보는 행운을 얻을 수도 있다.
승산마을은 대문 바깥에서 배울 점이 더 많다. ‘만석꾼의 집(작은 승지 허만진 댁 옛터)’ 이정표를 따라 골목 안으로 들어가면 기괴한 모양의 돌무더기가 나타난다. 허씨 가문의 나눔 정신을 상징하는 ‘승산마을 금강산’. 허만진 선생은 춘궁기 형편이 어려운 마을 사람들에게 방어산의 돌을 자신의 집 앞마당으로 옮기도록 하고 그 노동의 대가로 곡식을 나눴는데, 하나둘씩 쌓인 돌이 지금의 금강산 형상이 됐다고 한다.
효주 허만정의 아버지인 허준 선생이 노년을 보낸 ‘지신정’ 입구에 세워진 ‘허씨 의장비’의 사연도 예사롭지 않다. 선생이 77세 되던 1920년, 자신의 재산을 가족·조상·이웃·국가와 고루 나누도록 한 유언이 비석에 기록돼 있다. 마을 한가운데 허만정 선생의 호를 딴 ‘효주원’은 6남 허승효 회장(알토전기)이 어머니 유언에 따라 2006년 주민들을 위해 조성한 공원이다.
마을관광안내소가 있는 K-기업가정신센터(옛 지수초등학교) 1층 전시실에는 승산마을의 유래와 구씨 허씨 일가에 대한 이야기가 잘 정리돼 있다. 센터의 전신인 지수초등학교는 LG 구인회 회장을 비롯해 60여 명의 기업인을 배출한 학교로 유명하다. 삼성 이병철 회장도 이 마을로 시집온 누님댁에서 한동안 지내며 구 회장과 같은 반에서 공부했다.
건물 앞에는 구 회장과 이 회장, 효성 조홍제 회장이 함께 심었다고 전해지는 ‘부자소나무’가 100년 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내친 김에 승산마을에서 서쪽으로 20분쯤 가면 ‘태극기마을’로 불리는 함안군 군북면 동촌리 신창마을이 나온다. 효성그룹 조홍제 회장의 생가가 있는 곳이다. 대문채·별채·사랑채·안채·광채 등으로 구성된 생가는 몇 년 전 개보수를 거쳐 2019년 11월 일반인에게 개방됐다. 조 회장의 5대 선조부터 터를 닦은 이 집은 여느 창업주 생가와 달리 들판 한가운데 있다. 사랑채가 남부지방 부잣집의 전통양식인 ‘일자형’이 아닌 ‘겹집 구조’인 점도 특징이다. 아궁이에 불을 지펴 직접 물을 데우는 ‘가마솥 목욕탕’도 이색적이다.
안채 옆 조 회장이 신혼 생활을 했던 별채는 한국전쟁 이전에 화재로 소실돼 터만 남았고, 지금의 별채는 1985년 사랑채 옆에 새로 지었다.
삼성 이병철 회장과 동업하다 1962년 뒤늦게 독자적으로 사업을 시작한 조 회장은 스스로를 만우(晩愚·늦되고 어리석다)라 칭했다. 일제강점기 군북금융조합장을 지낸 그는 조선인의 토지를 지키고 자작농을 육성하는 데 힘을 쏟기도 했다. 광채 안에는 당시 기록을 토대로 한 공간이 꾸며져 있다. 안기환 만우생가 관리소장은 “17세까지 한학을 배워 신중하고 조심스러웠던 회장님의 성격과 선비 정신이 사업 방식에서도 그대로 묻어난다”고 설명했다.
2022-12-29 [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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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대나무의 합주에 별빛이 환호하는 울산의 밤
부쩍 차가워진 바람에 바야흐로 겨울임을 실감한다. 24절기 중 22번째 절기인 동지가 점점 다가서면서 밤은 더욱 길어지고 있다. 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는 옛 노래처럼 밤이 더욱 아름답고 소중해지는 때이다. 가로등과 건물이 밝히는 낱낱의 조명들은 도심 속에서 조화롭게 어우러지며 하나의 예술품인 야경을 만들어 낸다. 인위적인 도심의 야경이 아닌 자연과 인간이 컬래버레이션으로 빚은 야경의 매력은 어떨까. 나무에, 바위에, 자갈에, 그리고 바다에 오색찬란한 별빛이 내려앉은 울산 명선도와 십리대숲 은하수길을 찾았다.
■해가 지면 섬 전체가 신비로운 빛으로 물드는 ‘명선도’
명선도는 울산 울주군 서생면 진하해수욕장 앞에 있는 작은 섬이다. 올가을 태풍 피해를 입고 복구 공사가 한창이었던 명선도는 최근 다시 개방됐다. 명선도는 과거엔 매미들이 많이 운다고 해서 ‘명선도(鳴蟬島)’라 불렸지만, 지금은 신선이 내려와 놀았던 섬이라고 해서 ‘명선도(名仙島)’로도 불린다고 한다.
‘배를 타고 가야 하나…’ 어떻게 섬으로 갈 수 있는지 궁금했는데, 막상 명선도를 눈앞에서 보고 나니 괜한 걱정이었다. 진하해수욕장에서 명선도까지는 부표처럼 물 위에 뜬 다리로 이어져 있어 걸어 들어갈 수 있다.
명선도 입구에서는 신비로운 색감의 파도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파도에 비춰진 불빛에 때론 보랏빛 파도가, 때론 푸른빛과 초록빛 파도가 번갈아 만들어졌다. 파도가 잔잔하게 들락날락하고 있는 것도 모른 채 보랏빛 물결에 발을 디뎠다가 신발이 젖었지만 동심을 되찾은 기분이다.
명선도에 조성된 산책로에 들어서자 해파리 모양을 한 알록달록 조명들에 눈길이 간다. 마치 바닷속에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산책로 양옆으로 선 나무에도 경관 조명을 예쁘게 꾸며 놓았다.
명선도 산책로를 조금 더 걸어 들어가면 자갈 마당이 나오는데 마치 작은 별빛들이 총총 내려앉은 듯 밤하늘을 닮았다.
다시 산책로를 따라가니 나무 사이로 미디어 아트로 구현한 호랑이와 사슴, 거북이가 나타났다 사라진다. 살아 있는 듯한 모습에 어린 아이들의 눈이 동그래진다.
나지막한 언덕으로 올라가는 길에서 폭포를 만났다. 가파른 바위 위에 조명을 비춰 물이 생동감 넘치게 흘러내리는 모습을 연출해 냈다. 진짜 폭포수 같다.
언덕을 오르는 나무 계단에 그려진 그림들은 마치 동화 속 그림 같다. 형광 물감으로 꽃과 나뭇잎, 동물을 그려 놓고 여기에 불빛을 비추니 갖가지 형광빛이 아기자기한 매력을 뽐냈다.
계단을 다 오르니 명선도 전망대가 나왔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아름다운 야경은 명선도를 찾은 이들에게 보너스다.
△여행 팁 : 명선도는 동절기와 간절기, 하절기 각각 불빛을 밝히는 시간이 다르다. 동절기(10~2월)에는 오후 6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운영(입장 마감 오후 9시 30분)된다. 간절기(3~4월, 9월)에는 오후 7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운영(입장 마감 오후 9시 30분)되며, 하절기(5~8월)에는 오후 7시 30분부터 오후 11시까지 운영(입장 마감 오후 10시 30분)된다. 월요일은 운영하지 않으며, 밀물 때와 파도가 높거나 바람이 심할 때에도 안전의 위험이 있는 만큼 입도가 금지된다. 주말에는 진하해수욕장 인근 도로의 주차난이 특히 심각하다. 교행이 힘들 정도여서 차를 몰고 갔다가 빠져나오지 못해 당혹스러울 수 있다. 인근 공영 주차장이나 사설 주차장, 또는 카페 주차장에 차를 대고 걸어가는 것을 권한다. 명선도까지 들어가려면 백사장을 가로질러야 하고, 명선도 내 산책길이 매우 어둡기 때문에 구두보다 편안한 신발을 신는 게 낫다.
■밤이 되면 별빛이 흐르는 태화강 십리대숲 은하수길
울산 중구와 남구 일원에 조성된 태화강 국가정원은 순천만 국가정원에 이어 2019년 국내 2호 국가정원으로 지정됐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에서 2년 주기로 선정하는 한국관광 100선에 2017년부터 올해까지 세 차례나 선정된 국내 대표 관광 명소이다. 대나무와 국화, 무궁화, 작약 등 다양한 식물은 물론이고, 조류, 나비 등에 이르기까지 20여 종류의 테마 정원으로 구성돼 사시사철 관광객들을 반기는 곳이다.
