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오로라 공주'로 감독 변신 배우 방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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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되니 못돼졌어요'

"지금부터 제4회 부산국제영화제를 개막합니다." 지적이면서 낭랑한 목소리로 지난 1999년 항도의 영화축제 개막을 알렸던 방은진(40). 한번으로 부족했을까. 2003년까지 5년 내리 개막 무대에 서며 '영화제 단골 사회자'란 별명까지 얻었던 그가 '감독'으로 전업했다. 영화와 연극,TV를 분주히 오가며 대종상 청룡상 춘사영화제 등에서 잇따른 수상으로 연기파 배우의 입지를 굳힌 그는 왜,그리고 무엇때문에 감독이라는 가시밭길에 자청해 들어선 것일까.

데뷔작은 스릴러물 '오로라 공주'. 연쇄살인사건을 다룬 이 작품은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인 외제차 딜러 순정(엄정화)과 그 뒤를 쫓는 독특한 성격의 오형사(문성근) 이야기를 담고 있다.

14일 오후 요즘 주택가격 폭등의 진원지인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한 외제차 전시장을 배경으로 영화를 촬영하고 있는 방 감독을 만나 이런 궁금증을 풀어봤다.

벌겋게 익은 얼굴에 눌려있던 머리를 손으로 흩트리는 그는 기자들 앞에 서는게 어색한 지 "쑥스럽다"는 말로 인사를 대신한다. 그리곤 "배우 때 보다 더 떨린다"며 "배우 때와는 또 다르다"고 말문을 연다.

사실 '방은진이 감독에 데뷔한다'란 소문은 5년 전부터 들렸다.

'오로라공주' 제작을 맡게 된 이스트 필름 명계남 대표가 그에게서 감독 자질을 발견하고 연출을 해보는 게 어떻냐고 제안했고 그도 넙죽 받아들인 것. 때마침 그는 시간을 쪼개 '스크린 연기의 비밀'이란 책도 출간해 내친김에 메가폰을 잡고 싶은 욕망이 작용했을 터다.

그런데 '결심'에서 '실행'까지 무려 5년의 시간이 흘렀다. 당초 그가 시나리오를 쓰며 데뷔를 준비하고 있던 작품은 파격적 멜로 영화 '첼로'. 이렇다할 투자자를 구하지 못하자 계획은 지지부진했다.

이런 와중에 강우석 감독이 "'첼로' 말고 이거 어때?" 하며 그에게 한 편의 시나리오를 건냈다. 그게 바로 '오로라 공주'다.

"인생을 움직이는 에너지 중 큰 축을 이루는 것이 사랑이잖아요. 그 안에 원망과 증오,분노가 들어있는 셈이고요. 원작에는 분노라는 감정이 잘 살아있는 게 마음에 들었어요. 제게 복수니 살인이니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거든요. 결국 분노는 사랑과 비슷한 것이니까요."

메가폰을 잡은 소회를 물어봤다. "'내가 어떻게 카메라 앞에 섰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배우들이 대단하게 느껴져요. 감독이 되어 보니 사람이 좀 못되게 돼 가는 것 같아요. 더 좋은 장면을 더 마음에 들게 찍고 싶은 욕심을 억누르기가 힘들죠."

'질투는 나의 힘' 이후 3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한 중견배우 문성근은 "배우 출신 감독과 작업하니까 무섭다"고 농담을 던진다.

70% 가량 촬영이 진행돼 막바지에 접어들었는데 혹시 후회는? "실은 후회한 적이 딱 한 번 있었어요. 큰 도로 신을 촬영하는데 20시간 넘게 레카차를 타고 돌아다니다 보니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체력이 떨어지더군요. 야식 시간에 20분 정도 차에서 '기절'해 있다가 나와보니 다시 힘이 나더군요."

자리를 떠나기 전 배우에서 감독으로의 변신의 의미를 마지막으로 물었다. "산 너머 산이에요. 한 산이 있어 넘었더니 또 산이 있고,그 산을 넘었더니 다시 산이 계속 이어지고…. 지금은 새로운 산의 정상을 향해 넘어가고 있는 중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의 답이 마치 고승의 선문답처럼 다가온다.

김호일기자 tokm@busa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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