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라 '6월 항쟁 30년'] "시위 때마다 부산시민 30만~40만 명 거리 메워"
1987년 6월 부산 국본이 매일 만들어 배포한 투쟁 속보.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제공6월 항쟁 당시 부산에서는 얼마나 많은 시민이 시위에 나섰을까. 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에서 출간한 <6월 민주화 대투쟁>에는 '한 번 시위가 벌어질 때마다 부산 전체에 30만~40만 명의 시민이 거리를 메웠다'고 쓰여 있다.
대학생들 '가톨릭 센터 농성 투쟁'
노동자·택시 기사들도 시위 가세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공장노동자, 택시 기사 등 참여하는 시민의 폭도 컸다. 우선 6월 16일 이날 중구 남포동에선 대학생 연합 시위대가 남포동 주변에서 대치하다 가톨릭 센터에 들어가면서 '가톨릭 센터 농성 투쟁'이 벌어지게 된다. 부산지역 6월항쟁 자료발간위원회에서 나온 항쟁일지에는 6월 16일부터는 부산대, 부산산업대, 한국해양대 학생들이 A조, 동아대·동의대·부산수산대·부산외국어대·시민군이 B조를 이뤄 가톨릭센터 농성투쟁에 들어갔다고 적혀 있다.
6월 18일 오후 6시께는 사상공단 노동자들이 잔업을 거부하고 시위대에 가세했다. 당시 사상터미널에서 주례교차로에 이르는 길까지 노동자와 고교생 등 인근 주민 2만여 명이 시위를 벌인 것으로 역사학자 서중석 교수가 언론 인터뷰를 통해 공개했다.
또한 부산시내 택시기사들의 활약도 돋보였다. 택시기사들은 민주택시기사협회라는 이름으로 서면교차로·문현교차로 등지에서 차량시위에 나섰다. 600여 명에 이르는 택시기사가 택시운수조합의 제재 조치에도 불구하고 경적을 울리며 차량 시위에 동참했다. 이들은 시위대를 보호하기 위해 문현교차로 고가도로 아래에서 '택시 차벽'을 만들기도 했다. 조소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