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태극기 집회 르포] 광화문광장의 촛불 "역사의 흐름 되돌리면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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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이 주최한 촛불집회가 지난 4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탄핵 심판이 임박한 주말, 광화문 광장은 지난 6개월 간 시민의 힘으로 일궈낸 성취에 대한 은은한 자부심과 지난 1980년 서울의 봄처럼 모든 것이 물거품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 팽팽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그리고 90만 촛불 시민들은 소리 높여 '탄핵 인용'을 외쳤다.

지난 4일 오후 1시, 길게 뻗은 광화문 광장에는 여성·노동자·세월호 유가족·삼성 백혈병 사망 노동자 등 우리 사회 소외된 이들이 부스를 하나씩 마련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자본주의가 누른 목소리, 망각이 지운 목소리가 다시 살아나는 그곳은 광장이었다.

"가을 시작 집회 어느덧 봄
상식이 통하는 나라 돼야"


오후 4시, 오는 8일 여성의 날을 맞아 부산을 비롯한 전국의 페미니스트 단체가 모여 차별금지법 제정과 혐오표현 타파를 외치며 광화문 광장 주변과 청계 광장에서 집회와 행진을 열었다. 이날 함께한 여성 참가자 박란정(39) 씨는 "이번 탄핵 사태를 겪으며 '여성이라서 대통령이 되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들었다"면서 "남자라서 독재를 한 게 아니듯 묵묵히 프로답게 일하고 있는 여성 전체를 모욕하지마라"고 말했다.

이날 오후 7시 30분 집회 측 추산 인원은 90만 명이었다. 고개를 들어 뒤를 보니 아득한 촛불이 알알이 박혀 있었다. 지난 10월 26일 주최 측 추산 3만 명으로 시작한 집회였다. '상식이 통하는 나라'를 만들자며 나온 시민들의 바람은 12월 9일 탄핵 소추라는 역사의 물꼬를 틀고야 말았다. 가을에 시작한 집회는 겨울을 거쳐 어느덧 봄으로 치닫고 있었다. 광장 중앙에는 LED 등으로 만든 '꽃' 글자가 시민들 사이에 우뚝 피어있었다.

직장인 최현선(42·여) 씨는 "여태껏 켜진 촛불처럼 역사의 도도한 흐름이 혹시나 어려움을 겪을까봐 힘을 보태러 나왔다"고 말했다. 울산에서 동네 친구 5명과 승합차를 타고 온 이정구(66) 씨는 "나이든 사람들이 세상을 바꿔보려는 젊은 사람들한테 '종북'이라고 손가락질 하고 하는 걸 보고 어린 친구들에게 힘을 보태주고 싶어 오게됐다"고 말했다.

이날 촛불을 든 시민들은 '탄핵 인용"을 외치며 청와대 방향과 헌법재판소 방향으로 나뉘어 행진했다. 오후 9시께 행진이 해산되자 식당과 카페, 호프집은 발디딜틈없이 붐볐다. 각각의 테이블마다 탄핵 이후 만들어질 세상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한 교사는 '국정 교과서로 고민하지 않을 세상'을 이야기했고, 두 부부는 "육아휴직을 편하게 쓸 수 있는 세상"을 희망했다.

조소희 기자 ss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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