태화강 국가정원에 어둠이 짙어지며 모든 동식물이 숨을 죽이는 사이 십리대숲 은하수길은 어느새 밤의 주인공이 된다. 십리대숲은 구 삼호교부터 태화루 인근 태화교까지 10리, 약 4km에 걸쳐 대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서 있는 길이다. 하늘과 맞닿을 듯한 키 큰 대나무가 때론 꼿꼿하게, 때론 비스듬히 흙길 양쪽으로 늘어서 있다. 은하수길은 십리대숲 산책로 중 약 600m 구간에 LED조명으로 밤하늘에 별빛이 쏟아지는 듯한 장관을 연출한다.
태화강 국가정원 안내센터에서 남동쪽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 십리대숲 산책로 안내판이 보인다. 안내판이 가리키는 쪽으로 진입하는 순간 대나무숲에서 촘촘히 반짝이는 LED조명들이 밤하늘의 은하수를 연상시킨다. 한국동서발전이 지역사회 공헌 사업 일환으로 반딧불을 모티브로 해 조성한 경관 조명인 만큼 시골 밤에 은은하게 빛나는 반딧불 같기도 하다.
대나무들이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내며 산들산들 바람에 흔들리자 별빛도 흩어졌다 모였다 한다. 자세를 낮춰 하늘을 올려다본다. 하늘과 맞닿은 대나무숲에는 은하수가 흐르고, 대나무숲 사이로 고개를 내민 밤하늘에는 진짜 별이 반짝인다.
은하수길은 매우 어둡다. 경관 조명을 부각하기 위해 인공 불빛을 최대한 억제해야 하기 때문이다. 곳곳에 포토존이 설치돼 있지만, 빛이 부족한 밤에는 무용지물이다. 하지만 대나무숲에 총총히 박힌 별빛들이 만들어 낸 낭만적인 은하수 사진을 찍고 있으면 왜 은하수길은 밤에 와야 하는지 새삼 깨닫는다.
△여행 팁 : 태화강 국가정원에는 주차장이 여러 곳 있는데, 십리대숲 은하수길을 보려면 태화강 국가정원 5공영주차장을 이용하는 게 가깝고 편리하다. 5공영주차장에 차를 대고 은은한 조명에 고즈넉한 풍취가 감도는 은하수다리를 건너면 태화강 국가정원 안내센터가 나온다. 그곳에서 남동쪽 바로 가까이에 십리대숲 은하수길이 있다. 2시간 가까이 은하수길과 국가정원 일부 코스를 돌아보고 왔지만 주차요금은 500원밖에 나오지 않았다. 은하수길 야간 조명은 일몰부터 오후 11시까지 켜진다. 태화강 국가정원은 밤이 되면 조명이 많지 않아 어둡기 때문에 맑은 날 찾는다면 하늘에서 많은 별도 볼 수 있다. 태화강 국가정원 표지석 앞에서 남쪽으로 올려다보면 겨울철 대표 별자리인 오리온 자리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어둡기 때문에 안전을 위해 가족이나 연인과 함께 찾는 것을 권한다. 스마트폰으로 은하수길 경관 조명을 촬영하려면 야간 모드를 활용해야 한다. 손떨림 방지를 위해 삼각대를 가져가는 것도 좋다.
2022-12-07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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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수학이랑 놀아 볼까…체험관의 이유 있는 변신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잃어버린 수많은 일상. 학부모와 학생 입장에선 ‘체험관 탐방’이 그중 하나다. 코로나 시기 방문객이 급감하는 상황에서도 부산지역 체험관은 속속 새 시설을 갖췄다.
특히 평소 거리감이 있던 ‘과학’과 ‘수학’ 분야의 변모가 눈에 띈다. 부산교육청에서 운영하는 과학·수학 체험관만 모두 3곳. 올 겨울방학 이들 시설을 찬찬히 둘러보고 나면 몰라보게 달라진 우리 아이를 마주하게 될지 모른다. “과학이랑 놀고 싶어요.” “수학이랑 놀다 올게요.”
▶부산창의융합교육원
전국 명물 산호 수조, 첨단 기술 접목된 아쿠아리움
해양·지구환경·천체 특화, 새 단장 끝낸 융합과학실
▶부산과학체험관
게임처럼 풀어 가는 ‘고래특별전’ 아이·어른에 모두 인기
기초과학 중심 200여 점 전시물 하루로 부족할 정도
▶부산수학문화관
14일 개관 수학 주제 세계 최대 규모,특이한 구조 인상적
생활 속 사례 통해 원리 탐구, 수학 관련 진로 탐색 가능
■해양과학의 명소 ‘아쿠아갤러리’
연제구 연산동 배산자락에 위치한 부산창의융합교육원. 1층 현관에 들어서자 형형색색 그림 같은 대형 수족관에 시선을 빼앗긴다. 바닷속 연산호와 경산호 군락을 재현한 ‘산호수족관’이다. 사설 아쿠아리움보다 색도 모양도 화려한 산호에다 돈 주고도 못 구한다는 버블말미잘까지. ‘아쿠아 아티스트’ 김숙리 팀장이 10년 넘게 애지중지 가꿔 온 덕분에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명물이다.
지하 1층으로 내려가자 또 다른 바닷속 세상이 펼쳐진다. 13개의 크고 작은 수족관에 우리나라 바다 물고기를 비롯해 5대양 열대어와 산호, 청소새우, 해파리, 수초 등 다양한 바다 생물을 만날 수 있다. 여느 수족관과 달리 은은한 조명과 조각 작품 같은 바위도 특징이다. 김 팀장은 “살아 있는 돌(라이브 록)을 일일이 깎아서 만들었는데, 여과재이면서 물고기에겐 동굴 역할을 한다”며 “조명도 스쿠버 다이버가 보는 바닷속 모습에 가깝도록 은은하게 연출했다”고 설명했다. 교육원 해양수족관이 ‘아쿠아 갤러리’로 불리는 이유다.
모바일앱을 활용해 갯민숭달팽이 등 다양한 해양 생물로 나만의 수족관을 만들어 보는 ‘디지털 아쿠아리움’, 5대양 바닷속을 벽면에 구현한 ‘디지털 바다쉼터’에는 첨단기술이 접목됐다.
해양수족관 옆 공간엔 지난해 2월 함께 리모델링한 해양과학실이 자리한다. 모두 체험형인데, 손바닥으로 적도·극지방과 부산 앞바다의 해수 온도를 느껴 보고, 수심별 수압과 빛투과율, 해수 염분 등도 간접 체험해 볼 수 있다. 해양 분야에 관심이 생겼다면, 스크린터치 12가지 문답을 통해 해양 관련 기관·직업군 추천도 받아 볼 수 있다.
부산창의융합교육원은 1987년 부산학생과학관으로 개관해 부산과학교육원을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30여 년간 과학분야 교육을 담당해 왔다. 특히, 해양과 지구환경·천체 분야에 특화돼 있다. 올 1월엔 기후변화와 탄소중립 실천 등을 체험할 수 있는 지구환경실, 이달 1일엔 최첨단 로봇과 정보통신기술(ICT)을 만날 수 있는 융합과학실이 새 단장을 마쳤다. 4층 천체관측실 등에서 매달 진행해 온 ‘가족과 함께하는 별자리여행’(천문관측 등)도 내년 봄부터 참여할 수 있다.
■기초과학과 친해지고 싶다면 초량으로
지난 3일 동구 초량동 부산과학체험관 1층 특별전시실. 벽면에 각양각색의 고래 엽서 수백 장이 빼곡히 전시돼 있다. ‘책에 퐁당, 고래에 풍덩’ 특별전을 관람한 학생들이 손수 그린 고래들이다.
지난달 19일 시작한 고래특별전은 바다 도시 부산에서도 평소 접하기 힘든 고래의 모든 것을 담았다. 크게 이빨고래와 수염고래로 나뉜다는 기본 정보부터, 고래의 생김새와 행동 특성(숨기둥·수면), 먹이 먹는 법 등이 알차게 전시돼 있다. 게임 방식으로 고래의 크기를 비교하고, 고래 이름을 알아맞히다 보면 자연스레 고래의 세계에 빠져든다. 고래 몸속 모형을 연신 카메라에 담는 아빠, 고래 관련 책을 아이에게 읽어 주다 독서 삼매경에 빠진 엄마 등 어른에게도 인기다. 특별전을 기획한 송민주 교육연구사는 “부모님이 자료에 더 관심을 갖고 문의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번 전시에 도움을 준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센터 등 관련 기관으로 안내해 드리고 있다”고 말했다.
