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산] <422> 상주 청계산~대궐터산
맏아들에게 유폐된, 후백제 견훤의 '한과 꿈' 곳곳에
후삼국통일을 꿈꿨던 견훤의 혼이 서려 있는 청계산은 사위가 첩첩의 산과 험준한 벼랑으로 둘러싸여 있는 천혜의 요새지다. 청계산 정상 조망바위에 서면 만리장성 같은 위용으로 우뚝 솟아 있는 속리산 동릉이 눈에 와 닿는다.
역사에는 비천한 출신이지만 간난신고를 이겨내고 마침내 왕좌에 오른 자수성가형 인물들이 더러 나온다. 명 태조 주원장은 떠돌이 소작농의 막내아들로 태어나 참담한 유년 시절을 보냈고, 임진왜란의 원흉인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미천한 하급무사 집안 출신이었지만 나중에 일본을 통치하는 관백 자리에 올랐다.
우리 역사에서는 대표적으로 후백제를 세운 견훤을 들 수 있다. 진골 집안 출신인 후고구려의 궁예나 막대한 부를 쌓은 호족 출신의 고려 태조 왕건과 달리, 견훤은 농민의 아들로 태어났다. 후백제의 영토 기반이 전주를 중심으로 한 호남지역이어서 호남 출신으로 착각하기 쉽지만, 견훤과 그 아버지 아자개는 상주 가은(지금의 문경시 가은읍) 출신이다.
청계산 정상, 두루뭉술하다고 두루봉
거북바위 등짝 오르면 백두대간 장관
'귀농1번지'로 유명한 화북마을 손짓
투구봉 정수리 파노라마 조망 포인트
견훤산성·견훤사당 세월 무상함 전해
견훤의 삶은 파란만장 그 자체였다. 서남해 지방의 방위에 공을 세워 신라 장군이 된 견훤은 상주에서 군사를 양성하여 신라 진성여왕 6년(892년)에 반기를 들었다. 신라의 여러 성을 침공하다가 무진주(광주)를 점령해 독자적인 기반을 닦은 뒤 효공왕 4년(900년) 완산주(전주)에 도읍을 정하고 후백제를 세웠다. 927년 신라 수도인 금성(경주)을 함락해 천하일통의 꿈에 다가서지만, 결국 932년 왕건의 군사에게 크게 패해 기세가 기울었다. 왕위계승 문제로 맏아들 신검에게 유폐된 견훤은 고려에 투항해 후백제를 멸망시키는데 앞장서지만, 왕건이 아들 신검을 더 우대하는 것을 보고 홧병이 도져 결국 허망하게 숨을 거뒀다. 매년 이맘때가 되면 그의 무덤이 있는 충남 논산에서는 견훤의 넋을 기리는 영산제가 열린다.
이번주 '산&산'은 후삼국을 호령하던 견훤의 기상이 서려 있는 경북 상주의 청계산(淸溪山·874m)을 찾았다. 청계산은 백두대간 형제봉이 남쪽으로 뻗어내려 솟은 산이다. 이는 상주시의 역사서인 상산지(商山誌)에도 소개됐는데, 정작 주민들은 봉우리가 두루뭉술하게 생겼다고 하여 '두루봉'으로 부른다. 견훤이 이 산에 웅거하면서 성을 쌓고 대궐을 지었으며, 기슭에는 견훤의 신위를 모신 견훤사당이 있다.
49번 지방도가 산 허리를 관통하고 있어 아무래도 원점회귀는 어렵다. 구체적인 경로는 다음과 같다. 상주시 화북면 갈령~헬기장~산불감시초소~청계산 정상(두루봉)~755봉~투구봉~산성터~대궐터산~660봉~극락정사~임도 갈림길~계곡~견훤사당~청계장~송내마을 순. 걷는 시간만 4시간, 휴식을 포함하면 6시간쯤 걸린다.
기점은 백두대간 종주코스의 분기점이 되는 고갯마루인 갈령이다. 예로부터 천하의 풍류객이 절승을 찾아 넘나들던 고개다. 갈령 표지석에서 10m쯤 도로를 따라 내려가다 맞은편 화남면 이정표가 세워져 있는 우측 샛길로 등로가 열린다. 이정표상 청계산 방향으로 동쪽 급사면을 치고 오른다. 초반부터 다소 가파른 길이 이어지지만 고운 흙길에 침목이 깔려 있어 크게 무리가 가는 것은 아니다.
15분 뒤 산불감시 카메라가 있는 조그만 공터를 지나면 곧바로 헬기장에 이른다. 길섶으로 바람을 타고 하늘거리는 쑥부쟁이와 구절초가 선선한 가을이 왔음을 온몸으로 알리고 있다. 여름 내내 귀를 먹먹하게 하던 매미 울음소리도 한결 기운이 빠졌다.
20분 뒤 이정표가 있는 670봉에 이르면 주능선에 붙는다. 왼쪽은 조선 세조가 문신들과 시문을 읊었다는 속리산 문장대를 지나 도장산으로 이어지는 동쪽 능선이다. 우측 청계산 방면으로 간다. 충북 보은군의 형제봉에서 시작해 갈령~청계산~작약산으로 이어지는 작약지맥을 타고 간다.
