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작은 책방 이야기 "운영난에 '투잡'까지 뛰지만 마음만은 문학소녀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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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영화의전당에서 마련한 추리영화 기획전 '미스터리 X' 행사에서 '추리 서점' 팝업스토어를 연 작은 책방 운영자들이 재미난 포즈로 사진 촬영을 했다. 사진 왼쪽부터 오리책방 임성은 씨, 아스트로북스 김희영 씨, 낭독서점詩집 이민아 시인, 책방 카프카의 밤 계선이 씨, 책방 밭개 임남주 씨.

올 들어 전국적으로 한 주에 한 개꼴로 작은 책방 혹은 독립서점이 생겨나고 있다고 한다. '동네서점(지도)' 앱 개발사인 '퍼니플랜'(대표 남창우)이 발표한 '2017 독립서점 현황 조사'에 따르면 2015년 9월부터 지난달 말 기준으로 전국의 독립서점은 총 277곳. 이 중 지난 2년간 폐점 혹은 휴점한 서점은 7.2%(20곳)로 개점 1년 이상 운영 중인 서점은 73.6%로 집계됐다. 지역별로는 서울(128곳), 경기(30곳) 등 수도권이 가장 많아서 61.5%, 부산(15곳·5.8%)과 대구·제주(이상 10곳·3.9%)가 그 뒤를 이었다. 최근엔 작은 책방 순례자도 생겨날 만큼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하지만 운영은 녹록지 않다. 작은 책방, 동네서점, 독립서점 등 지칭하는 이름은 조금씩 다르지만 이들이 '용감한 언니'가 된 사연으로 부산의 작은 책방 이야기를 시작한다.

동네 책방 운영 '용감한 언니' 5명
"대형 서점에 밀려 어려움 겪어도
좋아하는 책과 함께하는 삶 행복
찾아주는 손님 있는 한 계속할 것"

■작은 책방이라 가능해요!


부산 금정구 장전동 장성시장에 가면 5평짜리 작은 책방 '아스트로북스'(인스타그램 @astrobooks.bs)가 있다. '단골이 점주가 되는' 독특한 장성시장 취재(본보 2016년 6월 5일 자 15면 보도) 이후 가끔 찾는 곳이다. 얼마 전 여행을 앞두고 권할 만한 책이 있느냐고 주인장에게 물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그녀'가 뜻밖에도 <교수대의 비망록>(여름언덕 펴냄)을 권했다. 신간도 아니고 5년 전에 나온 책이다. 부연 설명이 재밌다.

"내용이 무거워서요. 어디서든 읽으면 좋은 책인데, 내용이 무거워서 손님들이 잘 안 읽으려 하더라고요. 자유로운 여행지에 들고 가서 읽으면 좋을 것 같아요. 크기도 딱 좋잖아요. 속는 셈 치고 한 번 가져가서 읽어 보세요. 이런 책이 많이 팔려야 하는데…."

반디앤루니스, 교보문고, 영풍문고 등 대형 서점에선 가당키나 한 일일까 싶지만 작은 책방에선 충분히 만날 수 있는 광경이다. 역발상의 추천에 무릎을 딱 치며 그 책을 샀다. 책값은 당연히 정가로 지불했지만 전혀 손해 본 느낌이 들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이 책방은 낼모레 30일이면 '일단' 영업을 종료한다. 책방을 연 지 2년 만이다. 책방 주인은 오히려 담담하다. "망한 건 아니니까 염려 마세요. 가게 주인이 월세도 올려 달라고 하고, 책은 많아지는데 공간도 좁아서요. 곧 장전동 인근에서 다시 뵙겠습니다."

며칠 전 인스타그램에 다음과 같은 글이 올라왔다. "29일은 야간 개장할 예정입니다. 9시나 10시까지? 각자 드실 맥주 한 캔씩 들고 오세요. 혹시나 책에 흘리면 구매하시면 되니까 걱정 마시고요. 만취하시면 퇴장입니다. ㅋㅋㅋ"

책방 카프카의 밤
■작은 책방 주인 중 여성이 많은 이유

최근 영화의전당 6층 시네라운지에선 부산의 작은 책방 5곳이 모여서 '추리 서점'이란 타이틀로 팝업스토어(Pop-up Store·짧은 기간 운영하는 상점)를 열었다. 추리영화 기획전 '미스터리 X-추리소설과 만난 영화' 부대 행사였는데 영화를 보러 온 관객들도 뜻밖의 장소에서 책을 구매해 돌아가기도 했다.

