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울·경 출향기업인 열전] 4. 라미드 그룹 문병욱 회장
목욕탕으로 1조 원대 그룹 일군 부동산 '미다스의 손'
가수 나훈아를 닮았다는 이야기에 너털웃음을 짓는 문병욱 회장. 그는 부산에서 해안 관련 관광레저 분야 사업을 벌일 것을 구상 중이라고 밝혔다. 박희만 기자 phman@가수 나훈아랑 무척이나 닮았다. 다부진 체격에 굵은 얼굴선, 큰 코에 곱슬머리까지…. 체형과 얼굴형은 '영판 나훈아'. 하지만 너털 웃는 모습에선 시골 아저씨같은 순박함이 묻어있다.
지난 15일 서울 삼성동의 라마다서울호텔에서 만난 라미드그룹 문병욱(63) 회장은 나훈아 얘기에 "사실 젊었을때 참 많이 들었는 데, 진짜 닮았나요?"라며 웃었다.
1973년 서울서 목욕업 시작
호텔 4곳·골프장 3곳 거느려
철저한 조사가 투자 성공 비결
노 전 대통령과 부산상고 동문
특혜 루머로 검찰 수사 고초도
최근 부산 위한 사업 구상 돌입
"조만간 큰일 한번 낼 겁니다"
지난 1973년 시작한 목욕탕 사업이 이제는 호텔 4곳과 골프장 3곳 등을 거느린 1조 원 대의 '그룹'이 됐다. 그가 손댄 부동산과 사업체마다 땅값이 오르고 실적이 개선되면서 부동산 업계에선 '미다스의 손'으로 알려져있다. 몇 년 전 재벌닷컴이 발표한 '한국의 400대 갑부'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그가 현재 운영하는 호텔은 서울의 라마다서울호텔과 빅토리아호텔, 인천의 라마다송도호텔, 경기 이천의 미란다호텔이고, 골프장은 경기 양평TPC GC, 남양주CC, 경북 의성에 있는 엠스클럽 의성CC다.
지금이야 '회장님' 소리 듣는 그이지만 성장기는 그야말로 춥고배고픈 시기의 연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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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엠스클럽의 성CC 공사 현황을 점검하는 문병욱 회장. 라미드그룹 제공 |
경남 함안의 깡촌에서 태어나 철도 공무원 아버지 밑에서 6남매의 장남으로 어렵게 자랐다. 부산상고(현 개성고)를 다닐 때는 하숙비가 없어 직접 밥을 해먹어가면서 다녔다. 고교시절 추억이라며 들려준 이야기 한토막.
"그 때는 취직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서 상업 과목을 열심히 공부한 기억이 납니다. 서면에 학교가 있었는데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이 학교 옆 돼지국밥인 줄 알았지요. 당시 축구부와 야구부가 있어서 대신동 운동장에가서 목이 터저라 응원도 많이 했지요."
졸업후 그는 현대그룹에 경리로 취직을 하게됐다. 그때까지만 해도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그렇게 몇년을 다니다가 문득 그는 현금이 오가는 목욕탕에 관심을 갖게 됐다. 회사 그만두고 서울 망우리에 있는 목욕탕을 인수했다.
이처럼 사업가로서의 첫 단추는 당시 자수성가한 이들과는 사뭇 다른 코스다. 당시엔 건설업이나 제조업으로 뛰어들어 성공한 이들이 많았는데 그는 서비스업에 눈을 돌린 것이다.
"회사 다니면서 한 일이 경리인데, 목욕탕은 일상적인 수입으로 경비를 충당할 수 있다고 판단을 하게 됐지요."
그렇게 해서 인수한 목욕탕은 도시확장으로 인해 장사가 잘 됐다. 이후 1987년까지 늘린 목욕탕 수가 5개가 되면서 그는 호텔로 눈을 돌렸다. 그러나 목욕탕과 호텔은 '급'이 달랐다. 땅 사고 건물 올리는데 ,그동안 번 돈으로 충분하지 싶었는데 아니었다. 목욕탕 5개를 다 팔고도 모자라 자금난을 겪었다.
당시 은행에 다니며 사업자문을 해주던 부산상고 동기생인 오도환 현 라마다호텔 앤 리조트 대표는 "문 회장이 손대는 부동산마다 성공했는데 당시가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다. 낮엔 돈 구하러 다니고 밤엔 호텔 공사장에서 자던 모습이 생생하다"고 회상했다.
힘들게 지은 서울 강북의 빅토리아호텔이 '대박'이 났다. 성공신화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로부터 10년 뒤 일생일대의 기회가 찾아왔다. 1997년 터진 IMF다. 당시 호텔 사업으로 해서 모아둔 돈으로 그는 국민주택채권과 회사채를 할인해서 샀다. 그런데 1년만에 투자금이 2배이상으로 모였다. 당시 채권을 사면 다 휴지조각이 된다는 소문이 나돌았지만 그는 충분히 돈이 된다는 판단을 했고 그것이 적중했다. 채권을 다 팔고 곧바로 부동산을 사모으기 시작했다.
"그때 이천 미란다호텔, 양평TPC골프장, 라마다송도호텔을 차례로 인수하게 됐지요. 거의 IMF 이전 시세의 3분의 1 가격에 살 수 있었고, 사업규모를 대폭 확장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시중에서는 노무현 대통령때 무슨 자산을 늘렸다거나 특혜를 받은 걸로 이야기하는데 노무현 씨가 대통령이 되기 전에 이미 사업을 키운 상태였습니다."
그가 부동산 투자를 하면서 큰 실패없이 급성장할 수 있었던 데는 그만의 '철칙'이 있다. 바로 돌다리를 수 십 번 두드리는 꼼꼼함이다. 오도환 대표는 "부동산에서 인수할 목표물을 정하면 문 회장이 직접 10여 차례 가 본다. 그 다음에 해당 분야의 전문가와 비전문가가 다시 수 십 차례 둘러보고 의견을 들은 뒤 투자여부를 결정한다"고 귀띔해주었다.
시련도 없지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과 같은 부산상고 동문이라는 이유로 그는 수 차례 검찰 수사를 받았다. 그런 고초를 겪으면서도 모교에 대한 애정은 더해졌다. 지난 2월까지 2년간 총동창회 회장을 지냈고, 모교에 2억 원의 장학금까지 쾌척했다. 현재 그룹 내에도 고교 동기와 후배들이 5~6명 근무하고 있다. "사업하면서 자금난이나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많은 도움을 준 친구와 선후배들에 대한 의리죠."
문 회장은 사실 대학과 직장생활, 사업을 모두 서울과 수도권에서 하느라 부산이나 고향을 둘러볼 여유가 없었다. 그랬다가 총동창회장을 맡으면서 부산을 다시보게 됐다.
"한마디로 부산에 빠졌죠. 한 번은 비 온 뒤 성지곡에 갔는데 편백나무향이 너무 좋았어요. 부산시내에 그런 길이 있다는 게 놀라워요. 또 그동안 부산을 다니면서 불만이 바닷가로 아파트를 성냥곽처럼 지은 것인데 최근 해안을 다리로 연결하는 공사가 진행 중인 것을 보면서 뿌듯합니다. 앞으로 세계적인 명물이 될 겁니다."
그는 부산을 위해 할 일을 구상중이다. "제가 관광레저업을 하고 있으니까 해안도로 쪽으로 해서 일 한 번 낼 겁니다. 기대해주세요."
배동진 기자 djba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