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C 한국빛낸 스포츠 스타] 배구 강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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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전설`강 스파이크`

지난 82년 인도 뉴델리의 인디라프라스타실내체육관에서 벌어진 제9회 아시안게임 남자배구 한국-네팔전에서 활약하는 강만수 선수(가운데).

"스타플레이어에서 스타감독으로"

"아시아의 최고거포" 강만수 감독(44.현대자동차써비스).국내 실업팀인 현대자동차써비스의 사령탑을 맡고 있는 강감독은 지난 70년대와 80년대초를 풍미했던 한국배구의 큰 별이었다.

12년간의 국가대표 등 화려한 선수생활을 거쳐 지난 94년부터 "현대자동차써비스"라는 호화군단을 이끌고 있는 강감독은 80년대 "돌고개 스파이커"장윤창씨와 90년대 "월드스타"김세진으로 대물림된 한국 배구의 대들보 중의 한명.

현역선수시절 195cm의 큰 키에서 뿜어내는 스파이크가 일품인 강감독은 "아시아의 별"이라는 칭호와 함께 세계적으로도 정상급의 실력을 인정받았다.

경남 하동에서 태어난 강감독이 배구에 입문한 것은 일반 선수들보다 다소 늦은 배구명문 부산 성지공고에 진학하면서부터.어릴 때부터 몸과 손발이 유난히 컸던 강감독은 하동중에 다닐 때까지만 해도 볼을 다루는 정도였으나 성지공고에서 배구선수로 뛰면서부터 천부의 재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고교2년 때 성지공고를 종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으로 이끌어 배구인들의 비상한 관심을 모은 강감독은 이때 벌써 190cm의 장신에서 내리뿜는 캐넌스파이크가 국내 정상급이었다.

72년 뮌헨올림픽을 앞두고는 고교 3년생으로서는 이례적으로 국가대표에 발탁된 후 72년 올림픽과 76년 몬트리올올림픽에 출전했으며 78년 이탈리아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한국남자배구를 4강에 끌어올리는데 견인차 몫을 해 일약 세계적인 스타로 발돋움했다.78년 세계선수권대회 4위는 현재까지 한국남자배구의 국제경기중 최고성적.

80년 8월 아랍에미레이트연방에 스카우트돼 2년간 현지 소속팀을 무패의 기록으로 정상에 올려놓은 뒤 82년 귀국,83년 창단한 현대자동차써비스팀에 입단한 강감독은 이후에도 한동안 현대를 국내실업 무적의 팀으로 이끌었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팀마다 정상에 올려놓은 강감독.

그러나 84년 LA 올림픽 진출 실패와 함께 현역에서 은퇴한 강감독은 곧바로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 대학과 도카이 대학에서 체육학을 전공,지도자로서의 이론수업을 받는 끊임없는 열정을 과시했다.

현대자동차써비스 감독으로도 슈퍼리그 2회우승,전국체전과 실업배구 대제전등에서 여러번 우승의 감격을 맛본 강감독은 한국 배구계의 "살아 있는 전설"이다. 류순식기자 ssry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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