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태극기 집회 르포] 대한문 뒤덮은 태극기 "나라가 위기, 8 대 0 각하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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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탄핵 기각을 요구하는 태극기 집회가 지난 4일 오후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4일 오후 1시 40분, 서울 도시철도 시청역 1번 출구. 계단을 오르던 두 60대 여성은 '민심'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500만 명이 모였다는데 왜 촛불하고 비교를 해? 우리가 언제 광장에 나온 적이 있냐고?" 두 여성은 기자를 보고 "젊은 청년이 태극기 집회에 왔네"라며 씩 웃었다. 기자의 손에 태극기가 쥐어졌다. 누가 붙였는지 기자의 가방에는 '촛불은 인민, 태극기는 국민'이라는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지하철 역에서 올라오자 "500만 애국 시민 여러분"이라는 말이 수차례 반복된다. 탄핵 반대 집회의 시작점인 대한문은 태극기 물결이다. 월드컵 응원에서나 볼법한 태극 머플러, 가방, 우산 등 태극기 일색이다. 무대 위 연사는 촛불 집회에 우리가 뒤지지 않는다는 말을 반복한다. 한 시민은 "카메라에 많이 나올라면 간격을 널직하게 서야됩니다"고 말했다. 촛불 집회 인파를 의식한 참가자들은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우리가 광장 나온 적 있나
애국시민, 촛불과 비교 말라"

오후 2시 15분, 애국가 4절 완창과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이 끝나고 집회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해병대 복장을 한 사람들이 호루라기를 불며 대열을 정리했다. 서울시청 앞에 있던 이영순(77·여) 씨는 "남은 1주일은 박근혜 대통령이 다시 정치를 제대로 할 수 있을지를 결정하는 시기인데, 헌법재판소에서 8대 0으로 탄핵을 각하해야한다"고 말했다.

오후 3시, 중앙무대에서 연사들의 연설이 이어지자 태극기의 열기는 절정에 달했다. 박 대통령 측 변호인단 김평우 변호사가 "탄핵은 무효이고 범죄다"고 주장하자 시민들은 "대단한 연설가"라며 환호로 답했다. 단상에 조원진, 김진태(자유한국당) 등 현역 국회의원들이 마이크를 잡자 일부 시민들은 야유를 보내기도 했다. 대통령 탄핵 소추를 국회에서 막지 못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자기 대장하나 못 지킨걸 자랑하러 왔냐, 뱃지 떼라"고 한 시민이 절규했다. 전광판에는 박 대통령이 손을 들며 활짝 웃는 2013년 2월 취임식 사진이 나오고 있었다.

오후 4시 30분께 집회 참가자들은 을지로입구역 방향으로 출발해 을지로3가역, 충무로역, 명동역 등을 거쳐 다시 대한문으로 돌아왔다. 2시간의 행진과 마무리 집회가 끝난 오후 7시 40분. "최후의 5분이다. 끝까지 싸워라." 탄핵 선고 전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집회를 의식한 듯 군가 '최후의 5분'이 집회 내내 흘러 나왔다. 모두가 태극기를 흔들었다. 촛불을 든 사람들과 조금은 다른 나라 걱정으로 '애국 시민'을 자처한 그들은 태극기를 들고 처음으로 광장에 섰다. 김준용 기자 jundrag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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