5곳의 작은 책방은 큐레이션 역할을 맡은 이민아(38) 시인이 보수동 책방골목에서 운영 중인 '낭독서점詩집'을 비롯, 전포동 '책방 밭개'(책방지기 임남주·37), 아스트로북스(대표 김희영·37), 연산동 '책방 카프카의 밤'(계선이·36), 신창동 '오리책방'(임성은·28) 등이다. 공교롭게도 오리책방을 빼면 전부 30대. 오리책방까지 포함해 다섯 명 모두 여성이라는 것도 공통이다. 그러고 보니 부산의 작은 책방 주인 중엔 유난히 여성이 많다.

"아무래도 가족 생계를 책임지는 분들은 힘들잖아요!" "저 혼자만 책임지면 되니까 큰 부담이 없어요." "여성들이 갖고 있는 공감 능력 때문이 아닐까요? 책을 매개로, 혹은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는 데는 남성보다는 여성이 더 뛰어난 것 같아요." 이 시인이 화룡점정의 말을 던졌다. "오죽하면 '용감한 언니들'의 책방이라고 하겠어요! 투잡, 스리잡을 뛰면서도 다들 좋아서 운영하는 거잖아요."

작은 책방을 운영하는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큰돈 벌 생각은 애당초 하지도 않았고, 현상 유지라도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부분 책이 좋아서 책방을 연 만큼 중·대형 서점과 달리 독립 출판물에 대한 애정도 남달랐다. 다만, 책 유통만으론 운영이 어려워 별도의 독서 모임을 꾸리거나 소규모 강좌·강연을 여는 등 책 공간 활용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서울과 달리 독립 출판물을 낼 여력까지 갖추진 못했다.
낭독서점詩집
■좋아하는 책방 위해 '투잡'도 불사

작은 책방이 넘어야 할 산도 많다. 이 시인의 말이다. "인터넷 서점엔 50~55% 가격대로 넣으면서 우리한텐 85%를 받아요. 거긴 선물도 주고 포인트까지 주는데 우리가 어떻게 경쟁하겠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책방을 좋아하는 분들이 있으니까 우리가 견디는 거죠."

며칠 전 '낭독서점詩집'에 들렀다 닫힌 책방 앞에서 한참을 서성였다. 책방 문 앞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이민아 시인은 부경대학교에서 입학사정관으로 일한 적이 있어서 청소년과 청년, 학부모와 교사를 위한 독서 강의를 종종 나가기도 합니다. 임대비 벌러 나갑니다…(후략).'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책임감을 느낀다는 것에 대한 일종의 대가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서점도 내달이면 2주년이다. 아직은 더 버틸 수 있다는 그는 '시인이 머문 자리 낭독회'도 계속 열 것이고, 시와 그림책, 인문도서를 소개하고, 기다림과 약속의 연대를 지켜가는 이들의 공유 서재를 꿈꿀 것이다.

지난해 12월 '카프카의 밤'을 시작한 계 대표는 남들이 퇴근하는 저녁이면 콜센터로 출근을 한다. 책방 유지를 위해 '감정노동'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는 '낮에는 생계를 위한 일을 하지만 밤마다 글을 쓴' 프란츠 카프카의 삶을 보면서 용기를 냈다. 비록 반나절의 서점이지만 좋단다. 독립출판물이 좋은 이유도 마찬가지다. "책을 팔아서 돈을 벌겠다가 아니라 누군가가 읽어 보면 좋겠다 싶어서 내는 책이잖아요." 이 책방은 연산도서관 바로 앞에 위치하고, 도서관 휴무일에 같이 쉰다. 카프카 전작 읽기 모임 등 독서 모임이 있고, 주인 취향의 단행본과 독립출판물을 취급한다.
책방 밭개.
전포동의 옛 지명 밭개에서 따온 인문학서점 '책방 밭개'는 이제 겨우 3개월로 의욕 충만하다. 토요코인 서면점 뒤쪽 공구 상가 안 골목에 있다. 여고 동창 4명이 뜻을 모았지만 실질적인 운영자는 임 대표다. 19일 '사사키 아타루의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책읽기 모임을 시작으로 9월 9일엔 한나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을 읽는다. 21일엔 아스트로북스와 대구의 작은 서점 '책방이층'이 밭개에서 서로의 손님을 공유하는 작은 팝업을 열었다. 또 정치 사회 시스템 관련 책을 읽으면서 '알고 떠나자 이민 스터디'도 시작한다.

한편 '국제시장 청년 몰' 입주자였던 '오리책방' 이야기는 사연이 길어서 다음 페이지로 넘긴다. 글·사진=김은영 선임기자 key6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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