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 곤충채집기] 한여름 밤의 꿈… 예쁜 사슴벌레 한 마리
장수풍뎅이 등 갑충류는 야행성
'벌레 보듯 한다'는 말은 옛말이다. 요즘 아이들은 사슴벌레나 장수풍뎅이를 강아지만큼 귀여워한다. 이들 애완곤충은 아이들이 자연의 신비와 생명의 소중함을 자연스럽게 몸에 익힐 수 있어서 '정서 곤충'으로도 불린다. 3~4년 전부터 아이들을 중심으로 애완곤충 키우기가 인기를 끌면서 애완곤충 전문 숍이 등장하는가 하면 대형 마트에도 전용 코너가 생겨났다.
짝짓기철인 요즘 특히 많이 잡혀
키운 뒤 돌려보내게 해 생명교육
마음만 먹으면 쉽게 구입할 수 있는 곤충이지만 자연에서 손수 채집해 키우면 그 의미와 재미가 특별하다. '탐구생활 세대'들은 새록새록 옛 추억을 끄집어내고, 아이들은 자연을 그대로 집으로 들여오는 재미가 쏠쏠하다.
지난 주말 저녁 부산 남구 대연동의 애완 곤충전문숍 '신기한 곤충나라'에 아이들이 몰려왔다. '곤충 선생님'인 박근배(41)씨를 따라 야간 곤충 채집을 떠나기 위해 모여든 '곤충 원정대'다. 이들 일행이 찾아간 곳은 부산 서구 서대신동의 대신공원.
"그런데 왜 이렇게 깜깜한 밤에 곤충 잡으러 왔어요? 자는 놈들 몰래 데려가려고 그런 거예요?"
'야간 작전'에 의문을 품은 대원들을 대표해 초등학교 2학년인 종원(8)이가 대뜸 물었다.
"사슴벌레나 장수풍뎅이 같은 갑충류는 낮에는 나무 안에서 자고 밤에 활동하는 야행성 곤충이란다. 초여름부터 이달 중순까지가 곤충들이 결혼하는 짝짓기 철이라서 제일 많이 잡히지."
박씨의 설명에 아이들은 끄덕끄덕. 다음은 공략 포인트에 대한 브리핑이 이어졌다. "곤충들도 활동하려면 물과 먹이를 먹어야 겠지? 그러니까 물이 있는 계곡이나 개울 주위나 곤충들이 좋아하는 수액이 흐르는 나무를 차근차근 살펴보자."
대장님의 작전 지시에 따라 손전등을 손에 든 아이들이 산책로 한편으로 난 배수로 바닥을 이 잡듯이 훑기 시작했다.
"앗, 저기 있다." 작전 개시 5분 만에 창환(8)이가 촉촉이 젖은 낙엽 더미 사이로 기어가는 곤충 한 마리를 포착했다. 3㎝쯤 될까. 머리, 가슴, 배가 확연히 구분되는 황금비의 조각 몸매에 잘 닦은 청동처럼 푸르스름한 금속성 광택이 난다.
"멋쟁이딱정벌레구나." "와, 내가 잡아볼래요."
박씨가 말릴 틈도 없이 창환이가 딱정벌레를 덥석 집어 들었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같은 기습공격에 당한 딱정벌레가 창환이의 장갑에 끈적한 액체를 쏟아냈다. "냄새를 한번 맡아보겠니" "윽, 구린 냄새. 멋쟁이가 아니라 방구쟁이네요."
"딱정벌레는 놀라면 분비물을 쏟아내기 때문에 살그머니 잡아야 한단다."
홍단딱정벌레, 등노랑풍뎅이, 고려딱정벌레까지 '배수로 습격작전' 20분 만에 딱정벌레 종류로 채집통 하나가 가득 찼다.
"딱정벌레는 많이 잡았으니까 이젠 사슴벌레 잡으러 가자."
사슴벌레를 잡으려면 참나무를 찾는 게 가장 빠르다. 사슴벌레류는 상처 난 껍질을 통해 흐르는 참나무 수액을 먹고 살기 때문이다.
"와, 애사슴벌레다." 참나무를 뒤지던 아이들이 끈적끈적한 수액 주위에 모여 부지런히 식사 중인 애사슴벌레 한 쌍을 발견했다. 조심스럽게 배 밑을 잡자 파르르 손끝을 타고 흐르는 사슴벌레의 떨림에 아이들은 짜릿한 전율을 느낀다.
참나무 대여섯 군데를 꼼꼼히 살펴서 '사슴벌레계의 점프 선수' 넓적사슴벌레도 몇 마리 채집통에 넣었다. 1시간 만에 가득한 채집통을 보며 아이들은 마냥 흐뭇한 표정.
작은 인기척에도 민감하게 반응해 달아나버리는 메뚜기나 잠자리와 달리 빛을 향해 몰려드는 습성을 가진 사슴벌레나 장수풍뎅이 등은 불빛만 비춰주면 쉽게 잡을 수 있다. 모기에 물리거나 가시에 찔릴 염려가 있으니 긴 소매 차림에 장갑을 끼고 손전등과 핀셋에 곤충을 보관할 플라스틱 채집통 등만 준비하면 된다. 공기가 통하도록 작은 구멍을 뚫은 비닐 지퍼백도 괜찮다.
'밤마실' 삼아 아이들과 나서기엔 대신공원이 좋지만 마니아들 사이에는 양산의 배내골이 채집 명소로 꼽힌다. 청소년수련관 인근의 계곡이 포인트. 톱사슴벌레나 다우리아사슴벌레, 홍다리사슴벌레 등 다양한 사슴벌레류를 볼 수 있다. 정관 신도시 해운대CC 골프장 가는 길에 있는 저수지 주변에서는 장수풍뎅이와 알락하늘소가 많이 산다. 성지곡수원지나 황령산, 백양산 등에서도 사슴벌레나 딱정벌레류가 종종 잡힌다. 하지만 '사슴벌레계의 귀족' 왕사슴벌레는 부산 인근에서 발견하기 어렵다.
박씨는 "곤충 채집에 나서기 전 미리 도감을 통해 충분한 사전 지식을 쌓아 곤충들의 습성을 이해해야 하고, 특히 반딧불이 같은 보호종을 잡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며 "채집해 온 곤충은 집에서 키운 뒤 다시 자연으로 돌려보내도록 함으로써 아이들이 곤충의 생태를 배우고 자연과 생명의 소중함을 익힐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글=박태우 기자 wideneye@ busan.com
사진=문진우 프리랜서 moon-05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