학생들에겐 ‘고래와 놀다’ 코너가 인기다. 고래 무드등, 고래 모자, 고래 키링, 고래 프로타주 등을 만들어 볼 수 있다. 환경운동가 로저 페인이 1970년대 음반으로 발매해 유명해진 ‘혹등고래의 노래’도 직접 들어 볼 수 있다. 특별전은 내년 1월 15일까지 연장 운영한다.
부산과학체험관은 상설전시장에 없는 주제를 중심으로 매년 특별전을 열고 있다. 올해는 고래에 앞서 로봇, 기후변화 체험전을 열었다. 내년에는 융합과학에 초점을 맞춰 영화·건축·우주를 주제로 특별전을 열 예정이다.
2~4층 상설전시실은 기초과학 중심의 체험형 전시물 200여 점을 갖추고 있다. 빛, 전자기, 소리·파동, 지구·생명, 수학·융합, 열·역학 등 6개 영역별로 6명의 교육연구사가 학교 단체 방문객을 대상으로 교육과정과 연계해 강의도 진행한다. 주말(토·일)에는 가족단위 일반 관람객이 해설사 설명을 들으며 자유롭게 체험할 수 있다.
모든 체험을 빠짐없이 해 보려면 꼬박 하루로 부족할 정도. 매년 신규 체험전시물이 추가되기 때문에, 주제를 나눠 여러 번 방문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세계최대, 기네스 도전 ‘수학문화관’
부산진구 부전동 부산글로벌빌리지 옆 공터에 최근 요상한 건물이 들어섰다. 삼각형과 사각형이 조합된, 외관부터 특이한 이곳은 오는 14일 개관을 앞둔 ‘부산수학문화관’. 수학을 주제로 한 교육체험시설로는 세계 최대 규모이다.
2층 입구에서 마주치는 내부 구조는 더 기이하다. 수학 관련 책으로만 5000권이 비치되는 수학도서관의 천장에 뾰족한 사각뿔이 튀어나와 있다. 3~5층을 관통하는 역피라미드 조형물이다. ‘수학은 생각의 놀이터이다’ ‘자연이란 책은 수학 언어로 되어 있다’. 피라미드 외관에 새겨진 문구는 부산지역 공교육기관 수학 전공자들의 보내온 문장이다. 조형물 내부(‘공간543’)에선 세계 각국 전통 퍼즐놀이와 보드게임 등을 즐길 수 있다.
수학문화관 체험 순서는 5층에서 시작해 2층으로 내려오는 역순이다. 4층 ‘역사지혜관’에선 문명이 탄생하기 전 수의 개념부터 시작해 2022년 수학자 허준이 교수의 필즈상 수상까지 인류 역사와 함께해 온 수학의 연대기를 만나 볼 수 있다.
‘교과체험관’은 나선형 통로를 따라 4층에서 3층으로 내려가면서, 교과서 속 수학을 생활 속 사례를 통해 만나는 공간이다. ‘포물선으로 곱셉을 계산한다고?’ ‘원에서 삼각함수 값을 알 수 있을까?’ 등 체험물 설명이 ‘질문’인 게 흥미롭다. 빈지현 운영팀장은 “스스로 원리를 생각해 보게끔 모든 패널을 질문식으로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교과체험의 마지막인 3층 다면체 포토존에선 조명처럼 어둠을 밝히는 아르키메데스 다면체와 카탈랑 다면체를 배경으로 인증 사진을 남기는 이색 경험이 가능하다. ‘진로탐색관’에선 건축·의료·영상 등 산업 현장에서 활용되는 수학과 함께 관련 직업을 탐색해 볼 수 있다.
2층 수학도서관 옆에 마련된 ‘수학놀이관’은 미취학 어린이와 초등 저학년을 위한 공간. 건물 안쪽 야외에 들어선 ‘피보나치 나선’을 본딴 계단도 수학문화관만의 명소이다. 김진태 관장은 “수학의 대중화를 목표로 학생과 시민이 여러 번 방문할 수 있도록 수학 관련 다양한 주제를 개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수학문화관은 3월 정식 운영에 앞서 내년 2월까지 시범 운영한다. 시민들은 1월부터 홈페이지 사전 예약(월~목, 하루 선착순 500명)으로 이용할 수 있다.
글·사진=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2022-12-07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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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 년 품은 고분 위로 오늘 하루 더해진다…경북 의성 시간 여행
한 해의 마지막이 다가오고 있다. 지나온 시간과 다가올 시간을 조용히 생각해 볼 시기다. 시간의 의미를 짚을 수 있는 한적한 곳에서 사색에 빠진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오래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곳, 경북 의성군으로 시간 여행을 떠났다.
■삼한 시대 부족국가 ‘조문국’을 아시나요
‘여기가 경주가 아니라 의성이라고?’ 의성 하면 떠오르는 것은 마늘과 컬링뿐이었다. 그런데 우연히 본 ‘고분군’ 사진이 의성으로 발길을 향하게 했다. 의성에 대해 찾다 보면 많이 만나는 단어 중 하나가 ‘조문국’이다. 봉긋봉긋 솟은 고분군 역시 조문국의 흔적이다.
조문국은 삼한 시대 초기 부족국가였던 나라로, 의성군 금성면 일대가 도읍지였다. 신라 벌휴왕 2년인 185년에 신라에 병합됐다고 전한다. 〈삼국사기〉에 ‘185년 2월에 파진찬 구도와 일길찬 구수혜를 좌우 군주로 삼아 조문국을 벌하였는데 군주(軍主)라는 이름은 여기에서 시작된 것이다’라는 내용에서 조문국이 등장한다.
금성산 고분군 주차장에서 내려다보면 너른 고분군이 한눈에 들어온다. 지름 15~19m의 대형 분부터 지름 10m 미만의 소형 분까지 370여 기가 흩어져 있다. 이 고분군은 5~6세기경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여름 잔디가 푸르렀을 땐 그것대로의 멋이 있었겠지만, 초겨울 갈색으로 물든 풍경도 고분군 분위기에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든다.
고분군을 천천히 돌아봤다. 금성산 고분군은 예쁜 길로도 유명하다. 고분 사이로 쭉 뻗은 길부터 부드럽게 굽이진 길, 구름과 가까워지는 언덕길까지. 조용히 사색을 즐기는 이에게도, SNS 인증사진을 즐기는 이에게도 인기 있는 포인트이다. 언덕 위에 오르자 아래를 바라보도록 작은 의자 네 개가 놓여 있다. 잠깐 앉아 생각에 잠기기에 좋다. 한 시대가 저문 흔적 위에서 저무는 한 해를 뒤돌아본다.
금성산 고분군에는 주인이 알려진 고분이 하나 있다. 바로 경덕왕릉이다. 경덕왕릉에는 전설이 전해진다. 조문마을의 북쪽에 옛 무덤이 첩첩이 쌓여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그중 가장 큰 무덤을 몇 번이나 몰래 파헤쳐 보려 했다. 이웃에 사는 오극겸이 이것을 보고 놀라 꾸짖고 무덤을 보수했다. 그날 밤 오극겸의 꿈에 의복 치장이 매우 이상한 사람이 시 한 구절을 일러 줬다. ‘문소고을 과거사를 누구와 의논하랴/천년이 지난 오늘 경덕분만 남았도다/비봉곡조 없어지고 사람도 볼 수 없고/조문의 거문고 가 버린 지금 그 소리도 모연하다 하였다.’ 이 전설은 조선 영조 때 전국의 읍지를 엮어 편찬한 〈여지도서〉에 기록돼 있다.
경덕왕릉 앞에는 봉분 모양을 한 조문국 고분전시관이 있다. 대리리 2호분이 있던 자리로, 발굴을 끝낸 후에 무덤 내부를 보여주기 위해 전시관을 지었다. 금성면 고분군의 형성 과정과 순장 등 당시의 매장 풍습을 자세히 알 수 있다.
초겨울 고분군의 풍경은 소박하지만, 5월의 풍경은 조문국의 옛 시절처럼 화려하다. 붉은 작약으로 뒤덮인 봄날이 궁금해진다.
■통일신라 석탑과 1억 5000만 년 전 공룡 발자국
‘의성조문국박물관’은 고분군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다. 박물관 1층의 아이들 놀이공간인 상상놀이터에 먼저 눈길이 간다. 발굴 체험 등 역사 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이곳을 찾는 아이들은 박물관을 지루한 곳이 아닌 재미있는 곳으로 받아들이겠구나 싶다. 박물관에 생기가 넘치는 듯하다.
