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 대한민국을 물들이다] 가을만 되면 火山이 된다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단풍 전선이 다급하게 남하하더니 강원도 평창 오대산의 월정사 전나무 숲길에 색색 단풍을 내렸다. 가을이 하루 다르게 주홍빛 세상으로 익어간다. 김병집 기자 bjk@

'병든 아우야 내년의 단풍 보고 죽어라.' 고은 시인의 시 '내장산' 전문입니다. 짧지만 강렬합니다. 이 문장에 이끌려 몸을 서둡니다. 단풍전선이 다급하게 남하해서지요. 오대산 타더니 이내 치악산에 머뭅니다. 이번 주말엔 지리산에 닿을 겁니다. 봄은 기를 쓰고 올라가고 가을은 이렇게 신속하게 내려온다는 딱 그 짝입니다. 조갈증 겹다 단풍 쫓아 북상을 했습니다.

평창 품은 오대산부터 들렀습니다. 오대산은 불법(佛法)의 땅입니다. 적멸보궁과 천년 고찰 찬란한 무욕의 땅입니다. 그 땅에 불이 붙었습니다. 빨갛고 노란 오색단풍으로 눈이 어지럽습니다. 허허롭게 땅바닥 뒹구는 색색 이파리가 마른 햇살에 바스락거립니다. 골짜기 물도 단풍이 잔뜩 들었습니다. 하늘도 땅도 강도 색 세상으로 혼곤합니다. 일러둘 게 있습니다. 오대산 단풍은 지난주가 한창이었습니다. 그 어여쁘던 것들, 지금은 어찌되었을지.

원주 진산 치악산은 원래 적악산(赤岳山)이었습니다. 빨갛게 물든 가을이 예뻐서지요. 치악산국립공원 입구에서 상원사 아래 절집 구룡사까지 1㎞ 남짓의 금강송 흙길은 한 폭 수채화입니다. 잎잎이 곱고 바람 스쳐 난분분합니다. 흙길에, 계곡 너럭바위에 지천으로 가을이 내렸습니다. 구룡사 옆 구룡소 꽃단풍은 자지러질 겁니다.

단풍, 참 아름다운 사멸이지요. 나무가 월동 위해 이파리를 포기한 대가입니다. 기온 떨어지고 물 부족한 가을엔 이파리가 활동을 멈춥니다. 오로지 줄기에만 양분을 집중해야 하는 탓이지요. 이파리 엽록소는 파괴되고 초록은 빛을 잃습니다. 그 속에 숨었던 여러 색소가 비로소 현란한 색을 드러냅니다. 단풍은 그렇게 완성됩니다. 이런 단풍을 도종환 시인은 절정이라 노래합니다. '버려야 할 것이/무엇인지를 아는 순간부터/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제 사랑의 이유였던 것/제 몸의 전부였던 것/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심하면서/나무는 생의 절정에 산다.'('단풍 드는 날' 중에서)

단풍은 햇살이 사납고 기온차가 클수록 열정적입니다. 치열하게 물들어 더욱 화려하지요. 날씨가 뚝 떨어졌습니다. 물소리도 부쩍 수척해 갑니다. 냉기 어린 바람에 도토리나무 이파리가 하얗게 뒤집혀 흔들립니다. 이러다 단풍도 노을 스러지듯 문득 종적을 감출 겁니다. 바람 건듯 스쳐도 우수수 떨어지는 게 단풍 아닙니까. 그리고 경치게 화려한 단풍 너머로 겨울이 난데없이 저문 강을 건너오고 말 것입니다.

단풍철 맞아 'Week & Joy 플러스 팀'이 단풍놀이를 떠났지요. 샛노랗게 익어 가는 괴산 문광저수지 은행나무 길을 걸었고, 경산 팔공산 단풍도 담았습니다. 꿈처럼 아득하고 아름다운 가을입니다.

임태섭 기자 tslim@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

    당신을 위한 뉴스레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