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30년, 롯데 30년 부산의 거인, 그들을 만난다] <13> 선수 출신 첫 감독 김용희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82·84년 올스타전 MVP 등극 '생애 최고 시절'

롯데 자이언츠 4번타자 김용희(오른쪽)가 홈런을 친 뒤 홈에서 동료 박용성의 환영을 받고 있다. 작은 사진은 야구해설위원으로 일하는 현재 모습. 김진성 기자·부산일보 DB

프로야구에서 '미스터 올스타'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바로 SBS ESPN의 김용희(56) 야구해설위원이다. 지난 12일 부산에서 그를 만났다. 선수 시절에 비해 체중은 빠져 있었지만 190㎝의 장신에서 풍기는 '거포' 이미지는 그대로였다. 미스터 올스타란 말을 먼저 꺼냈더니 그는 "난 그렇게 대단한 선수가 아니었다"고 손사래를 쳤다. 팬들이 자신을 높게 평가해 줘서 그렇지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겸손해했다.

부산 태생인 김 위원은 경남고-고려대를 거쳐 지난 1982년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한 프로야구 원년 멤버다. 1990년 롯데에서 은퇴할 때까지 8년 동안 534경기에 출전해 타율 0.270, 홈런 61개, 260타점을 기록했다.


동료 김용철과 홈런 경쟁 짜릿
고질적 허리통증 때문 고생
95년 KS 준우승 이끌어 보람


기록면에서 본다면 그의 말처럼 대단한 선수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부산 갈매기팬들의 뇌리에 분명히 각인돼 있다. 미스터 올스타, 롯데의 '원조 거포', 그리고 롯데 선수 출신 첫 감독으로.

김 위원은 지금도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 7월에 열린 올스타전을 잊지 못한다. 프로야구 출범 이후 처음 열린 올스타전이었다. 당시 6개 팀을 동군(롯데, 삼성, OB)과 서군(삼미, MBC, 해태)으로 나눠 부산(7월 1일), 광주(3일), 서울(4일)에서 경기를 치렀다. 팬 인기 투표로 20명을 뽑은 뒤 감독 추천까지 더해 팀마다 30명을 선발했다. 요즘 선발방식과 비슷하다.

첫해 올스타전 최우수선수상(MVP)을 두고 롯데의 집안싸움이 벌어졌다. 김 위원과 김용철(현 호서대 강사)이 홈런 경쟁을 펼친 것. 3일 광주에서 열린 2차전에서 김 위원이 1회 2점홈런을 치자 김용철은 3회 솔로포와 5회 2점포로 맞받아쳤다. 김 위원이 8회 솔로포로 다시 균형을 맞추자 바로 뒤에 나선 김용철은 기다렸다는 듯 연속타자 홈런으로 응수했다. 김 위원은 "그때만 해도 다들 MVP는 김용철이 탈 줄 알았지. 나도 마찬가지였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반전이 있었다. 서울 동대문야구장에서 열린 3차전에서 김용철은 더 이상 홈런을 터뜨리지 못했다. 반면 김 위원은 7회 무사 만루에서 MBC 유종겸 투수를 상대로 만루포를 날려버렸다. 이 홈런 한 방은 그를 초대 미스터 올스타로 만들었다. 김 위원은 "홈런을 치는 순간 정말 짜릿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그와 올스타전 MVP의 인연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2년 뒤인 1984년 6월 그는 올스타전 통산 최다홈런(4개)과 한 경기 최다안타(4개)의 주인공이 되면서 다시 미스터 올스타로 선정됐다. 그는 올스타전과 인연이 깊다. 프로야구 출범 전인 1980년에는 실업야구 올스타전 MVP로도 뽑힌 적이 있으니 말이다.

그의 프로생활은 순탄하지 않았다. 미스터 올스타라는 화려함 속에 늘 고통이 뒤따랐다. 고질적인 허리 통증 때문이었다. 프로 데뷔 1년 전인 1981년 실업팀에서 경기를 하다 심각한 허리부상을 당했다. 병원에서는 '운동을 그만 포기하라'는 사형선고 같은 진단을 내렸다.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수술 대신 재활에 매달렸다. 3개월간 피나는 재활 끝에 겨우 몸을 추스를 수 있었다.

롯데에 입단한 이후에도 늘 소염진통제를 달고 살았다. 이를 악물고 경기에 나섰다. 자신 때문에 경기에 지는 것이 용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프로선수의 가치는 경기장에 나설 때 있습니다. 타율이 1할도 되지 않는 부진한 선수라도 벤치에 앉아있는 선수보다 훨씬 가치가 있습니다." 이 때문일까. 김 위원은 "수비는 안 해도 좋으니 3루수로 서 있기만 하라"는 코칭스태프의 말을 듣고 허리통증에도 불구하고 경기에 나선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1994년 그는 야구 인생에 있어 또 한 번 전환기를 맞는다. 바로 롯데 감독으로 선임된 것. 당시 그의 나이는 38세. 롯데 출신 선수로서 첫 프로야구 감독이자 프로야구 사상 최연소 감독이었다.

이후 4년 6개월 동안 감독생활을 하면서 그는 공격적인 야구, 생각하는 야구, 창의성 있는 야구를 강조했다. 당시 전준호, 공필성, 박정태, 김응국, 김민호 선수 등을 이끌고 1995년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차지하는 업적을 이뤘다. 그는 "긍정의 힘을 믿었고, 선수들이 하나가 돼 정말 잘 따라줬다"고 말했다.

2008년부터 시작한 프로야구 해설에서도 그의 철학은 드러난다.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선수들을 탓하지 않고, 팬들을 위해 더 분발하기를 주문한다. "정말 짚어줘야 할 부분이 아니면 대체로 선수들을 탓하지 않습니다. 방송을 통해 선수들을 탓하게 되면 자칫 마음이 여린 선수들은 슬럼프에 빠질 우려도 있기 때문입니다." 

김 위원은 한국야구의 밝은 미래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한국야구가 미국과 일본 등 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비약적인 발전을 했습니다. 한 단계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팬들이 야구장을 찾게 하는 행정적 지원과 함께 야구장 건립 등 인프라 확충이 반드시 뒤따라야 합니다."

"기회가 된다면 다시 야구현장에 서고 싶다"고 당당히 밝히는 그의 열정에서 영원한 '미스터 롯데'의 힘이 다시 느껴졌다. 김진성 기자 paperk@busan.com


1994년 프로야구 소사

■ 김용희 롯데 선수 출신 첫 감독 취임 역대 최연소(38세) 감독

■ 롯데, 호주 전지훈련 시대 개막

■ 김인환 롯데 대표이사 취임

■ 2년 연속 400만 관중 돌파

■'빙그레 이글스'가 '한화 이글스'로 변경

■ LG 트윈스, 한국시리즈에서 처음 응원용 막대 풍선 사용


당신을 위한 추천 기사

    스마트폰 영상제

    당신을 위한 PI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