조문국박물관에서는 다양한 유물을 볼 수 있다. 선사시대부터 삼한시대와 삼국시대에 이르기까지 의성 지역의 역사와 문화가 펼쳐진다. 금성산 고분군은 1960년대부터 발굴이 이뤄졌고 많은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 금동관, 은제 관장식, 환두대도, 금동 귀걸이, 의성 양식 토기 등 대부분 5~6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탑리 1호분에서 출토된 금동관은 띠 모양의 테두리 위에 가장자리를 가늘게 꼬아서 새 깃털 모양으로 만든 장식을 붙였다. 신라의 금관과는 다른 모습이라 특이하다.
박물관에서 또 하나 눈길을 끄는 곳은 ‘열린 수장고’이다. 금성면 출신인 박찬 변호사가 기증한 유물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었다. 수장고는 일반인이 접근할 수 없는 곳이라 어떻게 유물을 보관하는지 늘 궁금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박물관 유물이 어떻게 잠들어 있는지 눈으로 볼 수 있는 기회다.
금성면 고분군 인근에는 함께 둘러볼 만한 시간 여행 장소가 있다. ‘의성 탑리리 오층석탑’을 보러 가는 길에는 1980년대를 먼저 만난다. ‘레트로’ 감성이 물씬 나도록 정비한 거리의 간판이 정겹다. 오층석탑은 탑리여자중학교 운동장에 있다. 통일신라 전기에 만들어진 석탑으로 ‘국보’이다. 탑 주변에 소나무 세 그루가 그림처럼 어우러져 있다. 색 바랜 석탑 주변만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하다. 순식간에 마음을 뺏긴다.
석탑 1층 몸돌에 불상을 모시는 방인 감실이 있지만 비어 있다. 돌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쌓아 올린 전탑 양식과 목조 건축의 수법을 동시에 보여 주고 있어,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과 함께 통일신라 전기의 석탑 양식을 연구하는 귀중한 자료라고 한다. 석탑 옆 잔디밭에는 오층석탑의 교체 부재가 전시돼 있다.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이뤄진 보수공사에서 나온 부재들이다. 탑의 어느 위치에 있던 것이었는지 그림과 함께 설명해 놓아 이해가 쉽다.
의성 여행의 마지막은 더 먼 옛날, 1억 5000만 년 전으로 떠나는 시간이다. ‘의성 제오리 공룡 발자국 화석 산지’에는 384개의 공룡 발자국이 남아 있다. 공룡 관련으로는 최초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주로 바닷가에서 많이 봤던 공룡 발자국을 내륙의 도로를 달리다가 맞닥뜨리니 색다르다. 1987년 지방도로 확장공사 중에 산허리 부분의 흙을 깎아낼 때 발견했다고 한다. 중생대 백악기에 살았던 공룡 발자국으로 추정되며, 초식 공룡과 육식 공룡의 발자국이 함께 찍혀 있다. 무수히 많은 공룡 발자국이 선명하게 보인다. 가까이서 보는 것보다 길 건너편에서 보면 발자국이 더 잘 보인다.
▶여행 팁 : 의성조문국박물관 관람 시간은 오전 9시~오후 6시이며, 매주 월요일과 1월 1일, 설날·추석 당일은 휴관이다. 박물관 상설전시실, 민속유물전시관, 열린 수장고, 고분 전시관 관람은 무료다. 상상놀이터는 유료로 운영하고 있다. 월요일은 문을 닫는다. 이용료는 만 2세~만 9세 미만은 2000원, 만 9세 이상은 1000원. ‘의성 탑리리 오층석탑’은 탑리여중 운동장에 있지만 입구는 별도로 있다. 교정으로 들어가면 울타리에 막혀 가까이에서 볼 수 없다.
글·사진=김동주 기자 nicedj@busan.com
2022-11-30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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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단신] 싱가포르항공, 내년 6월 부산 노선 운항 재개 外
싱가포르항공, 내년 6월 부산 노선 운항 재개
싱가포르항공이 부산-싱가포르 노선 운항을 재개할 계획을 밝혔다. 싱가포르항공은 22일 ‘2024년 3월까지 아시아 지역 운항 서비스를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회복하기 위한 계획’을 발표했다. 싱가포르항공은 내년 6월 2일부터 부산-싱가포르 노선 운항을 재개해 주 4회 운영할 계획이다. 싱가포르 항공은 또 내년 3월 대만 타이베이 노선 증편을 시작으로 서울, 오사카 등 아시아 주요 도시를 잇는 항공편의 운항을 확대한다. 하루 3회 운항되던 인천-싱가포르 노선은 내년 6월 1일부터 1회 증편해 매일 4회, 매주 28회 운영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싱가포르항공의 서울 노선 항공편은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100% 회복하게 된다.
경북관광공사, ‘경북 따뜻한 맛 투어’ 이벤트
경북문화관광공사는 12월 11일까지 ‘경북, 어디까지 먹어 봤니-따뜻한 맛 투어’ 이벤트를 진행한다. 경북에서 따뜻한 국물이 있는 음식을 먹고 음식과 손으로 만든 하트가 들어간 사진을 찍어 올리면 경품을 제공하는 행사다. 추첨을 통해 700명에게는 스타벅스 아메리카노 T교환권, 5명에게는 갤럭시워치5 프로 45MM, 10명에게는 갤럭시버즈2 프로를 증정한다.
2022-11-23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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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국사, 첨성대에서 ‘신라의 가을’을 만나다
경주를 가장 아름답고 우아하게 여행할 수 있는 계절은 단연코 가을이다. 불국사, 첨성대, 동궁과 월지 주변에는 산과 숲, 정원이 많기 때문에 알록달록한 단풍을 즐기기에 최적의 장소다. 추운 겨울이 오기 전에 많은 사람이 낭만의 사진을 찍으러 가는 가을의 경주를 만끽해보자.
■토함산 자연관찰로
불국사 오른쪽에는 석굴암까지 갈 수 있는 자연관찰로가 있다. 경사가 가파르지 않아서 1시간~1시간 30분이면 석굴암에 도착할 수 있다. 올라갈 때는 걷고 내려올 때는 시내버스를 타고 내려와도 된다.
안내소를 지나자마자 갈색과 노란색으로 진하게 치장한 자연관찰로가 나타난다. 자연관찰로 중에서 약수터까지의 1km 구간은 단풍길이다. 1981년에 불국사청년회 회원들이 힘을 모아 단풍나무, 참나무 등 여러 종류의 나무 380여 그루를 심어 환상적인 낭만의 산책로를 만들었다.
가파르지 않고 잘 정돈된 길이어서 그다지 힘들지 않은 구간이어서 자연관찰로를 걷는 사람은 적지 않다. 평일 오전에도 이렇게 많은 사람이 길을 오르는 걸 보건대 주말에는 인파가 엄청나리라는 걸 짐작할 수 있다.
나뭇가지와 잎은 터널처럼 하늘을 가을의 색으로 뒤덮었다. 자연관찰로의 흙도 갈색인데다 알록달록한 나뭇잎이 덮인 곳이 많아 어느 게 나뭇잎인지, 어느 게 흙인지 착각할지도 모른다. 산책에 나선 여행객들의 얼굴도 빨간색이나 갈색이다. 황홀한 풍경에 반해 얼굴이 달아오른 것인지, 나뭇잎에서 흘러내린 향기에 얼굴이 염색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지난 9월 태풍 때문에 산길 일부 구간이 무너져 지금 자연관찰로 일부 구간은 통제된다. 석굴암까지 바로 갈 수는 없고 입구에서 800m 지점인 약수터 인근에서 걸음을 멈춰야 한다. 아쉬운 표정만 남긴 채 발길을 돌리는 순간 모든 산책객의 입에서는 희열에 넘친 탄성이 튀어나온다. 올라올 때보다 내려갈 때 자연산책로의 풍경이 더 찬란하고 눈부시다. “여기가 바로 불국토로구나!”
■불국사의 단풍
불국사 입구 연못에는 파란 가을하늘이 담겼다. 연못 주변을 둘러싼 단풍나무는 하늘이 무얼 하면서 놀고 있는지 고개를 힐끗 내밀고 연못을 들여다본다. 순식간에 연못은 파란색, 갈색, 빨간색, 녹색으로 다채롭게 물든다. 사찰 경내로 들어가는 길목의 돌다리 ‘해탈교’는 연못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유심히 지켜보면서 자아도취에 빠진 모양이다.
