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슈 백년 명가, 숨은 맛을 말한다] <1> 이시무라 만세이도 (石村萬盛堂)
입력 : 2012-09-10 09:33:00 수정 : 2012-09-14 07:05:03
작고 동그란 과자 한 알… 장인 4대의 손길을 품다
'만세이도'의 창업자 이시무라 젠타로 씨는 '학의 알' 과자에 "다른 사람들이 각이 진 과자를 만들면 우리는 둥근 것을 만들어 공생하라"는 기업 이념을 담았다.얼마 전 대형 프랜차이즈에 밀려 오래된 서울의 제과점 하나가 문을 닫아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최근에는 음식점이나 커피집까지 프랜차이즈화 되며 개성은 사라지고 맛이 획일화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대를 이어서 백 년 넘게 이어가는 맛집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일본은 우리와 어떤 점이 달라서 그런 것일까. 요즘 들어 가까운 일본의 규슈를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규슈는 일본에서도 향토요리가 다양하고 맛있기로 유명한 곳이다. 규슈의 오래된 맛집 순례를 통해 이들의 숨은 스토리와 노하우를 들어본다. 이들의 이야기는 규슈 여행 때 지침이 되는 것은 물론 자영업자로서의 자세, 또 부산의 향토 음식을 가꾸어 나가는 방향에 대한 좋은 교훈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에도시대(1603~1867)에 통상수교 거부정책을 펼치던 일본이 유일하게 나가사키에서만 교역을 허용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야 규슈의 음식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정비된 나가사키와 기타큐슈의 고쿠라(小倉)를 연결하는 228㎞의 '나가사키 가도(長崎街道)'는 지금도 일명 '슈가로드(Sugar Road)'라고 불린다.
1905년 개점, '계란소면' '학의 알' 유명
"남과 다른 과자 만들어 공생" 기업 이념
1977년 화이트데이 만들어 유행 선도
신제품 아이스 마시멜로 개발 인기몰이
지방호족이나 외국인은 수도인 에도에 가기 위해 이 길을사용했다. 또 외국에서 수입된 설탕도 이 길을 따라 일본 전국에 운반됐다. 일본에는 없었던 설탕을 이용한 과자를 만드는 방법도 길을 따라 전해졌다. 이에 따라 규슈 지역에서는 나가사키 카스텔라, 사가의 오기(小城) 양갱 같은 일본에서 전국적으로 유명한 과자가 잇따라 생겨났다.
 |
| 1905년부터 100년이 훨씬 넘게 지금의 자리를 지켜오는 후쿠오카의 `만세이도`모습. |
'이시무라 만세이도(石村萬盛堂)'도 이런 분위기 속에서 1905년 12월 25일 지금의 자리인 후쿠오카시 스자키에 문을 열었다. 그 무렵 스자키에는 과자가게가 300개나 있었다. 항구 주변이라 왕래가 잦았고, 일본인 특유의 선물을 주고받는 문화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지금은 만세이도를 제외하고는 그 많던 과자가게를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만세이도의 창업자 이시무라 젠타로 씨는 대대로 후쿠오카에서 목수 일을 해온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몸이 약해 목수 일을 할 수가 없자 과자를 만들어 신에게 바쳐야겠다고 결심한다. 처음에는 고작 5종류의 과자로 가게를 시작했다. 지금도 팔고 있는 노란색 국수처럼 생긴 과자인 '계란소면'이 그때부터 시작한 것이다. 계란소면에는 '남만도래(南蠻渡來)'라는 글자가 쓰여 있다. '남만'은 과거 일본에서 포르투갈과 스페인을 일컫는 말이다.
만세이도에서 파는 과자는 물론이고 가게 안팎에도 '학의 알' 모양 천지이다. 어찌 된 일일까. 후쿠오카의 지형은 하늘에서 보면 학이 날아오르는 모양과 닮았다. 젠타로 씨는 자신들이 만드는 과자를 후쿠오카와 연관 지어 '학의 알'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과자 모양만 학의 알을 본뜬 게 아니라 과자 상자 역시 입체적으로 둥그스름하게 큰 알의 모양을 본떴다. 별다른 기술이 없던 시절, 젠타로 씨는 과자 상자에 둥그스름한 경사를 주기 위해 무릎 위에 종이를 올려놓고 만들었다.
