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동백꽃 화사한 이날을 기다렸다
부산, 그리고 봄
붉게 핀 동백섬 동백꽃이 에메랄드 빛 해운대 바다와 명징한 대비를 보이고 있다. 붉은 동백꽃이 '툭~' 하고 떨어지면 바야흐로 봄인 것이다. 정종회 기자 jjh@몇 날 며칠을 고민하다 봄을 찍으러 나간 사진기자는 결국 동백을 찍어서 돌아왔다. 그저 붉다고 해야 하나, 새빨갛다고 해야 하나, 홀로 피어서 더 아름다운 꽃 동백을. 흔히, 동백이 져야 봄은 절정에 이른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봄을 마중하는 꽃으로 매화를, 겨울을 배웅하는 꽃으로 동백을 많이 꼽는다. 하지만 부산 사람들은 봄의 전령사로, 겨울 추위를 뚫고 피어난 꽃 동백을 우선 떠올렸다.
지난달 22~24일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부산 그리고 봄, 하면 떠오르는 그 무엇'을 추천해 달라는 내용의 짧은 글을 올렸다. 250여 건의 답변이 들어왔다.
'부산의 봄' 하면 떠오르는 건
프로야구·옷차림·멸치회…
그중 '동백·동백섬' 최다 답변
추웠던 만큼 기대도 간절
그 중에서도 '동백과 동백섬'이라고 답한 이들이 20여 건으로 가장 많았다. 심지어 "꽃피는 동백섬에 봄이 왔건만~"을 구성지게 노래한 가수 '조용필'과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떠올린 이도 있었다. 응답자 대부분은 부산 사람이었지만 일부 외지인도 포함됐다.
부산 바다와 산, 봄꽃은 예상대로 대세를 이루었다. △해운대·달맞이언덕·청사포 △광안리·남천동 벚꽃길 △황령산 벚꽃 △온천천 벚꽃 △금정산·범어사·산성마을 △낙동강하구둑·을숙도·삼락공원…. 소설가 함정임이 어느 글에서 지적했던 '부산의 봄은 동쪽에서 와서 서쪽으로 흘러간다'는 표현이 절묘하게 생각났다.
또 '야구 도시 부산' 아니랄까 봐 '프로야구 개막 혹은 야구시즌, 사직야구장, (야구선수)이대호'라고 답변한 이들도 꽤 되었다. 다만, 페이스북보다는 상대적으로 젊은 성향의 트위터 사용자 답변에서 야구라고 댓글을 남긴 이들이 많아 눈길을 끌었다.
봄과 청춘도 떼려야 뗄 수 없는 조합이었다. 거기다 패션까지 보태져 대학가 젊은이들의 봄 패션, 여성들의 화사한 옷차림이 동시에 언급됐다. 싱싱한 횟감과 함께 부산의 먹을거리도 군침을 돌게 했다. △봄 도다리와 쑥국 △멸치회 △산성막걸리와 염소불고기는 물론 △시원소주에 곰장어라고 답한 이도 나왔다.
응답자 중 제일 압권은 '원추리'(페이스북)·'@nowwith'(트위터)라는 아이디를 동시에 쓰는 원성만 씨. 200자 원고지로 6매가 넘는, 무려 스무 가지 넘는 의견을 올려주었다. 그것도 모자라 원고를 1차로 마감한 뒤인 4일에도 "진짜 봄이 왔다는 걸 느낀 시추에이션이 어젯밤에 있었습니다. 오후 9시 8분 노포행 지하철 안. 야자 마치고 쏟아져 들어오는 여고생들의 풋풋한 모습과 정신없게 만드는 조잘 재잘 수다 소리. 봄내음이 물씬^^"이라고 보내와 부랴부랴 추가했다.
원 씨가 찾아낸 부산의 봄 풍경 일부를 옮겨본다. "…철마 들녘 물이 찰랑찰랑한 미나리꽝에서 파랗게 물이 오른 봄 미나리를 수확하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봄을 읽을 수 있을까요? 당리동 노인정 앞마당에 있는 당제 지내는 돌탑에 이끼가 파랗게 물이 오르고, 여기저기 삼삼오오 장기랑 바둑을 두시는 어르신들의 옷이 조금 화사해졌다면 봄일까요? 괴정 본동 골목길 빨래터에 빨래하는 여인네들 발길이 잦으면 봄일 겁니다.…산동네 옥상 빨랫줄에 겨우내 덮었던 이불빨래가 걸리면, 봄 맞지예?…새내기 모셔가려는 동아리 홍보 현수막이 캠퍼스를 수놓으면 딱, 봄입니다…공무원들은 산불 비상근무가 잦아지면 봄ㅠㅠ…그러나, 2011년 부산은 한진중공업에 용접 불꽃들이 다시 튀어오를 때 진정한 봄이 올 것임. 그러지 않으면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여느 해보다 추웠던 겨울이었다. 100년 만의 한파와 폭설도 모자라 구제역, AI, 고유가, 고물가, 전세난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지난 겨울이 얼마나 추웠는지 잘 아는 우리로선 다가오는 봄이 얼마나 따뜻할지 기대하는 마음도 간절하다. 오늘 페이스북으로 지인이 쪽지를 보내왔다. "여전히 춥지만 봄이 온다는 걸 예감하는 추위라 참 좋습니다"라고. 그 쪽지의 기원처럼 하루 빨리 찬란한 부산의 봄을 만나고 싶다.
김은영 기자 key66@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