불국사는 이미 깊은 가을에 푹 젖었다. 사찰 곳곳에서는 경건하게 짙어가는 계절의 향기가 흐르고 있다. 사찰 가장 아래의 좌경루는 물론 가장 위쪽에 자리를 잡은 비로전과 관음전, 총지당 지붕에는 가을이 앉아 쉬고 있다. 빨간 단풍나무는 가을이 편하게 쉴 수 있도록 가지를 지붕 곳곳으로 뻗어 사람의 시선을 가려준다.
대웅전과 무설전 앞에는 화분에 담긴 꽃이 다양하게 피어 있다. 노란 국화도 보이고 서양봉선화라는 임파첸스도 있다. 다양한 소원을 담은 표식이 화분에 꽂혀 있다. 가족 이름만 적은 표식도 있고, 수능 대박이나 사업 대길이라는 구체적 소원을 적은 표식도 보인다.
관람객들은 화사하게 피어난 단풍나무 아래에서 연거푸 사진을 찍기에 바쁘다. 다들 불국사 사찰 건물을 구경하러 온 것인지, 불국사 안팎에 만개한 가을을 보러온 것인지 구분하기 쉽지 않는 장면이다.
■동궁과 월지
통일신라시대 별궁이었다는 동궁과 월지(옛 안압지)는 한가롭다. 원래 야경으로 유명한 곳이지만 가을에는 잡념을 모두 버리고 한가롭게 거닐기에 여기보다 좋은 곳은 없다.
이미 노랗게 색이 바래버린 잔디는 다가올 겨울을 준비하는 표정이다. 사람이 지나가든 말든 아무런 관심이 없다. 잔디 한가운데에 떡하니 버티고 선 모과나무만 가는 세월을 아쉬워할 뿐이다. 가지에 대롱대롱 달린 모과 열매는 이대로 가을을 보내기 무척 싫은 모양이다.
1975년 발굴조사 결과에 따라 1980년 팔작지붕 누각으로 새로 지었다는 1호 복원 건물에 올라간다. 건물을 한 바퀴 둘러보면서 주변을 찬찬히 살펴본다. 동궁과 월지를 에워싼 작은 숲은 가을의 전령사인 단풍으로 뒤덮였다. 젊은 두 연인이 숲을 전세라도 낸 듯 작은 벤치에 붙어 앉아 사랑을 속삭이고 있다. 그들의 대화에 방해라도 될까봐 나뭇가지는 물론 땅에 떨어진 나뭇잎은 바스락거리는 소리조차 내지 못한 채 숨을 죽이고 있다.
복원 건물에서 내려와 여유를 가지고 월지를 한 바퀴 둘러본다. 작은 오리 여러 마리가 귀여운 물살을 일으키며 호수를 오간다. 작은 물고기 여러 마리는 오리가 사라진 모습을 확인한 뒤에야 수면으로 올라와 퐁당거리며 장난을 친다.
■계림과 첨성대
단순히 자동차를 몰고 주차장으로 가는 길은 피하기로 했다. 동궁과 월지에서 원화로를 건너 반월성 유적지와 참나무 숲길을 따라가다 계림을 둘러보고 첨성대에 가기로 했다.
신라시대에 성을 지키는 역할을 했던 해자를 건너 언덕을 올라가자마자 석빙고가 나타난다. 가을 햇살에 노랗게 익은 것처럼 보이는 석빙고 벽 너머로 짙은 갈색 참나무가 초병처럼 버티고 서 있다. 석빙고에서 오른쪽으로 갈 수도 있고 왼쪽으로 갈 수도 있다. 오른쪽 길은 조금 더 빠르고 왼쪽 길은 숲을 더 즐길 수 있는 게 차이다.
반월성을 둘러싼 숲은 참나무 군락지다. 숲 너머로는 자연적 방어시설이던 남천이 흐른다. 숲은 그다지 크지 않아 천천히 걸어도 10~20분이면 첨성대까지 갈 수 있다. 숲 바닥에는 갈색 나뭇잎이 이불처럼 포근하게 깔려 있다. 일부러 숲으로 들어가 나뭇잎을 밟고 걸어본다. 너무 푹신해서 불편할 정도다. 신발 안으로는 잘게 부서진 나뭇잎 조각이 들어온다.
숲을 지나가면 계림이 나온다. 신라 김씨의 시조인 김알지의 탄생 설화가 얽힌 곳이다. 오늘은 설화를 들으러 온 게 아니다. 계림은 가을에 화사한 사진 찍기 좋은 것으로 소문이 자자하게 난 장소다. 그곳에 가서 ‘인생 샷’ 한 장 찍는 게 목표다.
계림을 걷다 보면 멋진 사진을 찍을 장소가 한두 군데가 아니라는 사실에 놀라고 기뻐하게 된다. 곳곳에 울긋불긋한 단풍나무와 참나무가 얽혀 그림 같은 풍경을 연출하기 때문이다. 고교 동창으로 보이는 여성 네 명은 만족할 만한 사진을 찍었는지 얼굴에 즐거운 표정이 가득하다.
계림에서 잊지 못할 추억의 사진을 남긴 다음 마지막 행선지인 첨성대로 걸어간다. 이제 숲길은 끝나고 따스한 가을 햇살이 온몸을 비춘다. 다행히 덥거나 뜨겁지는 않고 푸근하고 안온한 느낌을 준다. 첨성대 주변은 많은 관광객으로 바글바글하다. 한복을 빌려 입은 뒤 입장료를 내고 첨성대 바로 앞으로 가서 사진을 찍는 사람도 많고, 인근 벤치에 앉아 그들을 구경하는 사람도 있다.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바로 얼굴에 화려하게 너울지는 함박꽃 웃음이다.
2022-11-2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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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숲길 걷다 보니 어느새 겨울 풍경… 경남 합천 정양늪 생태공원
울긋불긋 단풍, 바스락바스락 낙엽, 푸드덕푸드덕 겨울 철새. 이 같은 늦가을과 초겨울의 풍경을 한 번에 즐길 수 있는 때가 바로 지금이다. 천천히 걸으면서 바뀌는 계절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경남 합천군 대양면 정양늪 생태공원을 찾았다.
■소박한 듯 화려한, 매력 넘치는 늪
합천 정양늪은 우포늪에 비해서는 크게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황강 지류인 아천천의 배후습지로, 약 1만 년 전 후빙기 이후 해수면 상승과 낙동강 본류의 퇴적으로 생겨났다. 전체 면적은 41만㎡. 황강 수량과 수위 감소로 육지화되고 수질 악화가 가속화되면서 습지 기능을 잃어 갔지만, 2007년부터 2011년까지 생태공원 조성사업으로 생태계를 되돌렸다.
정양늪 생태공원에는 늪의 생태를 관찰하며 걷는 탐방로가 조성돼 있다. 총 길이 3.2km로, 오르막길이 없어 힘들이지 않고 편안하게 걸을 수 있다. 정양늪 생태공원 주차장에서 생태학습관을 지나면 나오는 생명길에서 걷기를 시작해도 되고, 육각정과 생태학습관 사이로 난 나무 덱 길로 들어서도 된다. 탐방로 중 두 군데 구간에 징검다리가 있어 유모차나 휠체어로 전체 한 바퀴를 돌기는 힘들다.
늪의 잔잔한 수면 위로 길게 놓인 덱 길로 먼저 들어섰다. 늦여름까지 장관을 이뤘을 연잎들이 한 생을 마치고 시들어 있었다. 예상치 못한 황량한 풍경에 잠깐 발걸음을 주춤했다. 다른 풍경이 펼쳐질 것이라 믿고 500m 길이의 나무 덱 길을 걸었다. 덱이 끝나갈 즈음 갈대를 만났다. 갈대가 바람에 흔들린다. 희한하게도 갈대를 바라보는 쪽은 갈대가 흔들리면 흔들릴수록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큼직한 돌이 놓인 징검다리를 건너면 흙이 깔린 숲길이다. 이 흙길은 하회마을 입구까지 이어진 1.7km이다. 왼쪽으로는 울긋불긋 단풍이 든 나무가 줄지어 섰고, 바닥에 깔린 낙엽은 바스락바스락 ‘겨울’ 소리를 낸다. 정양늪의 매력에 단박에 빠져든다. 평일이라 그런지 방문객이 많지 않다. 번잡스럽지 않고 고요해 사색에 빠지기 좋다.
