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기자재 '연쇄 도산' 공포] '40억 어음 휴지 조각 되나' 속이 새카맣게 탄다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27일 법정관리를 신청한 STX해양조선에 이어 성동과 SPP조선의 법정관리 가능성이 커지면서 지역 협력업체들이 연쇄 도산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사진은 STX조선의 진해 조선소 전경. 부산일보DB

STX조선의 법정관리가 현실화되고 성동과 SPP조선의 법정관리 가능성이 커지면서 지역 조선기자재업체들이 납품 대금 대부분을 떼일 처지에 놓였다. 유동성 절벽에 직면한 협력업체들은 정부 차원의 납품대금 지급 보증 등 특단의 지원책을 요구하고 있다.

■빅3보다 중소 조선사 부실 더 타격

STX조선에 선박부품을 공급하는 부산의 한 조선기자재업체 대표 A 씨는 요즘 하루하루 속이 새카맣게 타들어 간다. STX조선으로부터 납품 대금으로 받은 40여억 원짜리 전자어음의 만기가 불과 보름여 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어음을 담보로 시중 은행에서 대출받은 자금은 직원 급여와 2·3차 협력업체 자재 대금과 제작 의뢰비 등으로 모두 소진해버린 상태다. 이런 가운데 STX조선의 법정관리로 채권, 채무 동결 조치가 시작되면 해당 어음은 휴지 조각이 돼 버린다. A 씨 업체가 고스란히 대출 상환 부담을 떠안게 된다. A 씨는 "장기 불황에 STX다롄 부도 여파로 발생한 손실까지 겹치면서 자금 상황은 한계까지 와 있고, 추가 담보를 제공할 여력도 없다"며 "은행이 대출 연장을 안 해주면 꼼짝없이 회사 문을 닫고, 수십 명의 직원도 실업자 신세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STX 이어 성동·SPP조선까지
법정관리 땐 납품업체 '쑥대밭'

"채무 동결·납품처 완전 끊기는
중소 조선소 부실이 더 무서워"

금융권 보신주의로 상황 더 악화
"정부, 납품대금 지급 보증해줘야"

지역 조선기자재업체들은 이른바 조선 빅3의 구조조정보다 중소 조선소 부실 여파를 더 두려워하고 있다. 다운사이징 수준의 빅3보다 중소 조선사의 경우 STX조선처럼 법정 관리 들어가면 채무 동결에 납품처마저 완전히 끊기기 때문에 직격타를 맞는다.

실제, 성동조선 주채권은행인 한국수출입은행은 스트레스 테스트(위기 상황을 가정한 재무건전성 심사) 중간보고 등을 분석한 결과 내년 상반기까지 신규 수주 등이 이뤄지지 않으면 회생이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SPP조선은 매각이 좌절되면서 법정관리 운명을 맞을 가능성이 커졌다. SM(삼라마이더스)그룹이 1천400억 원 규모의 숨겨진 부실을 발견했다며 발을 뺐다.SPP조선이 법정관리에 들어갈 경우 지역 조선기자재업체는 그야말로 쑥대밭이 될 전망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중소기업진흥공단 같은 지원기관들의 운영안정자금도 담보 없으면 어차피 대출 안 되기 때문에 도미노 도산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문제 더 키우는 금융권 보신주의

금융권에 대한 지역 조선기자재 업체들의 불만도 커지고 있다. 자금경색 가능성을 보이는 업체에 대해 경쟁적으로 대출 회수에 나서 상황을 더 악화시키고 있다는 것.

지역 조선 기자재 B 업체 관계자는 "협력업체에 돈을 빌려준 거래 은행들이 자산 압류에 나설 수 있다는 말까지 돌고 있다"며 "STX조선의 법정관리 돌입을 미리 인지한 시중 은행들이 일찌감치 대출 한도를 줄이거나 여신 회수에 나서면서, 묵묵히 조선사와 고통을 분담해온 협력업체들만 고스란히 피해를 떠안게 됐다"고 토로했다.

원청인 중소 조선소들도 금융권의 보신주의 때문에 사정이 더 나빠졌다는 평가다. 자율협약 중이던 SPP조선은 지난해 말 유조선 8척을 수주하고도 채권단 일부에서 환급보증서(RG)의 발급을 거부함에 따라 수주가 취소됐다. 뒤늦게 채권단이 2월 신규 수주 건에 대해 RG를 제공하기로 입장을 바꿨지만 이미 SPP조선은 일감 상당수를 놓친 뒤였다.

업계 관계자는 "정상화를 위해서는 신규 수주가 필수적인데 리스크가 커질 것을 걱정한 일부 은행이 나서지 않았다"며 "금융 당국도 '관치금융'이란 비판을 우려해 개입을 꺼리다 보니 채권은행 간 이견 조율에 나서지 않았다"고 전했다.

성동조선 역시 채권단의 안이함으로 기업 회생 타이밍을 놓친 사례라는 지적이다. 2010년 4월 자율협약을 개시한 이후 총 2조5천억 원의 채권단 자금이 수혈됐지만, 일부 민간은행 등이 "성동조선은 이미 망가진 기업"이라며 채권단에서 빠져나갔다.

부산조선해양기자재공업협동조합 관계자는 "성실하게 납품한 죄밖에 없는 협력업체들이 조선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가장 큰 희생을 겪고 있다"면서 "정부가 협력업체들의 납품대금만큼은 어떻게든 지급 보증해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진국·박태우 기자 gook72@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