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갈화리 돌문어 배낚시] 만남의 기술은 (채비)밀당과 (챔질)타이밍
새우를 닮은 루어 '타코자라시'로 문어를 낚은 부산낚시연합회 김선관 이사.
새우를 닮은 루어 '타코자라시'로 문어를 낚은 부산낚시연합회 김선관 이사.
"한번은 제법 큰 문어를 잡아 물간에 집어넣고 낚시를 계속했죠. 한 10분쯤 지났을 때 느낌이 이상해 뒤를 돌아보니 문어가 갑판 위로 뛰면서 바다로 탈출하더라고요." 남해휴게소낚시(055-862-4440) 하태암 대표가 남해 '돌문어(왜문어)'의 영특함을 알려주었다. 문어는 바다 생물 중에 지각 능력이 뛰어난 종에 속한다. 미로처럼 생긴 요(凹)자형 물간을 어렵지 않게 빠져나온다는 것이 그 실체적 증거다. 머리가 좋은 까닭에 동작도 빨라 가짜 미끼인 에기에도 반응이 빠르다. 그래서 루어 낚시에 잘 속는다. 남해에 문어 철이 돌아왔다.
◆제철 문어 낚시
남해 먼바다에 한치가 풍성하다기에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남해에서 하 대표로부터 전갈이 왔다. 문어 철인데 왜 오지 않느냐고. 문어 낚시도 제철이라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바다는 오래 기다려 주지 않으니까. 안개 낀 새벽 고속도로를 달려 오전 5시에 남해에 도착했다. 남해 진입로는 몇 년째 공사 중이다. 출발하기 전에 '이제는 완공할 때가 지났으리라' 여겼지만, 제2 남해대교는 이제 다릿발만 세운 수준. 도로를 다 닦아도 다리가 없으면 무용지물이니 인내심을 갖고 더 기다려야겠다.
언제나처럼 환한 미소로 취재팀을 반겨 준 하 대표는 바다에 문어는 여전한데 삼천포 배들이 들어오기 시작해 상황이 많이 좋지 않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대형 문어 낚싯배가 출몰하여 어자원을 싹쓸이하고 있다는 것. 중국산 저가 문어 루어도 문제라고 했다. 낚시하다가 잃은 채비가 조류에 떠밀려 그물에 걸리는데 어부들이 그걸 제거하느라 애를 먹는다는 것이다. 몇 년 새 바다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는 것을 느꼈다.
우도 선착장에서 부산낚시연합회 김선관 이사와 함께 선외기를 타고 출발했다. 배는 잔잔한 파도 위를 부드럽게 달린다. 엄나무섬을 지나 민여섬과 떼섬 사이로 갔다. 이미 어부들은 나와서 조업을 하고 있었다. 가짜 게와 돼지비계를 단 채비를 양손에 들고 열심히 고패질하는 중이었다. 현지 어부의 배는 동력 엔진을 달고 있었지만 배가 조류에 밀리면 낚시를 하다가 채비 하나는 발로 밟고 어기영차 노를 저어 조정했다.
애초 포인트로 안내받은 곳은 붉은 등대와 푸른 등대 사이 해역. 하지만 바다에 나가 보니 괜스레 새로운 포인트로 가고 싶었다. 현지 어민들이 다수 포진한 것도 소개받은 곳을 뒤 순위로 한 이유였다. 섬과 섬 사이의 물골은 조금 물때임에도 세찼다.
◆참 성난 물고기들
닻을 내리기 전 탐색을 우선 해 보기로 했다. 섬 사이를 벗어나자마자 수심은 급속도로 깊어졌다. 5m 수심이 순식간에 15m로 떨어진다. 릴 줄이 하염없이 풀린다. 문어는 바닥에서 입질하기에 반드시 바닥을 찍어야 하는 상황. 그래서 조류가 센 사리 물때에는 낚시가 힘들다는 것이다. 하지만 조금 물때라도 마냥 바다가 잔잔한 것은 아니었다. 물골에서 작은 선외기는 냇물을 따라 흘러가는 가랑잎처럼 가볍게 움직였다.
물의 저항 탓인지 채비가 묵직해졌다. 일본 조구업체 야마리아의 '타코자라시'라는 전용 에기를 사용했는데 채비 아래 달린 봉돌이 바닥을 공 구르듯 흘러가다가 갑자기 무게감이 생긴 것. 해초나 다른 무엇이 채비에 걸렸을 것으로 짐작하고 릴을 감아 들였다. 그런데 떠오른 것은 문어.