이 길에는 장군주먹바위의 전설이 있다. ‘신라와 백제가 정양늪을 사이에 두고 고소산성에서 서로 대치하고 있었다. 이른 아침 신라 장수가 진지를 둘러보러 용주면 성차골 먼당 산성에서 출발해 안버러실 먼당에 첫발을 디뎠다. 하회마을 참능 먼당의 바위에 오른발을 디디며 발자국이 생겼다. 이때 몸이 미끄러지면서 정양늪에 빠질 위험에 처하자 손을 뻗어 주먹으로 바위를 짚으면서 위기를 모면했는데, 주먹을 짚은 자국이 바로 장군주먹바위다.’ 바위에 움푹 팬 자국이 그럴듯하다.
흙길 끝에 벤치 하나가 그림처럼 놓여 있다. 지금껏 걸어온 길을 뒤돌아보거나, 혹은 반대 방향에서 걸어왔다면 앞으로 걸어갈 길을 가만히 앉아서 바라보는 자리다. 벤치 가까이에 길 양쪽으로 세워진 짧은 울타리가 가을에서 나와 겨울로 들어가는 문처럼 느껴진다.
두 번째 징검다리를 건너면 생명길이라 이름 붙은 길이다. 주차장까지 1km 구간. 이 길에서는 철새와 가깝게 만난다. 붉게 물든 메타세쿼이아가 걷는 이를 반긴다. 왼쪽으로는 하늘로 쭉쭉 뻗은 메타세쿼이아가 있고, 오른쪽으로는 버드나무가 늪을 향해 누운 이색 풍경이다. 탐조대의 네모나게 뚫린 창으로 늪과 철새를 바라보면, 액자 속 그림을 보는 것처럼 색다르다. 멸종위기종인 큰고니를 비롯해 큰기러기, 흰뺨검둥오리, 큰고니, 청둥오리가 겨울 늪의 주연이다. 이렇게 정양늪을 한 바퀴 걷고 나면 정양늪을 소개하는 말이 가슴에 와닿는다. ‘자연과 인간을 이어주는 징검다리, 정양늪.’
■자세히 만나볼까, 정양늪의 친구들
정양늪 생태학습관은 ‘작지만 알차다’라는 말이 꼭 들어맞는 곳이다. 1층 전시실에 들어서면 커다란 금개구리 모형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우리나라에만 서식하는 금개구리는 정양늪이 경상권 최대 서식지이다. 금개구리는 우리나라 고유종으로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이다. 참개구리와 생태가 유사하지만, 금개구리는 거의 물에서 떠나지 않는 습성을 가진 점이 다르다. 등에 돌기가 없거나 점 모양이면 금개구리, 길쭉한 돌기가 있으면 참개구리이다.
생태학습관은 정양늪에 서식하는 생물, 조류와 수생식물들의 표본과 사진을 전시하고 있다. 현재 정양늪에는 모래주사(멸종위기종)·버들치·가물치 등 어류 10여 종, 대모잠자리·참매미·호랑나비 등 곤충 130여 종, 큰기러기·큰고니·말똥가리 등 조류 50여 종, 수달·고슴도치·너구리 등 포유류 10여 종이 살고 있다. 가시연·수련·줄·갈대·마름·어리연·물옥잠 등 식물은 250여 종이다.
2층으로 올라가면 풀벌레 소리가 배경음악으로 깔린다. 천장에 닿을 만큼 거대한 풀잎과 커다란 벌레로 꾸민 포토존이 재미있다. 오래전 인기를 끌었던 가족영화 ‘애들이 줄었어요’가 생각난다. 작은 사람이 되어 풀숲을 헤매는 듯, 동심이 솟는다. 복도 한쪽에는 정양늪의 생태를 알 수 있는 터치스크린이 있다. 동물, 수생식물, 물고기 중 주제를 고르고 원하는 생물을 ‘터치’하면 자세한 정보를 보여준다. 체험실은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곳. 백로와 대결하는 코너인 ‘한 발로 서 봐요’ 코너는 재미는 물론 자신의 균형감각도 체크할 수 있다. 이 외에도 ‘누구의 둥지일까요’ ‘부리가 달라요’ ‘다리가 달라요’ 등 다양한 내용의 정양늪 생태 콘텐츠가 있다.
어른들에게 생태관의 하이라이트는 2층의 휴게실이다. 둥근 유리창으로 넓게 펼쳐진 늪을 바라보며 몸도 마음도 쉬어갈 수 있다. 풍경에 푹 빠질 수 있는 힐링의 시간이다. 3층 옥상에도 전망대가 있어 탁 트인 풍경을 마음껏 누렸다. 생태학습관 1층 야외의 그네 의자에 앉아 정양늪과의 만남을 마무리했다. 지난 계절의 아쉬움과 오는 계절의 설렘을 함께 느끼면서.
▷여행 팁: 정양늪 생태공원에는 전용 주차장이 마련돼 있다. 생태체험관은 매주 월요일과 설·추석 당일, 1월 1일 휴관한다. 운영 시간은 오전 9시~오후 6시이며, 관람료는 무료. 아이들과 함께 갔다면 생태체험관을 먼저 둘러보고 탐방로를 걸으면 좋다. 아는 만큼 더 많은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체험관 입구 데스크에서 ‘정양늪 어드벤처’ 책자를 챙기자. 미션을 풀면서 재미있게 늪의 생태를 탐험할 수 있다. 생태학습관과 생태공원 곳곳에 놓인 스탬프 찍기를 완료하면 작은 기념품을 받는다. 정양늪 생태 체험 프로그램도 있다. 오전 10시 30분, 오후 2시, 오후 4시 등 하루 3회 운영한다. 환경생태해설사와 함께 1시간 30분 동안 생태학습관 관람과 정양늪 생태체험 탐방, 생태학습, 체험교구 만들기를 한다. 참가비는 무료이며 체험 3일 전까지 인터넷으로 예약하면 된다.
2022-11-1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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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타고 제주도 여행하면 숙박 요금 지원
겨울철에 배를 타고 제주도로 여행을 갈 경우 숙박 요금을 지원받을 수 있다.
제주도와 제주관광협회는 겨울철 뱃길관광을 촉진하기 위해 뱃길관광 여행객들의 숙박요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이번 달 18일까지 왕복 여객선을 이용하여 제주도 여행을 가는 사람이 제주도 여행업체 또는 제주여행 공공플랫폼 ‘탐나오(www.tamnao.com)’를 통해 숙박시설이나 패키지상품을 이용할 경우 숙박요금을 지원한다는 것이다.
숙박 요금이 10만~15만 원일 경우 4만 원, 15만~20만 원일 경우 6만 원, 20만~25만 원일 경우 8만 원, 25만~30만 원일 경우 10만 원을 각각 지원한다. 지원을 받으려는 여행객은 제주관광협회(호남권 제주관광홍보사무소)에 사전 문의하고 제주도 여행을 다녀온 뒤 본인의 왕복 여객승선권과 여행업체 결제내역을 제출하면 된다. 단 지원금 예산을 다 쓰면 행사는 자동 종료된다.
2022-11-09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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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갯길 오를수록 깊어진 붉은 가을…문경새재 도립공원
‘문경새재 물박달나무/ 홍두깨 방망이로 다 나간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문경새재아리랑 노랫가락에 맞춰 조령산은 빨갛게 불타오르며 화려한 춤을 춘다. 산책이나 등산을 즐기는 여행객의 어깨 너머로 단풍의 느낌을 담은 선선한 바람이 부드러운 향기처럼 흐른다. 먼 옛날 선비가 걷던 나지막한 고갯길에서는 난 데 없이 사람과 자연이 어우러진 가을의 축제가 펼쳐진다.
■새도 넘기 힘든 고개
제1주차장 쪽으로 다가가는 순간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평일 낮인데도 빈자리는 하나도 볼 수 없었다. 평일인데도 문경새재 도립공원은 빨간 단풍을 구경하면서 긴 산책을 즐기려고 찾아온 관광객으로 미어터질 지경이었다.
할 수 없이 차를 먼 제3주차장에 세우고 입구를 향해 걸어간다. 아직 본격적인 도립공원도 아니건만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도로변에 가로수로 심어둔 은행나무와 단풍나무는 제각각 노랗고 빨갛게 익어 누가 더 선명한지 경쟁을 벌이고 있다.
문경새재 도립공원 입구를 향해 걷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느릿느릿하다. 도시에서처럼 서두르고 싶지 않은 표정이 모두의 얼굴에 가득하다. 다들 은행나무와 단풍나무 사이에서 사진을 한 장 찍고 깔깔 웃고, 도로 아래로 내려와 한 장을 더 찍고 다시 깔깔 웃는다.
