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호의 음식 이야기] 변비는 있어도 숙변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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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은 대변이 장의 주름진 부분이나 특정장소에 계속 머물러 있는 것'. 시중에 그럴듯하게 유포되는 숙변에 대한 정의다. 한마디로 엉터리다.

인터넷에 '숙변'을 검색해 보라. 별별 희한한 주의주장과 선전이 난무한다.

숙변은 부패 과정에서 독소와 가스를 발생시키고, 이게 몸에 흡수되어 질병을 일으킨단다. 대장이 막혀 오물투성이가 되고, 변비가 되어 장벽에 달라붙고, 음식물을 소화시키지 못하며, 배설돼야 할 나쁜 물질이 혈액으로까지 흡수된다고 주장한다.

쾌변을 하지 못해 가스가 차고, 변이 검거나 가늘고 잔변감이 있으며, 피부가 거칠고 여드름이나 기미가 생기거나, 아랫배가 더부룩하고 자주 변을 못 보는데서 오는 고통….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하는 흔한 증상을 예로 들면서 독소를 제거한다는 뜻으로 '디톡스해야 한다'고 현혹한다. 디톡스는 영어의 해독(detoxication 혹은 detoxify)에서 앞부분만을 딴 엉터리 단어다. 문제는 이런 증상을 경험한 이들이 쉽게 혹해서 검증되지도 않은 기능성 식품에 지갑을 연다는 데 있다.

정상인의 대장에서는 인체에 해로운 물질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부패도 일어나지 않으며, 독가스도 생성되지 않는다. 대장에는 400종류 이상의 미생물이 살고 있지만 건강한 인체에는 유해균이 없다. 만약에 유해균이 생육하면 반드시 자각 증상이 나타나 설사를 하거나 통증을 느끼게끔 되어 있다.

소화기관은 계속 연동운동을 하면서 내용물을 밀어내는 작용을 한다. 게다가 장벽은 매끈해서 구조적으로 대변이 쌓여 숙변이 될 수가 없다. 또 장은 항상 점질성 물질을 생산해 장벽을 보호하고 이물질이 장벽에 붙지 않도록 하는 기능도 있다.

그래서 변비는 있어도 숙변은 없다는 거다. 오늘 똥을 눴는데 며칠 전의 똥이 그대로 장에 남아 있는 턱없는 현상은 발생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먹은 순서대로 똥이 되어 나오게 되어 있다.

숙변을 없앤다고 무리하게 설사제나 관장제를 쓰면 건강을 해치기 십상이다. 다이어트 목적의 억지 장 청소도 마찬가지. 배변을 좋게 하려면 차라리 물을 많이 먹는 게 낫다. 아니면 기름진 음식이나 섬유소가 많은 음식을 먹든가. 이게 검증되지 않은 소위 '디톡스'용 건강식품보다 낫다.

물론 대변이 장에 오래 머물러 좋을 건 없지만 자연히 나오게 돼 있는 것을 무리하게 빼 내는 게 과연 옳은 방법인지 모르겠다. 환자도 아니면서.

부산대 미생물학과 명예교수 leeth@pu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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