창업자의 이야기는 만세이도의 기업 이념이 되어서 100년 넘게 이어오고 있다. "다른 과자 가게와 경쟁을 하지 말고 대신 공부를 해라. 다른 사람들이 각이 진 과자를 만들면 우리는 둥근 것을 만들어 경쟁하지 말고 공생하라."
 |
| 만세이도 매장에서는 과자를 비롯해 여러 곳에서 학의 알 모습을 볼 수 있다. |
만세이도는 지금 대표인 3대째 젠고(65) 씨를 맞아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된다. 젠고 씨는 가업을 키우기로 하고 1978년 양과자 브랜드인 '봉 상크(Bon Cinq)'를 별도로 만들었다. 봉상크는 프랑스어로 좋다는 뜻의 '봉(Bon)과 자기 이름인 젠고(善五)의 '5(상크)'를 엮어서 만든 조어.
젠고 씨는 초콜릿을 사용한 쇼콜라 보아를 만들고는 결혼식용 과자로 사용해달라고 호텔로 가지고 갔다. 호텔 측에서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과자를 가지고 왔느냐면서 타박을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결혼식 때 사용하는 과자는 전통적으로 좋다고 인정을 받는 홍백색이어야만 했다. 하지만 젊은 세대들의 생각은 달랐다. 요즘 말로 '대박'이었다.
만세이도에도 고민은 있었다. 주로 달걀 노른자를 사용해 과자를 만드는 탓에 남은 흰자위 처리가 늘 문제였다. 말랑말랑한 마시멜로 과자가 일본에 들어오자 만세이도는 흰자위를 활용해 마시멜로를 만들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아직 마시멜로를 잘 몰랐다. 젠고 씨는 어느 날 한 여성지에서 '여자가 남자에게 초콜릿을 선물하는 밸런타인 데이만 있고, 여자가 선물을 받는 날은 없어서 불공평하다'는 글을 읽고는 무릎을 쳤다.
그는 백화점으로 찾아가 남자가 여자에게 받은 초콜릿을 되돌려주는 날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초콜릿은 속에 넣고 겉에는 마시멜로로 싸서 선물로 돌려주자는 것이었다. 날짜를 함께 고민하다 백화점 측은 연중 제일 식품이 안 팔리는 3월로 하자고 해서 3월 14일로 결정하게 되었다. 이때가 1977년, 화이트데이는 처음에는 '마시멜로 데이'로 불렸다. 점차 다른 제과점도 가담해 마시멜로의 하얀 색깔을 따서 '화이트데이(white day)'라 이름이 바뀌게 되었다. 결국 1980년 전국과자공업협동조합이 제1회 기념행사를 열고 대대적인 행사를 해서 오늘날의 화이트데이로 발전했다. 지금도 화이트데이가 가까워지면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SNS에 '만세이도 때문에 괴롭다'는 글이 올라오곤 한단다.
최근 만세이도는 신제품인 아이스 마시멜로를 개발, '슈와리(守破離)'라는 브랜드를 새로 선보였다. 사전에서 찾으니 원래 '슈하리(守破離)'이며, 무도의 기본 가르침이다. 수(守)는 정해진 대로 움직이는 것이고, 파(破)는 응용의 단계, 리(離)는 자유로운 경지를 의미한다.
 |
| 만세이도의 4대째를 이어갈 이시무라 신고 씨가 창업 때부터 내려오는 계란소면을 들어보이고 있다. |
젠고 씨의 아들로 올해부터 영업전략실장을 맡고 있는 신고(31) 씨를 지난달 30일 만세이도에서 만났다. 신고 씨는 미국에서 경제학 공부를 했다. 일본에서 가장 큰 광고회사인 '덴츠'를 거쳐 지난 4월부터 만세이도에서 일하고 있다.
4대째를 이어갈 그의 각오가 궁금했다. "가업을 이어가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창업자 할아버지의 '공생하라, 남들과 경쟁하지 말라'는 말씀을 늘 가슴에 새기고 있다. 우리집이 후쿠오카 사람들에게 마음의 고향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는 한국을 포함해 외국에 진출해 만세이도를 알리고 싶어했다. 그래서 과자 만드는 공부와 함께 한국어 공부도 하고 있었다. 후쿠오카 이와타 백화점에서 만난 슈와리 아이스 마시멜로는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었다. 아이스 마시멜로를 맛보았다. 차가워서 더 달콤한 마시멜로가 금새 입 안에서 녹아 없어졌다.
만세이도에는 40년째 도장만 찍고 있는 직원이 있다. 또 내년에 개통하는 규슈의 초특급 열차에도 비싼 과자류 위주로 들어가기로 확정 되었다. 만세이도, 남들과 생각이 달랐기 때문에 오늘이 있고, 또 내일도 있어 보였다.
일본 후쿠오카=글·사진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취재협조=규슈관광추진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