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무장 임경업 빛을 남긴 분들의 어린시절
병서 즐겨 읽으며 전쟁놀이로 날쌘 동작·병법 익혀
임경업은 임진왜란이 일어난지 2년째가 되던 해에 충북 단천에서 태어났읍니다.어릴 때부터 전쟁에 지면 나라를 잃는다는 것을 느끼면서 자라났읍니다.
임경업이 9세되던 때입니다.책을 읽다가「글은 제이름을 쓸줄 알면 충분하다.많은 사람들과 싸울 병법을 익혀야 한다」는 항우의 이야기를 대하고서 그는 무릎을 탁 쳤읍니다.
『그렇지,대장부가 할 일은그 것이야!』
이런 일이 있은 후로 소년은주로 병서를 즐겨 읽었읍니다.
임경업소년은 아이들과 전쟁놀이를 하는게 즐거웠읍니다.
어느날 꼬마들이 나무로 만든 칼과 창을 들고 전쟁놀이를하고 있을 때였읍니다.
『물러서라, 사또님의 행차시다!』
하는 고함소리가 들렸읍니다.
그러나 아이들에게는 그 소리가 귀에 들어오지 않고 놀이에만 열중하고 있었읍니다.
그러자 행차의 맨 앞에서 오던 사령이 아이들 무리에 뛰어들어『사또님 햄차시다.길을비켜라!』며 방망이를 휘둘렀읍니다.
그제서야 아이들은 주춤 한발짝씩 물러섰읍니다.
이 때 한 소년이 앞으로 나서면서
『여기는 싸움터요.그 쪽에서이 곳을 비켜 가시오!』하고말했읍니다.
사령은 어이가 없었읍니다.
나무칼을 손에 쥔 한 소년은길을 막고 떡 버티고 서 있는것이었읍니다.
『이놈,빨리 비켜 서지 못할까!』
사령은 초조한 마음으로 목소리를 높여 꾸짖었읍니다.그러나 꼬마는 눈하나 깜짝하지않고『우리는 비켜설 수가 없소.남의 싸움터를 지나가겠다니 사또님은 병서도 읽지 못했는가요?』하고 되레 큰 소리를 쳤읍니다.
그러자 사또가 이 소리를 듣고『그 녀석,아주 맹랑한 놈이로군』하면서 소년을 불렀읍니다.
『네가 병서를 읽었다구?』
『그래요.병법을 아는 사람이라면 함부로 남의 싸움터를 지나갈 수 없는 법이지요.』
다부지게 생긴 소년의 눈에서는 정기가 가득했읍니다.
『이 아이는 보통녀석이 아닌데』하면서 사또는 마음 속으로크게 감탄했읍니다.
사또의 행차는 방향을 돌려아이들의 싸움터를 비켜서 갔읍니다.
아이들은 이 임경업소년을둘러싸고 환성을 질렀읍니다.
집이 가난하여 임경업은 나이 들면서 동생 임사업과 함께날마다 산에 나무를 하러 갔읍니다.
산에 가는 일은 즐거웠읍니다.나무를 하는 일보다는 형제가 나무를 한짐씩 해 놓고는한바탕 칼싸움을 하며 놀 수가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이 산 저 산을 누비며 서로 쫓고 쫓기는 놀이에 시간가는 줄을 몰랐읍니다.
산에서 단련한 임경업의 그날쌘 동작이나 말을 달리며 활을 쏘는 기술등은 다른 사람은아무도 당해낼 수가 없었읍니다.
그리하여 1618년 24세때 과거시험을 쳐서 무과에 장원급제를 했읍니다.
1624년에 이괄의 난이 일어나자 그는 관군에 참가하여 반란군을 진압시키는데 큰 공을세워 용맹을 떨쳤읍니다.
1636년에는 병자호란이 일어났읍니다.청나라의 10만 대군이 조선을 치려고 압록강에 들이 닥친 것입니다.
임경업장군은 이 소식을 전해 듣고 8백명의 군졸들을 모아 청나라 대군과 맞싸울 준비를 하고 있었읍니다
그러나 인조왕이 항복을 하는 바람에 칼 한 번 써보지 못하고 칼을 칼집에 꽂아야 했지만 분함을 참을수 없었읍니다.
그는 명나라와 힘을 합해서청나라를 쳐부수려고 마음 먹었읍니다.그러나 끝내 뜻을이루지 못하고청나라의 포로가 되었읍니다.그런데다가 김자점의 모함을 받아 도리어 같은 피를 나눈 동족의 손에 무참히 죽임을 당하고 말았읍니다.
그의 나이 쉰 두살 때 였읍니다.
일찌기 조선의 땅덩이가 좁다고 대륙을 향하여 칼을 갈던임경업 장군은 그 큰 뜻을 제대로 펴보지 못하고 말았지만그의 나라를 위한 높은 뜻은우리들 가슴속에 깊이 새겨져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