도립공원 입구에 미니 자동차 여러 대가 서 있다. 구간별로 나눠 운행하는 친환경전기자동차다. 걷기 싫거나, 너무 많이 걷는 게 불편한 사람들이 이용하라며 운행하는 자동차다. 자동차는 작아서 한 대에 9명 정도만 탈 수 있다. 이용객이 제법 많아 운행을 마치고 돌아온 자동차는 쉴 틈도 없이 다시 도로로 나서야 할 형편이다.
문경새재 도립공원은 경북 문경시 문경읍 상초리 일원에 자리를 잡고 있다. 이곳은 백두대간의 조령산 마루를 넘는 재(고개)다. 조선 태종 때 영남대로가 개척된 덕분에 고갯길이 열렸다. 예로부터 한강과 낙동강유역을 잇는 영남대로에서 가장 높고 험한 고개로 유명하다. ‘새도 넘기 힘든 고개’ 또는 ‘새로 만든 고개’라고 해서 새재라는 이름이 붙었다.
■영남제1관문 단풍터널
미니자동차는 영남제1관문(주흘관) 앞에서 멈춘다. 이곳에서는 모두 내려 걸어가야 한다. 여기서 교귀정까지는 약 2km, 제2관문까지는 3km, 제2관문까지는 6km 정도 거리다. 입구를 기준으로 할 경우 교귀정까지는 왕복 1시간~1시간 30분, 제2관문까지는 2~3시간, 제2관문까지는 4~5시간 정도 걸린다. 고개라고 하지만 경사가 심하지 않아 오르막을 걷는다고 생각조차 못 할 정도다. 천천히 움직인다면 걷는 게 힘들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문경새재에는 조선시대 임진왜란 이후에 조령산성을 쌓았다. 신립 장군이 충주 달천에서 배수진을 쳤다가 패한 게 계기였다. 전쟁에서 혼줄이 나고서야 성을 쌓았으니 이를 두고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라고 해야 할까.
제1관문으로 가는 도로에 영원히 잊지 못할 아름다운 단풍길이 나타난다. 폭 5~6m 도로를 따라 100여m 가량 빨갛거나 노랗게 잘 익은 단풍이 터널을 이루고 있다. 단풍 사이로 조금씩 파란 하늘이 비치기도 한다. 도로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산성 안에 너른 잔디밭이 펼쳐져 있고 왼쪽을 쳐다보면 개울이 흐르고 있다. 단풍 터널 정면으로는 산성 벽이 떡 하니 버티고 있다.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이색적이고 환상적인 풍경에 사람들은 차마 걸음을 옮길 생각을 못 한다. 그 자리에서 단풍을 올려다보며 감탄을 하거나, 뒤늦게 정신을 차린 뒤에는 휴대폰 사진을 찍기에 여념이 없다.
■험한 길 벗어나니 해마저 이우는데
영남제1관문에서 산책을 시작한다. 타임캡슐광장을 지나자 2000년에 조성한 문경새재오픈세트장이 나온다. 이곳에서 영화 ‘킹덤’ ‘왕이 된 남자’ ‘남한산성’과 드라마 ‘해를품은달’ ‘태조왕건’ 등 많은 작품이 촬영됐다. 세트장을 지나면 본격적인 등산로가 나타난다. 가벼운 평상복으로, 때로는 제대로 갖춘 등산복으로 저마다 옷차림새는 다르지만 밝고 즐거운 표정은 똑같다.
기름을 짜는 도구인 ‘기름틀’을 닮았다고 해서 ‘지름틀바우’라는 이름이 붙은 희한한 모양의 바위가 산책객을 가장 먼저 반긴다. 풍화작용으로 곳곳이 떨어져나가는 바람에 묘한 형태를 이루게 됐다. 달리 보면 뱀이 머리를 길게 내밀고 주변을 살피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작은 연못이 나타난다. 형태를 보건대 자연적으로 생긴 연못은 아니고 최근에 인공적으로 만든 모양이다. 물이 얼마나 맑고 깨끗한지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조령산에서 흘러 내려오는 산물이 청정수라는 사실을 일러주는 증거다. 연못 한가운데에는 올해 가을에 떨어진 낙엽이 가라앉았고, 그 주변에는 굵은 모래가 쌓였다.
고려, 조선 시대에 각 지역에 출장을 갔다 서울로 돌아가는 관리에게 숙식을 제공하던 시설인 원터가 나타난다. 이곳을 지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눈을 황홀하게 만드는 단풍길이 나타난다. 단풍이 얼마나 발갛게 잘 익었는지 온 세상이 온통 빨간 핏빛으로 물든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다. 흙길을 걷는 등산객의 몸과 얼굴조차 단풍에 젖어 빨갛게 변한 것처럼 눈이 착각할 지경이다.
단풍길에 취해 천천히 걷고 있자니 마당바위라는 안내판이 나온다. 문경새재는 험한 산길이어서 과거에는 도적이 많이 설쳤다. 일부 도적은 길이가 5m에 이르는 마당바위 뒤에 숨어 있다가 사람이 나타나면 달려 나가 물건을 빼앗았다. 마당바위 인근에는 주막이 보인다. 새재를 넘던 선비, 상인 등이 하룻밤 쉬면서 밥도 먹고 술도 마시던 곳이다. 물론 현재 시설은 최근에 새로 지은 것이다. 율곡 이이가 지은 시 ‘숙조령’이 바위에 새겨져 있다.
‘험한 길 벗어나니 해마저 이우는데/ 산자락 주점은 길조차 가물가물/ 산새는 바람 피해 숲으로 찾아들고/ 아이는 눈 밟으며 나무 지고 돌아가네.’
조선시대에 관리들이 업무 인수인계를 하던 교귀정은 주막 바로 근처에 자리를 잡았다. 교귀정 근처에서 시원하게 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인근에 ‘용추약수’라는 안내판이 붙어 있다. 조령산성을 지키던 군사나 새재를 오가던 나그네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바위를 깎아 만든 샘이다. 샘 인근에는 작은 폭포가 흐르고 있다. 지금은 비가 많이 오지 않아 수량이 적은 편이지만 여름이나 비가 많이 온 뒤에는 제법 볼 만한 풍경을 만들 것처럼 보인다.
자동차로 돌아가기에 앞서 교귀정 앞의 벤치에 앉아 용추약수를 바라보며 잠시 다리를 쉰다. 걸어올 때는 몰랐던 싸늘한 늦가을 바람이 온몸을 훑고 지나간다. 인근 단풍나무의 이파리도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린다. 나뭇가지 하나를 살며시 잡아당겨 본다. 어찌 이렇게 단아하게 잘도 익었을까. 어디 한쪽은 잘 익고 다른 쪽은 덜 익은 게 없이 골고루 물이 잘 들었다. 우리의 삶도 단풍처럼 어디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편평하게 익을 수 있을까.
2022-11-0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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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과 헤어지기 전에, 은행나무 아래서 추억 만들기
가을이 점점 짧아진다. ‘이러다 곧 겨울 날씨가 되겠지’ 싶은 생각에 가을날 하루하루가 소중하다. 2022년의 가을을 떠올릴 추억으로 ‘노란 은행나무’를 택했다. 가지마다 가득 노란 잎 달린 풍경도 좋고, 낙엽 비로 흩날리는 것, 노란 은행잎 카펫을 밟는 것도 좋다. 은행나무의 가을 선물을 받으러 경남의 곳곳을 달렸다.
■곽재우 의병장 생가 앞에 고고히 선 은행나무
은행나무가 일상에서 보기 어려운 나무는 아니다. 공기를 정화하는 효과가 크고 병해충에 강해 도심 가로수로 많이 심기 때문이다. 해마다 가을이면 은행 열매의 악취 문제로 뉴스에 자주 등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악취의 고통을 잊게 할 만큼 노란 은행잎이 주는 가을 정취는 깊다.