얼떨결에 문어 한 마리를 낚았다고 기분 좋아하는 순간. 밝은 세상을 본 문어는 슬그머니 에기를 놓아버리고는 유유히 물밑으로 사라졌다. 허탈했다. 문어 채비는 새우나 소형 어류를 닮은 모양새다. 문어는 자기 주변에 출몰한 먹잇감을 발로 감싸 몸 가운데 있는 입으로 물어 제압한다. 문어를 제대로 낚기 위해선 힘차게 챔질을 해서 물고기 모양 에기의 꽁무니에 달린 갈고리형 바늘로 문어발을 꿰어야 제대로다. 반대로 문어가 에기만 감싼 상태라면 발만 풀어 버리면 채비가 벗겨지는 것이다.
조류에 밀려 엔진을 켜고 입질을 받은 곳으로 다시 배를 몰았다. 그리고 재빨리 채비를 내렸다. 에기가 바닥에 닿은 순간 이번에는 정확하게 입질이 왔다. 문어가 채비를 덮치는 느낌이 손바닥으로 진하게 전달됐다. 하 대표가 "문어는 매우 공격적이라 채비가 근처에 있으면 쏜살같이 달려들어 낚아챈다"고 한 말이 그대로 맞았다.
첫 문어를 낚은 뒤 멋진 사진을 찍고자 했다. 웬일인지 문어는 발을 활짝 펴 활개 치는 포즈를 취해 주지 않았다. 자꾸 몸을 움츠려 채비를 감싸기만 했다. 이렇게 비협조적인 것은 문어가 화가 났기 때문인가. 아니었다. 이유가 있었다.
직접 모는 선외기를 타고 하는 남해 문어 낚시는 포인트 이동이 자유롭다.
◆세상의 모든 낚시
더는 입질이 없자 하 대표가 알려준 등대 부근 특급 포인트로 갔다. 통발을 놓는 어민과 등대에 바싹 붙어 문어 낚시하는 어민들 틈바구니에서 낚시를 시작했다. 그런데 멀리서 커다란 배가 뱃고동을 울리며 다가왔다. 삼천포 문어 전용 낚싯배다. 순식간에 주변 바다에 대여섯 척의 큰 배가 들어섰다. 작은 선외기에 탄 취재진은 위축감마저 들었다.
삼천포와 남해 창선도 사이의 문어 포인트에 어자원이 고갈되자 전문 낚싯배들이 이곳까지 진출한다는 것. 이 때문에 이곳 어민들도 위기감을 느끼고 대책을 세워야지 않겠느냐는 의견을 심심찮게 내고 있다고 했다. 등대 포인트에서 동행한 김 이사가 연거푸 두 마리를 올렸다. 문어 전용 채비가 주효했다. 인근 어민들도 고전하는 가운데 얻은 쾌거였다.
덕분에 문어숙회와 특미 문어라면을 먹을 수 있었다. 엄나무섬 주변에 정박하고 선상에서 먹는 점심은 최고였다. 적당히 흔들리는 배는 요람을 탄 듯 편안했다. 노란 파라솔을 펼친 멋진 배가 주변에 와서 문어 낚시를 했다. 조과를 물었지만 신통찮다는 답을 들었다.
이곳 문어는 유독 다리가 한두 개 부족한 놈이 있었는데 이유가 있었다. "서툰 낚시인이 문어가 입질하면 그냥 챔질만 강하게 해서 그렇죠. 문어가 확실하게 채비에 올라탈 때까지 2~3초 기다려야 하는데 입질만 오면 채 버리니 다리만 떨어진 겁니다." 하 대표는 이런 문어가 한두 마리가 아니라고 했다. 어쨌든 이곳 갈곶리에 문어 자원이 많은 것은 분명했다.
이날 꽝을 친 한 어민은 취재일 며칠 전 사리 물때에 혼자서 40마리를 잡았단다. 세상 모든 낚시가 그렇듯 조과는 당일 운이 좌우한다. 남해 돌문어야, 오래 견뎌다오.
글·사진=이재희 기자 jaehee@busan.com
◆남해 돌문어 낚시 채비
낚싯대 나오리 필링샤프트 2.4m
릴 은성 실스타 3000번
라인 원줄 합사 1호, 목줄 5호
루어 야마리아 DD스파이더 등
이재희 기자 jaehe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