10분 뒤 산불감시 초소에 이르면 하늘이 열리면서 조망이 시원하게 터진다.
큰 바위 몇개를 우회하면 15분 뒤 거북이가 남쪽을 향해 바짝 엎드리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는 거북바위가 있다. 등짝 위에 올라서면 용봉산을 지나 용솟음치는 백두대간의 힘찬 줄기가 펼쳐진다.
올망졸망한 바위를 타 넘으면서 두루봉을 향한다.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거석과 암봉이 솟아오른다. 바위가 많아서 축성에 필요한 재료 조달은 용이했겠다.
두루봉 정상의 암봉은 우회해 올라가는데, 왼쪽으로 돌아 올랐다가 다시 오른쪽으로 돌아 남쪽 능선으로 이어지는 산길로 올라선 뒤 급하게 정상을 향해 치고 오른다. 우회로를 통해 정상 마루금에 올라선 뒤 다시 왼쪽으로 10여m 돌아가면 사방이 트이는 조망바위가 있다. 산세는 아기자기하지만 사위가 첩첩의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정북쪽 산줄기와 산줄기가 어깨를 맞댄 기슭에 화북마을이 둥지를 틀고 있다. 지난 한해 동안만 전국에서 500여 가구가 귀농·귀촌을 해 '귀농1번지'로 이름난 곳이다. 서편으로는 속리산의 톱니같은 암릉이 만리장성을 쌓아놓은 듯 우뚝하다. 북동쪽으로는 희양산과 문경새재가 지나는 주흘산이 한달음이다.
청계산 정상인 두루봉(874m)은 이름 그대로 두루뭉술하다. 고만고만한 봉우리에 작은 표지목만 붙어 있어 산행팀도 무심코 지나쳐버릴 뻔했다.
두루봉에서 남쪽 능선을 따라 내려선다. 왼편으로 깎아지른 직벽 바위를 끼고 내려간다. 암릉 지대를 내려서면 포근한 졸참나무 숲이 시작된다. 25분 뒤 특색 없는 755봉을 지난다. 봉우리는 볼품 없지만 눈앞에 투구를 덮어 쓴 장군의 머리 형상을 한 투구봉(784m)이 웅장하게 막아선다. 시계 방향으로 15분쯤 우회하면 투구봉 뒤쪽으로 등로가 있다. 투구 정수리는 의외로 너른 반석이다. 파노라마 조망이 펼쳐지는 최고의 조망 포인트.
다시 투구봉을 내려서면 능선을 따라 견훤이 쌓았다는 성산산성의 성터 흔적이 드러난다. 성벽 대부분이 무너져내렸지만, 산세와 지형을 따라 험준한 벼랑을 끼고 성을 쌓아올려 천혜의 요새지였음을 실감케한다. 견훤은 두 곳에 성을 쌓았다는데, 이곳보다는 경북 경주시 장암리 북쪽 장바위산 정상부에 있는 견훤산성이 더 유명하다.
성터를 따라가면 잠시 뒤 너른 습지를 만나게 된다. 전쟁 때 식수와 생활용수를 저장했던 못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된다. 어지러운 잡초와 관목만 무성해 세월의 무상함을 전해준다.
석축을 밟고 오르면 삼각점이 있는 대궐터산 정상(748.6m)이다. 삼각점만 덩그러니 있을 뿐 표지석 하나 없이 휑하다. 견훤만큼이나 푸대접받고 있다.
하산은 성터를 따라 극락정사까지 내려온 뒤 주차장을 지나 계곡을 따라 송내마을로 내려선다. 그대로 직진하면 험한 직벽바위와 맞닥뜨리기 때문에 정상 20m 앞 삼거리에서 좌측 샛길로 우회해 내려간다.
묘 2기와 비박굴을 차례로 지나면 40분 뒤 임도와 합류한다. 왼편으로 꺾어 극락정사로 올라간다. 수행정진하기 좋은 고즈넉한 도량이다. 목을 축이고 다시 임도를 따라 내려가면 극락정사 주차장이다. 주차장 끝 10시 방향으로 난 샛길로 들어선다. 100m쯤 내려가면 우측으로 청계산 등산로 표지목이 걸려 있는 첫번째 전봇대에서 우측으로 난 희미한 샛길을 따라 계곡으로 내려선다. 지나치지 않도록 주의.
계곡을 벗어나 전원주택을 지나면 청계마을 진입로에 이른다. 7분쯤 길을 따라 내려가면 견훤을 모신 불천위사당이 있다. 청계정을 지나 송내마을 버스정류장에서 산행을 마친다. 산행 문의: 라이프레저부 051-461-4164. 전준배 산행대장 010-8803-8848.
글·사진=박태우 기자 wideneye@busan.com
그래픽=노인호 기자 nogari@
▲ 상주 청계산~대궐터산 (※ 사진을 클릭하면 더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상주 청계산~대궐터산 (※ 사진을 클릭하면 더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산&산] <422> 상주 청계산~대궐터산 가는길 먹을곳 (1/38)
[산&산] <422> 상주 청계산~대궐터산 산행지도 (1/3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