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형배 부산가정법원장 "법은 착한 사람들을 위한 도구 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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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사람은 법은 모르고, 법을 아는 사람은 착하지 않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그게 사실이라면, 법을 아는 사람을 착하게 만들거나 착한 사람에게 법을 알게 해야 합니다."

지난 16일 부산일보 10층 대강당. 이날 '법은 착한 사람들의 도구가 될 수 없나?'를 주제로 부일CEO아카데미 강연자로 나선 문형배 부산가정법원장이 흥미로운 화두를 던졌다. 문 법원장은 강연 주제와 관련한 핵심 사례로 '굴착기 사기 판매 사건 판결'을 들었다.

부일CEO아카데미서 강연
통상임금·성년후견 등
CEO 필수 법률지식 소개

"B가 A로부터 굴착기를 1억 원에 샀습니다. 그런데 굴착기는 A가 F라는 굴착기 제조회사로부터 1억 2000만 원에 산 것이었죠. A는 계약금 및 선불금으로 2000만 원 정도 지급하고 잔대금은 36개월 할부로 지급하기로 했습니다. F라는 회사는 할부대금을 확보하기 위해 굴착기에 채권최고액 1억 원의 근저당권을 설정했고 A는 당시 할부금을 2~3회 납부한 실정이었죠."

중기 등록원부를 보지 않아 뒤늦게 근저당권의 존재를 알게 된 B는 고민 끝에 이를 숨기고 중개업자인 C에게 전매를 의뢰했다. C는 근저당권이 설정된 사실을 숨기고 D에게 굴착기를 8000만 원에 처분하는 계약을 성사시킨다. D 역시 중기 등록원부를 보지 않은 상태에서 계약을 체결하고 매매대금을 모두 지급한 다음 굴착기를 넘겨받았다. 그 후 굴착기의 권리관계를 알게 된 D는 B와 C를 사기죄를 고소했다.

"그때 저는 당직 판사로서 영장청구 사건을 담당했는데 고민을 거듭하던 끝에 B와 C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습니다. 무지의 소치로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에 굴착기를 샀고, 자기도 2000만 원 손해를 보고 처분했다는 점에서 B에게 동정이 많이 갔으나, D에 대한 보호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법의 무지는 면책되지 않습니다."

문 법원장은 이후 통상임금, 유언의 방식, 성년후견, 미란다 원칙, 존엄사 사건, 이혼에서 파탄주의와 유책주의 등 판결 사례를 들며 최고경영자(CEO)들이 꼭 알아야 할 법률 지식을 소개했다.

"2011 사법연감에 따르면 한 해 총 접수 사건은 1740만 건이고 이 중 소송 사건은 621만 건입니다. 국민 8명당 1명이 법정 다툼을 하는 셈이죠. 법 없이 산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법을 알면 남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을 수 있어서 법은 착함을 유지하기 위해 쓰는 도구입니다."

문 법원장은 강연 말미에서 법원 신뢰도에 관해 설명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한눈에 보는 정부 2015' 보고서는 한국 사법제도에 대한 국민 신뢰도가 27%(2013년 기준)라고 밝혔습니다. 정부에 대한 국민 신뢰도 34%(2014년)보다도 낮았습니다. 이는 국민의 기대가 그만큼 높아졌다는 뜻으로 법원이 신뢰도 제고를 위해 더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경남 하동 출신인 문 법원장은 서울대 법대를 나와 1986년 제28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1989년 사법연수원 18기를 수료한 문 법원장은 1992년 부산지방법원 판사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창원지법·부산지법·부산고법 부장판사, 부산고법 창원부 부장판사 등을 거쳐 2016년 2월부터 부산가정법원장을 맡고 있다.

김상훈 기자 neato@busan.com

사진=정종회 기자 j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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