은행나무를 찾아 달려간 곳은 경남 의령군 유곡면 세간리. 나무 한 그루 보러 길을 나설 만한가 싶었지만, 경남 창원시 의창구 대산면의 ‘우영우 팽나무’에서 느꼈듯이 한 그루의 나무가 거대한 산의 기세를 뿜기도 한다. 산들이 여름 볕 아래 초록 옷을 입고 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젠 울긋불긋 가을 옷을 차려입었다. 가을 추억을 쌓으러 가는 길에 이미 가을 낭만에 빠졌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의령 세간리 은행나무’는 곽재우 의병장의 생가 앞에 고고히 서 있다. 나무의 우람한 덩치는 멀리서부터 눈길을 끈다. ‘우와’ 하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도심의 가로수와 비교할 바가 아니다. 주변 공원에 자라는 키 작은 은행나무는 이미 샛노랗게 가을을 태우고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지만, 600살 은행나무는 아래를 내려다보며 천천히 익어가고 있었다. 2m 정도의 높이에서 줄기가 사방으로 갈라져 있는 나무는 웅장함 그 자체. 나무 높이 21m, 가슴 높이 줄기 둘레 10.3m, 뿌리목 줄기 둘레 11.1m. 이 은행나무를 설명하는 수치에서 크기와 세월이 느껴진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만큼 나무를 둘러싸고 넓게 울타리가 쳐져 있다. 나무를 바라보며 천천히 한 바퀴 걸었다. 보는 방향에 따라 나무 모양이 달라 보인다. 나무 뒤 담장 너머로 보이는 기와집은 2005년에 복원한 곽재우 의병장의 생가이다. 곽재우 장군은 1552년 8월 28일 이곳 세간마을의 외가에서 태어났다. 재산이 ‘수만금에 달했다’고 할 만큼 넉넉한 집안이었다고 한다. 조선 중기의 전형적인 사대부 가옥 형태로 사랑채, 안채, 대곳간, 소곳간, 대문간채, 중문간채, 별당 등 7개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사랑채에서는 커다란 은행나무가 눈에 꽉 차게 들어온다.
세간마을 어귀에는 ‘현고수(懸鼓樹)’라 불리는 느티나무도 있다. 이 느티나무도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고 수령 600년으로 추정된다. 1592년 임진왜란 때 당시 41세 선비였던 곽재우가 이 느티나무에 큰 북을 매달아 놓고 치면서 전국 최초로 의병을 모아 훈련했다고 전한다.
생가 옆은 ‘곽재우장군 문화공원’로 꾸며졌다. 백마를 타고 홍의를 입은 곽재우 장군의 동상이 늠름하다. 널따란 잔디광장에 직접 올라타 볼 수 있는 모형 말이 있다. 말에 올라앉으면 곽재우 장군 뒤를 따르는 병사가 된 듯하다. 공원 안에는 산책로, 연못 전망대, 정자 쉼터, 그네 등 걷고 쉴 수 있는 곳이 많다. 아이들이 뛰어놀기에도 좋다. 가을 낭만과 의병 정신을 함께 만날 수 있는 곳이다.
■가을 인생사진 명소로 이름난 은행나무길
“지금 그 자리에 그대로 잠깐만.” “사진 찍으니까 너무 예쁘게 나온다.” “여기가 SNS에서 봤던 포토존인가 봐.” 평일인데도 작은 시골 마을의 도로가 북적거렸다. 손을 꼭 붙잡고 걷는 연인, 조용히 대화를 나누며 나란히 걷는 중년 부부, 팔짱 끼고 미소 짓는 모녀, 커다란 카메라를 들고 앵글 잡는 사진가, 함박웃음 가득 지으며 뛰어다니는 아이들까지.
‘노란 은행잎 잔뜩 달린 나무 아래 노란 은행잎 카펫 밟고 지나는 모습’은 가을 은행나무 하면 떠오르는 장면이다. 상상하는 그 모습 그대로 펼쳐진 곳이 바로 이곳 경남 거창군 거창읍 학리의 의동마을 은행나무길이다. 평소에는 관광객이 찾을 일 없는 조용한 시골 마을이지만 은행나무가 황금 옷을 입는 계절이면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2011년 제1회 거창관광전국사진공모전 때 이곳에서 찍은 사진이 소개되면서 전국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최근 ‘#가을핫플’ ‘#인생사진’ ‘#단풍맛집’ 등의 태그를 달고 SNS에서 유명한 단풍 여행지가 됐다. 사진작가들의 가을 출사지와 웨딩사진 촬영 장소로도 인기를 끌고 있다.
아월천을 가로지르는 의동교를 건너면 곧장 황금빛 은행나무길이 시작된다. 100m 남짓한 짧은 길이다. 인도가 아닌 차도이지만 지나다니는 차량은 많지 않다. 잎을 풍성하게 달고 있는 은행나무들이 도로 양쪽으로 팔 벌리고 서서 황금빛 터널을 이루고 있다. 높고 파란 하늘 아래 노란 은행잎이 강렬한 대비를 이룬다.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풍경이 달라지니 걸음이 느려지고 셔터를 누르는 손은 바빠진다. 나무 아래 놓인 벤치, 무심히 세워진 자전거, 하얀 비닐하우스, 낡은 창고까지 가을 추억의 한 장면이다.
의동마을 한 곳만 보고 거창까지 달려가기엔 아쉬울 수 있다. 은행나무의 매력에 더 빠지고 싶다면 차로 30여 분 거리의 ‘함양 운곡리 은행나무’를 함께 둘러봐도 좋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이 나무는 서하면 은행마을이 생길 때 심은 나무로 전해지며, 수령은 약 1000년으로 추정한다. 높이 34m, 나무 둘레 8.5m다. 이 나무 앞을 지나면서 예를 갖추지 않으면 그 집안과 마을에 재앙이 찾아든다는 전설이 있다. 일제강점기 때 마을에서 이 나무를 베려다가 마을에 잇단 재앙이 들어 제사를 지내고 난 뒤 평화를 찾았다는 이야기도 전해 내려온다.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이 마을이 배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이 나무가 돛대 역할을 해 마을을 지켜준다고 한다. 은행나무 앞쪽으로 흐르는 은행천을 따라 ‘은행나무 마실길’이라 이름 붙은 산책로가 있다. 지난달 27일 이곳을 찾았을 땐, 마실길의 작은 은행나무들은 샛노란 옷을 입었지만 천년 은행나무는 이제 막 노란 물이 들기 시작한 모습이었다. 지금쯤이면 황금빛 위용을 떨치고 있을 것이다.
가을 색을 눈에 실컷 품고 돌아서면서 예쁜 은행잎 하나 소중히 주웠다. 올가을 펼친 책의 책갈피에 ‘2022년 가을’을 꽂아둘 참이다. 옛 추억을 소환하는 데엔 ‘아날로그 감성’이 적절할 테니.
▷여행 팁: 내비게이션에 ‘의령 세간리 은행나무’를 목적지로 하고 가면 좁은 마을 안길로 안내해 당황할 수 있다. 마을 입구에서 ‘곽재우 의병장 생가’ 안내판을 따라 가면 잘 닦인 길로 주차장에 닿을 수 있다. 세간리 은행나무는 이번 주말께 절정에 이를 듯하다. 거창 의동마을 은행나무길 근처에 공식적인 주차장은 없다. 주변 도로 갓길에 주차해야 한다. 이번 주말엔 노란 카펫이 더 깔릴 것이다. ‘함양 운곡리 은행나무’ 마실길을 걷고 싶다면 진입로 쪽 공터에 주차하면 된다. 은행나무 인근에도 작은 주차장 두 곳이 있다.
2022-11-0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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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 쓰는 빈, 안 쓰는 부다페스트
오스트리아 빈에서는 식당, 카페 등 실내는 물론 지하철, 트램, 버스 등을 탈 때 마스크를 써야 한다. 강제적인 조치는 아니지만 대부분 사람은 밀폐 공간에 들어가면 자연스럽게 마스크를 착용한다. 반면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는 아무도 마스크를 쓰지 않는다. 오직 오스트리아 등 일부 지역에서 건너온 관광객만 마스크를 사용한다. 오스트리아와 헝가리를 여행할 때 반드시 알아두어야 한다.
오스트리아 빈은 외국 관광객으로 넘쳐나 발 디딜 틈도 없을 정도였다. 반면 헝가리 부다페스트는 여전히 한산했다. 두 도시 모두 곳곳에서 각종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놀라운 사실은 빈과 부다페스트의 중심가인 케른트너 거리와 바치 거리에 넘쳐나던 기념품 가게 상당수가 사라졌다는 점이다. 코로나19 때문에 관광객이 오지 못하자 생존을 위해 내국인을 상대하는 가게로 업종을 변경한 모양이다.
오스트리아와 헝가리에선 지하철역과 기차역의 에스컬레이터를 탈 때 조심해야 한다. 아주 가파른 데다 속도가 정말 빨라 타고 내릴 때 신경을 쓰지 않으면 사고를 당할 우려가 크다.
2022-10-26 [1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